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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밤에는 멀쩡하던 날씨가 갑작스레 일진 광풍이 몰아 치던 가 하더니 원한의 장대비가 쏟아지고야 만다.
미친 년 널 뛰듯 하는 요즘 날씨는 참으로 지랄 맞기 짝이 없어 화요 산행을 앞둔 우리 느림보님들은 몹시도 걱정을 했었는데
남의 뱃때지 위에 처억 올려 놓은 예팬네 하마 뒷 달구리를 슬며시 밀쳐 내곤 베란다로 나오니 아무래도 기우였던 가 보다.
불곡산 뒤 코발트색 하늘의 여명이 이제서야 초가을을 실감케 하는 계절의 절정이다.
오리역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오늘 따라 유난히 가볍다.
탄천 징검다리를 건널 때는 주둥이를 쑤욱 내 밀곤 김 세환의 어느 날 오후를 휘파람으로 불러 보는 객기 마져 부려 본다.
느림보 리무진이 서현역을 경유하여 모란에서 마지막 느림보님들을 픽업하곤 이내 경춘 고속도로를 올라 탄다.
낮이든 밤이든 말이든 바이크든 올라 타는 그 순간만은 속세의 찌든 번뇌를 깨끗히 해탈하는 무아 지경의 순간이다.
집꾸석에 있는 하마만 빼고.
경춘 고속도로는 구간이 짧은 탓인지 휴계소가 가평에 딱 한군데 밖에 없어 주말이나 피서철에는 차량 진입 자체가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려 든다.
특히나 출출한 시간대에는 호두에 가평 특산물인 잣을 가미하여 굽는 빵가게는 한참이나 줄을 서야 맛을 볼 수가 있다고 한다.
호두하면 천안이고 천안이라고 하면 우선 낭창 낭창한 가지의 능수 버들이 유명한 천안 삼거리와 함께 여행객들의 입맛을 돋구던
호두과자가 맨 먼저 떠 오르는데 요즘은 전국 어디를 가도 주전부리 음식으로 호두과자를 팔지 않는 휴계소가 없다.
하필이면 천안이 호두과자의 원터가 된 사유는 무얼까?
답은 간단하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호두나무를 심은 곳이 천안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호두나무의 발상지는 중국으로 알려져 있지만 중국의 고문헌을 보면 페르시아 쪽에서 전래 되었다고 쓰여 있는데
우리나라에선 오랑캐 호자와 복숭아 도를 합성하여 호도라고 칭하는데 올바른 한글 표기법은 호두라고 한다.
여름철에 우리들이 즐겨 먹는 자두 또한 마찬가지다.
오얏이라고도 하는 자도 또한 붉은 색을 띈 복숭아라는 말이지만 한글로는 자두라고 하는 것이 올바른 표기법이라고 한다.
천안에서 유씨(? 기억이 가물 가물) 성을 가지고 태어난 어떤 아이는 어릴 적 부터 몽골어에 능숙하여 후일 역관이 된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몽골어를 능란하게 구사하는 이 인물은 중국을 들락 거리며 중국의 후광을 이용하여 고국에 들어 올
적에는 엄청난 위세를 부리며 거들먹 거렸는데 급기야는 매국노 역할을 자처하여 이름 마져 푸를 청에 신하 신으로 개명하여
청신이라고 불리우며 중국의 주구 노릇을 하다 끝내는중국에서 일생을 마치게 되었는데 이 자가 중국에서 호두 맛에 반해서
고국에 오는 길에 갖고 온 호두 묘목과 씨앗을 자신의 고향땅인 천안 광덕면과 인근에 있는 광덕사란 사찰에 최초로 심게
되었다고 한다.
천안이 우리나라의 호두 발상지인데 지금도 광덕사에 가면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이 호두나무가 아직도 생존해 있다고 한다.
한방에서 약재를 쓰는 방법은 다양한데 그 중에서 약재의 모양을 보고 쓰는 방법의 대표적인 것이 호두다.
사람의 뇌를 닮은 호두를 신경성 불면증이나 노이로제 혹은 왕성한 대뇌활동 등에 처방하는데, 사람의 심장을 닮은 복숭아 씨는
심장병에 사람의 치아를 닮은 깡냉이는 잇몸 질환에 사용한다고 하는데 영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닌 가 보다.
요즘 시중에 나오는 양방 잇몸 치료제의 주 원료가 옥수수에서 추출한 물질이라고 한다.
모양이라고 하면 고개 푸욱 숙이고 삶으면 흐물 흐물 거리는 그 넘의 생김새 때문에 영 찬밥 신세를 면하지 못하는 고사리와
숙주가 대표적인 희생물인데 해삼 처럼 흐물거리는 건 여자들에겐 딱 쥐약이다.
구래서인지 우리집에서 키우는 하마는 일년 내내 빠닥 빠닥하게 잘 얼어 붙은 비비빅이란 아스케끼만 줄창 빨아 댄다. 흐 흐.
