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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살전 5:16-18)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교회는 거대한 로마제국안에서 지극히 작은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사회의 주류도 아니었고, 정치적 힘이나 경제적 부를 쥐고 있는 자들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300여년만에 복음으로 로마제국을 정복하였습니다. 도대체 그 힘이 어디서 나온 것입니까? 세상의 권력입니까? 군사력입니까? 아닙니다.
바로 순교를 각오한 신앙때문이었습니다. 로마제국의 칼날앞에서도, 굶주린 사자앞에서도, 타오르는 불길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죽음을 각오한 순교적 신앙이 로마제국의 심장을 찌르고 그들을 전율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순교를 각오한 거룩한 담대함과 순교적 신앙은 어디에서 나온 것입니까? 그것이 바로 살아있는 ‘믿음’에서 나왔습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이 세상에 아무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무기력한 이유는, 우리 안에 이 살아있는 믿음이 희미해졌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은 오늘 우리가 반드시 회복해야 할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이 살아있는 믿음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입니까? 로마서 10장 17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성경은 명확하게 답을 줍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세상의 헛된 소리,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뉴스, 인간의 속삭임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영혼이 살아납니다. 그래서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들으며 살아야 합니다. 말씀을 들을 때 영적인 귀가 열리고, 귀가 열릴 때 비로소 우리 안에 믿음이 생기며 그 믿음이 자라나 결국 능력있는 믿음으로 성장하게 될 줄 믿습니다. 그 믿음이 바르고 힘이 있을 때, 비로소 세상에 거룩한 선한 영향력을 나타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잘 아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갇혀있는 이론에 불과하다면 아무런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말씀은 들음에서 시작하여 그 말씀을 삶의 현장에서 지켜 행할 때 능력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그들의 믿음의 실제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16-18절,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분명합니다. 간단합니다. 명료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가만히 살펴보면 이 말씀앞에 “항상, 쉬지말고, 범사에”라는 단어 있습니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모든 삶의 순간순간에 이 세 가지 명령을 행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세 가지 명령을 가만히 묵상하면서 성령님께서 깨우쳐주시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 세 가지 말씀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믿음의 실제라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고 확실히 믿고 행할 때, 우리는 인생의 어떤 풍랑속에서도 우왕좌왕하지 않고, 선하고 뚜렷한 영향력을 미치며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사랑하시고 기뻐하셨던 다윗이 평생 성공적이고 위대한 인생을 살 수 있었던 단 하나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가 능력이 많아서입니까? 아닙니다. 그 역시 평생 하나님의 뜻을 쫓아 살았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3장 36절,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어짐을 당하였으되” 다윗은 일생동안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고 백성들을 섬긴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다윗처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본문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비결,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세 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마음판에 새기고 삶으로 살아내는 믿음이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뜻 첫째는,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며 사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아주 중요합니다. 기쁨은 영혼의 상태를 보여주는 바로미터이기 때문입니다. 잠언 17:2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성경은 이미 수천 년 전에 마음의 즐거움이 육체의 건강까지 지켜주는 최고의 치료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제로 현대 의학도 이를 입증하고 있습니다.
미국 스탠포드 의과대학에서 성인 남성들을 대상으로 한바탕 크게 웃는 실험을 진행한 결과, 몸속에서 암세포를 억제하고 면역력을 극대화하는 호르몬이 평소보다 무려 200배나 증가했다고 보고했습니다. 윌리엄 프라이 박사는 사람이 한 번 크게 웃을 때 우리 몸의 650개 근육 중 231개 근육이 동시에 움직이며 위장, 가슴, 심장까지 운동하게 만든다고 했습니다.
1분을 진심으로 웃으면 이틀을 더 살게 되고, 5분을 웃으면 수백만 원 가치의 엔돌핀이 생산되어 온몸의 질병을 치료한다는 것입니다. 통계적으로 여성들이 남성보다 더 오래 사는 이유도 평소에 더 많이 웃고 기쁨을 표현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옛말이 과학적으로, 의학적으로 증명된 셈입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문제는 어디에 있습니까? 항상 기뻐하고 웃으며 사는 것이 좋은 줄은 누구나 다 압니다.
