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펼쳐진 평야와 논에서 모내기를 하는 풍경은 우리나라 1960~70년대 농촌과 다를 바 없다. 소를 몰아 논에서 쟁기질을 하고 허리를 숙여 모를 심는 모습이 정겹기만 하다. 연중 따뜻한 날씨라 2ㆍ3모작이 가능하지만 수확량 대부분이 도시에 사는 지주에게 돌아가고 대부분 소작농들은 빈곤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인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디나즈푸르(Dinajpur)는 다수의 벵골인들로부터 멸시를 받는 소수민족인 산탈(Santal)족 등이 거주하는, 방글라데시에서도 가장 소외되고 가난한 지역이다. 그래서인지 이곳 형편은 수도 다카(Dhaka)보다 더 열악했다.
색다른 풍경 중 하나인 '망치로 빨간 벽돌 깨는 아이들'도 보인다. 방글라데시 땅에는 암석이 없다. 그래서 흙으로 구운 벽돌을 깨서 자갈 대신 건축자재로 쓰는 것이다. 학교도 가지 못하고 하루 20타카(Taka, 약 400원)를 벌기 위해 고사리 손으로 힘겹게 벽돌을 깨는 아이들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집없는 사람 1000만 명…대부분 움막같은 곳서 생활
수혜자들, 한국교회 지원에 새 집 갖고 희망 일궈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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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교회 도움으로 아늑한 보금자리를 얻은 비비쟌씨. |
▶ 사례 1
이윽고 다다른 마을 앞. 할머니 한분이 집 앞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름은 비비쟌(Vivijian). 남편을 잃고 혼자 살고 있다. 55살 정도로 추측할 뿐 정확한 나이는 자신도 잘 모른다. 70살은 넘어 보인다. 검은 얼굴에 깊게 패인 거친 주름살이 지난 세월의 고뇌를 말해주는 듯하다.
쭈그려 앉아 있던 그녀가 먼 나라에서 온 방문객을 보고 몸을 일으켰다. 한 사람 한 사람 빼놓지 않고 두 손을 꼭 잡는다. 고마움을 눈빛에 담아 전하려는 듯하다.
지난 2007년 한국교회 도움으로 집을 얻었다. 16.5㎡(약 5평) 규모의 새 집은 더할 나위 없이 아늑한 보금자리다.
집을 둘러봤다. 네 귀퉁이에 콘크리트 기둥을 박고, 대나무를 엮어 벽을 세웠다. 물결주름 함석으로 만든 지붕은 비가 많이 오는 우기(雨期)에도 끄떡없다. 지붕 위 푯말에는 '한국교회가 지어준 집'을 의미하는 '카리타스 코리아'(CARITAS KOREA)란 표시가 선명했다. 뿌듯함이 느껴졌다.
1단계 사업(2004~2006) 때와 달리 수혜자들 욕구를 반영해 물결주름 함석지붕 안쪽에 맺힌 이슬이 집안에 떨어지지 않도록 지붕 아래에 천장을 시공했다. 또 집 안에 대나무 패널로 벽을 세워 식구가 많은 가정의 경우 방을 두 칸으로 분리해 사용할 수 있고, 우기에 집안으로 비가 들이치는 것을 막고 가축이 비를 피할 수 있도록 현관 앞에는 다용도 테라스를 설치했다.
하지만 일행들은 그래도 '집이라 하기에 무언가 부족하다'는 표정. 한국 카리타스 국제협력담당 고정현(스텔라)씨가 설명했다.
"우리 기준으로 보면 초라해 보일지 모르나 방글라데시에는 이런 집도 없는 사람이 1000만 명이 넘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이런 집에 살 수 있는 것만으로도 큰 행운으로 생각하지요."
최근 고환율에다 인건비와 자재비가 올라 건축비용이 급등했지만 우리 돈 100만 원이면 방글라데시의 가난한 이들에게 이런 집 한 채를 지어줄 수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한국교회 도움으로 집을 얻기 전에는 어떻게 살았을까? 방글라데시 카리타스 본부 존 몬투 팔마(John Montu Palma)씨가 마당 한편 짚더미를 가리킨다.
