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참된 신앙인가? 정인이 학대 살해사건과 한국교회의 과제 (히 13:3; 미 6:6~8)
2021년 1월 10일 주일예배설교 원고
昔根 유요한 목사 (브니엘교회 담임, 알이랑코리아 대표)
예수님은 눅 4:18~19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였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는 영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학대 받는 모든 자들을 도와주시고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학대 받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서 모세를 바로 왕에게 보냈습니다. 그것이 출애굽기의 이야기입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은 학대 받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십니다. 신약성경 히브리서 13:3절은 다음과 같이 권면하고 있습니다.
히 13:3 너희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
여기에 “갇힌 자와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고 한 것은 당시에 예수를 믿는 다는 이유로 옥에 갇히거나 학대를 받는 이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간 최근 끔찍한 학대를 받다가 16개월의 짧은 생을 마친 한 어린 생명을 같이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참된 신앙이란 어떤 것인지를 성경 말씀으로 재정립하도록 하겠습니다.
1. 인간의 불행한 역사 중에 하나는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학대하는 일입니다. 옛날 애굽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학대하였습니다. 전 세기를 통해서 강대국이 약소민족을 학대하였습니다. 권력층이 권력 없는 이들을 학대하였습니다. 부자들이 가난한 이들을 학대하였습니다. 남자들이 여자들을 학대하였습니다. 어른들이 어린이들을 학대하였습니다.
이중에 제일 잔인한 학대는 단연 어른들이 영,유아를 학대하는 행위입니다. 어린 아이는 가장 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저항할 능력이 없습니다. 특히 영,유아는 말도 못합니다. 아파도 아프다고 말을 못합니다. 제발 살려달라고 사정도 못합니다. 전혀 항의도 저항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항 능력이 전무한 어린 아이를 학대하는 것은 극악한 범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을 경시하고 짓밟지 말 것을 다음과 같이 가르치셨습니다.
마 18:10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여기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항상 봅는다> 라는 말씀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천천만만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천사들이 하늘에, 영계에 있습니다. 이 모든 천사들이 항상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것이 아닙니다. 지위가 높은 천사들만 언제든지 하나님께 접근할 수 있습니다. 즉 이렇게 높은 지위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업신여김 받는 그 어린 아이들을 항상 하나님께 대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유아를 학대, 살해하는 행위가 얼마나 큰 죄악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항상, 언제나 뵙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지난 2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생후 16개월의 입양아, 정인이 사망사건을 방송한 이후 국민들은 충격과 분노, 슬픔에 잠겼습니다. 입양한 16개월 딸을 양부모가 잔인하게 학대 살해한 사실이 밝혀져 국민적 충격과 공분은 극도에 달하고 있습니다. 각종 소셜미디어에선 ‘정인아 미안해’ 해시태그 운동이 진행 중입니다. 정인이가 묻힌 양평 공원묘지에는 방송 이후 시민들의 추모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인이 사망사건은 지난해 10월 13일 생후 16개월의 정인이가 세 번의 심정지 끝에 응급실에서 숨진 사건입니다. 양모 장모 씨로부터 상습적인 폭행과 학대를 당했으며 등 쪽에 강한 충격을 받아 사망에 이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양모 장 씨는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구속기소됐으며, 양부는 학대 사실을 알고도 방관한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상태입니다.
여자 아이 정인이는 2019년 6월 10일 3.6Kg의 건강한 아이로 출생했습니다. 생후 8일째부터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위탁가정에서 키웠습니다. 위탁모는 정인이를 지극정성으로 양육했습니다. 그렇게 7개월 정도를 위탁가정에서 생활하다가 2020년 2월 3일 생후 8개월 무렵부터 양부모가 입양하여 양부모 가정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정인이는 입양당시만 해도 너무 예쁘고 건강하고 밝은 표정의 아이였습니다. 그러나 불과 9개월 만에, 입양된 지 271일 만에 양모의 학대로 사망했습니다. 방송을 통해 알려진 정인이의 사망 당시 상태는 충격적이었습니다. 2020년 10월 13일 16개월 된 정인이가 심정지 상태로 서울 이대 목동병원 응급실에 실려오게 됩니다. 갈비뼈가 각각 발생시기가 다른 골절 흔적들이 발견되고, 더 놀라운 것은 장기가 찢어져서 복부에 출혈이 가득했습니다.
