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스럽게 올립니다.
제가 사는 곳의 가까운 곳, 전주시 북쪽 완주군 소양면에 조그마한 송광사가 있습니다.
그 곳 입구에 벗꽃이 필 때면 그 벗꽃 가지들이 터널을 이룹니다.
자연의 운치가 더할 나위 없다..라는 표현이 맞습니다.
그 송광사에 가면 특이한 건물이 있어 소개를 합니다.
아래 사진은 저희 사찰 순례 때 보았던 내소사의 보종각'입니다. 이 건물 또한 자태가 끝없이 아늑한 기분을 선사했었는데,
송광사에는 범종, 법고, 운판, 목어가 걸린 십자형' 건물이 있습니다.
내소사의 보종각보다 섬세한 면은 없지만, 전체적인 조화가 참으로 멋드러 집니다.
정면에서 보면 평범한 듯 하면서도
옆에서 보면 변신을 합니다.
가까이 가서 보면, 소리의 울림이 모일 듯 하고,
먼 곳에서 보면, 범종소리의 울림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 세상 사물의 움직임을 멎게 만들 듯 합니다.
종소리가 1번이든, 28번이든, 33번이든, 108번이든
그 듣는 이는 부처님의 음성으로 모여진 고통을 덜게 만드는 듯 합니다.
좀 더 자세히 보려고 그 주변을 몇 바퀴나 돌았는 지 모릅니다.
선운사에 명부전, 만세루 등은 단청이 자연스러움에 베여 있었고,
소양 송광사에서는 더욱 짙은 단청의 색깔이 화려함과 존귀함을 더욱 짙게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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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 갔으면 절을 하고 경'을 외울 것이지 왠 말이냐고? ㅎㅎ, 제가 아는 게 없어서요...계속 하겟습니다.)
이상한 목각이 보입니다.
아무 생각없이 무념무상으로 지나치다가 문득 새겨진 글귀가 저를 궁금하게 하였는데,
이리 저리 둘러 보다가 절에서 나올 무렵에야 제가 그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들어 가는 입구에 해석한 곳이 있었습니다.
자세히 봐야 합니다.
목각에는 '입차문내 막존지해'..이고
현판의 해석에는 '입차문래자 막존지해'입니다.
(지 知'자도 특이합니다)
구상한 사람과 만든 사람이 서로 달랐나 봅니다. 곰곰히 생각하면 같은 내용입니다.
일주문 안에서 그 의미를 깨달으면,
마음에 새겨져 사찰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자'가 되리라 믿습니다. 철학이 추구하는 것도 진리의 탐구라도 했는데..
저는 부족하여 아직도 일주문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많은 가르침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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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각화, 수남부처가 제 이름을 보고 (백홍진) 이렇게 하니까 이상하다고 종친 백성훈 할배처럼 " 洪辰(백홍진)"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이 어떠냐고? 쪽지를 보냈습니다..
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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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름 소개 한 번 올리겠습니다. 소설처럼...)
제 이름은 이름 모를 스님'께서 지으셨답니다.
제가 태어나자 얼마 않있어 우리 집에 자주 오시던 스님이 들리시자,
어무이가 저를 안고 그 스님이랑
동네가 보이는 뒷산에 올라가서 경을 읽은 다음, 제 이름을 받았답니다.
성은 백(白)가 이고, 넓을 홍(洪), 별 진(辰) 이라는 이름인데,
그 이름 값으로 당시 쌀 두 되를 시주 했다고 합니다.
당시에 쌀 두 대..
이를 지금 화폐가치로 환산해 보니, 당시 물가와 28.5배 차이가 있다 하니,
이것저것 화폐가치 집어 치우고 단순히 쌀 두 대 * 28.5 = 대충 6말...현재 가치로 쌀 엿말이 됩니다.
엿말 짜리 이름이죠.
당시는
절대 빈곤에서 갓 헤어날 무렵이나 제사밥에 올릴 쌀이 아니고서야 매일 보리밥 먹던 시절이고,
저 또한 6남매의 다섯 째 이니,
끝물 중에 끝물이라, 이리 키가 작은 가 봅니다.
그래도 쌀 두대는 굉장히 존귀하지 않았을런지....
간혹, 스님 오셨다고 인사드리라고 어무이가 부르시곤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느 한 날, 더 이상 그 스님이 들리시지 않자 어무이는 몇 년간을 기다리시다가
입적하신 걸로 체념하셨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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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들이 다시 아들을 낳았습니다.
