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의외로 괴팍한 친구녀석들이 많다. 나 같은 샌님이야 친구들이 밤새도록 이 여자 저 여자 만나며 신나게 연애 질 하고 다닐 때 코피는 내가 대신 쏟으며 그 재미가 뭔지도 모른 채 머리통 싸매고 연애편지나 쓰고 있던 한심한 처지이었으니 용빼는 재주가 넘치는 녀석들을 그저 부러워하고 있었을 수밖에.. 당시 놈들이 어찌나 대단하고 위대하게 보였는지. 아직도 그 진수를 이어받지는 못했지만 깨달은 바는 있었으니.. 좌우지간 이제 각설하고 혹시라도 여자 꼬시기 대회가 생기면 아마도 세계적인 챔피언이 될만한 한 친구녀석 이야기를 해야하겠다.
질투의 눈으로 보는 내 시야로는 절대 이 녀석이 잘 생기지는 않았다. 먹다 걸려 삼 년 간 위장 속에서 역하고 비릿한 냄새 풍기는 비계덩어리처럼 능글능글하고, 행동거지 보면 토끼와 경주하던 거북이보다도 더 느려 터져 울화병은 같이 다니는 내가 생기는 그런 놈인데. 그러나 어디 세상이 내 뜻을 따라 눈까지 돌아가 사시가 되랴? 모두가 잘생겼다고 하고, 아. 이건 정말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지만 여자들을 줄줄이 사탕으로 꿰차고 다니니 어쩔 수없이 나도 그렇게 인정을 하는 수밖에.
다른 놈팡이와 히히덕 대며 같이 여관으로 들어가는 가시내도 중간에서 턱하니 가로채서 지가 대신 재미를 보는 재주는 물론 성병에 걸려 치료를 받으러 갔다가 주사를 놓던 간호사마저 덥석 해치우는 신출귀몰한 이 녀석. 오죽하면 같은 마을의 선남선녀가 우연히 결혼에 골인을 할라치면 슬금슬금 이 녀석 눈치부터 챙겨봐야 했을까. 그런 녀석이 글쎄 어떤 여자를 만났는지 하루는 술자리에서 내게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암만해도 실연 당할 것 같아." 이러는 것이 아닌가? 못 믿겠다고 껄껄 웃는 내게 이 녀석 자기를 비웃는 줄 알고 무섭게 노려보며 소주를 병째 나발로 부는 바람에 그만 그 소주병에 맞아죽을까 겁이 덜컥 났는데. 그 부리부리한 눈이 어느덧 애원의 눈으로 바뀌며 우선 땅이 꺼져라 한숨부터 내쉰다
"친구야. 내가 뭐 배운 게 있나."
녀석의 부드러운 말에 적어도 전치 4주는 안나오겠구나 하고 안도의 한숨을 따라 쉬며 물었다.
"도대체 왜 그러는데."
"아 글쎄 여자가 어찌나 난 체를 하는지."
"무슨 난 체."
"야. 무식한 내게 난 체라면 유식한 체 하는 것 밖에 더 있나?.
"하긴 할말 없다."
