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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喪家) 윷놀이와 왜덕산 윷판바위 읽기-
1. 윷놀이 풍경
마을의 어떤 사람이 돌아가셨다.
시월 말이라 날씨가 꽤 쌀쌀했다. 방안에서는 부고장 발송 준비를 했다.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죽음의 옷이 준비되었다.
바느질 솜씨가 좋은 아낙들은 상주와 친인척 나아가 마을 사람들이 입을 상복과 두건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 마당 한쪽에서 돼지를 잡았다. 마당에 내건 화덕으로 큰솥이 걸렸다.
잡은 돼지의 비계와 내장으로 듬북국을 끓였다.
지금은 기후변화와 바닷물 온난화 등으로 거의 사라졌지만,
듬북은 가사리와 몰, 톳 등의 해조류 중에서도 가장 탁월한 국거리였다.
몇 더미의 장작이 타올랐다. 덜 마른 장작이 퀴퀴한 연기를 연신 뿜어냈다. 시간이 흐르고 이내 돼지고기와 듬북이 장작불 위에서 흐물흐물해졌다. 죽은 자를 위해 모인 산자들이 삼 일 내내 먹고 마실 준비가 착착 진행되었다. 마당에는 차일이 쳐지고 붉은색의 과일과 흰색의 과일과 마른 포와 제수로 쓰일 닭들이 준비되었다. 친족들이 바쁘게 내왕하는 것과는 크게 상관없이 별로 하는 일 없는 마을 사람들조차 마당의 이곳저곳을 서성거렸다.
이내 당골이 장구와 북을 들고 왔고 씻김굿을 시작했다. 다행히 날이 좋아 별들이 총총했다. 북쪽 하늘에는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이 또렷했다. 마을 사람들은 생각했다. 필경 돌아가신 사람이 이르는 곳은 북두칠성이 있는 자미원(紫微垣)이다. 천제(天帝)인 제석신(帝釋神)이 왕래하는 공간이기도 하고 칠성신이 삶과 죽음에 관한 일들을 관장하며 오르내리는 곳이기도 하다. 새벽마다 마을 여인네들이 장독대에 정화수 한 그릇을 떠놓고 새벽기도를 했던 것은 철륭신을 넘어 삼신과 칠성신네에 대한 그윽한 믿음 때문이었다. 씻김굿에서도 여러 차례 칠성신이 호명되고 소환되었다. 징의 깊은 울림과 잘고 굵은 가락을 뿜어내는 장구 소리는 내방을 미처 준비하지 못했던 제석신과 조상신 등 여러 신격들에게 그리고 마을 사람들에게 오래된 위로의 문법을 제공해주었다.
듬북국을 끓이는 커다란 화덕은 모닥불 겸용이었다. 화덕에 옹기종기 모여 부석부석한 손을 비비거나 돌아가신 이의 내력들을 얘기하는 동안 한 무리의 장정들이 덕석(멍석)을 마당에 내다 깔았다. 윷판이 벌어졌다. 이른바 종지기 윷이다. 당골의 노래가 깊어질수록 윷판의 사람들도 많아졌다. 팀을 나누고 찔림(판돈의 일부를 대는 일)을 했다. 때때로 함성이 온 동네를 울렸다. 어느 팀이 이겼나 보다. 판돈이 나뉠 때면 왁자지껄 웃고 떠들었다. 씻김굿판에 있던 이가 와서 개평(노름이나 내기에서 이긴 사람에게 조금 얻어 가지는 공것)을 뜯어갔다. 이럴 수가 있나? 한편에서는 사람이 죽어 슬피 우는데 윷놀이라니. 그것도 박장대소하며 떠들다니 말이다.
