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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에 심은 나무 2021. 05. 02
지난주에 <육신의 행위와 믿음의 열매>라는 주제로 의인이 믿음으로 사는 삶에 대해서 살펴봤는데- 오늘은 의인의 삶이 물가에 심은 나무처럼 믿음으로 살 때 철을 따라 열매를 맺는 형통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신약의 성도들은 물가에 심어진 나무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인해 믿는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 나라로 옮겨졌기때문입니다(골1:13). 오랫동안 우리는 자신이 행한 것을 따라 우리의 위치와 신분이 결정되는 줄로 잘못 알았으므로 우리가 순종해야만 복을 받는 줄로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우리가 의인이 되었다고 말씀해 줍니다. 이는 우리가 오직 은혜로 복을 받은 사람이 되었음을 일깨워줍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위치와 신분은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주어졌기 때문에 우리는 은혜로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되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포도나무이신 주님께 가지로 붙어 있기만 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은혜로 주어진 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할 수 있는 자가 되었음을 알고 기능한다면 절로 과실을 맺는다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예레미야 17장 7~8절말씀에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하셨는데- 이 말씀을 주 예수님이 요한복음 15장에 5절에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하신 이 말씀으로 우리가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먼저 주님이 우리로 열매를 많이맺을 수있도록- 물가에 심어준 이유를 살펴보면, 첫째로 주 예수님의 영광을 위해서이고, 둘째로 주님의 몸인 교회를 세우기 위한 것이며 셋째로 세상에 거룩한 영향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 복을 받아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복을 나눠주는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사는 의인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의뢰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스스로 강한 자가 되기 위해서 육신의 힘을 의지하거나, 아담의 타락한 본성으로 사는 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사람의 생각과 꾀를 의지하지 않고, 우리의 구원자이신 주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을 신뢰하므로 믿음으로 사는 자들입니다.
예레미야 17장 5절에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으로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자’에 대한 경고의 말씀을 보면. 여기서 언급한 사람은 <아담>입니다. 그래서 혈육은 사람의 타락한 본성을 말합니다. 아담의 범죄 후 모든 사람이 타락한 본성을 지니고 태어났습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했던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난 것 자체가 저주입니다. 이 말씀은 일차적으로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에 빠져 살았던 이스라엘을 향한 경고이지만, (ppt11)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육신에서 나온 지혜와 힘을 의지하며 삽니다. 그러한 사람들의 일생이 ’사막의 떨기나무와 같이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비록 가족과 동료들 속에 살지만,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끼며 외롭게 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한편으론 자신이 성취한 것을 근거로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지배하고 조정하려 드는 자들도 많습니다. 이렇게 외로움과 고통, 그리고 갈등과 반목 속에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이 사는 모습인 것을 아는 우리는 저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 사랑함으로 피차에 도움을 주고받으며삽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내주신옆의 사람들을 밀어내지 마시고, 서로 돕고사는 사랑의 공동체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그 어떤 빚도 져서는 안 되지만 사랑의 빚을 서로 질 때, 우리가 속한 공동체는 더욱 풍성하고, 활기를 띨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가끔, “나는 내 힘으로 자수성가한 사람이다”라고 자신을 내세우는 사람이 있는데- 자수성가는 일종의 자기 자랑입니다. 하지만 우리 중 누구도 타인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성공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 시기와 우연이 맞았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 성공하는 것이지, 자수성가한 자는 사실상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도움으로 이 땅에서 승리하며 놀라운 삶을 살도록 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7절에 “무릇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했습니다. 신약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 말씀이 성취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의를 의지하여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약의 성도들은 이미 이 복 받은 자들이 된 것입니다.
8절에 “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하셨는데- 여기서 “더위”는 중동지역의 불볕더위를 가리킵니다. 중동에서 일한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햇볕에 달구어진 중장비 기계에 달걀을 깨면 그 자리에서 계란 후라이가 된다고 합니다. 그만큼 더위로 해를 입기 쉽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물가에 심어진 나무는 더위가 와도 두려울 필요가 없다고 말씀합니다. 가뭄에도 걱정이 없이 열매를 맺고 결실한다고 말씀해 줍니다.
그러나 육신의 생각으로 판단하여 행하면- 좋은 일이와도 그것을 보지 못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좋은 기회들은 누구에게나 옵니다. 하지만 육신으로 행하면 주님이 주신 것도 깨닫지 못하고 그 좋은 것을 놓치고 간직하지 못한다고 말씀해 줍니다.
사막에도 비는 옵니다. 그런데 문제는 비가 와도 금세 땅속에 스며들거나, 홍수처럼 물이 범람해서 일시에 그 물이 빠져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막은 늘 건조하고 건건합니다. 육신이 사막과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담을 수 없고 누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오아시스는 비가 오면, 그 주변에 나무들이 있어서 물을 담을 수 있기에- 항상 물이 풍부합니다. 생명으로 거듭난 성도들의 심령은 오아시스와 같습니다. 주어진 환경과 상황에 요동하지 않고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넘치는 은혜를 공급받기 때문에 결실합니다. 우리는 은혜의 말씀이 들어오면 이 말씀을 품고 믿음으로 행할 때, 열매를 맺습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이 누구이며 어떤 복을 받은 자임을 알기 때문에 끝까지 인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가에 심은 나무는어떤 일이 발생한다고 해도, 경제적으로, 사업적으로, 팬데믹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아시스에 항상 물이 넉넉하게 비축되어 있듯이 우리 심령이 주님의 넘치는 은혜가 공급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영에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고 우리가 믿음으로 반응할 때, 이 모든 것을 넉넉히 이기고 감당하게 하십니다.