그것도 굉장히 큰 고통을 유발하는 췌장이 잘린 상태였고, 장간막이 파열돼 복부에 피가 가득 고인 채로 사망했습니다. 사인은 이미 찢어져 있던 장기가 당일에 한 번 더 충격을 받아 장간막 파열이 왔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췌장은 신체에서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장기이기 때문에 파열되고 절단되는 것은 아주 어렵다고 합니다. 췌장은 간 밑의 위장 아래 사각지대에 숨어 있습니다.
의사들의 말에 따르면 췌장이 잘린 정도면 황소 머리가 받는 정도의 충격, 교통사고를 당해서 배에 가해지는 충격 정도의 큰 충격을 가해자가 정인이의 복부에 가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양모 장하영과 동년배의 연령인 성인 여성이 굉장히 힘을 실어서 위력을 가할 때 그 정도 손상이 있을 수 있다고 합니다.
정인이의 사인을 들은 정경원 교수는 "췌장은 후복막강 장기라고 부른다. 그 앞쪽에 위, 대장, 소장 등이 있다. 힘이 가해져 모든 장기들을 뚫고 췌장까지 전달되기 위해서는 순간적으로 어떤 외력이 척추뼈까지 맞닿아야 되는거다"고 지적했습니다.
정인이의 사망 원인인 췌장 절단이 이루어지기 위한 수치는 3,800에서 4,200이었습니다. 그것이 알고싶다 측에서는 어느 정도의 힘인지 알아보기 위해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정인이에게 가해진 힘은 성인 여성이 소파 위에서 뛰어내려 밟아야 하는 정도의 물리력이라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습니다. 사망 전날 어린이집 CCTV에 잡힌 정인이의 모습. 무감정 상태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다. 의사들의 말에 따르면 이 때 정인이는 장이 터져서 장 밖으로 공기가 새어 있었고, 통증 중 최고의 통증을 겪고 있었다. 그런데도 정인이는 울지 않았다. 무감정 상태로 힘 없이 축 처진 모습만 보였다. 사망 전날 어린이집 CCTV에 잡힌 축 늘어진 정인이의 모습
정인이가 다니던 어린이집의 CCTV를 본 소아과 전문의는 "감정이 없어 보인다. 정서박탈이 심해 무감정인 상태일 때 저런 행동을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어린이집 선생님이 정인이를 안아주며 세워줬지만 정인이는 걷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 찍힌 사진에는 정인이의 볼록한 배가 보입니다. 배기수 교수는 "장이 터져서 장 밖으로 공기가 샌거다. 통증 중 최고의 통증일거다. 애가 말을 못해서 그렇지 굉장히 괴로운거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뿐 아니라 갈비뼈를 포함해 곳곳에 골절이 있었습니다. 갈비뼈에는 수개월 전에 부러졌다가 치유된 흔적도 존재했습니다. 장기간에 걸쳐 외부 충격에 따른 골절과 회복이 반복되어 온 것입니다. 온몸은 멍 자국 등 상처투성이였습니다. 몸무게는 8㎏(16개월 여아 평균 10.5㎏)에 불과했습니다.
지난해 10월 13일 정인이의 사망 당시 응급실에서 정인이의 상태를 진료한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정인이의 배를 찍은 사진과 관련, “이 회색 음영 이게 다 그냥 피다. 그리고 이게 다 골절이다. 나아가는 상처, 막 생긴 상처. 이 정도 사진이면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아동 학대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사진 보는 순간 피가 거꾸로 솟았다는 남궁인은 “갈비뼈 하나가 두 번 이상 부러진 증거도 있다. 온 몸에서 나타나는 골절. 애들은 갈비뼈가 잘 안 부러진다. 16개월이 갈비뼈가 부러진다? 이건 무조건 학대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결정적 사인은 장기가 찢어진거다. 그걸 방치했다. 바로 오면 살았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는 "정인이의 CT를 보니 장기가 터져서 복부 전체가 피로 가득했다. 명백한 학대의 증거였다. 그걸 보고 내 머리 위로 피가 거꾸로 솟는 분노를 느꼈다"라고 밝혔습니다.