2017년 10월 20일자 이윤선의 남도인문학 61회분(전남일보)의 들머리를 몇 군데 수정하여 풍경을 읊어봤다. 왜 상가(喪家)에서 윷놀이를 할까? 나는 이런 제목으로 위 글을 썼고 그보다 앞서 졸저 『산자와 죽은자를 위한 축제』(민속원)에서도 위 내용을 전개하며 상장례의 첫 항목으로 다룬 바 있다. 본 연재에서 이를 거듭 소환하여 리뷰하거나 새로 고쳐 쓰는 이유는, 이 연재들을 묶어 다시 단행본으로 출간해야 할 의무가 내게 부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졸저를 통해 상장례 자체를 다시래기라는 사회극이자 퍼포먼스라고 해석한 바 있다. 씻김굿, 다시래기, 만가 등 여러 항목 중에서 강조하였던 것은 상가에서 이루어지는 윷놀이였다. 기왕의 윷놀이에 대한 해석들이 구구하지만, 윷놀이를 상장례의 범주로 끌어들여 칠성판 놀이라는 해명을 시도한 이유가 있다. 그것을 좀 더 풀어 설명하고자 이 글을 쓴다. 내가 과문한 까닭이겠지만, 윷놀이를 상장례의 하나로 해석한 또 다른 사례가 있나 모르겠다. 장차 출판될 책에서는 남도의 씻김굿, 다시래기, 만가, 윷놀이 외 장묘 풍경 등 상장례와 관련된 이야기를 다시 엮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며 일부는 수정하여 편집할 예정이다. 풍경 묘사를 좀 더 이어서 인용해 둔다.
이상한 것은 제청에 모인 사람들이 이들을 나무라지도 않고 오히려 같이 즐긴다는 점이다. 사람이 죽었는데 웃고 떠들며 즐기는 이 윷판의 정체가 뭘까? 이 상황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어쩌다 한번 윷놀이를 하는 것인가? 아니, 그렇지 않다. 모든 상가(喪家)에서 필연적으로 마치 의례처럼 연행하는 놀이다. 지금은 시대가 변하여 연행되지 않을 뿐,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상가에서 윷놀이를 하지 않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근래에는 화투놀이로 변해버린 양상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마치 어떤 원칙처럼 행해졌던 놀이이므로 상례의 문법 중 하나라고 해석할 수 있다. 상가에서 윷놀이가 없으면 허전하다. 뭔가 빠진 느낌이다. 상가의 윷놀이가 의례라고 말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이것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의도된 놀이다.
일반적으로 밤샘을 하기 위해 선택한 놀이라고들 한다. 물론 그런 기능도 있다. 하지만 모든 상가에서 윷놀이를 보편적으로 행했는데도 불구하고, 단지 밤샘을 하기 위해 하는 놀이라고만 해석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해 보인다. 그보다 적극적인 해석이 필요하다. 이 글을 쓸 때도, 고쳐 쓰는 지금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현상이 명료한데 소극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연구자의 직무유기라고 생각한다. 여러 칼럼이나 졸고 혹은 졸저에서 다루었지만, 아직 친절한 설명을 하지 못한 듯하다. 중복하고 거듭하여 다루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왕의 윷놀이를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경인문화사, 69~70쪽)에서 아래와 같이 말했다.