여기서 녀석의 무식.. 그 또한 세계 챔피언 감이니 소개를 하고 넘어가야 하겠다. 우선 느린 행동거지와 전혀 다른 이 녀석의 불같은 성격, 녀석은 어찌나 성격이 급한지 한번은 담배를 꺼내 물고 지프라이터를 찾느라 주머니를 뒤적뒤적 대더니 십 초도 못 참고 라이터가 없다고 담배를 질근질근 씹어 삼켜 옆에 있는 친구들을 멍하게 만들었다. 더 황당한 것은 라이터가 녀석의 손에 들려져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다음에 녀석에게 붙여진 별명은 깡통이다. 물론 듣는 대서는 아무도 그 별명을 부른 친구들이 없다. 잘못하면 녀석이 깡통이 아니라 별명 부른 친구 머리통이 찌그러진 깡통이 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 녀석의 대로 행. 녀석이 가는 길이면 그것이 길이고 녀석이 우기면 그곳이 곳 그 장소가 된다. 무슨 말이냐고? 애도 어른도 몰라보는 데다가 양식집 가서 짜장면을 찾으면 그곳이 중국집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아마도 레스토랑 가서 짜장면 시켜 먹은 놈은 우리나라에서 놈이 최초일지도 모른다. 시달리다 못한 주인이 중국집에서 배달 시켜다 주긴 했지만.. 먹는 것뿐이랴. 배설도 마찬가지. 지나가다가 바지만 내리면 그곳이 곧 화장실이다. 말은 들어본 적은 있지만. 한번은 같이 술을 마시고 거리를 걷다가 녀석의 행동에 어찌나 당황하였는지. 지나가는 버스에 대고 실례를 하는 것이 아닌가? 속된 표현을 빌면 맛이 간 놈이라 할 만도 한데 그건 우리가 두려워 해야할 성격일 뿐이지, 그렇게까지 미친놈이라고 밀어붙이지 못하는 이유 하나는 이 녀석 무슨 귀신이 씌었는지 술만 깨고 더구나 여자들 앞에만 서면 순간 신사로 변신하여 아주 점잖고 멋있는 화술과 몸가짐을 구현한다는 것이다.
"이 여자 말이다. 정말 왔다다. 영화배우 윤00 닮았어."
당시는 티브이가 없었으니 탤런트가 아니라 여배우들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이다.
"마, 도대체 누구 이야기하는 거야."
듣다보니 나도 화가 나서 소리를 빽 질렀다. 오매, 이 녀석 보라 부리부리한 눈에 금새 핏발이 서네.
"너 쪼매 내 화약통에 불지르는 것이냐? 잉"
전라도에는 수학여행도 간 적이 없는데 가끔 튀어나오는 사투리.
"아, 아니. 그게 아니고. 어떤 여자를 말하는지 알아야 대꾸를 해줄게 아니냐.
금새 꼬리가 땅에 떨어지는 가엾은 내 팔자. 어쩌자고 저런 놈하고 또 술을 마시는지.
"너 몰랐냐? 어제 데이트했는데?"
이런 죽일 놈 봤나. 재수 좋을 때는 하루에도 여자가 두 번은 바뀐다는 놈 말하는 것 보게. 어제 지가 사귄 여자를 내가 어떻게 알 것이며 혹 봤더라도 오늘 그 여자를 말하는지 내가 어떻게 알 거야. 여자 꼬이는 재주 좀 배우려 술 한잔 샀던 것을 속으로 뼈저리게 후회하며 겉으로는 태연하게
"몰랐어. 누군데?"
"요 옆 반찬가게 옆으로 이사온 여자 있잖아. "
"아, 은행인가 어딘가 다닌다는 그 늘씬한 여자?"
때가 어느 때인가. 당시에 은행이 아니라 농협 매장에서 경리만 봐도 인텔리 급으로 보이던 시대. 도시에서 발령 받고 내려온 미모의 은행 여직원이라니.. 참 그 여자 재수 이젠 옴 붙었다. 저 킬러에게 걸렸으니.
"그래. 그 여자. 어제 가게로 반찬 사러 나온 것을 슬슬 꼬여서 다방에를 데려 갔다고."
정말 혀가 찰 노릇이네. 그런 여자가 무엇이 아쉽다고 저런 놈팡이와 커피를 마시러 다니는지. 참, 그 비법을 전수 받으려고 술을 사는 나였지? 아무튼 녀석의 골통을 후려치고 싶은 것을 꾹 참으며 어떻게 된 상황인지나 들어보려고 소주 한 병을 더 시켰다. 실은 그 녀석보다 불 받은 내가 마시려고 산 소주였다. 한눈에 쏙 반해 날마다 그녀의 주변을 맴돌았어도 말 한마디 붙여보지 못한 나였는데..
"야, 릴케가 뭐냐?
