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암록과 산수평장은 2003년도인 계미년에 김도현씨라는 분이 필사한 것으로서 현재 정신문화원 도서관에 보관이 되어 있읍니다. 정부 출연 연구소이므로 신분증만 있으면 누구나 이용하실 수가 있게 되어 있습니다. 1943년에 김도현이 집필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오씨본은 대순진리회 중곡동의 유석구선생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오씨본의 내용은 이도은 필사본내용과 비슷하나, 결정적인 문구들이 조금 다릅니다. 예를 들자면, "전도관" 호칭이 나온다고 해석되던 부분(말중운)이나 영모님의 존함이 나온다고 해석되던 부분(도부신인)이 조금 다르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자료(오씨본)는 1955년 이래로 어느 누구도 가감을 하지 않은 것이므로 그 뒤에 나온 이도은 필사본이 분명히 몇몇 부분을 가필한 것이었음을 알려 주는 자료들 중의 하나가 바로 오씨본이라고나 할까요? 오씨본을 직접 보시려면 경기도 수원에 계시는 한 연구자(016-9355-2086)께 연락을 하시면 친절하게 안내를 받으실 겁니다.
그리고 서울본은 심광대사가 편찬한 <땡 땡 땡> 속에 실린 격암유록의 母本 중의 하나가 되었다고 하는데 그 작성시기는 아직 밝혀져 있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심광대사의 태도로 미루어 짐작컨대, 일반인들이 서울본을 직접 육안으로 확인하기는 아직 좀 시기상조인 것 같구요.
이 밖에도 이태연 소장본, 나영희 소장본, 신주태 인용본, 등이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으나 아직 연구자들의 손에 입수는 되지 않은 상태라고 합니다.
현재 김도현씨의 나이가 60대 중반이라고 하니까, 그가 서기 1943년에 태어나 있기는 했겠더군요. 그러나 서기 1943년 그 당시에 겨우 3~4 세의 나이였을 그가 붓글씨로 <격암록> 및 <산수평장>을 베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군요. 그가 그걸 베낀 연대는 60년 뒤인 서기 2003년이었습니다.
첫댓글 김도현본을 1443년에 김도현이 집필하셨다구요? 도대체 누구를 농락하려는 거유? 김도현씨는 서기 1943년에는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현재 김도현씨의 나이가 60대 중반이라고 하니까, 그가 서기 1943년에 태어나 있기는 했겠더군요. 그러나 서기 1943년 그 당시에 겨우 3~4 세의 나이였을 그가 붓글씨로 <격암록> 및 <산수평장>을 베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군요. 그가 그걸 베낀 연대는 60년 뒤인 서기 2003년이었습니다.
"김도현본-1943년"도 틀렸고, "오씨본-1955년"도 틀린 것 같습니다. 오씨본 속에는 서기 1961년 5월 16일 이후에나 쓸 수 있는 문장들이 들어가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