또한 "(양모가) 무릎을 꿇고 '우리 아이가 죽으면 어떻게 하냐'고 울었다. 이게 학대고 살인이라고 다 알고 있었는데 양부모가 너무 슬퍼하니까 진짜 악마라 생각한 의료진도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그 의사들의 생각은 옳았습니다. 정인이 사망 이틀 뒤 친정아버지 생일에 가족들끼리 모여 와인파티를 하였으며 핫딜카페에 댓글을 달고 식기세척기 설치 문의글을 올리는 등 아주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했기 때문입니다.
아래는 사망당시 파악된 생후 16개월 정인이 상태입니다.
1. 후두골 골절 2. 좌측쇄골 골절 3. 놔측늑골 골절 4. 우측늑골 골절 5. 우측척골 골절 6. 좌측 견갑골 골절 7. 우측 대퇴골 골절 8. 소장 대장 장간막 파열로 배속에 피가 가득함 9. 등에 피하출혈 10. 옆구리에 피하출혈 11. 배에 피하출혈 12. 다리에 피하출혈
한편 정인이의 학대의심신고를 최초로 했던 동네 소아과 의사는 정인이의 마지막 모습이 체념한 듯 보였다, 체념한 표정이었다고 했습니다. 즉 자포자기한 모습이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생후 16개월 영아가 체념, 자포자기라는 게 가능하냐는 질문에 전문가들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아기는 말을 못해서 울음으로 표현한다. 그런데 울면 때리니까 울지 않는다. 비록 아기지만 울어봐야 매만 맞으니까 눈에 눈물만 가득하고 더 이상 울지를 않는다. 울거나 신호를 보내면 달래주고 안아주는 것이 아니라 때리고 패니까 울지를 못하고 정신적 포기 상태가 된 것이다. 즉 체념한 것이다.”
그래서 겨우 생후 16개월인 정인이가 체념, 자포자기를 한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아, 너무 가슴 아픈 사건입니다. 학대는 2020년 2월 정인이가 장 씨 부부에게 입양되고 한 달 후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전자레인지에 데운 뜨거운 이유식을 식히지도 않고 그대로 2~3분 안에 먹였습니다. 입 안에 상처가 생겼습니다. 귀를 세게 잡아 당겨 귓등이 찢어진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배변을 적게 하도록 조금 먹였습니다. 아동청소년상담심리 전문가인 이임숙 박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이가 배변을 많이 할까봐 적게 먹였는데, 이것은 악마라는 용어가 가장 적합하다.”
정인이 양부모의 지인은 모 방송에 출연해 정인이가 입양된 지 얼마 안 있고부터 낌새가 이상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양모가 기저귀를 갈 때 머리를 받치고 눕히지 않고 어깨를 밀어서 눕혀 머리가 쾅 하고 떨어졌다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평소 양모가 정인이를 어떻게 대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 지인은 정인이가 쇄골 깁스까지 하자 학대 의심을 품고 기저귀 가는 모습을 몰래 지켜봤다고 했습니다. 양모가 기저귀를 가는 방식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이 지인은 “아이들한테 가는 척하면서 살짝 봤는데 보통 머리를 받치고 눕히잖나. 보통 그런데 어깨를 이렇게 탁 밀어 눕혀서 애가 ‘쾅’ 하면서 딱 떨어졌다. 그러니까 아이가 와아앙 울었다. 그랬더니 장씨(양모)가 ‘야 너는 기저귀 갈아주는데도 우냐?’라고 말했다. 쇄골 깁스를 했는데 미니까 쇄골 쪽이 얼마나 아팠겠나”라고 말했습니다.