이건 또 뭔 소리. 릴케가 누구냐고 물어야 어법이 맞는 것 아냐? 근데 저 녀석 입에서 왜 릴케라는 시인의 이름의 튀어나오지?
"왜 그러는데."
"윤 동주니 릴케니 하며 시를 좋아한다는데. 윤 동주는 알아듣겠는데. 릴케는 모르겠어서."
"외국의 시인."
어느 나라까지 알려주면 그 나라가 뭐냐고 물을까봐 그냥 외국이라고 했다.
"그럼, 차이카프새끼가 뭐냐?"
우와 머리서 쥐나려고 하네. 이놈 혹시 무식한척하며 날 까보려는 것 아냐? 코미디 하는 것도 아니고. 새끼가 뭐야.
"음악가."
정확한 이름이며 작곡한 곡명 등을 알려주면 더 골치 아프게 캐물을까 봐 역시 짧게 끊었다.
"너무 예뻐서 미치겠는데 두시간 동안을 앉아서 시인이 어떻고 음악이 어떻고 하는 거야."
"그게 어때서? 그 아가씨 취향이지."
"그게 내숭이지 취향이냐?"
오라 이 녀석. 마치 도사 같은 이야기하네. 지가 아무리 여자편력이 많기로서니 어떻게 여자가 다 한가지인 것처럼 말하는 거야? 내 천사를 저렇게 모욕해도 되는 거냐고.
"친구야. 나 좀 도와줘라. 넌 모르는 게 없잖아. 내일 다시 만나기로 했으니 너도 같이 나가서 내 대신 그 유식한 이야기 좀 받아줘라."
놈이 내게까지 구원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을 보니 그 여자에게 단단히 반하긴 반한 모양이었다. 하긴. 긴 바지에 남방이나 걸쳐 입고 다니는 시골 여자들 틈에 얼굴이 하얗고 예쁘겠다. 몸매 늘씬하겠다, 거기다가 세련된 옷차림으로 다니니 녀석의 몸이 달만도 하지.
"좋아. 대신 내가 시키는 대로해야 한다."
"뭔데?"
"술 금지."
"술? 알았어."
어차피 여자를 꼬일 때는 절대 술을 마시지 않는 녀석의 습관을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긴장돼서 술 한잔 마시고 레스토랑에서 짜장면 시키신 분 소리가 나면 그땐 끝장이니 미리 주의를 준 것이다.
오. 내 천사여.
멀리서 보는 것 보다 여자는 훨씬더 아름다웠다. 아름답다는 표현적 의미를 어느 곳에 두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모든 것을 다 지니고 있었다. 섹시한 체형 미는 고사하고라도 그 아리따운 얼굴이며 세련된 분위기며. 고혹적인 입술과 상대를 빨아들일 듯한 눈. 그러면서도 그 한편에서 은은히 풍겨 나오는 고상함까지. 이런. 의외로 녀석은 태평한데 유식으로 한몫 거들겠다고 나간 내가 더 얼어붙어서 쩔쩔매고 있으니 이를 어쩌랴.
여자는 정확히 오후 7시에 약속 장소로 나왔다. 참, 정말 어처구니없는 것은 이 녀석 여자가 오기 전엔 화장실을 몇 번씩 들 락이며 줄담배를 피워대더니 이런 여자가 입구에 들어서니 마징가 젵 변신하듯 의젓하고 느긋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순식간에 싹 변하지를 않는가.
"아. 나오셨군요."
60년대 영화 배우의 굵은 목소리 톤으로 재빨리 변신.
"친구가 말씀하신 분이시군요,"
기어 들어가는 내 목소리
"반갑네요."
여자는 이미 친구와 같이 나오는 것을 전해들었는지 생긋이 웃으며 나를 맞았다. 어쩌면 목소리도 그리 차분하고 예쁜지. 지금 생각해보니 아마도 전화국 교환원같이 회사에서 예절 과목으로 목소리 교육을 받지 않았는가 싶다. 우리 노친네 들이 곧잘 비유법에 갖다가 척하니 부치듯 옥구슬이 쟁반을 구르듯 살살 마음이 녹아드는 톤이었다.
