A.I. (에이. 아이.)감독 : 스티븐 스필버그
출연 : 헬리 조엘 오스먼트,주드 로,프란시스 오코너
장르 : SF
등급 : 12세 관람가
<메인카피>
인간은 그들과 가장 닮은 것을 창조해 냈다. 그러나...
큐브릭의 감성과 스필버그의 환타지가 만든 21세기 최고의 SF 휴먼메시지
소년은 사랑이라 말한다. 그러나 인간들은 아니라고 한다.
Daivd is 11 years old. He weighs 60 pounds. He is 4 feet, 6 inches tall. He has brown hair. His love is real. But he is not.
아래의 내용은 제가 듣는 수업중 '과학기술의 철학적이해' 라는 과목에 제출한 레포트의 한부분입니다. 일종의 영화감상이기 때문에 공개합니다. ^-^*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로봇을 다룬 영화 A.I. 는 로봇이 사람이 될 수 있는가를 진지하게 고찰해본 영화이다. 사실 이 영화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83년부터 구상했으나 완성하지 못했던 미완의 프로젝트를 스티븐 스필버그가 이어받아 완성한 것으로 당시에 이미 로봇과 사람사이의 관계를 생각했었다는 것이 놀랍다.
로봇이란 무엇일까? 두산 백과사전에 보면 로봇이란 ‘인조인간(人造人間)’ 이라고 나와 있다. 본래 사람의 모습을 한 인형 내부에 기계장치를 조립해 넣고, 손발과 그 밖의 부분을 본래의 사람과 마찬가지로 동작하는 자동인형을 가리켰다. 그리고 Robot은 Robata(일하다)에서 유래된 단어이다. 이것을 조합해 보면 로봇은 사람모양을 하고 일을 하는 인간이 만든 인간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로봇은 인간을 닮지 않았다. 닮게 만들려고 해도 기술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누가 보더라도 저것은 로봇임을 알 수 있다. 이 영화에서처럼 생각하거나 감정을 가진 로봇은 불가능 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해진다면 그것은 로봇일까? 그것이 이 영화를 보고 우리가 생각해야 할 점이다.
데카르트는 인간만이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그런 마음은 몸하고 달라서 어떤 공간도 차지하지 않으면서도 분명히 우리 안에 존재한다고 말했다. 마음은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실체이며, 그런 능력을 타고나기 때문에 인간이 다른 존재와 본질적으로 구분된다고 하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A.I. 에 나오는 데이빗은 인간의 마음을 충분히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하비박사가 데이빗에게 ‘넌 이미 인간이다’ 라고 말을 했다. 데이빗이 자발적으로 생각을 하고 위기를 탈출하면서 희망과 목표를 가지고 그를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는 엄마의 사랑을 그리워했고, 질투도 했고, 마지막에 엄마를 다시 보자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조차 했다. 데카르트를 인정한다면 데이빗은 분명 인간이다. 하지만 영화를 본 모든 사람은 데이빗이 인간임에 동의하진 못할 것 같다. 내가 봤을 땐 데이빗은 인간이 아니다. 그는 기계로 이루어져 있는데 어떻게 인간이란 말인가?
데이빗에게 부모라는 정보를 입력하자 '마미' 라고 부른다. 인간일까?
단순히 마음과 감정만을 가지고는 인간이라고 말할 순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데넷은 데카르트식 마음에 관한 설명에 정면으로 도전했는지 모르겠다. 데넷에 따르면 인간의 마음은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적인 진화의 산물이기에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어떤 신비한 존재영역으로 발을 들여 놓을 필요까지는 없다고 말했다. 신비한 존재영역이란 영혼과 같은 것으로 과학으로 다룰 수 없는 것이다. 즉 마음은 처음부터 완성되어 있는 영혼과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신비한 것이 아니고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마음을 신비주의적으로 해석한다는 것은 인간 스스로 인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과학기술을 소유하고 있는 시대에 살면서 인간이 스스로에 대해 여전히 신비적인 방법으로 설명하는 태도는 맞지 않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의 관점을 빌리면 마음의 유무는 로봇이 인간이라고 말할 수 없다.
마음의 유무로는 로봇이 인간임을 말할 수 없다면 또 다른 꺼리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생김새. 영화상 데이빗은 인간과 똑같이 만들어 졌다. 그의 모습만 보아서는 인간인지 로봇인지 도저히 구분할 수 없었다. 중반에 보지 못한 부분에서 데이빗이 로봇들의 사형터에 가둬졌을 때, 인간 아이로 오인되어 다행스럽게 살아날 수 있었던 장면이 있었는데, 그것처럼 그는 인간과 똑같다. 그렇다면 이런 모습은 그가 인간임을 말해주는 증거가 될 수 있을까?