직장생활 처음 발령 받은 곳이 산좋고 물좋은 충북 제천 땅이었는데,
제 집사람 고종사촌이 출가하셔서 계신 곳이
영월가는 쪽의 조그마한 절, 통불사에 계시다는 것은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새벽 2시 40분에 첫 울음을 듣고,
날이 부시시 샐 쯤에 할머니, 어무이 한테 증손자, 손자 태어났음을 고했더니,
어무이가 버스타고, 열차타고, 영주에서 다시 열차를 갈아 타시고 제천에 오셨습니다.
여름날,
하얀 모시적삼 입으시고, 보따리 하나 들고 오시는 모습니 눈에 선합니다.
병원 문턱을 들어서시더니, 당시 제차가 없어서 택시로 이동을 했었는데
택시를 돌리라!'고 하시네요.
"야이~~야, 제천에서 제일 큰 시장으로 가자!" 하시길래, 중앙시장으로 모셨습니다.
중앙시장에서 아침녁 점심녁 사이라 손님이 별로 없으니
전부 우리를 쳐다 보는데 어물전을 이집, 저집 계속 옮겨 다니시다가,
어느 집에서 제일 큰 미역, 길게 뻗은 미역을 골라 잡으시더니
뿌러트리지 말고 그냥 실으라 하십니다.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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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kg짜리 우량아를 보시고,
제가 느끼기에 이 놈의 아기의 이름이 없으니 개똥아~, 소똥아~ 할 수는 없고,
오후에 이름을 받으러 집을 나섰습니다.
택시를 타고 통불사'로 향했습니다.
택시도 한가한 곳에 가니 돌아오는 길에 손님없어 다시 나올 것을 계약하고 기다리고,
무작정 저는 대웅전으로 달려가서 준비한 봉투를 몽땅 불전에 넣은 다음,
절을 몇 번 했는지 기억이 없고 다만 넙죽, 넙죽 절을 한 다음에 아랫 채로 가니,
집사?' 인듯한 분이 묻더 군요.
어떻게 오셨냐고?
아기가 태어 나서 이름 받으러 왔습니다. 했지요.
참으로 황당하기 그지 없었을 풍경이었습니다.
한참을 기다리고 있으니,
먼 곳에서 스님이 나타나시고 그 분은 저를 보지 않고 우편물을 한 참 정리하시더니
저를 보시며 정좌를 하시고,
서로 눈을 마주 치는 찰나' 였습니다.
저에게는 그 순간이 얼마나 긴 침묵이었는지 모릅니다.
정신을 차리니 '아~~비구니 스님이시구나~'를 느낄 때 쯤,
저를 끝없이 지켜보시더니 한 참 만에서야,
"직장을 다니고?"
그도 그럴 것이 밤을 세우다시피하고 회사에 가서 휴가를 내고 하였으니 복장이 당연히 작업복이라...
"예~"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하면 한 자리 얻어 오랜 직장생활 하겠네..." 하시며..
직장인으로서 어려움에 겸손을 강조하시며 조급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저는 이름 받으러 왔다는 말씀을 들으셨는지, 못 들으셨는지...궁금한데
제 상'을 보고 이미 다 아시는 말씀이었습니다.
가슴에는
실이 꿰인 바늘이 꽂혀 있었습니다. 바느질을 하다가 오신 모양입니다.
이름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으니 집에 가서 기다리면 받아 주겠다 하시며...
생시와 연락처, 삐삐 번호를 남기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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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무이 한테 말씀을 드렸습니다.
"야~이야, 이름을 받을 스님에게 돈을 드려야지, 부처님께 드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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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급함을 갖지 말라는 스님의 전언이 어무이의 말씀으로 깨달음을 주고..
시키지 않음을 모름으로 떼운 제 자신이 부끄러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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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후에 연락이 왔습니다.
구슬 주(珠) 열(烈).............
용의 여의주를 받아 돌림자로 열을 썼으니,
용이 여의주를 물은 듯 밝게 세상을 비춘다고....
이 놈은
충청도 산입니다.
그 해 여름 어느 날,
새 돈 봉투를 들고 다시 찾아 갔습니다.
처 고종사촌도 청주로 공부하러 갔다하고,
주지스님도 보이지 않아 그 아랫 채, 어느 분께 이름 값을 전하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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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가 시작되는 해,
전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두 해가 지나고,
둘째 놈이 또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허~~
이제는 느긋함을 가지고 무명 아들의 이름을 받기 위해
통불사까지는 너무 멀고....
여기 저기 뒤지 다가,
교차로'라는 그 타블로이드지에 '오늘의 운세'를 연재'하시는 백운도사' 님을 찾습니다.
'이름 받으러 왔습니다.'
생시를 적고, 둘째라고 하고....이것저것 논하고..
자~~~이름 값을 치러야하니,
제가 묻습니다.
"얼마를 드려야 합니까?"