요즘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가 경제위기가 닥쳤다고 다들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있는 자가 된 우리는 이런 시련과 문제들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바다에서 풍랑이 일 때, 배에서 파도치는 물결을 바라보고 있으면, 필시 뱃멀미를 하기 마련입니다. 이때 뱃멀미를 이겨내려면 멀리 있는 수평선을 바라보아야 하듯이, 우리는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베드로의 눈이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을 때, 그가 물 위를 걸을 수있었습니다. 그러나 파도를 보고두려워하자 그가 물속에 빠져들어 갔던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므로 우리의 눈을 항상 주님께 고정하십시오. 복음의 말씀, 약속의 말씀 위에 굳게 서십시오.
복 있는 자는 주님을 의지하고 의뢰함으로 복을 받는 것입니다. 여기서 <결실>이 그치지 않는다는 것은 주님을 의뢰한 <결과>입니다.
이것을 아십시오. “일은 사람이 땀 흘려 노력하는행위지만 결실은 넘치는 은혜의 결과입니다.” 열매는 우리 안의 생명이 흘러넘침으로 인해 생기는 것입니다. 어떤 나무도 스스로 노력해서 과실을 맺지는 않습니다. 요한복음 15장 4절에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하신 것입니다. 열매는 은혜의 결과입니다.
‘물가에 심어진 나무는 더위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가뭄에도 걱정이 없이결실한다’라고 한 것은 복 있는 사람이 누리는 축복입니다. 결실이 그치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ppt 22) 하나님은 우리가- 내 노력으로 성공하는 것보다 주님의 은혜로 결실하기를 바라십니다. 이는 은혜 안에서만 그 결실이 그치지 않고 계속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열매는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므로 맺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성공은했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고갈되고 맙니다. 그 성공이 계속 배가되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계속 의지하고 의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결실이 풍성하여 다른 사람들과도 나누며 풍성한 삶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사실 인간에게 주신 첫 번째복은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열매가 때론, 직장에서의 성공이나,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으로도 보겠지만, 성도들이 맺는 열매는 이보다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요셉의 경우가 좋은 예가 되겠습니다. 요셉은 종이었습니다. 그 당시 노예는 돈이나 재산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하는 모든 일에는 결실이 풍성했다고 말씀합니다. 곧 그가 하는 일마다 좋은 결과를 얻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요셉의 주인 보디발은 여호와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하심을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창39:3) 한 겁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볼 때 이렇게 말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저 사람들은 항상 즐겁고 좋은 인상을 주고 있어. 무엇이든 하는 일마다 잘되는 사람으로 보여!”라고 말입니다. 항상 푸르고 시들지 않는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일생 사는 동안 어떤 더위가 오더라도, 어떤 어려움이 일어나도, 그것을 능히 이겨내고 극복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주시는 우리 주님을 찬양합니다.
시편 1편에서도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라고 우리에게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습니다. 성경의 악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지 않고 육신의 생각을 따라 사는 자를 말합니다. 성경에 육신에는 선한 것이 없다고 하셨고 하나님의 말씀에도 순종할 수도 없다고 말씀합니다. 세상의 가치관에서 나오는 꾀는 달콤하게도 자신에게 유익을 주는 것처럼 좋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이는 세상에 속한 것입니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하면 하나님과 원수가 되므로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없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무언가 결정하거나 행하기 전에 주님께 물어야 합니다. 주님을 의뢰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항상 말씀으로 이끄시며, 그 마음에 평안을 주십니다. 다윗은 “내가 주께 범죄 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119:11)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아 살아가는 삶의 비결입니다. 말씀을 마음에 둘 때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마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여 행하는 자는 이미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은 것입니다. 이제 자기 자신이 주인이 되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으며 살았던 망령된 행실에서 벗어나, 생명 나무 실과이신 주님! 곧 그분의 말씀을 먹고 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음을 의식하셔야 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이전의 죽은 행실로 살았던 죄인의 길에서 벗어나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며‘ 사는 자가 되었습니다.
