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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천루(摩天樓). 하늘에 닿는 집이라는 뜻이다. 영어도 어원이 비슷한데 하늘을 긁을 만큼 높다는 의미에서 스카이스크래퍼(Skyscraper)라 표현한다.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 있는 마천루가 현대 건축의 전형이 되고 있다. 인구가 계속 증가하고 도시로 몰려들면서 한정된 토지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이용할지는 시대적 과제가 됐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건물을 초고층으로 올려 수직으로 뻗은 공간을 이용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줬다.
오늘날 전 세계 곳곳에 초고층 건물이 세워지면서 ‘마천루의 시대’를 열고 있다. 한정된 공간을 더 많은 인간이 이용하기 위해, 때로는 한 나라나 한 도시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라는 영예를 차지하기 위해, 경제적으로 가장 큰 이득을 창출할 목적으로 초고층 건물들이 계획되고 속속 들어서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천루의 높이는 더 높아지고 있으며 증가 속도는 더 빨라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주거용 마천루가 절대다수
얼마만큼 높아야 과연 하늘에 닿는 집이라 부를 수 있을까? 마천루는 일반적으로 현저하게 높은 건물을 가리키는데, 사실 높다는 것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예를 들어 마천루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1890년대에는 10층만 되더라고 현저하게 높은 건물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 건축법에서는 층수가 30층 이상이거나 높이가 120m 이상인 건축물을 고층으로, 건축법 시행령에서는 층수가 50층 이상이거나 높이가 200m 이상인 건축물을 초고층으로 정하고 있다. 층수와 높이라는 두 가지 기준을 병렬적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1개 층 높이를 3m로 해 50층을 쌓는다면 전체 높이는 150m여도 초고층이 될 수 있다.
2008년 발간된 ‘건축용어 도감(The Visual dictionary of Architecture)’에서는 마천루를 ‘건물의 높이가 150m 이상인 인간이 거주할 수 있는 건물’로 정의하고 있다. 마천루 전문가들이 모여있는 세계초고층도시건축학회(CTBUH, Council Tall Buildings and Urban Habitat)에서는 전 세계 초고층건물 통계를 낼 때 150m 이상인 건물부터 집계하고 있다. 이런 사실들을 고려했을 때 마천루의 기본 자격을 150m로 봐도 큰 무리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150m 이상 마천루를 기준으로 2021년 현재 우리나라는 중국(2395동)과 미국(825동), 아랍에미리트(268동), 일본(261동)에 이어 세계에서 5번째로 많은 마천루(233동)를 보유한 국가이다. 우리나라는 마천루의 역사가 길지 않지만 최근 급증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150m의 벽을 돌파한 우리나라 최초의 마천루는 1985년 완공된 63빌딩(서울, 60층, 249m)이다. 63빌딩은 그전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던 롯데호텔 서울(서울, 38층, 138m)보다 거의 2배 가까이 높았는데, 무려 18년간 대한민국 최고층의 상징성을 계속 유지했다.
63빌딩의 장기집권을 끝내고 새로운 왕조를 연 것은 하늘 높이 치솟은 주상복합 아파트들이었다. 2003년 목동 하이페리온 타워 101동(서울, 69층, 256m)이 세워지면서 우리나라 최고층이 됐는데, 불과 1년 만에 삼성 타워팰리스 3차-G동(서울, 73층, 264m)이 왕좌를 이어받았다. 대권은 2011년 해운대 두산위브 더 제니스 101동(부산, 80층, 301m)으로 넘어갔는데, 우리나라 최초로 300m를 돌파한 건물이면서 서울이 아닌 지역에 대한민국 최고층이 세워진 첫 사례였다.
아파트들에 뺏긴 최고층 마천루의 영예를 업무용 빌딩이 되찾은 것은 동북아무역타워(현 포스코타워 송도, 인천, 68층, 305m)가 2014년 완공되면서다. 2017년에는 이보다 무려 250m가 더 높은 롯데월드타워(서울, 123층, 555m)가 한국 최고층 마천루 왕좌에 올랐는데, 세계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 만큼 워낙 압도적으로 높아 앞으로 상당 기간 이보다 더 높은 마천루가 등장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최고층 마천루의 역사(위)와 2019년 말 기준으로 마천루 순위(아래). 3위, 4위, 6위, 7위, 10위가 주거용 마천루인데 모두 부산 해운대에 있다. ⓒ 구동회 ‘한국 마천루의 역사와 상징성’(CTBUH 분석 자료 재인용)
우리나라의 마천루들이 갖고 있는 가장 큰 특징은 주상복합 등 아파트들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산대 구동회 교수가 작성한 논문 ‘한국 마천루의 역사와 상징성’을 보면, 2019년 말 기준으로 150m 이상 우리나라 마천루 229동 중 주거용이 174동(76.0%)으로 압도적으로 많은 반면 업무용이 32동(14.0%), 복합용이 19동(8.3%), 호텔 등 기타가 4동(1.7%)에 불과하다. 반면 전 세계 마천루 4987동을 구분해 보면 업무용이 2047동(41.0%)으로 가장 많고, 주거용은 1843동(37.0%), 복합용이 822동(16.5%), 호텔 등 기타가 275동(5.5%)이다.