정인이의 사진을 보면, 스위트 하고 총명한 아이인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기껏해야 한 살 밖에 안 된 이 연약하고 부드럽고 귀여운 아이를, 그렇게 앙상한 뼈만 남게 굶기고, 그렇게 온 피부가 검게 멍들게 때리고, 그렇게 쇄골이 부러지게 패고, 그렇게 대장이 파열되고 췌장이 절단되게 짓밟고, 그렇게 잔인하게 학대하고 죽였다니, 그 양부모가 악마가 아니라면 어찌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그 아기가 철천지원수라도 그렇게는 할 수가 없는 것인데..... 철천지원수의 자식이라도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쇄골이 부러져 기부스를 한 정인이 모습 돌 무렵 쇄골 골절시킴. 의학계에서 2세 미만 영아의 쇄골 골절은 아동학대의 대표적 징후로 여긴다. 2020년 6월에 있었던 어린이집 생일파티 날에 찍은 사진인데, 어깨에 부러진 쇄골을 붙히기 위해 팔자붕대를 했다. 몸에는 넓게 퍼진 멍 자국과 얼굴에는 꼬집힌 자국이 있다.
더 충격적인 소식은, 양부모가 정인이를 입양한 것은 주택구입을 위해 2자녀혜택 특별대출금을 받기 위해서였고, 그 목적이 이루어지자 그 어린 것을 그냥 처치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정인이 양부모들은 아이의 생명을 돈과 바꾼 것입니다.
양모는 입양 첫 날부터 생후 8개월인 정인이를 홀로 방치하는 등 학대를 저지른 정황도 드러났습니다. 차 안에 아기만 남겨두고 남편과 친딸 3인만 외식하러 가면서 몇 시간 동안 차 안에 홀로 정인이를 방치했습니다. 아기는 집에 두고 친딸만 데리고 자주 외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입양아 가정 앞으로 나오는 정부 보조금은 매달 30만원씩 수령했습니다.
예수는 죽을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주었는데, 이 인간들은 돈을 얻기 위해서 아이의 생명을 노략질 한 것입니다. 저주받은 악인들의 모습이 적나라합니다.
또 한 가지 공분을 사는 것은 그렇게 아이를 학대하면서도 아기가 숨지기 불과 열흘 전, 입양가족을 소개하는 EBS방송의 “어느 평범한 가족”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천사 같은 부모 코스프레를 했다는 것입니다(아래 사진). 이들은 EBS방송의 입양가족 특집 다큐멘터리에 출연해서 함께 모여 파티를 하고, 함께 케이크 촛불을 끄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거기서 양모가 하는 말이 “축하해, 건강해” 이런 말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입양은 축하받을 일이라며, 입양을 권장하기도 했습니다. 악마가 자기들을 천사로 가장하고 홍보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때도 정인이가 학대당한 모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정인이의 어깨와 얼굴에 퍼런 멍이 있었던 것입니다. 옷을 벗었다면 몸 전체에도 멍 자국이 보였을 것입니다.
세상에 태어나 겨우 열여섯 달 살다 간 아이. 그 짧은 생에서 친부모에겐 버림을, 양부모에겐 죽임을 당했습니다. 아빠, 엄마, 맘마 같은 투명한 말을 병아리처럼 쏟아내는 때, 멍투성이 몸으로 부서진 뼈와 터진 장기를 품고 고통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생후 16개월 만에 세상을 떠난 정인이가 안장된 경기 양평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지에 놓인 정인이 사진 / 연합뉴스
2. 그 양부모는 불교인인가요? 아닙니다. 유교인인가? 아닙니다. 무속인인가? 아닙니다. 그러면 이단, 사이비 종교인인가요? 아닙니다. 기독교인입니다. 그것도 양부모 모두 목사 자녀들입니다. 뉴스에 그들이 독실한 기독교인이라는 자막이 뜨더군요. 그 뉴스를 접하고 비통함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정인이의 양모 ‘장하영’의 아버지는 포항시 기독교연합회 회장을 지냈고 지금은 예장합동 교단 양덕제자들교회 담임목사인 장○○ 목사입니다. 그의 어머니는 그 교회 소속 어린이집의 원장입니다. 정인이의 양부 ‘안성은’은 안동침례교회 안○○목사의 아들입니다.
정인이 양부모 두 사람은 유명한 개신교계 대학인 한동대학교 출신인데, 양모 장하영은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하였고, 양부 안성은은 ‘상담심리학부’를 졸업하였습니다. 그리고 양부는 기독교방송인 CBS 본사의 행정직원이었습니다. 그는 2021년 1월 5일 해고되었습니다.