여자의 미모에 정신이 나간 나를 더 당황하게 만든 것은 주변의 시선들이었다, 워낙 뛰어난 미모의 소유 녀 이고 보니 이놈들 여자 구경하러 왔나 퍼먹던 양식이나 부지런히 목구멍에 구겨 넣지 왜 모두 힐끗힐끗 남의 테이블만 바라보는지. 나같이 수줍은 많은 샌님, 이런저런 시선 의식하라 식은땀만 나는데.
"철학을 전공하였다고요?"
그 옥구슬 구르는 목소리로 여자가 먼저 나를 공격{?} 한다.
"아. 예. 실력이 딸려서요."
우선 최대한의 겸손부터 그리고 다음
"옆 친구는 이야기 들었겠지만 공대 출신입니다. 실력이 대단하지요"
친구를 추켜세워야 하는데. 얼어죽을 무슨 놈의 공대. 선반공으로 서울서 한 달간 일하다가 드릴 날 모두 뭉뚱그려 놓고 쫓겨온 놈인데.
"아. 앞으로는 기술자들이 나라의 경제를 살려야 된다는 아버님의 말씀을 받들어서요,"
아버님? 이 자식 입에서 아버님? 대장간 하는 아버지가 할 일없이 놀 지말고 일이나 거둘 라고 했다고 술 마시고 나까지 검댕이 칠 묻히고 사는 대장장이 만들려고 하느냐며 당신이 아비요? 하고 대들던 불한당 같은 놈 입에서 아버님? 지나가는 강아지가 웃고 가겠다.
"정말 존경받을 만한 분이시군요. 남들은 다 -사-자 자녀를 만들려고 하는데요."
순간적으로 등에 식은땀이 쭉 흘렀다. 급히 말을 받아서.
"그렇지 않아도. 저역시 저의 부모님께서도 의사나 변호사 되라고 하는 것을 우기고 철학과에 들어갔습니다."
이 녀석 -사-자가 뭐냐고 물어오면 산통 다 깨지는 큰일이 아니겠는가.
"철학공부 하신 분들은 생각이 깊으시지요?"
"나쁜 말로 하면 멍청한 사색가지요."
마침 레스토랑에서는 그룹 어스의 곡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웬만한 팝송 맨 들은 잘 모르는 그룹인데 그녀가 가수 블랙 세바스 의 이름까지 거론하며 음악이야기를 시작했다. 일순 긴장감이 감도는 내 친구녀석. 어지간히 저 여자가 마음에 들었는가 보다.
"어스 그룹의 노래들을 내 친구녀석이 더 좋아합니다. 이 친구 점잖아서 그렇지 언제한번 음악 감상 실에 가서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으로 감상하지요."
"그럴까요?"
아마 쥐구멍에 볕드는 날이 더 빠를걸? 오늘밤 이후로 그대를 만나지는 않을 것 같으니 뭔 소린들 못하랴.
"전 팝송도 좋아하지만 클래식을 더 선호합니다."
당시 유식한 척 내숭떠는 인간들의 단골 레퍼토리가 음악이나 영화 또는 문학가들을 아는 척 하는 것이었으니. 지금 이 글 읽는 독자들 유치해도 조금만 참으시기를.
"아 그래요?" 그러면 특별히 좋아하시는 음악이라도."
"쇼팽의 즉흥환상곡이나 아니면 헝가리안 무곡도 좋아해요,"
"헝가리안 랩소디 말이군요. 내 친구와 잘 맞네요. 이 친구는 스페인 무곡을 좋아합니다. 비제의 카르멘 판(lp-당시는 카세트도 없을 때였음)도 갖고 있습니다."
아, 여기서 제비의 칼멘 이라고 발음이 헛 나올 뻔한 것을 바로 잡느라 잠시 숨을 멈췄다. 내가 왜 긴장을 하는지. 미녀 앞에 앉으면 손도 떠는 나려니.
