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로드/코맥 맥카시/정영목/문학동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존 번연의 [천로역정, The Pilgrim's Progress, 1678]을 생각했습니다. 주인공은 천로역정은 크리스천이 매번 동료가 바뀌는 구조이지만 이 소설(The Road, 2006)은 아버지와 아들이며 궁극적으로는 아들이 주인공으로 재조명되는 구조입니다.
판이한 소설이지만 '길'을 걷는 여정으로 구원을 향한 소설이라고 볼 때, 인간 세상에서 신을 향한 영적인 문제를 다른 수직적 여정과 인간 사이의 문제를 다루는 수평적 여정으로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기억하기로 천로역정은 멸망한 도시를 떠나 천성으로 가는 목적지가 정해진 여정인데, 이 소설은 특별한 목적지가 없는 따스한 남쪽 나라를 향합니다.
천로역정은 주인공을 타락하게 하거나 포기하게 하는 가는 길을 방해하는 환경인 데 반하여 이 소설은 물리적 생존을 위한 몸부림입니다.
천로역정의 세계관은 철저하게 신이 만들어 놓은 것이라면 이 소설은 신이 존재치 않는 유물론적 세계관입니다. 단지 착하고 나쁜 사람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존 번연의 주인공은 삶의 목적이 천성을 향해 있다면 코맥 매카시의 주인공은 불을 운반하는 사람으로 존재 목적을 내재한 인간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천로역정은 여행의 완성이 있다면, 이 소설은 끝나지 않고 바통터치를 통해 여정은 계속됩니다.
크리스천이 무겁게 지고 가는 '죄'와 아버지가 아들을 보호하며 '불'을 운반하는 것에서 대조를 이룹니다.
결국 소설이 말하는 것은 아이가 아버지에게서 받아서 운반하는 '불', 그 불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불'은 무엇일까요?
살아 있음. 그 자체, 인간의 도덕성/인간성,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생명력 등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남자와 소년의 여정을 잠깐 함께 해보았는데,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고 아쉬운 것이 있다면,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 버린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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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자기가 돌아보는 사람들에게 위험이 닥치는 꿈을 꾸고 남자는 자신에게 위험이 닥치는 꿈을 꾼다고들 하지. 67
햇빛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인색한 빛이었다. 80
우리는 지금도 좋은 사람들인가요?
그래. 우린 지금도 좋은 사람들이야.
그리고 앞으로도요.
그래. 앞으로도.
알았어요. 90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에서는 신도 살 수가 없소. 1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