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살인범 강호순(39·사진)이 그동안 드러난 7건의 범죄를 저지르기 이전인 2006년 9월에도 강원도 정선 읍내에서 출근하던 정선군청 공무원 윤모(여·당시 23세)씨를 납치 살해하고 암매장한 것으로 드러났다. 강은 2006년 9월 7일 오전 7시 50분쯤 정선읍에서 출근하던 윤씨를 차에 태워 납치하고 오후 7시쯤 손으로 목을 졸라 살해하고 암매장했다고 자백했다. 본지 2009년 2월 18일
사망한 윤정현(가명)은 6남매 중 둘째다. 윤씨 집안은 늘 시끌벅적했다. 정현과 오빠, 남동생 넷은 모였다 하면 장난치고 토라지고 다투고 화해했다. 부모는 6남매를 먹여 살리기 바빴다.
중장비 기사인 아버지, 읍내 닭갈비 집에서 일하던 어머니는 틈틈이 배추·무 농사까지 지었다. 엄마 대신 밥상을 차렸던 싹싹한 딸은 2006년 7월 정선군청 군수실 비서로 취직했고 월급으로 동생들에게 용돈을 쥐여줬다.
2006년 9월 7일 오전 7시 40분쯤 윤정현은 감색 블라우스와 치마를 차려입고 '군수님 가져다 드린다'며 직접 간 토마토 주스를 보온병에 담아들고 집을 나섰다. 그는 2년5개월 뒤 영월 삼옥재 근처 절벽 아래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그의 오빠 윤기훈(가명·28)은 2008년 4월부터 경찰시험을 준비해왔다. 그는 2003년부터 2년간 서울 구로서에서 의경 생활을 했다. 오류동·개봉동을 순찰했고 음주 단속을 했으며 사건이 나면 폴리스 라인을 막고 서 있었다.
동생이 사라진 이후 경찰은 주변을 뒤지고 전화 통화 명세까지 뒤졌지만 찾지 못했다. 가족들은 장날이면 정선 읍내를 포함해 부근 동면·나전·여량에까지 전단을 붙였다. 동생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때 오빠 기훈이 결심했다. "정현이를 꼭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경찰이 돼서… 사건 파일을 열어보고 싶었다. 전 의경생활을 해봐서 모든 경찰이 정선서(署) 담당형사처럼 무심한 건 아니라고 알고 있었다."
기훈은 오전 9시부터 자정까지 필기시험 공부를 했다. 상반기 경찰 공무원 시험을 2개월 정도 앞둔 2009년 2월 17일 오후 5시30분, 집을 혼자 지키고 있던 기훈이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그리고 곧 끊어버렸다. "소식 들으셨어요? 강호순이 자백했다고 합니다." 전화기 너머 알 수 없는 사람이 기자라며 말했다. 눈앞이 캄캄했다. 계속 전화벨이 울렸고 급기야 기자들이 집 앞에 몰려와 웅성댔다.
강호순은 검찰에서 정현을 집 앞에서 납치해, 10시간 넘게 정선 근처를 끌고 다니다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범행 당일 가족은 '출근하지 않았고 통화도 안된다'는 군청의 연락을 받고서 오후 1시쯤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정선 일대 검문검색은 오후 늦게 시작됐다. 아버지가 밤새 울었다. "정선 바닥은 좁아서 조금만 빨리 검문했어도… 우리 정현이는 살았을지 모른다." 기훈은 자백 이튿날 열린 현장 검증에서 강호순을 봤다.
"'침착해야지, 정신 차려야지' 마음먹었지만 강을 보는 순간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죽이고 싶었다. 아버지와 내가 뛰어들었고 의경이 우릴 막아섰다." 기훈은 2009년 상·하반기 경찰 시험을 모두 망쳐버렸다.
막냇동생은 "자꾸만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평소 "누나가 세상 여자 중에 제일 싫다"고 놀리곤 했던 셋째는 누나에게 보내는 편지를 인터넷에 계속 올렸다. 어머니는 식당일을 그만뒀다. 범죄 피해자 보조금이나 치료 따윈 없었다.
기훈이 말했다. "이렇게 힘든데 사람들은 우리와 무관하게 떠들었다. 어떤 자는 '왜 강호순 차에 탔느냐'며 정현이의 과거를 의심했고 마을에선 '강호순과 우리 가족이 알고 지내는 사이'라는 소문까지 돌았다."
기훈은 올 5월 경찰 공무원 순경 채용 시험 최종 면접에서 탈락했다. 기훈은 "범인 검거에 결정적인 증거를 찾는 과학수사에 관심이 많지만 순경이 돼서 앞으로 온종일 조용한 지구대를 지키게 되더라도 상관없다"고 했다. "어쨌든 사람들을 지켜 줄 경찰이 세상엔 꼭 필요하다. 나중에 강호순을 만나게 된다면 딱 이 한마디를 전하고 싶어요. '너는 아무 죄 없고 알지도 못하는 내 동생을 죽였지만 나는 경찰이 돼서 네 가족을 지키고 있다'고."
다섯 형제는 4월 정현의 생일에 생크림 케이크를 사 들고 정현의 유골이 있는 절에 찾아갔다. 기훈은 올 하반기 경찰 공무원 순경 공채 시험에 다시 한번 도전한다. 그는 필기시험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