윷은 조선에만 있는 놀음으로서, 신라시대부터 성행한 증거가 일본의 옛 책에 적혀있습니다. 근세에는 농가에서 새해 초에 산농(山農)과 수향(水鄕)으로 편을 갈라 윷놀이를 해서 이기고 짐에 따라 그해 일이 고지에서 잘될지 저지에서 잘될지를 점쳤습니다. 근년에는 일반적인 민간 유희가 되면서 자연히 옛 뜻은 잃어버렸고, 다만 부인네들 사이에 남아 있는 ‘윷괘점’이란 것이 약간 그전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산비탈에서 밭농사 짓는 마을과 물가에 있는 마을 즉 논농사를 짓는 마을이 서로 편을 갈라 윷놀이를 했다는 얘기다. 윷놀이의 목적은 정초 풍년에 대한 점보기다. 한 해의 밭농사가 잘 될지 논농사가 잘 될지 가늠하기 위해 윷놀이를 통해 점을 봤음을 알 수 있다. 정초에 보는 토정비결이나 신수점 따위와 다르지 않다. 여기에 단서가 있다. 농사의 풍흉을 점치기 위해서 하는 윷놀이라면 필경 농사와 관련된 천문이나 기후 특히 가뭄이나 장마 따위의 정보가 스며들어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북두칠성의 운행과 사철의 순환과 연결시켜 생각하고 있다. 예컨대 1년 동안의 천문을 점치기 위해서는 하늘의 별자리와 기후 관련 징후들을 전재해야 점복이든 놀이든 그 의미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윷놀이가 조선에만 있는 놀이라는 최남선의 주장은 일정한 수정이 필요해 보인다. 참고로 이일영이 「윷(柶戲)의 유래와 명칭 등에 관한 고찰」 , 『한국학보(2)』(일지사, 1976, 150쪽)에 말한 바를 인용해본다.
『北史』와 『太平御覽』에는 백제에 저포(樗蒲), 악삭(握槊, 雙六) 등의 잡희가 있다고 하였다. 여기서 저포(樗蒲)는 윷을 말하며 백제와 동시대인 고구려와 신라에도 있었을 것이니, 윷의 기원은 삼국시대 이전임을 알 수 있다. 이외 『訓蒙字會』나 『芝峯類說』에서도 저포(樗蒲)를 윷으로 주해한 사례가 나타난다. 주영편에는 네 가락으로 만든 사(柶)의 모양을, 손가락 크기만 한 껍질이 붙은 나무를 반으로 쪼개서 길이를 두어 치로 하고 등은 둥글 높고 배는 편편하게 만든다고 설명하였다. 가락윷의 형태를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한 셈이다. 재물보에는 나무를 잘라서 등을 둥글게 하고 배를 편편하게 하여 밤톨만 하게 만든 것을 한자 음대로 눌(률, 栗)이라 하고, 사목(四木)을 던져서 노는 것을 사(柶)라 하고, 훈음은 윳(윷의 옛말)이라 하였다. 윷가락 4개를 쓰는 저포(樗 蒲) 또는 윷(柶)은 중국을 통하여 들어왔고, 다시 일본으로 퍼진 것이라 하였으며, 현재 이웃 나라의 윷놀이(柶戲)는 모두 없어졌고 우리나라만이 농촌까지 침투되어 국민성에 적합한 놀이로 토착화되고 전승하여 온 것으로, 이것이 가락윷으로 대형화되면서 그 멋과 맛이 더하여 국속(國俗)으로 된 것이지만, 고유의 놀이라고는 할수 없다(일부 한자 등의 표기를 내가 가필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윷의 한자말 사(柶)가 숟가락이란 뜻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율(栗)로 발음한 것은 생김새가 밤톨을 닮아서이겠지만, 숟가락을 던지며 하는 놀이라는 이면을 생각해보면 해석의 여지가 훨씬 넓어진다. 참고로 사람이 운명하면 버드나무 가지로 수저를 만드는 것이 우리 풍속 중 하나다. 수저에 쌀을 담고 천석이요, 이천석이요, 삼천석이요 하며 세 번에 걸쳐 망자의 입에 떠 넣는다.