"그리고 집에 가보면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이나 바하의 변주곡 같은 판이 많이 있습니다. 언제 한번 같이 가보세요."
이런 내가 실성을 했나? 저 천사를 저 불한당 같은 놈에게 안기려고 기를 쓰다니. 그러나 어쩌라. 저 무식한 놈 눈에 잘못 들으면 매일 술 주정 듣느라 고향 떠나 모진 타향살이하게 생겼는데. 대충 음악이야기는 넘겼는데 이번엔 음악가들 이야기를 하다가 자연히 문학 쪽으로 연계가 되었다. 베토벤의 전원교향곡에서 동명의 소설로 이야기가 옮겨 간 것이다.
"지드의 전원교향곡에서 시사하는 것은 어떠한 사랑 적 관념보다는 종교적 관념이 더 큰 것이 아닌가요?"
"그래요. 작가가 종교라는 계율에 문제를 제기하려 쓴 작품이지요."
알기도 많이 아네. 저러니 친구 놈이 쩔쩔 매었겠지. 도대체 은행업무가 얼마나 편한 것이기에 저 천사. 업무보다는 음악 듣고 책 읽고 느긋이 살까. 경제개발 오 개년 계획에 새마을 운동으로 시골 사는 우리네들조차도 정부에 달달 들볶이며 일만 하느라 책은 고사하고 볼일보고 뒤볼 새도 없는데 말야. 그런데 그까짓 유식한 척 하는 말장난이야 나도 빠지지 않았기에 지루한 줄 몰랐지만, 이건 정말 기분이 나빠도 한참 나쁘게 자꾸 눈에 거슬리는 게 있었으니. 이 여자. 말은 죽어라 내게만 시키면서 그 호수 같은 눈은 친구 놈을 담고 있는 거야. 고달프게 입은 내가 나불대는데 마음은 저놈이 갖아? 어라. 어느새 친해졌다고 친구 놈, 커피와 함께 나온 과자를 정성스레 까서 천사의 입에까지 넣어주잖아. 그리고 저 나긋나긋하게 받아먹는 천사의 얼굴은 또 뭐야. 그때. 나는 여자에 대해 한가지 분명한 진리를 깨달았으니. 공개를 할까 말까. 들으면 겨우 그걸 할 테지만 그래도 공개결심. 여자를 꼬실 때 는 백 마디 말보다는 얼굴로 승부를 걸라. 아마도 저놈의 얼굴은 만인이 좋아하는 영화배우 신00 배우 스타일인가 보네. 둘이 잘되어가기에 느긋이 돈까스 시켜먹고 레스토랑을 나와서 헤어졌는데. 둘은 버스를 타고 한시간 거리에 위치한 도시로 영화구경을 간다나? 통행금지... 아. 끝이다.
그 날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얼마나 속이 쓰렸는지 모른다. 그 여자의 몸은 고사하고 손 한번 만져보아도 소원이 없을 터인데 그런 나의 천사를 밤새도록 끌어안고 뭔 짓거리를 할 것을 생각하니 이건 맨 정신으로 버틸 재간이 없었다. 철학이 뭐고 문학이 뭐고 음악이 뭐냐. 그저 외모나 잘 타고나면 그만인 것을. 소주를 나발 째 불고 누워있으려니 애꿎은 부모님이 왜 그리 불쌍한지. 이런 놈 나서 아무리 가르쳐봐야. 출세를 할거야. 뭐야. 그럴듯한 며느리나 볼 꺼야. 이불 뒤집어쓰고 꺼이 꺼이 울다가 불이 받쳐 벌떡 일어나 거울을 보니 내가봐도 가관이 아니었다. 키 작지. 못생겼지. 거기다 눈 나빠 두툼한 돋보기 안경 썼지. 에라 홧김에 안경 벗어 집어 던지니 이런 이젠 눈까지 멀어버리네. 밤새 엎치락뒤치락 잠 못 자고 낮에 대자로 뻗어있는데. 느닷없이 문을 발로 차고 들어오는 놈이 있었으니. 바로 녀석이었다. 깜짝 놀라 눈을 떠보니 이 녀석 대낮에 술이 취해 눈이 시뻘개 갖고 떡 하니 서서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주섬주섬 안경을 찾아들고 자세히 놈을 바라보니 화가 나서 그런 것 같지는 않았고 무언가의 불만이 양 볼을 남산만큼 부플 리고 있었다.
