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의 무지를 알려주신 주님은 동물의 세계를 통하여 창조주 하나님이 어떤 능력자인지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사자와 까마귀를 먹이시는 능력을 말씀합니다. 누가 사자와 까마귀에게 먹이를 줄 수 있습니까? 오직 하나님만이 그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야생염소가 언제 새끼를 치는지 암사슴이 언제 새끼를 낳는지 아느냐고 묻습니다. 염소들의 번식은 엄청납니다. 자고 일어나면 새끼를 벤 것처럼 보입니다. 언제 새끼를 치고 낳는지 알 수 없습니다. 들나귀의 자유로움, 들소의 거대함을 볼때 순종하고 일하는 것이 가능하게 보이지 않지만 순순히 따르며 밭을 가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아느냐?
하나님은 타조를 언급합니다. 날지 못하는 새가 타조입니다. 타조는 아름다운 깃털이 있지만 의미가 없습니다. 타조는 알을 낳으면 품지 않습니다. 길가에 내버려둡니다. 그러면 다른 짐승들의 발에 밟히지 않으면 새끼가 태어납니다. 타조가 이러한 것은 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타조에게 지혜를 주지않아서 다른 새들과 다르게 새끼를 대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래도 본능이 있어서 위기가 오면 말 보다 빠르게 달아납니다.
하나님은 말을 제시합니다. 특별히 군마들은 엄청나게 빠릅니다. 말의 용맹함은 놀라운 정도입니다. 이에 못지않게 매와 독수리가 있습니다. 높은 곳을 날지만 집은 낭떨어지에 있습니다. 거기서 멀리있는 먹잇감을 봅니다. 그래서 독수리가 있는 곳에는 시체가 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동물의 세계입니다. 동물들 역시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존재합니다. 하나님이 적재적소에 알맞게 인도하셨기에 존재합니다. 우리는 다 알지 못하지만 동물의 탄생과 일생이 하나님의 주권아래 이뤄집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욥은 알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다 알수없습니다. 다만 기억할것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일어나는 일입니다. 선하시고 온전하신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
그러으로 때때로 이해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때 원망과 불평을 내 뱉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바르게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선하신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오늘도 이 믿음으로 나의 삶을 돌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