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사연이 없는 노래가 어디 있겠는가마는 페북에서 친러파(?) 페친이 소개한 ‘백 만송이의 장미’라는 노래의 사연을 알고 보니 마음이 찡했다. 사연인 즉은 원래 원산지가 라트비아인데 러시아산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소비에트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여기던 그들은, 자신들의 운명에 대한 노래를 만들었는데 노래가 나오자마자 러시아의 시인과 가수가 전혀 다른 의미로 바꿔버려 불렸으니 말이다.
이 이야기는 내 기억 속에서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로 남아 있는 노래가 되살아났다. 그것은 동티모르의 토속 음악이었다.
1999년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에서 철수할 때, 동티모르인들에게는 가장 어려운 때였다. 독립을 반대하는 친인도네시아 세력(우리로 말하면 친일파)의 독립지지 세력들의 무차별 학살로 80만의 인구 중 1/4인 20만, 비율로만 본다면 인류역사에 전무후무한 학살이 자행된다. 동티모르 주민들의 끈질긴 독립투쟁이 500년 만에 빛을 보게 되었지만 그 희생은 너무도 가혹했다. 보다 못한 우리나라도 당시에 유엔의 평화 유지군으로 소수의 병력을 파견했었다.
매일 매일 셀 수 없이 많은 그들의 부모 형제자매가 살육을 당하고 수많은 동족들이 난민이 되어 보따리를 짊어지고 서티모르로 피난을 가는 화면들이 호주 TV를 통하여 시시각각으로 보도가 되고 있는 중이었다. 인도네시아가 쫓겨 가는 이참에 동티모르에 한 몫 끼어들려는 호주의 입장에서는 관심이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나는 호주정부에서 소수민족을 위해서 세운 방송국에서 일 주일에 한 시간 씩 위탁을 받아 한국어 방송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우리 앞 시간이 동티모르 방송 시간이었다. 듣는 사람도 별로 없는 우리의 방송에 비해서 급박한 처지인 그들에게는 동족을 대상으로 소식을 전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인 일 주일의 중의 단 한 시간의 방송이 대단히 황금처럼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들의 방송 시간에는 좁은 스튜디오가 시장통처럼 북적되면서 눈물과 비탄의 분위기로 가득했다. 방송을 하다가 스텝들이 눈물로 범벅이 되어 스튜디오를 튀어 나오는 일이 빈번했다.
아무리 보람 있고 좋은 일이라도 돈이 생기지 않는 일은 오래 하다보면 신명이 나지 않는 법이라서 당시 나는 방송 타는 것이 좋아서 제멋에 겨워서 출연하는 자원 봉사 스텝들을 데리고 의무적으로 방송시간을 겨우 겨우 메워 가고 있었다.
스텝들은 대부분 한국에 가서 직업을 구할 때 방송 경험을 써먹으려는 매스컴 전공하는 유학생들이나 연예지망생들이었다. 내 수첩에는 방송을 희망하는 유학생들의 연락처가 빽빽하게 기록되어 있을 정도였다. 당시로서는 실제로 한국에서는 대학생들이 자기 멋대로 공중파를 타는 일이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티모르인들이 긴장 속에 방송 시간을 조금이라도 넘기면 대기하고 있는 우리 측 스텝들은 짜증을 내고 나에게 어떻게 좀 해보라고 했지만 나는 오히려 괜찮다고 천천히 하라고 했다. 나는 생존의 위기에 서 있는 그들의 방송이 특별한 목적도 없는 젊은이들의 재미거리인 우리 방송 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할 수만 있다면 통째로 우리 방송 시간까지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 눈에는 바로 자기들의 눈앞에서 지구상의 한 나라 사람들이 미증유의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한국의 연예계 소식이나 들고 나와서 기껏 자기들의 ‘끼‘나 발휘해보려는 철딱서니 없는 유학생들이 너무 한심스러워 보였다.
잊혀지지 않는 것은 그들 방송의 시그널 음악이었던 동티모르 토속 음악이었다. 마치 흑인들이 춤을 출 때 부르는 노래처럼 단조로우면서 코믹한 리듬이었지만 그 리듬이 내게는 무척 슬프게 들렸다. 가사를 적어달래고 했더니 그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대목이 “저들은 우리를 게으르다고 하네.”라는 구절이었다.
500년 동안 포르투갈에 식민지로 있으면서 무시당하고 살았던 삶을 자조하는 가사였다. 그런데 그 가사를 보고 전혀 남의 나라 노래 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과부 사정은 홀아비가 알아본다는 말처럼 우리는 일본 놈들에게 ‘조센징’이라고 무시당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 당시 로마인들은 유대인을 무시했고 유대인은 또 사마리아인들을 무시했다. 그래서 예수는 선한 사람의 표징으로 사회적으로 가장 소외 받던 박는 사마리아인을 거론 했던 것이다. 그런 것을 보면 예수는 비록 고대인이었지만 사회적 감각이 전혀 없던 이가 아니었던 것 같다.
첫댓글 Sbs에서 그런 방송을 했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