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14일 달날 날씨 : 학교 뒷마당엔 매화가 꽃망울을 준비하고 학교 앞 길 건너에선 산수유가 꽃망울을 준비하다. 바람이 부드럽다.
5학년 아이들과 새학년 새학기 새로운 맘으로 산 지 두 주가 흘렀다. 학년이 올라가기 앞서부터 “지각은 안 된다”는 조금, 아니 많이 집요하고 끈질긴 모둠 선생의 말 때문인지 아이들이 5학년으로 진지하게 살고픈 마음 때문이었는지 여섯 아이가 거의 날마다 제 시간에 학교에 와 아침을 여유있게 열었다.
두 주가 흐른 오늘 두 아이가 아침 걷기를 떠나는 8시 50분까지도 오지 않았다. 모두 아침열기가 있는 날이라 기다릴 수 없어 짧게 동네를 돌며 동네에 찾아온 봄을 만나고 오니 두 아이 모두 마당에서 우릴 기다린다. 다행이다. 많이 늦지는 않은 모습에 안도한다. 나름 애쓰고 있는 두 녀석과 부모님들에게 고맙다. 모두 아침열기를 마치고 15분의 짧은 쉬는 시간을 갖은 뒤 교실에 둘러 앉아 주말지낸 이야기를 짧게 하고 날마다 모둠 선생이 하는 책읽어주기(꽃들에게 희망을)를 바로 책읽기 공부에 들어갔다. 오늘 책읽기는 지난 3월 8일 여성의 날을 맞이하여 함께 읽고 싶었던 <소녀이야기>를 선생이 읽어주고 함께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비슷한 이야기 <꽃 할머니>를 읽을까도 했지만 그림이 어린이들과 보기에 알맞지 않은 부분이 있어 소녀이야기로 바꿨다. 우리 역사에서 알아야 하지만 쉽게 나누기 어려운 이야기를 어린이들 눈높이에 맞게 다른 소녀이야기, 물론 여기서도 선생이 어린이들에 맞게 풀고, 읽지 않은 부분도 있다. 하지만 내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어린이도 있어 아이들이 저마다 알고 있는 것들을 서로 알맞게 꿰는 것도 필요했다. 가슴 아픈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것들, 어린이들이 할 수 있는 것들 이야기도 나눴다. 일본이 할머니들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하도록 대사관에 편지를 쓰자고 하는 아이도 있고 가서 손을 잡아주자고 하는 아이도 있다. 따뜻한 음식을 대접하자는 아이, 편안히 쉴 수 있는 집을 지어주자는 아이, 그리고 다시 되풀이 되지 않도록 기억하자는 아이도 있다. 폴짝폴짝 가볍게 움직임 속에서 속 영근 생각들이 가득하다.
한주가 2주 동안 깜박 잊고 챙겨오지 않던 영어공책과 영어사전공책을 가져왔다. 아침에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한 말이 “선생님, 저 영어공책 챙겨왔어요.”다. 꼬옥 안고 잘했다고 하니 얼굴이 활짝 핀다. 스스로가 대견한 지, 오늘 한주는 쉬는 시간 점심 시간에 영어공부에 열을 올린다. 글씨에도 정성이 가득하다. 점심시간 교사실에 있는 나를 찾아와 “선생님, 하우아유투데이. 이거 영어로 써주고 한글로도 써주세요.” 한다. 교실 칠판에 써주고 내려오니 영어를 옮겨적고 영어 음가를 한글로도 써서는 다시 교사실에 따라 내려와 자리를 펴고 앉아 뜻을 묻는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좋다. 즐겁게 무언가를 마음 낸다는 것은 참 아름답다. 내일을 또 잊는다해도 오늘 이리 행복하게 즐겁게 무언가에 집중하는 것! 그것 자체로 아름답다. 진숙 선생님이 “한주야, 점심시간이니 쉬어요.”그러자 한주가 대답하길 “선생님, 난 이게 노는 건데요.”한다. 뜻이 가득 넘친 한주의 날이다.