양부 안씨가 한동대에서 전공한 과목이 ‘상담심리학’이랍니다. 그렇다면 영,유아를 학대할 때 그 어린 아이의 정신과 심성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전문적인 지식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양부 안성은은 정인이의 학대를 방조, 가담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우리를 더욱 분노하게 합니다.
어떻게 교회와 목사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 이렇게 될 수 있을까. 참담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난 주일 설교에서 언급했듯이 모든 성도가 다 성도가 아니고 그리스도인이 모두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3. 이런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목사 부부가 직접 딸을 죽여서 방 구석에 이불을 덮어 놓고 11개월 방치한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2016년 2월에 이응봉은 중학생 딸(13살) 미람이를 새벽에 다섯 시간이나 철봉과 빗자루로 때려서 죽게 하였습니다. 가출했다 돌아온 딸을 후처와 합세하여 5시간동안 때려서 죽였습니다.
미람이는 초등학교 6년을 개근한 성실한 아이였다고 합니다. 이응봉은 부천의 서울신학대학교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하고 돌아와서 서울신학대학교에서 겸임 교수가 되었고, 동시에 부천 한마음교회의 담임목사로 시무하는 중이었습니다.
당시 범인 이응봉은 48세로 기독교성결교 목사, 서울신학대학 졸업, 독일유학 신학박사, 부천 한마음교회 담임, 서울신대 겸임교수, 2권의 신학서적을 펴낸 엘리트목사였습니다.
이응봉의 아내는 2007년 미람이가 다섯 살 때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미람이는 엄마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아야 할 유아기에 엄마를 잃은 것입니다. 그 때 미람이는 여섯 살 위인 11살 언니와 일곱 살 위인 12살 오빠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2년 후인 2009년 이응봉은 서울신대 도서관 사서로 근무하던 7년 연하의 백 모씨와 재혼을 했습니다. 그러나 후처는 전처가 낳은 3남매와 같이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기독교 신자인 계모는 아이들을 학대했습니다.
결국 아들이 고등학교 1학년인 2012년 가출해버렸습니다. 한 살 아래 딸은 독일 지인에게 보내졌습니다. 이응봉 목사는 아내가 힘들어한다며 2012년 초등학교 4학년이던 막내딸도 후처 백 모씨의 여동생 집에 보냅니다. 거기서 계모의 여동생에게 매를 맞으며 지냈습니다. 계모 백씨도 여동생의 집에서 나무막대와 손바닥으로 미람이를 자주 때렸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자 그집을 뛰쳐나와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을 찾았습니다. 6년 개근한 모범생이라 선생님 관심이 각별했습니다.
“얘야, 그래도 널 낳아주신 아버지만큼 널 사랑하는이가 세상에 어디 있겠느냐”
셋째는 선생님 말씀을 듣고 아버지를 찾아갔습니다. 사랑으로 감싸줄줄 알았던 아버지는 계모와 합세하여 5시간이나 때렸습니다. 혼미상태라 내 버려뒀습니다. 잠든줄 알았는데 죽어있었습니다. 그게 2015년 3월 15일 일입니다. 이응봉 목사(사진출처: 크리스천투데이, 한국성결신문) 그리고 이응봉은 딸의 시체를 11개월 동안 방 안에 방치합니다. 그는 경찰 조사 중에, 죽은 딸을 놓고 기도를 하면 살아 날 줄 알고 11개월 동안 방안에 시신을 두었다고 진술하였습니다. 물론 그것은 거짓말이었습니다. 서울신대를 나와 독일 유학을 다녀오고 성결교 교단에서 교수와 목회를 하는 자가 그런 생각을 할 리는 없습니다. 그것은 시신 은닉행위를 변명하려고 이응봉이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이응봉의 집에 경찰이 가서 보니 향초와 방향제를 집안 여기저기에 있었습니다. 시신 썩는 냄새가 나니까 악취를 없애려고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아주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경악할 사건이었죠. 당시 한국교회연합회가 <성명서>를 냈습니다. “주여, 우리가 죽을 죄인입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빛과 소금이 되겠습니다.” 한국교회 정통교단의 목사이며 신학교 교수인 자가 자기 딸을 살해하고 방에 방치하여 시체 썩는 냄새를 맡아가면서 거의 1년을 살고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이를 찾던 경찰조사로 발견이 안 되었다면, 그는 2년이고 3년이고 그렇게 살았을 것입니다. 그래야 살인죄가 드러나지 않을테니까..... 그리고 계속 신학교 교수 노릇하고 교회에서 목회도 했을 것입니다.