우리나라 마천루의 지역별 분포를 보면 서울(78동, 34.1%)과 부산(62동, 27.1%), 인천(40동, 17.5%) 등 세 도시에 집중돼 있다. 흥미로운 부분은 2010년대 완공된 마천루는 부산 지역에 가장 많으며, 주거용 마천루의 최상위권은 모두 부산의 특정지역에 몰려 있다는 점이다.
주거용 마천루 1위와 2위인 해운대 엘시티 더샵 A동(부산, 85층, 335m)과 B동(부산, 83층, 333m)부터, 3위인 해운대 두산위브 더 제니스 101동(부산, 80층, 301m), 4위인 해운대 아이파크 2동(부산, 72층, 292m), 5위인 해운대 두산위브 더 제니스 102동(부산, 75층, 282m), 6위인 해운대 아이파크 1동(부산, 66층, 273m)까지 모두 부산 해운대 바다 앞의 이웃사촌들이다.
양손 지팡이에 허리 벨트까지 둘러
마천루가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 있기 위해서는 일반 건물들과는 다른 특별한 비법이 필요하다. 건물이 높아지면 바람이나 지진처럼 옆에서 미는 힘에 매우 취약하다. 특히 바람은 마찰력 때문에 지면에서는 산들바람으로 불어도 초고층 꼭대기에서 태풍급 강풍이 돼 건물을 뒤흔들 수 있다.
초고층인 마천루는 수평으로 작용하는 힘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필요한데, 이 때문에 마천루는 횡력저항을 위한 구조 시스템이 있는 건축물로 정의하기도 한다. 현재 우리나라 마천루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것은 중심부의 코어를 주변 기둥들과 단단히 연결하는 ‘아웃리거 구조시스템’이다.
아웃리거와 벨트 트러스 설치 부분이 외관에서 확인되는 주상복합 아파트(왼쪽). 아웃리거 구조 시스템은 마치 양팔을 벌리고 지팡이를 짚은 사람과 같다(오른쪽 위). 코어 벽과 외곽 기둥을 연결하는 아웃리거의 접합 모습(오른쪽 아래). ⓒ 김도현 외 ‘초고층 건축물 구조 시스템의 진화’
마천루에서 코어는 사람으로 치면 척추 역할을 하는 건물의 중심 뼈대이다. 예전에는 철골트러스로 코어를 만들기도 했는데, 콘크리트 기술이 발전하면서 현재는 철근이 배근된 고강도 콘크리트로 중심 코어를 만든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아파트인 엘시티 더 샵은 코어가 1.5m 두께의 벽체로 돼 있고, 가장 높은 마천루인 롯데월드타워는 코어가 최대 2m나 되는 두꺼운 벽체로 돼 있다.
건물 중앙에 코어 벽체를 아무리 두껍게 설치한다고 하더라도 혼자서 수평력에 저항하도록 계획하는 것은 대단히 무모한 일이다. 마천루가 안정적인 구조가 되기 위해서 코어 외곽에 콘크리트나 철골, 혹은 콘크리트 충전 강관(CFT, Concrete Filled Tube)으로 만든 튼튼한 기둥을 적정한 간격을 두고 여러 개 배치한다. 롯데월드타워의 경우 코어 바깥으로 두께가 최대 3.5m나 되는 메가 기둥들이 배치돼 있다.
내부의 코어 벽체와 외각의 기둥은 아웃리거(Outrigger)를 사용해 견고하게 연결한다. 아웃리거는 코어 벽체와 기둥을 튼튼하게 연결하기 위해 보통 삼각형 구조의 트러스 형태로 돼 있다. 코어만 갖고 있는 건물은 척추에 의지해 혼자 서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코어와 바깥 기둥을 연결한 아웃리거를 갖고 있는 건물은 양팔을 벌리고 지팡이(기둥)까지 짚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초고층으로 올려도 구조적으로 안정적일 수밖에 없다.
아웃리거 구조에서 외각의 기둥들은 트러스를 짜서 서로 단단하게 묶거나 아예 이어진 벽체로 만든다. 전자를 벨트 트러스(Belt Truss)라 하고 후자를 벨트 월(Belt Wall)이라 부르는데, 건물에 힘이 가해질 때 단단히 받쳐주는 마치 허리띠와 같은 역할을 한다. 역도선수가 역기를 들 때 허리띠가 받쳐줘야 제대로 힘을 쓸 수 있는 것과 똑같은 원리다.