윷의 옛말인 저포(樗蒲)의 저(樗)는 가죽나무이고 포(蒲)는 부들풀 이름이자 노름이란 뜻이 들어있다. 한자사전에서 저포(樗蒲)를 설명하기를, 백제 때에 있던 놀이의 하나로 주사위 같은 것을 나무로 만들어서 던져서 그 이기고 짐을 겨루던 것으로 윷과 비슷하다고 했다. 악삭(握槊)은 쌍육(雙六)이라고도 하는데, 본래 창을 손에 거머쥔다는 뜻이므로 지금의 윷 형태와는 좀 다른 형태 예컨대 가죽나무나 부들풀이나 혹은 다른 도구들을 가지고 놀이를 했을 개연성을 추측해볼 수 있다. 그럼에도 윷판(말판)만큼은 청동기 전후 수많은 바위에 새겨졌던 형태가 크게 변하지 않고 전승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최남선이 『조선상식문답』에서 어떤 근거로 윷을 조선 고유의 놀이라고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위 논문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적어도 윷놀이는 동북아시아 전반에서 행해졌던 풍속이라고 보는 게 더 상식적인 해석이라 생각한다.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선명하고 명료하게 사람들에게 체화되어있는 천문 중 북두칠성이 가장 대표적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베트남 등 동남아시에서는 북두칠성보다 남십자성이 훨씬 크고 명료하게 보이지만 우리에겐 거의 보이지 않는다. 반대로 그네들에게는 북두칠성이 거의 보이지 않지만 우리를 포함한 동북아시아에서는 북두칠성의 운행을 사시사철 관찰할 수 있다. 우리에게 칠성 신앙이 보편적인 것이 되고 칠성과 관련된 민속 지식이 널리 유포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나는 이러한 사정을 감안하여 이하우, 김일권, 송화섭 등 몇 학자들이 윷판바위를 북두칠성과 관련하여 해석한 것을 가져와 남도지역 상가 윷놀이에 대입했던 것이다.
윷판의 북두주천도 창안설 시의도(김일권, 2000) |
주지하듯이 윷놀이에 필요한 도구는 4개의 나뭇조각으로 만드는 윷, 겨루기할 때 이동하며 표식하는 윷말, 이를 위해 원형으로 도안한 윷판(말판)이다. 참고로 제주도의 윷판은 방사형으로 되어있어 원형으로 된 전국 일반의 모양과는 다르다. 세시와 24절기의 표기를 위한 방법이라고들 해석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른 주제와 연결하여 따로 설명할 기회를 마련한다. 한편 정초에 행해졌던 신수점으로서의 윷놀이는 안동지역의 것이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서도 졸고와 졸저에서 소상하게 인용하여 설명한 바 있으니 여기서는 생략한다.
윷놀이 방법과 관련해서도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고대 부여의 족장들이 맡았던 권역과 관계있다고 말한 최남선의 설은 각각 말, 소, 돼지, 개를 토템 삼는 부족이다. 한자 발음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도, 개, 걸, 윷, 모가 여기서 왔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익은 고려의 유속이라 했다. 신채호는 부여국서 시작된 고유의 놀이라 했다. 조선 중기의 김문표는 천원지방설(天圓地方說)까지 얘기했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동양 고유의 공간 관념이 깊숙하게 관여되었다는 점을 짐작해볼 수 있다.
일군의 학자들은 북극성을 중심 삼는 삼원 28수의 우주관 놀이라 했다. 재야학자들은 천부경까지 끌어들여 우주관을 얘기했다. 놀이나 민속이 시대에 따라 변천하는 것이니 어떤 주장이든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이 주장들을 관통하는 공통 지점이 있다. 북극성, 자미원, 천원지방, 삼원이십팔수 등 그 기저에는 북두칠성이 있다. 따라서 이런저런 해석들이 결과적으로는 칠성놀이까지 근접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거듭 밝히거니와 내가 주목하는 것은 남도의 상가(喪家) 특히 진도에서 반드시 이 놀이를 행하는 이유에 관한 것이다.
