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대순종학과 학술답사를 다녀와서
글 - 대순진리회 여주본부도장 대학생수도인 中
대순종학과에서는 “도전님의 발자취를 따라서….”라는 주제를 가지고 2015년 10월 7일부터 9일까지 2박 3일의 일정으로 학술답사를 다녀왔다. 박 우당 도전님은 종단 대순진리회를 창설하시고 특히 대진대학교를 설립하시어 오늘날 대순종학과가 존재할 수 있게 하여 주신 분이시다. 도전님 탄강을 위해 정성을 드린 장소, 탄강하신 생가, 입도 치성 모신 곳, 공부하신 수리사, 속초도장의 미륵님의 모델이 된 은진미륵이 모셔져 있는 관촉사까지 도전님의 발자취를 잘 살펴보고 큰 뜻을 따르고자 하는 취지에서 떠난 가을 알곡같이 꽉 찬 여행이었다. 즐기듯 다녀온 답사로 우리 모두 많이 성장하였고 도전님의 따뜻한 숨결이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몇 달 전부터 준비를 해주신 대순종학과 21대 학생회와 학과장 교수님과 조교 선생님, 그리고 교무부의 김○○교감, 학술부원 모두 도움을 주셔서 보람 있는 알찬 여행이 된 것이다.
▲ 그림 1 안양 수리사
첫째 날
07시 30분 - 08시
깊어가는 가을, 청명한 하늘이 높고 청량한 날. 도장에서 준비해주신 45인승 대형버스에 집행부와 1학년 학생들은 학과에서 준비한 물품과 비상약, 아침으로 준비한 샌드위치와 점심 도시락을 싣고, 우리 모두는 버스에 탑승하였다. 대진교육관에서 2박 3일의 여정을 위해 첫 답사지인 수리사로 힘찬 출발을 하였다.
12시
수리산 주차장에 도착. 평일인데도 도로가 밀리는 바람에 예정보다 2시간 늦게 도착하였다. 준비해온 도시락을 먹고 30분 정도를 도보로 올라가서 수리사 대웅전 앞에 모였다. 학과장이신 이경원 교수님 주관으로 대웅전 앞에서 예를 표하고, 주지 스님의 말씀을 잠깐 들었다. 스님 말씀 중에 도전님께서 공부하신 곳에서 기거했던 손님들은 모두 잠자리가 좋다고 하셨다는 내용이 귀에 들어왔다. 도전님께서 태극도에서 출궁하시어 대순진리회를 창설하시기 전인 1968년 49일 동안 공부하셨던 곳을 직접 찾아올 수 있어서 감개가 무량하였다. 이곳 수리사는 신라 진흥왕(539-575) 때 창건된 사찰로 수리산 남서쪽 중턱에 위치하고 있는데,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로서, 창건자는 알 수 없고 왕손인 운산대사가 몽불수기(부처님을 친견하고 당대에 반드시 부처가 된다는 기별)를 하여 견불산 수리사라 이름하였으며, 그 후 산 이름도 수리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도전님께서 공부하신 곳은 대웅전에서 5시 방향에 자리 잡고 있는 요사채로서 지붕은 파란색으로 칠해져 있는 스레트 지붕이었다. 공부하실 때 청운스님이 정성껏 받들었다고 한다. 교수님께서 사찰에서의 공부는 자연과 더불어 신명과 통할 수 있는 좋은 곳이라고 말씀해주셨다. 닦을 수와 이치 리 자를 쓰는 수리를 진리를 닦는다는 의미로 해석도 해주시고 절 뒤의 산들이 오봉도처럼 보인다고 하시면서 제일 높은 봉우리가 태을봉인데 태을은 천상의 제일 높은 곳이니, 모든 여건들이 도전님께서 공부하실 만한 자리인 것 같다고 하셨다.
태을봉에 솟아오른 한 잔의 청정수
슬기봉을 감돌아서 백척절벽 곤두질러
백년고목 품에 안겨 편강약수 되었다네
이 물을 마시는 분 편한 마음 되찾아서
건강장수 누리시라 스님 염원 담기네
라는 시를 바위에 새겨놓은 편강약수를 도전님께서 공부하신 곳의 기운을 한껏 모시는 마음으로 마셨다.
▲ 그림 2 도전님 공부터
오후 2시 10분
수리사를 내려와 충청북도 괴산군 장연면 방곡리 62번지에 위치한 도전님 생가와 방곡리 57-2 입도치성 장소를 향해 출발했다.
오후 4시 15분
도전님 생가가 있는 마을 주차장에 도착해서 10분 정도 걸어 들어가니 도전님 생가가 있었다.