낮공부로 용마골에 간다. 청소를 마친 아이들이 명희 선생님 이끔에 따라 숲속놀이터에 짝손을 한다. 지안이와 지은이가 인채, 인준이 손을 서로 잡고 있다. 아마도 조금 더 맘에 드는 동생과 손을 잡고 가고 싶은 게다. 지안이도 인채 손을 더 잡고 싶은 모양인데 지은이가 꼭 잡고 있느니 아쉬운 눈빛으로 양보를 한다. 동생 손을 잡은 지은이 발걸음이 처음엔 가쁜하더니 조금 걸어가니 자꾸 뒤로 처진다. “지은아, 우리끼리 갈 땐 맨 뒤에서 천천히 걸어도 좋은데 동생을 데리고 갈 땐 조금 더 힘을 내야 해요. 너무 뒤로 처지면 지은이도 동생도 힘들어요.” 지은이가 다시 힘을 내어 걷는다. 바깥 날씨는 아침과 다르게 봄이 턱밑까지 왔다. 두꺼운 옷을 걷기엔 매우 버거운 날씨다. 용마골로 접어들어 여럿이 함께 걸을 땐 지은이가 내손을 잡고 걸었지만 멀리 아이들이 보이고 안전하다 싶은 곳에서는 스스로 다리에 힘을 주고 걷는다. 온몸에 힘을 주고 걷느라 지은이가 많이 고단했을 것이다. 울퉁불퉁한 바윗길을 온전히 혼자 힘으로 버티고 중심 잡고. 참 애쓴 하루다. 뒤 늦게 올라가니 본준이는 이미 물에 빠져 신발이 흠뻑 젖었다. 혼자서 봄에 흠씬 빠졌다. 발이 시릴 텐데도 바위와 물길 사이를 잘도 옮겨 다닌다. 돌아오는 길은 지은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5분쯤 먼저 일어났다. 산길을 돌아 내려와야 하고 함께 움직이다 보면 다른 아이들 빠르기와 달라 늘 지은이가 맨 뒤에 걷게 되고 그러다 보면 돌아와 많이 지쳐보였다. 처음엔 왜 먼저 가냐고 묻던 지은이가 산길을 중간쯤 내려올 땐 기분이 꽤 좋다. “나, 친구들 보다 먼저 학교에 갈거예요. 일등으로 갈 거예요.”한다. 내려오는 길도 천천히 혼자 걸었다. 때때로 내 손을 잡으려 했지만 혼자 힘으로 다리에 힘주며 내리막도 잘 내려갈 수 있다하니 용기를 낸다. “난, 용기를 낼 거야.” 혼자 주문을 걸기도 한다. 뒤에 따라오는 어린이들이 보이자 지은이가 갑자기 내게 손을 내민다. “이제 손잡고 빨리 걸을 거예요.” 손을 잡고 내려오는데 자꾸 뒤를 돌아보며 아이들 위치를 확인한다. “왜 뒤를 자꾸 돌아봐요?” 묻자 “선생님, 나 오늘은 일등으로 학교에 가고 싶어요.”한다. 뒤를 보며 내 손을 꼭 잡고 걷는 지은이 발과 팔에 힘이 들어간다. 멀리 아이들은 짝손을 하느라 서 있다. 지은이 발걸음이 더 빨라진다. 건널목을 건너 막국수집 쯤 왔을 때 지은이가 잡은 손을 빼서는 내 팔에 팔짱을 끼고 어깨에 기댄다. “선생님이 참 좋아요.” 느닷없는 사랑고백^^ 아마도 일찍 올 수 있었던 것에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선생님도 지은이가 참 좋아요. 지은이가 선생님이 좋다니 감동이에요.”
토요일 하일성 야구교실에 다녀온 규태의 고민이 깊어졌다. 그 곳 선생님이 야구선수를 하려면 빨리 학교를 전학가라고 했단다. 맑은샘학교에 있고도 싶고 야구도 하고 싶은 규태의 고민이 깊다. ^^ 어머니에게 전화를 드려 규태의 고민을 말씀드렸다. 집에서는 야구를 취미로 했으면 좋겠다고 하고 가볍게 이야기를 나눴다는데 규태는 어머니나 선생의 생각과는 다르게 진지한 고민이다. 어머니께 바깥 선생님께 어머니 뜻을 말씀드리고 규태에게 도움말을 줄 땐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도움말을 주십사 부탁드려달라고 했다. 규태의 처지를 잘 모르는 바깥 선생님은 보통 가볍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규태에게 한 듯하다. 바깥 공부를 할 때 바깥 선생님과도 긴밀하게 소통해야 하는 까닭이다.
누리샘 아이들 사이에서는 놀림 말이 갈등의 씨앗이다. 아침나절에도 놀림말로 이야기를 조금 나눴는데 마침회를 하고 나오니 조금 있다가 현서가 교사실로 나온다. 한주가 놀림말을 또 했다는 것이다. 잔뜩 억울해하고 짜증이 나있는 현서를 안고는 “한주도 애쓰고 있으니 우리 조금만 더 여유있게 기다려요.”하니 누나처럼 살포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어느새 한주가 교사실 문까지 따라와 현서와 날 지켜보고 있다. 하하 걱정이 되었나보다. 일부러 나가 한주를 붙잡고 현서에게 “현서야, 선생님 안보는 데 가서 줘 박아 줘라.” 하니 현서가 웃으며 한주를 데리고 교실로 올라간다. 투닥거림이 서로 지치지 않으며 하루 삶이 되고 서로 정을 쌓는 시간들이 되었으면 한다. 너무 무겁지 않게 하지만 서로 소중하게 투닥거리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