2. 윷판바위의 전국 분포와 진도 삼별초 윷판바위
윷판바위 연구로 널리 이름을 알린 이하우의 논고를 인용해 전국 분포를 간략하게 언급해 둔다. 전라북도 임실군 상가리 윷판바위 암각화는 한반도 최대 규모의 유적이다. 나도 오래전 답사하여 보고한 바 있다. 윷판바위는 고고학, 미술학 자료는 물론 윷놀이의 민속, 문화사적 학술연구가 절실히 요구되는 유적이다. 고인돌 개석에서 윷판형 암각화가 조사된 곳은 포항시 북구 흥해읍 칠포리 상두들, 포항시 남구 동해면 흥환리 진골마을 뒷산 공개산 윷판재의 고인돌 등이다. B.C 5~4세기경 한반도 남부지방에서 확산되는 묘역식 고인돌의 한 유형이다. 이외 이하우가 보고한 곳은, 포항시 북구 청하면 신흥리, 남구 동해면 흥환리, 안동시 일직면 송리, 임동면 대곡리, 수곡리, 예안면 태곡리, 일직면 조탑동, 예안면 인계리, 도산면 토계리, 고령읍 지산리, 운수면 월산리, 성산면 무계리, 쌍림면 산당리, 송림리, 경주시 반월성 석빙고 , 남산 용바위, 구황동 황룡사지, 영양군 청기면 상청리, 울진군 근남면 수산리, 울산시 동구 오불동산, 창녕읍 말흘리 화왕산, 익산 금마면 기양리, 미륵사지, 낭산면 호암리 우금마을, 왕궁면 왕궁리, 임실 신평면 가덕리 상가마을, 정읍시 입석리 두승산 망화대, 진안 상전면 성산리, 남원시 삼동면 목동 풍곡계곡, 서울 강북구 우이동 북한산, 충북 단양군 영춘면 상리, 영동군 양산면 누교리 망탑봉, 충남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 대전 동구 대동, 왕자후 묘, 강화도 강화산성 남장대지 전돌, 제주 애월읍 고성리, 개성 송악동 만월대 궁지, 만주 길림성 우산하 등이다.
임실 상가마을 윷판바위 |
진도군 고군면 내동마을 뒷산에도 윷판바위가 있다.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삼별초군들이 윷놀이하면서 새겨두었다고 한다. 졸저 『산자와 죽은자의 축제』(민속원)을 쓰면서 이 정보를 얻게 되었으므로 답사한 지 꽤 오래 되었다. 하지만 책이 편집 완료된 시점이어서 졸저에 싣지는 못했다. 이후 전남지역의 윷판바위를 추적하던 차에 광양에도 있다는 정보를 얻게 되었다. 지인을 통해 답사를 시도하였으나 마을 사람들이 안내를 거부한다는 말을 듣고 일단 포기하였다. 혹시 누구라도 이 정보를 알고 계시면 도움을 주시면 좋겠다. 영암군 군서면 구림마을에 있는 성혈 바위에도 윷판바위와 유사한 패턴들이 있다. 다만 구체적인 형태가 드러나지 않아 좀 더 면밀하게 살펴보는 중이다. 사진을 원고와 함께 게재하니 독자 제현들께서 면밀하게 살펴주시길 부탁드린다.
영암구림마을 성혈바위 |
지난해 하반기, 장장식 선생 등 일군의 연구자들 요청으로 진도의 윷판바위를 소개하여 답사하게 하였다. 답사한 분 중에서 장차 논문 등 연구자료가 나올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설화 등을 근거 삼아 추적해보면 광양, 진도 외 전남지역에도 윷판바위가 더 있을 것이다.
진도군 고군면 내동마을 뒷산은 일명 왜덕산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임진왜란 때 죽은 일본군의 시신을 거두어 매장해주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일본 교토의 코무덤(귀무덤)과 견주어, 내 글에서 여러 차례 소개하였으니 구체적인 내용은 생략한다. 2022년에는 진도문화원 주관 위령제에 하토야마 전 일본총리가 참여하기도 했다. 박주언 전 진도문화원장이 연구한 바에 따르면 관련 족보에 왜덕산이나 와덕산이라는 지명이 상당수 등장한다. 하지만 일부 마을 주민들은 기와를 굽던 곳이라는 의미의 와덕산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윷판바위는 마을 동북쪽으로 얕은 고개의 중턱쯤에 있다. 윷판그림이 바위 위에 새겨져 있기에 편의상 그렇게 부른다. 연구자들에 따라서는 윷판 암각화, 윷놀이판 바위그림, 윷판형 암각화, 윷판형 바위그림 등으로 부른다. 이름은 약간씩 달라도 윷놀이 도판을 바위 위에 새겼다는 뜻은 동일하다.