아홉마리 용의 기상이 서렸다는 오늘의 산행 들머리 이곳 구룡령은 양양과 홍천을 가르는 경계 분수령이라고 한다.
백두 대간의 종착지인 지리산을 향해 치고 달리는 고산 준령들이 발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이곳 구룡령으로 솟구쳐 올라 오는
청정 바람은 그 상쾌함이 말로 형언키 어렵다.
미당 서 정주 시인은 자신의 인생 8 할은 바람이였다고 한다.
역마살이 호되게 끼여 평생을 바람처럼 떠 돌았던 난 지금도 바람이라면 환장을 한다. 그것도 구룡령의 산소탱크 같은 바람을...
허구헌 날 돈 한푼 안 받고 무작정 불어 제키는 그 바람이 무어 그리 좋냐구요?
목구녕이 포도청이여서 하루 왼종일 도심의 찌든 공해에 시달렸으면 집꾸석에서 들어 와선 구래도 편하게 숨이라도 쉬고 살면
오죽이나 좋겠습니껴?
꽥 꽥 거리며 발버둥을 치다가 어떨 쩍에는 컥 컥 거리며 자지러지게 두어 번 숨이 넘어 가다가는 마침내 간간히 내 뱉는 예팬네의
거친 숨결 마져 밤이면 밤마다 온 몸으로 받아야 하는 내 팔자를 생각하면 전 구냥 몸서리가 쳐 집니더.
금방 내려 오고야 말 산을 마냥 끼집어 올라 가는 저의 딱한 사정을 듣고 보니 느림보님들! 측은지심이 절로 생기져?
가파른 경사길을 한시간 여 헤매이다 보니 명개 약수터의 주봉인 약수산이 우거진 관목숲 속에서 그 모습을 보인다.
약수산에서 응복산으로 이어 지는 해발 1000 고지의 능선길은 구름 위를 걷는 정원길을 연상케 한다.
이곳에서 마냥 살 수가 있으면 울매나 좋을까 하는 생각만을 간절히 떠 올리려 혼자서 어기적 거리며 내려 오노라니 응복산이
코 앞에 올려다 보이는 어느 안부에서 막 점심상을 펼치는,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눈꼽 만큼도 들지 않는 느림보님들이 와글댄다.
여러 느림보님들이 잘 아시다 싶이 전 지난 주 환상의 진도 섬산행을 애써 포기하고는 국가의 명을 받아 출전한 리비아 사막에서
카다피 정예군의 갑작스런 기습 공격으로 가운데 토막에 유탄을 맞았습니다.
제가 탄력 붕대를 세 겹이나 칭칭 동여 매고 응복산 산행에 합류를 한다는 건 우리 모든 느림보님들이 주지하는 바 였지만
부상 당한 몸으로 어기적 거리며 산행을 하는 저를 부축은 켜녕 성가신 쇠파리 보듯 하는 와중에
이미 여러 사람들이 옹기 종기 자리를 잡은 점심상 틈 바구니 사이로 어렵게 제 몸을 삽입하여 끼집어 들어가 털석 주져 앉는데
갑자기 천상에서 들리는, 아니 응복산에 강림하신 선녀님의 목소리가 들리지 멉니껴?
혹시 급한 경사길을 올라 오느라 탄력 붕대가 풀어 져서 그시기가 쓰리거나 따끔거리지는 않냐고 제 안부를 물어 봅띠다.
끄집어 내기만 하면 본인이 호 호 하고 불어 주고 싶다는 말씀을 하실 적엔 제 얼굴은 이미 감동의 눈물로 범벅이 되였습니다.
미모에 지성이 모잘라 활달한 등반 실력와 깔끔한 매너 뿐만이 아닙니다.
천사처럼 고운 심성에 얼굴에 줄 줄 흘러 내리는 돈티 덕분에 분당 바닥에선 카타리나 라고 하는 예명을 모르는 이들이 업져.
응복산에서 통바람골의 신선한 산소를 마냥 흡입하며 한참을 내려 오노라니 자그만 교량 너머에 우리의 느림보 리무진이 보인다.
최 기사님과 함께 오신 옆지기님께서 정구지(부추) 듬뿍 넣은 부침개에 션한 열무 국수를 준비하시고 이미 선착하신 산여인님,
양귀비님 그리고 홍두깨님께서 발써 후라인팬을 잡고는 부추전을 부치신다.
빈대떡 빈자떡 부침개 전이라고들 통칭하지만 내 고향 안동땅에선 적이라고 한다.
국수에 곁 들여 쐐주 한꼬뿌 주둥이에 털어 넣고 부추적을 항거석 주둥이에 우겨 넣으니 고향땅과 어머님 생각이 절로 든다.