아니다. 결코 인간과 똑같은 모습이라 하여 그는 인간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가상에 존재하는 것들이지만 좀비, 강시 등의 괴물들은 인간과 똑같이 생겼고 인간처럼 움직이지만 그것들을 인간이라고 부르진 않는다. 그리고 데이빗은 모습만 인간과 같았지 그 안의 기능들은 인간의 것을 흉내 내어 만들어 졌을 뿐이다. 데이빗은 자라지 못하고, 먹지 못한다.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의 영화 바에센테니얼맨을 보면 주인공 로빈 윌리암스가 로봇으로 나온다. 그는 자신의 기능을 하나하나 개조해 나가 결국 신체의 대부분을 인간의 것처럼 바꾸는 것에 성공한다. 사랑도 나누고, 먹을 수도 있고, 시간에 따라 자라나기도 한다. 로봇이지만 인간형 로봇 생산을 하는 기업의 회장으로 많은 부도 소유했다. 그러나 그는 법원으로부터 인간으로 승인할 수 없다는 판결을 받았다. 그렇게 완벽한 로봇(?)도 퇴짜를 맞는 판국에 데이빗을 인간으로 인정함에 있어선 무리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데이빗은 어떻게 하면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영화상에서 그는 인간이 되길 그렇게 희망했지만, 결국 인간은 못되었다. 대신 스티븐 스필버그는 2천년이라는 시대를 흘러 보낸 뒤 인간과 로봇을 모두 같은 존재로 만들어 버렸다. 새로운 인류 혹은 외계인이라는 사람들이 있는 그 시대에선 데이빗이나 유전공학으로 다시 살아난 데이빗의 엄마 모니카나 결국 같은 존재가 되었다. 즉 사회적인 관념 변화로 데이빗은 인간이 된 것이다.
바이센테니얼맨에선 로빈 윌리암스가 자신을 죽을 수 있게 만들면서 영원히 죽지 않는 로봇이라는 개념을 깨버렸다. 그리고 죽기 직전에 그는 최장수 인간으로 인정받게 된다. 아마 데이빗이 자라나고 죽을 수 있었다면, 그는 로봇이 아니라고 인정받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한번 로봇이면 그걸 인간으로 인정은 절대 못할 것 같다. 인간의 알량한 자존심인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이 로봇을 만들었는데 그 로봇을 인간이라고 인정하는 것엔 어폐가 있는 것 같다. 종교적으로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하느님께서 인간을 만들 때 하느님의 모습을 닮게 만들었는데, 인간을 하느님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시험관 아기며, 복제 인간에, 유전공학적으로 태어난 생명에 대해서도 정말 배타적이고, 말이 많다. 자신의 정체가 시험관 아기였음을 알게 되고 충격을 받는 드라마도 꽤 많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상처를 받고, 자신의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고뇌한다. 그들은 인간이다. 인간과 똑같은 장기 인간의 DNA를 가지고 있고 인간의 마음이 있으며 개성이 있다. 그런데도 논란의 여부가 되는데, 로봇을 인간으로 인정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울까?
점점 기술은 발전하고 있다. 한계가 보이질 않는다. 로봇기술도 발전하여 영화에서 봤던 것이 정말로 나올 날도 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로봇 강아지 인형이 인기를 끌고 있고, 비록 넘어지긴 했지만 계단을 스스로 걸어 올라가는 일본의 아시모가 자연스러운 움직임일 보여주고 있다. 또 우리는 병을 치료하는데 있어 인공장기를 사용하고, 건전지로 심박을 유지하기도 한다. 그 두 기술이 만나다보면 정말 로보캅 같은 경찰은 조만간에 나올 것만 같다.
기술의 진보와 철학의 이해가 맞물려야 하는데, 어느 속도 하나가 더 빠를 수밖에 없고 그것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문제들은 우리가 풀어야할 과제중 하나일 것 같다. 로봇을 인간으로 인정하는 문제는 지금의 내게는 어림없는 문제이지만, 많은 생각과 철학적 이해를 거쳐 합당한 이유가 사회에 지배적인 가치가 된다면 나의 생각도 충분히 바뀔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영화에는 철학과 과학이 담겨 있다. 단순히 재미로 볼 때와 로봇과 인간의 관계를 의식하며 볼 때 들어오는 관점이 사뭇 달랐다. 즐거운 영화감상을 하기 위해선 자신의 잣대를 뚜렷이 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끼면서, 영화계의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의 주장을 읽어볼 수 있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