대개의 윷판바위는 고인돌이나 청동기시대와 관련짓는다. 하지만 진도는 삼별초군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승된다. 삼별초군들이 진도에 주둔할 당시 윷놀이를 하면서 새겼다는 정도의 이야기다. 또 하나의 고려를 표방했던 왕섬이었으니 삼별초와 관련된 이야기가 덧붙여지거나 만들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갑진년 연초에 고군면 내동산마을 차남준 전 이장의 설명을 들었다. 왜덕산(와덕산) 산꼭대기를 망재라고 한다. 삼별초군들이 해남 삼지원 방면에서 치고 들어오는 여몽 연합군을 망보던 자리라고 한다. 동쪽 해안을 군직기미라고 하는데, 이 또한 군사들이 거처하던 ‘곶(바다 쪽으로, 부리 모양으로 뾰족하게 뻗은 육지)’으로 해석한다. 이외 부무골(풀무골), 절골, 다랫뿔치 등의 지명이 모두 삼별초와 관련된다는 것이다. 내가 아직 세밀하게 추적해보지는 못했으나 마을 사람들을 포함한 진도사람들이 그렇게 믿거나 혹은 후대에 스토리텔링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실제로 이 산은 삼별초가 왕궁 삼았던 용장산성의 남쪽 기슭에 있다. 토성과 석성의 흔적들도 남아 있어 산성의 일부였음을 알 수 있다.
3. 제주도 항파두리 윷판바위와 관련 없을까?
진도의 삼별초가 제주도로 옮겨가 자리 잡았던 항파두리 항몽유적에도 윷판바위가 있다. 진도 지역에 전승되는 이야기대로라면 진도나 제주도 항파두리의 윷판바위는 삼별초군들이 윷놀이를 하던 흔적일까? 항파두리 윷판바위에 대해 장장식의 「제주 항파두리 항몽유적 내성지 출토 ‘윷판형 암각화’의 상징성」(민속학연구 38호, 2016)이란 논문을 참고하면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건물지의 주춧돌 기능을 했다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주춧돌의 윷판형 암각화는 은비적(隱祕的, 숨겨서 비밀로 한다는 뜻) 상징성에 기반한다는 것이다.
제주도 항파두리 주춧돌 윷판형 암각화(장장식의 논문에서 발췌) |
첫째, 확고한 별자리인 북두칠성의 주천(周天-天體가 각기의 궤도를 따라 한 바퀴 도는 일)을 모사한다. 둘째, 전후좌우, 대각대칭의 완전한 기하학적 완전공간을 만든다. 셋째, 천문학적 질서를 지상의 건축물에 치환(transposition)한다. 넷째, 건축물의 영구성과 이상적 질서를 확고하게 담보한다. 따라서 북두칠성의 주천을 모사한 윷판을 주춧돌에 새겨 우주론적 질서를 부여하고, 전후좌우, 대각의 완전 대칭인 기하학적인 윷판을 통해 중심성을 부여한다. 장장식은 이를 새로운 해석의 시도라고 말하며 항파두리 주춧돌의 윷판형 암각화를 분석했다.
진도의 윷판바위도 삼별초에 의해 구상되었던 모종의 건물과 관련되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용장산성 왕궁터에서 윷판형 주춧돌이 발굴되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용장산성에서 이런 유형의 주춧돌이 발굴되었는지 내가 아직 들은 바는 없다. 또한 왜덕산의 삼별초 윷판바위가 그려진 곳은 주춧돌이 아니라 넓적하고 경사진 마을 중턱의 바위에 새긴 것이다. 그럼에도 이하우가 그린 항파두리 주춧돌 도면은 진도 삼별초 윷판바위 도면과 닮았다. 삼별초 정부가 여기에 어떤 건물을 지으려고 했던 것인지 지금의 정보만으로는 알기 어렵다. 다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고인돌 등에 새겨진 암각화이든 항파두리 주춧돌이든 모두 북두칠성의 우주관을 반영하고 있는 새김이라는 점이다.