백운도사 께서,
"나는 서울에서도 오고, 경상도에서도 오고, 돈은 헤아리지 않는데
백만원 주는 사람도 있고 이백만원 주는 사람도 있네..."
"제가 가지고 있는 돈을 전부 드리겠습니다!"
하고서는 제가 지갑에 있는 전부를 드리고 왔습니다.
둘째는, 민(旻), 철(哲)..
하늘 같은 밝음으로 대통령도 부럽지 않는 성격이라고 하시더군요.
이 놈은
전라도 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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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작가 최인호씨의 '길없는 길' 이라는 소설 4권을 밤을 새며 읽은 적이 있습니다.
불교의 역사와 고승들의 행적이 담긴 소설이라,
혼자 읽기 아까워 남을 빌려 주었더니, 다시 제 손에 잡히질 않았습니다.
공부는 하지 않고, 넋두리 했습니다.
첫댓글 진입로 정말 멋지군요, 종각은 십자형 건물이 아니라 亞자형 건물로 보는것이 좋을듯 싶네요. 이리보고 저리 보아도 멋져보여요 ....
예, 그렇군요. 건축양식을 표혐함에 있어 들으니...깨우침입니다.
수명님 이 친구가 법명을 선사받고 싶은 모양입니다. 불교 대학이라도 수료를 해야하는데 그럴 여건이 될려나 아마 공부라면(불법이라도) 수석으로 졸업 할텐데...
고색 찬란하고 은은 한 것이 불교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는 느낌입니다....근데 아우님 제목에 송광사와 제 이름 ...해서 아우님 이름이 송광사와 무슨 인연있나 하고 아무리 찿아봐도 제 이름은 없는디............
글을 마져 올렸습니다. 웃지 마시구요......
친구가 살고 있는곳의 가까이에 있는 송광사의 특이한 건축물에 대해 소개했고 ..친구의 이름과(네모 점 3개은 세월이 흘러~~라는 의미인것 같고..) 또 친구 아들들의 이름도 모두 부처님을 모시는 스님께 선사 받았다는 소개글인 것 같습니다. ("제 이름은 없는디" 하셨는데.. 저~~ 기 위에 성은 白이요 넓을洪에 별辰. 쌀 엿말짜리 이름이라고 소개했네요... 아주 귀한 이름인것 같습니다..
여섯번째 사진 左. 右 이음새 부분의 골이 참 특이하고 신기하네... 절을 찾는다고 모두 불법을 공부한다고는 생각지 않아~ 스님들이 머무는곳 . 불자들이 즐겨찾는 사찰이라는 건축물에 대해서 친구처럼 예리한 관찰력으로 그 의미를 알아가는 것. 그것 또한 불법을 공부하는 것 만큼 중요한 일이 아닐지.... ??? (부족함의 변명이겠지만...)
글과 사진이 다 좋습니다. 아주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글고 할배는 법명이 성훈이라오. 고1때 서울 종로구 삼청동 칠보사에서 첨 간 날 절의 수계식이 있었고 무슨 인연이 있었는지 첨 간 사람은 친견이 허용되지도 않는다는 석주스님께서 주셨답니다.
홍진씨 재미있게 읽었네요. 그러고보면 나는 딸들 이름을 참 쉽게 지었네요.첫째딸은 감로암스님이 수빈 이라 주시고 둘째딸은 2년전에 돌아가신 범어사에 계셨던 지종스님이 정민이라 주셨는데 모든 스님들이 각각 지어서 제일 좋은 이름이라고 고르신 거라하시데요. 그 스님 참으로 올곧으셨느데 생각하니 콧날이 찡하네요.
아우님 이름이나 주열이 민철이 사연과 뜻 풀이를 해주니 경전구절을 읽은듯 절 냄새가 물씬 나네....절을 모른다 하더니 완전한 절집이네 그려...............통불사 통불회 인연도 있네........
감사합니다. 성훈님, 금강님, 법흥님, 여러분들과 곡주 한 잔 하면서 도리를 좀 알아야 겠는데, 조계종 포교원 교육비디오보며 눈으로 합장하고 있습니다. ^-^ (). 오늘 시골에 홀로 계신 어무이 뵙고 오는 길입니다. 어무이께서10/30일날, 늘 다니시는 회룡포가 보이는 산에 있는 장안사 석불 올린지 4년 되는 날이라고 다녀오셨답니다. 석불은 여기 익산에서 만들어 져 옮긴 것이랍니다. 제가 시골 온다고 하니 그 때 절에서 가져온 백설기 떡을 보관하셨다가 주시더군요(5*5*5cm) 부처님이 주시는 것이겠지요...지금 전화드리고 목소리 들으니 가슴이 아려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