현재 이응봉은 20년 징역, 그의 마누라는 15년 징역형을 받고 복역 중입니다.
4. 그래서 우리는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모든 성도가 다 성도가 아니고, 모든 목사가 다 목사가 아니고, 모든 그리스도인이 다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목사라고 다 목사가 아닙니다. 북한 3대세습을 칭송하는 종북 좌파목사도 있고, 동성애를 비호하는 목사도 있고, 차별금지법을 지지하는 목사들도 있습니다. 즉 목사가 다 목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도도 다 성도가 아니며 그리스도인이 모두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러면 뭡니까? 가라지입니다! 가라지의 특징이 무엇인지 아세요? 가라지는 알곡과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외모가 비슷합니다. 그래서 가라지를 뽑다가 알곡까지 뽑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 13:29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곡식밭에는 가라지도 함께 자라고 있습니다. 일꾼들 생각엔 가라지를 모두 뽑아 버리고 싶지만 주인 생각은 다릅니다.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피해를 당할 것을 우려하여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도록 그대로 두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곡식밭에는 곡식과 가라지의 힘겨운 싸움이 존재합니다. 가라지는 왕성한 식욕으로 곡식이 누려야 할 영양소들을 빼앗아 갑니다. 뿐만 아니라 햇빛을 가립니다. 그리하여 가라지는 곡식의 성장을 방해합니다. 그러므로 곡식들은 가라지들로 인해 시달리게 되고 몸부림을 치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이 세상에서 의인들이 당하는 고난입니다.
보세요. 딸을 패죽인 이응봉 목사 부부나 정인이를 학대, 살해한 양부모는 둘 다 기독교인입니다. 그것도 전자는 신학교수이고, 후자는 목사 자제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참된 신자입니까? 그들은 가라지입니다. 이들 때문에 지금 한국교회 성도들은 지극히 참담하고 세상 사람들로부터는 욕을 먹으며 시달리고 있습니다.
5. 그러나 이 모든 사건은 한국교회의 신학과 행위의 현주소를 들여 다 보게 하는 창문입니다. 한국교회 안에 가라지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한국교회는 가라지들이 너무 많이 섞여 있습니다.
정인이를 학대 살해한 양모의 친정아버지 장○○ 목사는, 항의하는 사람들에게, “딸과 사위가 저지른 일에 왜 내가 욕을 먹어야 하느냐?”고 대거리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변호사를 열 명이나 선임을 했는데, 시민들의 항의로 변호사들이 선임을 취소했다고 합니다.
“딸과 사위가 저지른 일에 왜 내가 욕을 먹어야 하느냐?”는 양모 장하영의 아비 장○○ 목사의 가책감 없는 말에 사고가 정상적인 성도들은 좌절감을 느낍니다. 디모데전서 3장에는 목사의 자격 조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 4~5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딤전 3:4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할지며
5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리요
정인이를 학대 살해한 양모 장하영의 아버지 장○○ 목사가 위 성경 말씀을 모를 리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딸과 사위가 저지른 일에 왜 내가 욕을 먹어야 하느냐?”는 장 목사의 말은 우리를 더욱 참담하게 만듭니다.
또한 그 교회 교인들은 장 목사 딸의 감형을 위한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했다고 합니다. 지금이 그럴 때입니까? 기독교인들이 악마의 변호인으로 나서도 됩니까? 감형을 위한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한 사실이 알려져서 기독교인들이 현재 더 큰 조롱과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슬프게도 이것이 우리 한국교회의 일면입니다.