정초에 행하는 윷놀이를 해석하는 시선도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나는 이것을 칠성판 등 여러 가지 예증을 토대로 남도의 상장례와 연결시켜 북두칠성 놀이로 해석했던 것이다. 북두칠성이 자미원의 우주 자궁, 출생과 죽음이 순환되는 곳이라는 관념은 적어도 동아시아에서는 철학적으로 재구성되어 널리 유포되었다. 상가의 대표적인 민속놀이인 다시래기가 ‘다시 태어난다’는 뜻을 가진 재생 놀이라는 점을 이해한다면 정초의 윷놀이나 상가의 윷놀이도 모두 거듭남과 재생, 부활을 염원하는 북두칠성놀이라는 내 주장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4. 윷놀이를 칠성놀이라 해석하는 까닭
사람이 죽어 시신을 뉘는 칠성판을 연상해보라. 망자나 관을 반드시 일곱 매듭으로 묶는 관습을 상기해보라. 쉽게 그림이 그려진다. 망자가 가는 칠성의 별, 상가의 윷놀이는 바로 북두칠성놀이다. 당연히 자미원(紫微垣)의 자궁이니 재생의 염원을 담은 놀이다. 졸고를 통해 윷놀이가 칠성판 놀이이며 궁극적으로는 망자의 재생을 염원하는 관념에서 시작된 놀이라는 점을 주장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를 설명하는 데는 남도지역에서 성행했던 쪽윷(종지기 윷이라고도 한다)이 적격이다. 그렇다고 널리 알려져 있는 정월 초 왕윷놀이의 의미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것 또한 새해의 거듭남을 도모하는 놀이이기 때문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청동기 유물로 발굴되고 있는 윷판바위를 주목했고, 진도 왜덕산의 윷판바위를 추적하였다. 윷놀이가 칠성놀이라는 점을 명료하게 설명해줄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윷의 말판은 모두 29개다. 한 가운데가 북극성이다. 이를 제외하면 28개의 말이 나온다. 정중앙을 중심으로 4등분 되어있다. 칠성의 4계를 나타낸다. 북두칠성의 운행을 상징한다. 북두칠성으로 변한 그림을 참고해보라. 칠성은 북극성을 중심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돌아 다시 복귀한다. 일곱 개의 별이 네 번을 돌아오니 총 28개다. 왜 돌아오는가? 사시사철이 순환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재생이다.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윷놀이가 궁극적으로 망자의 재생을 염원하는 놀이로 해석할 여지가 충분하지 않을까?
칠성판에 시신을 모시는 것도 각종 의례에서 반드시 일곱 매듭의 고를 만들어 행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고인돌 위나 야산의 꼭대기 혹은 자연암 등에서 발견되며 구석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적이라는 점에서 북두칠성 관련설은 더욱 지지를 받을 수 있다. 농경을 위한 천문관측의 목적이나 농점의 도구로 활용되었다. 북두칠성의 순환을 그린 것이므로 일종의 천체 모형도인 셈이다.