움막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볏짚더미. 김장독 위에 덮어 놓은 짚더미나 토종닭을 기르는 둥지에 더 가까운 모양새다. 몸 하나 간신히 뉠 수 있는 공간. 비가 오면 물이 새고, 바람이라도 불면 금방 무너질 것 같은 집이다. '이런 곳에서 사람이 살았다니….' 차라리 '노숙생활'에 가깝다.
몸이 아파 일도 할 수 없고 친척과 마을 주민들 도움으로 겨우 생계를 이어가는 비비쟌씨로서는 한국 카리타스 지원으로 집을 얻어 평생소원을 이룬 셈이다.
"밤에 춥지도 않고 더 이상 들짐승이 무서워 떨거나 우기에 비를 피할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집을 갖게 해 주신 한국교회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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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글라데시 카리타스의 빈곤 가정을 위한 주택지원 사업 수혜자 가족과 집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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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카리타스 총무 이창준 신부가 소수민족 빈민촌 마을에서 다 쓰러져 가는 낡은 움막을 살펴보고 있다. |
▶ 사례 2
다시 한 시간 넘게 비포장도로를 달려 도착한 산탈(Santal)족 마을. 20가구 남짓한 이 마을에서 여섯 가구가 한국 카리타스 도움으로 멋진 집을 선물 받았다.
딸만 넷을 둔 슈밋 뚜두씨. 남의 논에서 날품을 파는 남편의 하루 수입은 100타카(약 2000원). 생수 1리터 값이 20타카임을 감안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일당이다. 그나마 일감도 일정치 않아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집이 생기기 전에는 친척 집을 전전하며 더부살이를 했다. 새 집은 뚜두씨 가정에 희망을 준 훌륭한 보금자리다.
"우린 평생 집없이 생활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젠 집이 있어 정말 행복합니다. 우리 가족에게도 희망이 생겼습니다."
뚜두씨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네 딸들은 모두 초등학교를 다니다 포기했다. '학교가 너무 멀어서…'라고 둘러댔지만 결국 가난 때문이다. 열대여섯 살쯤 된 큰 딸은 아픈 엄마를 대신해 집안일을 하고, 둘째ㆍ셋째 딸은 도시에 돈을 벌러 갔다고 방글라데시 카리타스 직원이 귀띔한다.
"너무 가난해서 딸들을 먹여 살릴 수 없으니 도시에 보낸 겁니다. 어느 부잣집에서 가정부나 심부름꾼으로 일하고 있을 겁니다. 미성년자에게 일을 시키는 것이 엄연히 불법이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죠."
▶ 소수민족 빈민촌 마을
다른 목적지로 이동하는 도중에 몬투 팔마씨가 소수민족 빈민촌 마을을 잠시 둘러보자고 했다.
마을에 도착하니 짚으로 엮은 낮은 지붕의 움막집 10여 채가 촘촘히 자리 잡고 있었다. 허리를 숙여야 들어갈 수 있는, 창문도, 문도 없는 4평 남짓한 좁은 공간이었다. 흡사 헛간이나 외양간 같은 집이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다. 당연히 텔레비전 같은 가전제품이 있을 리 만무하다. 음식을 끓일 때 사용하는 검게 그을린 냄비와 접시 3~4개가 덩그러니 구석에 놓여 있고 낡은 옷가지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문명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원시적인 삶과 다름없는 생활. 방문단은 한동안 말을 잊었다.
지금도 눈 감으면 어두운 집안 한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손으로 흰죽 같은 음식을 집어먹고 있던 어린 소년이 떠오른다. 지금쯤 그 아이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마도 한국 교회 후원자가 지어준 학교에서 책상 앞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겠지….
방글라데시(디나즈푸르)=서영호 기자 amotu@pbc.co.kr
후원문의 : 02-2279-9204 한국 카리타스(www.caritas.or.kr)
후원계좌 : 우리은행 064-182742-01-101, 농협 170383-51-048420, 국민은행 491001-01-115269 (사)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