한동안 장안에선 안동 국시가 상당히 유명하였는데 안동 국시를 처음으로 언론상에 소개한 것은 큼직한 국수 사발에 허연 국수를
가득 담고 그 위에 각종 야채를 비롯한 여러 구미를 듬뿍 얹은 안동 건진 국수를 사진으로 담은 한독 약품의 소화제 훼스탈 선전이
처음이다.
여기에서 어떤 아이디어를 얻은 몇 몇 분들이 서울 일원에서 안동 건진 국수집을 개원하여 성황을 이루었는데 안동 국시를 삶아
내는 방법은 3 가지다.
첫째는 국수를 요즘의 잔치 국수처럼 삶아서 건져 올리곤 미리 준비해둔 별도의 국수 육수에 풀어 먹는, 즉 국수를 삶아서 일단
건져 올린다고 해서 건진 국수라고 불리우는 안동 국시는 예전에는 국수 육수를 낙동강으로 올라 오는 은어를 잡아서 끓여 내곤
그 고기를 잘게 썰어서 국수 위에 올리는 구미(서울 쪽에선 고명이라고 하던가?)로 사용하였는데 이 은어란 고기가 말 그대로
은백색의 귀족 고기인데 잡스런 걸 절대 먹지를 않고 오직 돌에 붙어 있는 이끼 같은 것만 먹기 때문에 잡아서 냄새를 맡아 보면
비린내는 전혀 나지 않고 상큼한 수박 냄새만 난다.
물론 그런 사유로 은어는 조선시대만 해도 임금님의 진상품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일반 백성들은 포획 자체가 금지되었다.
요즘의 칼국수 처럼 별도의 육수 없이 그 국물에 그대로 끓여 내는 국수가 그 다음인데 이 칼국수는 국수물이 푸르르 하게 끓어
올라 솥을 넘칠 즈음에 시퍼런 얼갈이 배추를 몇 장 집어 넣는 것이 맛의 비결이다.
마지막으로 마른 국수란 것이 있는데 이 국수는 면발이 상당히 굵고 넓직한데 일단 잘 삶아서는 체발에 물기를 슬쩍 빼면서
구들 구들하게 말렸다가 참기름을 뜸뿍 넣은 간장에 비벼 먹는다.
이 마른 국시는 제삿상에도 올리는 귀한 음식인데 알려진 바가 별로 없는 특이한 별미다.
그리고 안동 국시의 특이점은 국수를 반죽할 때 밀가루와 함께 반드시 콩가루를 일정 가량 혼합하는 것인데 넓직한 송판으로
만든 안반 위에 국수 반죽을 올리곤 이따마시한 홍두깨로 슬슬 밀어 반죽이 보자기 처럼 넓직하게 되면 시커먼 정지칼로
스먹 스먹 썰어 내어선 서로 들러 붙지 않게 약간의 밀가루를 뿌려 주면 환상의 면발이 만들어 지게 된다.
요즘은 젊은 사람들이 얼큰이니 큰바위 얼굴이니 하는 표현들을 쓰지만 우리 어릴 적에는 얼굴이 씨네마스코프 처럼 넓직한
분들을 보고는 안반 넙띠기라 했다.
그리고 우리 느림보에도 홍두깨란 닉네임을 쓰고 계시는 분이 있는데 우리 예팬네가 즐겨 찾는 비비빅 보다 열 천만배나 더
무시 무시한 것이 바로 이 홍두깨의 우람함이다. 히 히.
다음 화요 산행은 경북 봉화에 있는 청옥산이라고 합니다.
강원도와 경계를 하고 있는 봉화는 강원도 보다 더 깊숙히 틀어 백힌 오지인지라 청정 그 자체입니다.
많은 느림보님들이 함께 하는 좋은 산행이 되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허락하면 한창 유행했던 안동 찜닭에 대한 언급도 언젠가는 꼬옥 해 드릴께요.
탄천변에서 여직도 다리를 어기적 거리는 곤줄박이 돌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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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빵깨이란 말은 혼잡이라고도 하는데 안동 지방에서 소꿉장난을 그리 표현합니다.
산행을 마치고 내려 오면 여러 느림보님들이 뒷풀이 준비를 정성스레 해 주시고 천차 만별의 여러
느림보님들이 함께 오손 도손 모여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면 전 어릴 적에 여친들과 함께 하던
빵깨이가 늘 생각나곤 합니다.
할머니가 안동분이셔서 안동건진국시는 저도 좀 알지요..ㅎㅎ
또한 국시에 푸르죽죽한 배춧잎 넣은것도 먹어봤구요..ㅎㅎ
잘 읽고 느끼고 갑니다..근데 아직도 불편하시다면 어쩐디야??? ㅋㅋㅋ
아하!! 글고 광덕산 우리나라 최고령 호두나무는 엄청 큽니다..
광덕사 입구에 멋지게 버티고 있지요..
글도 재밌고요 일반상식도 건지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즐감.
느림보에동명2인이어느분인지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