가라지는 기독교인 행세를 하지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은 어디에서 성장했나요? 누가 배출했나요? 불교입니까? 유교인가요? 무속입니까? 사이비 이단 종교인가요? 아닙니다. 기독교입니다. 한국교회입니다. 그들은 기독교 내부에서 성장하고 한국교회가 배출했습니다. 그러므로 전 아세아연합신학대학 총장이신 고세진 박사는 그의 페이스북에서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위의 두 가족 살인 사건들은, 한국교회 신자들의 삶이 예수가 원하는 방향에서 이탈하여, 비뚤어진 신학, 영민하지만 잔머리 굴리는 궤변, 물질만능이 살인도 서슴치 않는 악마성으로 숙성, 인간의 목숨을 제물로 삼는 사기술, 자식의 잘못에 가책을 못 느끼는 부모, 교회는 다니지만 샤마니즘 만도 못한 생활규준, 신학자나 일반인이나 구분이 안 됨, 목사 가족이나 불신자 가족이나 구분이 안 됨, 철저한 회개와 갱신과 새로워짐이 없이 언변과 처세술로 도배된 교회지도자들의 모습, 성령을 말하나 악마와 동행하는 신앙생활, 여호와 하나님을 무서워하지 않는 자기중심주의, 예수를 이용한 명예벌이와 밥벌이와 축재.... 이런 것들이 백화점진열대처럼 종합적으로 드러난 현상이다. 우리는 시급히 다음과 같이 해서 교회가 있어야 할 자리로 복귀해야 한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정인이의 죽음으로 인해 이 사회에 반성과 개혁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아동학대 대응시스템을 재정비하고 새롭게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회도 이번 사건을 자성과 갱신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성화 공동체로서의 역할에 실패했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이번 일은 그 결정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 쓴 열매를 목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의 능력은 죄로 오염된 인간성을 회복하여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도 복음의 능력으로 변화된 인간성의 실체를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신앙과 삶의 심각한 괴리 현상이 교회에 만연합니다. 정통 신앙과 신학으로 거창하게 포장했지만, 인간성이 심각하게 왜곡된 목사와 교인들을 만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목사가 되기 전에, 신자가 되기 전에 인간이 되라는 자조적인 말을 실감할 때가 자주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이제는 그리스도의 복음과 성령의 능력으로 전인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새 창조의 공동체로 발돋움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수적 성장에 매진한 데서 돌이켜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자라는데 주력해야 할 것입니다.
6.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참된 신앙’이 무엇인지, ‘신앙생활의 정수’가 어떤 것인지 자각하고 실천하는 데 있습니다. 무엇이 참된 신앙일까요? 그리고 참된 신앙생활이란 어떤 것일까요? 미가 6장 6~8절이 그 정답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미 6:6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7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가 6장 6~8절은 성경 전체를 통하여 가장 위대한 구절들 중의 하나입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갈까? 무엇을 가지고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여기에 하나님께 나가는 이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배하려고 하는 이의 문제가 있습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번제(燔祭)를 잘 드리면 되는 줄로 생각했습니다. 또 동물 가운데 있는 많은 기름을 드리면 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혹은 몸의 열매인 맏아들을 드려야 죄를 속량 받는 줄 오해하는 이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선지자 미가의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했습니다.
무엇이 참된 신앙인지, 무엇이 진정한 신앙생활인지 우리는 이 구절을 통하여 분명하게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황소 한 마리를 제물로 바치면 만족하실까요? 내 죄를 사함 받기 위해 첫 아들을 하나님께 드리면 흡족해하실까요? 만만의 강물 같은 많은 동물의 기름을 바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까요?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종교의 의식보다도 그 의식을 행하는 이들의 생활을 더 중하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사야 1장 13절 이하에 이런 말씀을 주셨습니다.
사 1: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16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17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예배는 그 무엇보다 우선순위의 가치입니다. 하나님은 예배자를 찾으십니다. 우리는 지금 예배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예배가 아무리 중요해도 우리가 생활 가운데 정의를 행하지 않는 한, 인자를 사랑하지 않는 한, 신중히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는 그 예배는 꽝입니다. 아무리 우리의 예배가 화려하고 장엄해도 그것은 오직 꽝일 뿐입니다. 첫째로 “정의를 행하며”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정의의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정의를 요구하십니다.