시편 1편 2절에서 나오는 율법은 십계명이 아니라 ‘토라’ 입니다. 시편 19편 7, 8절에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 도다.“라는 말씀대로 우리 영의 양식이 된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 마음 중심의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이를 주야로 묵상하는 복 있는 자들입니다. 그 결과가 3절에 나옵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라고 약속해 줍니다. 우리의 건강이 시들지 않을 것이며, 우리가 하는 사업이 쇠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는 일이 모두 잘 되리라고 격려해 줍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할 때, 우리는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으며, 성령의 열매들이 우리 삶과 인격에 맺히는 것을 볼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지 못하십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씀을 통해 주님의 마음을 알게 되고, 그 뜻에 따라 순종하기를 기뻐하며, 기꺼이 행하게 됩니다. 이러한 자의 삶이 모든 일에서 형통하게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러한 성도를 예레미야 17장에서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곧, 여호와를 의뢰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묵상이란 히브리어로 “하가”입니다. 이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입으로 중얼거리는 묵상이 주는 유익은 대부분, 사람들은 어려움을 겪게 되거나 시련이 닥치게 되면, 마음과 생각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르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염려에 빠지거나, 겁에 질려서 두려움에 갇히곤 하는데, 이 말씀 묵상이 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믿음을 가져다준다는 것입니다. 염려나 두려움은 불신에서 오는 파괴적인 상상력입니다. 그런데 이를 몰아낼 수 있는 창조적인 상상력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바로 말씀 묵상을 통해서 우리가 믿음을 가질 때, 역동적인 상상력이 활발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1편에 나오는 형통함도 “하가”라는 말씀 묵상과 연결됩니다. “하가”는 여호수아 1장 8절에서도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라고 하신 말씀과 연결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라 하신 것은 입술로 중얼거리듯이 작은 소리로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만나게 되는 모든 상황에서 말씀을 따라 행할 수 있게 되어 우리의 삶이 평탄하고 형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묵상한 말씀이 우리를 이끄시도록하니 우리 삶에 평탄함과 형통함이오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평탄함’이란 문자 그대로 그 어떤 장애물이나 걸림돌이 없이 길을 갈 수 있게 된 것을 말합니다. 높은 곳은 낮아지고 파인 곳은 돋워짐으로써 앞으로 나가기에 좋은 길이 말씀을 통해서 열린다는 것입니다. 물가에 심어진 나무들처럼 우리는 놀라운 도움과 보호 속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그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그 장애물을 능히 뚫고 나갈 수 있는 돌파력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내면에 자리 잡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약속의 말씀을 묵상하므로 내면에 믿음의 활성화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것은 소나 양이 먹은 풀을 되새김질하듯이- 우리 영에 주어진 말씀을 가지고 중얼거리며 묵상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마음에 품고 입으로 되뇌며 묵상하는 겁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서 쓴 글입니다. 그래서 묵상할 때, 하나님의 숨결이 느껴지고, 하나님의 영감이 은혜 속에서 놀라운 삶을 살게 해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 묵상 통해서 우리 내면이 성령의 영감이 넘치는 은혜의 삶을 살게 해 줍니다. 이 삶은 다른 사람의 삶에도 영향을 주는 겁니다.
아침 큐티하실 때 받은 말씀을 마음에 담아 묵상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 말씀이 마음에 차곡차곡 쌓이게 되면, 성령님께서 필요하실 때마다 그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므로 우리의 삶을 이끌어가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묵상을 통해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도록 자신을 내어 드리십시오. 우리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은 말씀대로 순종할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이미 순종할 수 있는 본성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묵상은 즐거운 것입니다. 시편 1편 2절에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했는데, 말씀 묵상이 즐거운 이유는 말씀 묵상이 우리 마음에 활력을 주는 그림을 그려주기 때문입니다.
시편 23편을 마음의 그림으로 그려보십시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도다.”라고 입으로 중얼거리면서 실제로 양들이 푸른 풀밭에 평화롭게 누워있는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상력이 활발해지면 즐거움이 증폭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연속극을 TV로 보는 것보다- 라디오 드라마로 듣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그런데 라디오 드라마보다도 더 좋은 것은 소설을 읽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글을 읽으면서 우리의 마음에 상상력이 활발해지기 때문입니다.
말씀 묵상을 활발하게 하시려면, 말씀을 많이 읽으시고, 또 암송한 구절이 많아야 합니다. 자본이 넉넉하면 장사하기가 훨씬 유리하듯이 알고 있는 말씀이 많으면 묵상하기가 더 좋습니다. 그래서 소나 양이 서둘러서 먹어둔 풀을 한가할 때, 되새김질하듯이, 일단 내 속에 들어온 말씀을 가지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특히, 말씀 묵상을 할 때, 상상력을 동원하여 마음에 바라는 좋은 그림을 그려보십시오. 이왕이면 애니메이션(활동사진)이 더 좋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말씀을 자주 반복적으로 묵상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신바람이 나는 말씀 묵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삶에 요긴한 것은 우리가 사는 세계는 언젠가 내 마음에 있었던 것이 우리의 현실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좋은 것들을 마음에 품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언젠가 그것이 현실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가 주로 하는 생각이 다분히 부정적입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에 늘 편치 않은 것들을 안고사는데, 이런 것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떨쳐버리고늘 마음에 좋은 것을 품고 살아가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로 말씀 묵상입니다. 매일 아침 성령님이 주신 말씀을 흘려보내지 마시고, 이제 그것을 마음에 품고 말씀을 묵상하는 거룩한 습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물가에 심은 나무임을 인식하시고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시므로 우리의 삶에 풍성한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좋은 인생, 행복한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