단단한 코어에 아웃리거로 외곽 기둥을 연결한 후 벨트 트러스로 두르면 마천루에 적합한 최강의 구조가 완성된다. 마천루 꼭대기에서 초속 30m가 넘는 강풍이 불고 진도 6이 넘는 강진이 발생해도 거뜬히 버티는 비결이다. 초고층 마천루는 워낙 견고하게 설계되기 때문에 지진이 날 경우 가장 안전한 곳은 마천루의 1층이라는 얘기까지 있다.
아웃리거는 보통 25~35층마다 설치하는데, 몇 층에 설치해야 안정성이 가장 뛰어날지 최적의 구조 위치를 찾는 것은 전문가들의 고민거리다. 아웃리거가 설치되는 층은 복잡한 구조물로 제대로 사용하기 어려운데, 임대면적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보통 기계실 및 전기실로 활용하고 동시에 건축법령에서 정한 피난안전 구역 역할을 하도록 설계된다.
상부 하중으로 인한 기둥 축소까지 고려
마천루가 안정적인 구조를 갖고 있더라도 실제 하늘 높이 초고층으로 쌓아올리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동전을 높이 쌓아올린다고 생각해 보자. 동전을 높이 쌓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면과의 수직이다. 아래 동전에 정확히 겹치게 위 동전을 수직으로 올려놓지 못할 경우, 동전을 하나씩 더 올릴수록 점점 불안전해지고 결국 무너지게 된다. 마천루를 올릴 때도 마찬가지다.
초고층 마천루는 지상에서 수직 방향으로 한 치의 차이도 없이 똑바로 올라가야 한다. 일반 건물을 올릴 때는 납을 매단 다림추나 레이저 연직기로 수직을 확인하면 되지만, 초고층으로 올리면 바람 때문에 건물이 미세하게 흔들리기 때문에 정확한 수직을 확인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초고층 마천루는 수직도 관리를 위해 GPS 측량기술을 활용한다. 인공위성을 이용하여 위치를 잡는데 오차가 2cm 이내일 정도로 정밀하다.
정밀하게 수직으로 층수를 쌓아올려도 건물이 높아지면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발생한다. 상부의 하중을 받으면서 아래층의 높이가 처음보다 줄어드는 것이다. 하중을 받았을 때 일률적으로 줄어들면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코어 벽체와 외곽 기둥은 축소되는 높이에 차이가 있어 골칫거리가 된다. 이처럼 상부 하중에 의해 하부 구조물이 서로 다르게 줄어드는 것을 ‘부등축소’라 하는데, 초고층 구조물에서는 부등축소가 층당 누적되면 구조물에 추가적인 응력을 발생시키고 치명적인 손상을 줄 수 있어 안전성에 큰 문제가 된다.
마천루를 건축할 때는 부등축소를 사전 예측해 설계해야 함을 물론이고, 시공할 때 곳곳에 장착한 센서를 통해 축소되는 정도를 정밀하게 측정한 후, 미시공 부분에 대한 축소량을 예측하고 계속 보정하면서 시공해야 한다. 국내 최고층인 롯데월드타워의 경우 12개 층에 426개의 센서를 설치해 부등축소를 확인했는데, 각 층별로 기둥은 약 3mm, 코어의 경우는 약 2mm의 축소량이 발생했다.(김선규 외 ‘초고층 구조물의 기둥축소량 계측 및 해석에 관한 연구’ 참고)
국내 최고층인 롯데월드타워는 12개 층에 426개의 센서를 설치해 부등축소를 분석했다. ⓒ 김선규 외 ‘초고층 구조물의 기둥축소량 계측 및 해석에 관한 연구’
초고층 빌딩의 아버지인 건축가 파즐루 칸은 아웃리거 구조는 60층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그보다 높을 경우에는 골조튜브나 트러스튜브, 묶음튜브 등 구조를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강철의 단단함에 대한 신뢰로 인해 상당수 사람들이 초고층 마천루는 비싸더라도 강철로 지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덕분에 철골을 이용한 튜브구조 등이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미국, 102층, 381m) 이후 한때 세계 최고층 마천루였던 세계무역센터(미국, 110층, 417m)가 9.11. 테러 때 비행기 충돌로 속절없이 무너져 버리는 충격적인 모습을 보였다. 세계무역센터는 철골로 만들어진 튜브 프레임 구조로 설계됐는데, 비행기에서 유출된 연료가 타면서 철골이 얼음처럼 녹아내렸다. 반면 철근이 콘크리트에 파묻혀 있는 철근 콘크리트는 가격도 싸지만 내화성능도 뛰어나다.
철근 콘크리트로 코어를 만들고 외곽의 메가 기둥을 연결하는 아웃리거 구조 시스템 기술이 발전하면서 세계 최고층 마천루의 표준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현재 세계 최고층 마천루인 부르즈 할리파(아랍에미리트, 209층, 828m)는 물론 1007m를 목표로 사우디아라비에서 건립 중인 제다 타워 역시 아웃리거 구조 시스템으로 건설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