하지만 웃음이 우리 마음대로 잘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슬픈 일이 가득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고, 당장 물질의 위기와 건강의 위기가 찾아왔는데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단 말입니까? 여기에 복음의 비밀이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기쁨은 환경에서 나오는 기쁨이 아닙니다. 내 심령 중심에 창조자이신 하나님이 계시고,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물과 피를 흘리시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이 계시며, 내곁에서 나를 도우시는 보혜사 성령님이 계심을 믿을 때 내 속에서 솟아나는 초자연적인 기쁨입니다.
우리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어 있으면 하나님의 평강이 내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십니다. 이 평강속에 기쁨이 들어 있습니다. 성경인물 중에 이 기쁨을 삶으로 증명해 낸 위대한 믿음의 선배가 있습니다. 바로 사도 바울과 실라입니다.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억울하게 붙잡혔습니다. 그들은 옷이 찢겨 벗겨진 채 수없이 매를 맞았습니다. 그리고 깊은 감옥에 갇혔고 발에는 쇠사슬이 채워졌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깊은 절망과 고통, 분노와 원망이 터져 나와야 하는 자리입니다. 뼈가 마르고 심령이 근심으로 가득 차야 하는 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캄캄한 감옥 한가운데서 어떤 기적이 일어납니까? 사도행전 16장 25절,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그들은 슬픔 대신 기쁨을 선택했습니다. 원망 대신 찬송을 선택했습니다. 억울한 환경에 지배당하지 않고, 그 감옥 안에서도 함께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인해 영혼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기쁨을 선포한 것입니다. 그들이 기뻐하며 찬양할 때 지진이 나고 옥문이 열리며 착고가 풀리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환경을 뛰어넘는 평강이 기쁨을 쏟아낸 줄 믿습니다. 로마서 5:3-4,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야고보 사도도 이렇게 선포합니다. 약 1: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시험을 당하면 육신은 힘들고 화가 날지라도, 하나님의 뜻이 '항상 기뻐하라'는 것이기에 의지적으로 기쁨을 선택하며 나아갔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살아계신 능력이 우리 삶 속에 임하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리스도인에게 다가오는 환난과 시험은 당장은 아프고 고통스러울지라도, 시간이 지나고 보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통하여 정금같은 믿음으로 연단하시고, 결국은 승리와 축복의 소망을 완성하시는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하박국 선지자의 위대한 고백을 기억하십시다. 이스라엘 전체가 영적, 경제적 위기에 처해 모든 소출이 끊어졌을 때 그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합 3:17-18,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상황은 텅 비어 있고 아무것도 없는 절망이지만, 오직 나를 구원하신 여호와 하나님 한 분만으로 기뻐하겠다는 고백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환경을 바라보며 실망하는 자가 되지 마시고,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항상 기뻐하기를 선택하는 위대한 믿음의 소유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뜻 둘째는,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한다는 것은 우리 영혼이 호흡하며 사는 생명줄과 같은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영적인 대화의 통로입니다. 기도없이 우리 영혼이 살고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통로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마 26: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적으로 깨어 기도해야 시험에 들지않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5절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하나님은 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구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기도는 하늘의 보물창고를 여는 열쇠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가로 꼽히는 에디슨은 평생 3,000여 종이 넘는 물건을 발명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천재성에 감탄하지만, 그가 그렇게 놀라운 발명왕이 될 수 있었던 이면에는 치열한 기도생활과 그에 따른 하나님의 응답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는 수많은 실패를 겪었습니다. 백열전구 하나를 세상에 내놓기 위해 무려 1,200번을 실패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수십 번 하다가 포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에디슨은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한 번 실패할 때마다 무릎을 꿇었습니다.
한 번 실패할 때마다 최소 3시간 이상씩 하나님 앞에 간절히 지혜를 구하며 기도하고 연구했습니다. 1,200번의 실패를 기도로 돌파했으니, 전구 하나를 만들기 위해 기도한 시간만 수천 시간에 달합니다. 날짜로 계산하면 수백 일을 오직 기도로 버틴 것입니다. 그는 세상이 말하는 단순한 천재 발명가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던 영적인 '기도의 사람', '기도의 대장'이었습니다. 에디슨의 삶이 우리에게 주는 강력한 도전은 바로 기도의 ‘지속성’입니다.
