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이시도루스(Isidorus, 또는 이시도로)는 카르타고(Carthago)에 정착하여 살다가 549년경 서고트족(Visigoths)의 침입으로 도시가 파괴되자 세비야로 이주한 에스파냐계 로마인 귀족 가문에서 560년경에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20년 정도 나이 차가 나는 큰형 성 레안데르(Leander, 2월 27일)와 누나 성녀 플로렌티나(Florentina, 6월 20일)는 카르타고에서 태어났고, 작은형 성 풀겐티우스(Fulgentius, 1월 16일)와 그는 세비야에서 태어났다. 이들 남매들은 후에 모두 성인 성녀로 시성되었다.
부모가 일찍 세상을 떠나 큰형 성 레안데르에게서 양육과 교육을 받은 성 이시도루스는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을 주로 수도원과 세비야 주교좌 학교에서 보냈다. 그는 다양한 분야의 학문적 소양을 쌓으며 성숙한 영성생활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라틴어, 문학 등에서도 탁월한 재능을 갖추게 되었다. 형 레안데르가 600년경 사망하자 그 뒤를 이어 세비야의 대주교가 된 성 이시도루스는 형의 과업을 이어받아 서고트족을 아리우스주의(Arianism)로부터 개종시키고 에스파냐에 가톨릭 교회를 재건하는데 전력하였다. 이를 위하여 그는 여러 차례 교회 회의를 개최하였는데, 그중 619년의 세비야 교회 회의와 633년의 제4차 톨레도(Toledo) 교회 회의가 대표적이다.
또한 그는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를 비롯하여 의학, 법률 등을 제자들에게 가르쳤고, 아리스토텔레스를 연구하였다. 그의 위대한 학문적 업적은 시세부토 왕의 요청으로 전 20권으로 구성된 백과사전 “어원학”을 저술하였다. 이는 이후 여러 세기 동안 교과서 및 중요한 자료로 사용되었다. 또 역사서로 “고트족, 반달족, 스베니아족의 통치사”(Historia de Regibus Gothorum, Vandalorum, et Suevorum)도 유명하다. 또 다른 것으로 그는 모자라빅 미사경본과 성무일도서를 편집하였다.
이런 생활 중에서도 그는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꼭 찾아보았고 사랑을 실천하였다. 보편교회와 일치하는 에스파냐 교회를 재건한 성 이시도루스는 서방 교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마지막 교부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는 1598년 교황 클레멘스 8세(Clemens VIII)에 의해 시성되었고, 1722년 교황 인노켄티우스 13세(Innocentius XIII)에 의해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다. 오늘날 에스파냐의 인문 대학부와 마드리드 지방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는 성 이시도루스는 2000년대 중반 교황청에 의해 인터넷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그는 또한 컴퓨터 사용자와 컴퓨터 기술자들의 수호성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