정의는 모든 대인관계에 있어서 절대로 필요합니다. 가정에는 부모와 자식간에서 우선 정의가 있어야 합니다. 스승과 제자 간에도 정의가 있어야 합니다. 노사(勞使)관계에도 정의가 있어야 합니다. 업주가 갑질을 하면 그건 불의입니다. 또 내가 남의 일을 할 때 그 임금만큼의 일을 성실하게 하는 것이 정의입니다. 친구 사이에도 정의가 있어야 합니다. 상거래에 있어서도 정의가 있어야 합니다. 상품에 합당한 가격을 받는 것이 정의입니다. 바가지를 씌우면 불의한 일입니다. 또 상품만큼의 가격을 지불하는 것이 정의입니다. 물건 값을 지나치게 깎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상인들은 어떻게 삽니까? 합당한 가격을 지불치 않으려는 것은 불의입니다.
둘째로 “인자를 사랑하며” 라고 했습니다. 인자는 곧 ‘긍휼’을 뜻합니다. 성도의 삶에는 인자와 긍휼이라는 열매가 보여야 합니다. 즉 연약한 자들을 불쌍히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윤동주의 서시 한 구절처럼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슴 속엔 약한 자들을 향한 연민이 있어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인자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은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고 인자하심도 풍부한 분이십니다. 이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참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시 103:8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엡 4:32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인자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첫째로 인자한 사람은 남의 죄를 용서합니다. 언제나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 받은 것을 기억하고 다른 사람이 나에게 무슨 죄를 지을 때에도 그 죄를 용서해 주는 이가 인자한 사람입니다. 또 하나는 불우한 이를 불쌍히 여기며 도와주는 일입니다. 나도 불쌍할 때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았으니 내가 불행한 이를 도와야겠다는 마음에서 항상 사는 것이 인자를 사랑하는 사람의 생활입니다.
정인이 양부모는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목사 자제들이었습니다. 자칭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인자와 긍휼이라는 것은 눈곱만큼도 없는 비정한 인간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생후 16개월 입양아 정인이를 그렇게 잔인하게 학대, 살해했습니다.
자기의 중학생 딸 미람이를 다섯 시간이나 구타하여 죽인 이응봉은 목사이고 신학대학 교수였습니다. 그 살해사건에 가담한 미람이의 계모 역시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인자와 긍휼이라는 것이 눈곱만큼도 없었던 악인들이었습니다. 이런 자들의 예배는 아무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꽝입니다!
인생행로는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험한 길과 같아서 길가에 쓰러진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고아도 많고 과부도 많고 걸인도 많고 무의무탁한 자도 많고 병자들도 많고 돈 없는 실직자도 많고 생의 패배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행로를 걸어 갈 때에 이들을 어떻게 보면서 걸어갑니까? 인자를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런 이들을 불쌍히 여기고 힘 있는 대로 돕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생활입니다.
셋째는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겸손히’는 ‘신중하게’ ‘주의 깊게’라는 말로도 번역이 가능합니다. 이 구절이 중요합니다. 그 까닭은 우리가 ‘신중하게’ ‘주의 깊게’ 하나님과 동행할 때 앞의 두 가지 요소 곧 정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는 생활을 실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과 신중히 동행하는 성도들이라면 언제나 인자와 긍휼로써 약한 자들을 품고 섬길 것입니다. 열매로 나무를 압니다.
7. 조용히 가슴에 손을 얹고 하나님 앞에서 내 생활을 반성해 보세요. 나는 정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는가? 그리고 겸손히, 신중하게 하루하루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는가?
2021년 새해 벽두입니다. 내 죄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내 교만도 고백하고 나의 완고함도 고백하고 십자가를 붙들고 하나님과 신중히 동행하는 생활을 다시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이 길만이 참 영생의 길입니다.
사실 우리 가운데 잘 믿기 위하여 애쓰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잘 믿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믿는 것이 잘 믿는 것입니까? 분명히 경청하세요.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했습니다.
어떻게 잘 믿을 수 있나 하는 방법을 주께서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미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 길이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했습니다. 이것이 참된 신앙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믿음생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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