"얌마. 일어나."
에고 팔자야. 뭐가 잘못되었나 본데 난 이제 죽었다.
"왜 그래 임마. 나 술이 안 깨서 그러니 좀 나둬라."
"개 같은 것."
"뭐라고?"
"통행금지만 아니면 바로 올 건데. 그x 곁에서 밤새느라고 고역 치렀다."
같이 밤을 샜으려니 짐작은 했지만 그 말이 왜 가슴에 더 못을 박는지. 좋겠다, 이놈아. 그런데 고역이라니... 아무리 무슨 일이냐고 다그쳐도 녀석은 한숨만 푹푹 쉬며 말을 꺼내지 않았다. 급기야는 그 황소 눈깔 같은 허연 눈에서 눈물까지 뚝뚝 흐르는 것이 아닌가? 그럼 혹시? 여자가 싫다고 거절? 아니 이게 웬일. 저 녀석 킬러역사에 오점을 남기는 것은 물론 반사 이익으로 내게도 기회가 오는 것이 아닌가? 아 공연히 술 먹고 밤 새웠는가 보다. 세상여자 들이 모두 영화배우 신00을 좋아하는 것은 아닌가 보다라는 희망. 그 여자 눈길은 저 녀석에게 주었어도 혹시 많이 배우고 박식한 나를 마음에 둔 것 아냐? 아. 쓸개 빠진 놈 그것도 모르고 밤 새 혼자 주접을 다 떨었으니.. 나는 입이 바싹 마르는 것을 애써 참으며 녀석에게 비밀을 캐기 위해 손수 냉수까지 떠다 받치며 다음 말이 나오기를 바랬는데.
"나 그 여자 정말 좋아했다고. 결혼까지 하려고 했어."
그랬겠지. 오죽하면 평소 거들 떠도 보지 않던 내게까지 구원을 청했겠냐. 그리고 그렇게 지적이고 세련된 여자가 뭐가 아쉽다고 너 같은 놈에게 몸 주고 마음 주겠냐? 쌤통이다, 이놈아.
"그런데 말야."
하이고 이 녀석 여기부터 또 말을 않네. 나는 아주 심각한 표정을 짖고 무슨 말이던 다 들어주고 이해해주겠다는 심오한 표정으로 평소 악수하기도 싫은 솥뚜껑 같은 녀석의 손을 잡고 고민을 들어주는 목사님 같은 자상한 말투로 묻기를 수십 번. 드디어 말문을 여는데. 아. 차라리 듣지나 말 것을 녀석의 말을 듣는 순간, 말을 하는 녀석이나 나나 그만 절벽 아래로 추락하고 말았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사라진 이름이여. 별이여, 천사여.ㅡ
"처녀가 아냐. 어찌나 밤새 들볶는지."
첫댓글 ㅎㅎㅎㅎ 정말 재밌게 끝까지 읽었는데,얼굴이 다 붉어지네욤~~ ㅎㅎㅎ 오! 여성의 아름다움에 순진하게도 넋을 빼는,남자들이여! ㅋㅋ
퍼온지는 옛날이고 제 글에 참고하고 싶었지만 아직도 못읽고 있어요. 읽어보려고 운영자료실에서 꺼내봤습니다...^^ 읽으면 감상 남길게요...
재밌는 글 이군요. 읽는 내내 체온이 느껴지는..., ㅎㅎ
ㅡㅡ; 남자들은 순결이 참 중요한가봐요. 그럼 이제껏 자신이 즐겼던 여자들은 뭔지...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