현재 천안방면 쪽에서 관리하고 있었고 관리하고 있는 선감 이하 여러 도인들이 반갑게 맞이하여 주었다. 예를 올리고 잠시 도전님의 숨결을 느껴보았다. 옛날에는 초가였다는데 지금은 한옥으로 지어서 관리를 하고 있다. 옛날 어릴 적 갔었던 시골 외할머니 댁에 온 것 같은 정겨움과 육신으로 뵐 수 없는 도전님에 대한 그리움에 뭉클했다. 생가 앞 밭에 있는 대추를 따서 먹으라고 해주셔서 주렁주렁 달린 대추들을 엄청 따서 먹었다. 올 때는 사과까지 챙겨주셨다. 조별로 내어준 미션이 심우도를 주제로 사진 찍기였는데 우리 1조는 민혁이를 동자로 해서 심우도 여섯 폭을 사진으로 멋지게 표현했다. 다른 조도 다들 멋진 장면들을 찍어서 밴드에 올렸는데 1등은 4조가 차지했다. 사진을 찍는 동안 조원들 모두 혼연일체가 되어 순간의 연출인데도 모두들 좋은 아이디어였었던 것 같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생가에서 20분쯤 걸어가서 도전님께서 입도치성을 모셨다는 곳이 지금은 터만 남아 있었다.
5시 30분
숙소인 하이웰 콘도에 도착했다. 앞에는 강물이 흐르는 공기가 좋은 조용한 곳이었는데 짐들을 정리하고 삼겹살로 푸짐한 저녁식사를 마치고, 2층 세미나실에서 8시에 모두 모여서 학술부에서 준비한 ‘대종 골든벨’ 시간을 가졌다. 모두들 집중해서 답사지에 대한 문제와 도의 진리에 대한 문제들을 재미있게 풀면서 공부도 되는 아주 유익한 시간이었다. 마무리로 이경원 교수께서 앞으로 ‘대종골든벨’은 시상금도 더 올리고 학술답사 때마다 해나갔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14학번 성귀순 차선감이 최후의 1인이 되었고, 차선감과 같은 1조인 우리는 덩달아 상품권을 받게 되었다. 차선감은 기적이다라고 말했지만 항상 많이 베풀고 학과 행사에 적극적으로 상생을 실천하는 차선감께서 1등이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는지 모른다. 우리 대종과의 전통으로 이 ‘대종 골든벨’을 이어나갔으면 하는 생각이다.
둘째 날
09시
박달산 집바위를 향해 출발했다.
30분 정도 버스로 이동한 뒤, 봉고차로 옮겨 10분 정도 이동하였다. 도착해서 30분을 등산하여 드디어 박달산 집바위에 도착했다. 성 박, 통달할 달을 쓰는 박달산이다.
산이 가파르고 몸이 불편한 학우들 몇을 제외하고 모두들 도착해서 조별 미션인 조별 사진찍기와 단체 사진을 찍었다. 도전님 양친께서 자손을 얻기 위해 정성을 드린 곳이다. 100일 기도를 하셔서 삼형제를 출산하셨는데 그중 도전님께서는 첫째 아드님이신 것이다. 도전님 생가에서 이곳 집바위까지 오시기는 엄청 멀고 산세도 험한데 이곳까지 오셔서 정성을 드리신 것은 말 그대로 정성 그 자체이신 것이다. 그분들의 정성에 마음이 숙연해지고 도전님의 뜻을 잘 받들어 수도를 잘 하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박달산은 정상에서 보면 앞쪽은 방곡리 마을이고 왼쪽으로는 느릅재와 추월산 우측으로 추정리가 있다. 방곡리는 백두대간 중 소백산맥을 따라 뻗어 내려온 산맥이 월악산과 속리산을 이루고 그 사이에 북쪽으로는 주월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신성봉과 성불산이 동서로 보필하며, 남쪽으로는 군자산과 칠보산이 호위하는 가운데 우뚝 솟은 박달산 기슭에 자리한 마을이다. 조별 미션으로 조별 사진찍기가 있었는데 우리 1조는 ‘돌머리통하는 100일 기도’라는 주제로 집바위에서 사진을 찍었다. 모두들 참신한 아이디어로 재미있게 사진을 찍어 올렸다. 탈 없이 내려온 우리에게 얼음골 식당에는 오리백숙이 기다리고 있었다.
14시 30분
괴산군민 가마솥을 보기 위해 30분을 가서 4만 명이 동시에 밥을 먹을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가마솥을 볼 수 있었다. 괴산군민 가마솥은 2005년 7월 괴산군민 성금과 군비 등 5억 6000여 만 원을 들여 건립했다고 한다. 이 솥은 무게 43.5t, 두께 5cm, 둘레 17.85m,높이 2.22m,지름 5m에 달하는 쌀 50가마를 넣어서 밥을 할 수 있는 솥이다. 13.5t의 가마솥 뚜껑에는 쌍룡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모양과 함께 12마리의 거북과 무궁화를 조각했다. 12개의 하구는 군과 11개의 읍면을 상징해 괴산의 무궁한 발전과 고향을 빛낼 인재 배출의 염원을 담았다고 한다. 괴산은 도전님께서 탄강하신 곳인데 괴는 느티나무 괴, 정은 솥 정이라 천부적인 관계라고 교수님의 설명이 있으셨다. 솥 정 자를 쓰시는 도주님을 생각해보고 세계포덕에 대한 의미 또한 새겨 보았다.