남도지역 특히 진도의 상가에서 윷놀이를 하는 것은 일종의 문법처럼 굳어져 있다. 초상이 나면 으레 윷놀이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지만, 나는 이를 문제 삼으면서부터 늘 이렇게 생각해 왔다. 사람의 일생은 유한하다. 한번 가면 오지 못한다. 그래서 불가역적이라고 한다. 사계는 어떤가? 올해 왔던 봄이 내년이 되면 어김없이 또 온다. 어제 떴던 해와 달이 오늘 다시 뜨고 진다. 순환이다. 그래서 가역적이라고 한다. 고대인들이 상상했을 것이다. 한번 간 봄은 다시 오는데 우리 인생은 왜 다시 오지 못하는가. 종교와 재생의 관념이 이런 고민에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사람들의 죽음 의례가 재생을 염원하는 방향으로 설정되고 구조화되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의례와 놀이의 기능이 여기서 나왔다. 한번 간 계절이 다시 오는 것처럼 우리 인생도 다시 올 수 있게 하자는 취지 말이다. 그래서 대부분 죽음의례에서는 죽은 자들이 살아 나거나 거듭나고 재생하는 의식과 놀이들로 구성된다. 관련한 상징물을 만들어 세우고 관련한 연극을 꾸미며 관련한 노래를 지어 부른다. 왜 그러한가? 불가역적인 인생을 가역적인 극을 통해 재생시키기 위해서다. 날마다 다시 뜨는 해와 달처럼 혹은 계절처럼 가역적인 인생으로 바꾸어놓기 위해서다. 상가(喪家)의 윷놀이가 바로 그것이다.
사람은 죽었지만 그 사람이 다시 살아나오기를 바라는 염원이 들어있다. 칠성의 별 북두칠성 놀이를 죽음의 의례와 더불어 행하는 것이다. 죽음에만 해당되는 얘기기 아니다. 우리의 연간 풍속에도 혹은 일상에도 날마다 달마다 해마다 적용되는 얘기들이다. 어제 저녁 기울었던 해가 오늘 아침 다시 떠오르는 것처럼 날마다 달마다 거듭나고 재생하는 삶의 지혜를 상가의 윷놀이를 통해서 알아차릴 수 있다.
내가 윷판바위를 추적해온 것은 고고학적 관심사와는 다르다. 진도를 비롯한 서남해 일대에서 행해지는 상가(喪家)의 윷놀이를 주목했기 때문이다. 상가 윷놀이는 밤샘을 위한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반드시 행해야 하는 일종의 의무적인 행위였다. 육십대 이상의 남도 지역 특히 서남해지역 마을 출신들에게 물어보면 이런 경험담을 확인할 수 있다. 씻김굿의 이슬털이나 고풀이 등을 재해석하고 그 내밀한 의미에 천착한 까닭도 다르지 않다. 만약 어떤 놀이나 행위가 어떤 시간과 어떤 장소에서 반드시 행해야 하는 의무적인 것이라면, 거기에는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지 않겠나?
장흥군 유치면 용문리 동계 윷놀이(수몰되기 전 풍경) |
설날에서 대보름까지의 기간에 토정비결을 보거나 윷놀이를 하는 것이 한 해 농사를 점치거나 운수 비결을 보는 것이라고 해석하듯이, 초상집에서 반드시 해야만 하는 윷놀이가 왜 그러한지, 그것은 무슨 뜻인지 질문하는 것이 연구자의 마땅한 태도일 것이다. 그냥 밤샘하기 위해 하는 놀이라고 사람들이 대답한다고 해서, 과연 그렇다고 기록하면 새로운 해석이 들어설 여지가 없어져 버린다.
예컨대 오랫동안 씻김굿의 ‘이슬털이’에 대해 질문했어도 돌아오는 답은, 밤샘하고 새벽에 이슬 털며 귀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과연 그렇다고 기록했다면 이 의례에 반드시 구비되는 누룩, 솥뚜껑 등의 의미와 술 만들기의 맥락, 불탑 노반(露盤)의 이슬털이를 어찌 새롭게 해석할 수 있었겠나? 어찌 기독교의 세례의식과 연결하여 해석할 수 있었겠나? 씻김굿, 다시래기, 만가와 더불어 윷놀이는 남도의 4대 상장례다. 장차 유네스코 무형유산에 등재될 매우 소중한 유산일 뿐 아니라. 인류에게 널리 알려야 할 ‘탁월한 보편’이다. 진도의 윷판바위가 전해주는 무언의 메시지를 나는 그렇게 읽는 중이다.
진도 의신면 내동마을 왜덕산 윷판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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