얼마나 계속해서 기도하느냐, 얼마나 끈기있게 낙심하지 않고 부르짖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항상 기도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무시로 기도하라고 자꾸 강조하시는 것입니까?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고 동행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늘 경험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기도의 무릎이 약해지면 하나님과 멀어집니다. 영혼의 대화인 기도가 멈추면 내 영이 메마르고 사탄의 유혹에 쉽게 넘어집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가정에서 부부간에, 부모 자녀 간에, 혹은 친구 사이에도 대화가 풍성해야 친밀함이 유지됩니다. 대화가 줄어들고 단절되면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남남처럼 멀어지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똑같습니다. 그렇기에 주님은 영혼의 호흡을 멈추지 말고 끊임없이 주님과 소통하는 인생이 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요일 5:14,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쉬지 않고 기도하되, 내 정욕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는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처럼 기도의 지경을 넓혀야 합니다. 나 자신과 내 가족의 안위만을 위해 기도하는 이기적인 기도를 넘어, 교회를 위해, 나라와 민족을 위해, 저 죽어가는 2,600만 북한동포들을 위해, 그리고 세계열방을 위해 중보기도의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2장 1-2절,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나라의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올바르게 정치를 해야 국가가 평안하고, 안보가 튼튼해지며, 성도들이 고요하고 단정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위정자들을 위한 기도는 쉬지 말아야 할 사명입니다.
성경과 교회사 속에서 기도로 시대를 바꾼 수많은 인물의 발자취를 보십시오.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는 소돔성의 멸망 가운데서도 조카 롯을 구출해 냈고,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할 때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여호수아의 기도는 태양과 달을 멈추는 전무후무한 기적을 일으켰고, 자식이 없어 통곡하던 한나의 통곡 기도는 시대를 깨울 영적 지도자 사무엘을 잉태하게 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같은 위기마다 기도로 생명을 건졌고, 엘리야의 간절한 기도는 갈멜산에서 하늘의 불을 내리게 하여 하나님만이 참 신이심을 만방에 선포했습니다. 다니엘은 하루 세 번씩 목숨을 걸고 기도함으로 사자 입을 봉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맛보았고, 히스기야 왕의 눈물의 기도는 하룻밤 사이에 앗수르 군대 18만 5천 명을 멸절시키는 대승리를 이끌어 냈습니다.
또한 신약의 사도 바울이 갇혔을 때 온 교회가 기도를 모으자 빌립보 옥문이 열리고 간수장과 그 온 집안이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마틴 루터의 하루 3시간씩의 치열한 기도가 영적으로 캄캄했던 중세 시대를 깨우는 종교개혁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찬란하고 위대한 기도의 역사 선상에 바로 저와 여러분의 기도가 이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쉬지 말고 기도함으로 하늘의 문을 열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기도꾼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뜻 셋째는,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것은 우리 신앙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최종 열매이자, 하나님의 축복을 담는 그릇입니다. 시편 50편 23절,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하나님께 감사로 예배드리고 범사에 감사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최고의 예배입니다.
그 감사를 옳게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보여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참 놀라운 약속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은혜가 구원입니다. 그런데 감사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보여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강철왕으로 불리는 카네기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부자 중 한 명으로 기억됩니다. 그러나 이렇게 대성공을 거둔 사람도 한때는 감사를 잃어버리고 깊은 절망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어두운 과거가 있었습니다.
미국 전체를 뒤흔든 극심한 경제대공황 시절이었습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사업은 곤두박질쳤고 상황은 점점 악화되었습니다. 사방이 꽉 막힌 것 같은 절망 속에서 카네기는 새벽 일찍 차가운 강물에 빠져 죽으려고 뛰어가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거리에 앉아 자기를 간절히 부르는 한 청년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돌아보니 두 다리를 모두 잃어버리고, 바퀴가 달린 작은 판자위에 앉아 연필을 팔고 있는 지체장애인 청년이었습니다.