17시 30분
대둔산 입구에 있는 한밭식당에 도착 버섯전골을 먹었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쉼마루 펜션에 모두들 도착하여 화합의 시간을 가지고 피곤했지만 보람 있는 둘째 날을 마무리하였다. 1학년 학우들과 젊은 학우들은 늦게까지 화기애애한 화합의 시간을 가지고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 가기로 예정되어 있던 개태사에서 방문하지 말아달라는 통보를 받아서 내일은 대둔산을 등반하기로 했다.
셋째 날
08시
전날의 피곤함도 잊고 모두들 상쾌한 기상을 하고 일찍부터 펜션으로 배달해 온 북어국으로 아침식사를 해결하고 펜션도 말끔히 정리하고 대둔산으로 출발을 하였다.
09시
대둔산주차장에 도착, 도보로 10분 정도 올라가서 케이블카로 산의 중간 휴게소까지 모두 올라갔다. 내려다보이는 절경이 호남의 금강이라는 비유에 걸맞는 장관이었다. 금요일인데도 휴일이어서 그런지 등반객들로 산이 꽉 차있었다. 등반코스가 험한 관계로 정상까지 못간 학우들이 있었으나 꼭 정상까지 가겠다는 의지로 등반했다. 거의 90도 정도의 철계단, 돌로 되어 있는 등반길 등은 숨을 헐떡이게 했으나 역시 산의 정상은 그에 밑가지 않는 기쁨을 준다. 산의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풍경, 가을 하늘,조금씩 색을 입어가는 나무들, 바위 등 정상에 오르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성취감은 힘이 듦에도 불구하고 다시 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12시 20분
예정시간보다 훨씬 늦게 대둔산 주차장에 도착하여 다음 답사지인 관촉사로 향했다. 차로 이동하는 동안의 무료함을 홍보부에서 준비한 노래가 달래주었다. 나이든 학우들이 좋아하는 노래와 어린 학우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번갈아 가며 들려주는 센스로 흥에 겨운 시간을 보내며 목적지인 관촉사에 도착했다.
13시 10분
회장단에서 미리 예약해놓은 산 아래 식당에서 각자 미리 주문해 놓은 식사를 하고 10분 정도 걸어서 관촉사에 도착했다. 충청남도 논산시 관촉로 1번길 25에 위치한 관촉사는 옛날 중국의 지안이라는 명승이 이 절에 세워진 석조미륵보살입상(은진미륵)을 보고 미간의 옥호에서 발생한 빛이 “마치 촛불을 보는 것같이 미륵이 빛난다.” 하면서 예배하였다. 이런 연유로 관촉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전해진다. 문화해설가이신 아주머니는 중국분이신데 관촉사에 대한 내력을 아주 자세히 설명해주셨다. 관촉사는 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이다. 968년(광종 19년)에 혜명이 불사를 짓기 시작하여 1006년에 완공하였다. 전해지는 설화에 의하면 산에서 고사리를 캐던 여인이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곳으로 가보니 아이는 없고 큰 바위에서 아이우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나라에서는 그곳을 신성하다고 여겨 절을 짓게 하였다고 한다.
▲ 그림 5 논산 관촉사
관촉사의 석조미륵보살입상은 도전님께서 속초도장에 세울 미륵님의 모델로 삼으라고 한 불상으로 길이가 19m, 둘레가 9.2m, 귀 길이 2.7m, 눈썹사이가 1.8m나 되는 엄청난 크기의 불상이다. 무엇보다도 이 부처가 모셔진 자리는 멸망한 백제의 최후의 보루였던 계백장군과 5천 결사대가 그 뼈를 묻었으며, 후백제의 근거지로서 강성했던 후백제군을 왕건이 고려를 세우면서 창과 칼로써 제압한 황산벌을 굽어보는 자리이다. 백제이자 후백제의 유민으로서의 의식이 아직 가시지 않은 이곳 사람들에게 고려의 강력한 왕권을 과시할 상징이 필요했는데 왕권의 화신으로서 그처럼 거대하고 강력한 힘을 소유한 듯이 보이는 상징을 제시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절에는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데 박대통령께서 살아생전에 방문하셔서 불편한 것이 없냐고 하셔서 절의 진입로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불편하다고 하니 지금의 도로를 만들어주셨다 한다. 연고 없이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구나.
2박 3일의 일정을 관촉사에서 마치고 방면 치성이 있는 관계로 학교로 향하는 나머지 일정은 함께하지 못한 채 부산으로 내려갔다. 아는 만큼 보이고,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하더니 책으로 보고, 말로 듣기만 했던 성지를 직접 찾아서 보고 느끼고 오니 보다 성숙한 도인이 된 것 같다.
출처 - 대순진리회 여주본부도장 대순회보 17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