행색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초라하고 비참해 보였지만, 신기하게도 그 청년의 얼굴만큼은 천사처럼 환하고 밝은 미소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청년은 카네기에게 연필 한 자루만 팔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카네기는 어차피 죽으러 가는 길이었기에 주머니에서 1달러를 꺼내 청년에게 쥐어주고는 연필도 받지 않은 채 다시 강물로 걸어갔습니다. 그러자 청년이 카네기를 다급하게 불러 세웠습니다. “선생님! 돈을 내셨으면 연필을 가져가셔야지요! 그냥 가시면 안됩니다!”
카네기는 필요없다고 거절했지만, 청년은 정당한 거래라며 연필을 받아 가라고 환하게 웃으며 실랑이를 벌였습니다. 그 순간 카네기의 머리에 거대한 영적 충격이 가해졌습니다. ‘두 다리를 잃고 저렇게 비참한 환경 속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얼굴에 감사의 미소를 띠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청년이 있는데, 사지 멀쩡하고 그동안 과분한 축복을 받았던 나는 고작 이 정도 위기앞에 목숨을 버리려 하다니!’ 카네기는 자신의 나약함과 불신앙이 너무나 부끄러워졌습니다.
그는 자살하려던 발걸음을 돌려 하나님 앞에 엎드려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환경을 원망했던 죄를 회개하고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 앞에 순종하기로 결단했습니다. 감사를 회복하고 다시 시작했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전보다 더 큰 지혜와 복을 부어주셔서 대부호로 세워주셨습니다.
바넷 깁슨 박사도 그의 저서 「행복한 하루」에서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당신의 마음에 감사가 없다면 아무리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어도 당신은 지금 파멸의 노를 젓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행복해지기를 원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감사를 배워야 한다.”
감사와 행복은 언제나 함께 움직입니다. 감사하면 행복해지고, 행복하면 더 큰 감사가 터져 나옵니다. 독일의 순교자 신학자 본회퍼의 고백처럼 “우리는 감사를 통해 진정한 영적 부자가 됩니다.” 감사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더 큰 감사의 조건을 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성경 속에서 이 범사의 감사를 가장 완벽하게 보여준 성경적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구약의 다니엘입니다. 다니엘 6장을 보면 왕 외에 다른 신이나 사람에게 기도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겠다는 조서가 찍혔습니다.
기도하면 당장 사자 밥이 되어 죽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입니다. 그때 다니엘이 어떻게 합니까? 다니엘 6장 10절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은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죽음이 기다리는 그 엄혹한 환경 속에서도 예루살렘을 향해 창을 열고 ‘전에 행하던 대로’ 하나님께 감사를 올려드렸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합니까? 내 생명과 역사의 주관자가 오직 하나님이심을 100%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사자 굴에 던져졌으나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 사자의 입을 막으시는 기적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골 3:16-17,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무리 우리의 삶이 힘들고, 사방이 캄캄하고 환경이 어두울지라도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범사에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감사의 고백이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고 하늘의 기적을 끌어당길 줄 믿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항상 기뻐하는 것’,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행동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을 들은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삶의 자리에 나아가야 하겠습니까?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나의 ‘평생의 소원’으로 삼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내 평생에 어떤 환난 속에서도 기쁨을 잃지 않게 하시고, 영혼의 호흡인 기도가 쉬지 않게 하시고, 캄캄한 밤중에도 감사를 고백하는 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신앙생활을 통하여, 살아계신 주님과 매일 동행하며 세상 가운데 거룩한 복음의 영향력을 흘려보내는 거룩하고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나눔이야기-------------------------------------------------------
1. 최근 내 삶에서 기쁨을 빼앗아가는 염려와 문제는 무엇이며 환경을 뛰어넘
어 주님 한 분만으로 기뻐하기 위해 어떤 영적 결단이 필요합니까?
2. 나의 영혼을 살리는 기도생활은 지금 잘 하고 있습니까? 나를 넘어 이웃과
교회, 나라를 위해 기도의 지경을 넓혀야 할 영역은 어디라고 생각합니까?
3. 다니엘처럼 위기속에서도‘전에 하던 대로’감사하고 있습니까? 나의 감사생활
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