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쨋날(9/1) - 울란바타르 간단사
한국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 날은 테를지 공원을 떠나 1시간 남짓 거리의 울란바타르에 도착해서 몽골 불교를 대표하는 사원이라는 간단사를 방문했다. 한국의 조계종을 대표하는 조계사에 준하는 위상을 갖고 있는 간단사는 서울의 조계사처럼 매우 혼잡한 울란바타르 도심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었다. 전체 인구의 삼분의 일이 모여들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교통이 혼잡한 울란바타르의 도시 풍경은 이제 바야흐로 문명사회에 진입하기 위해 발돋음하는 몽골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몽골이 염두에 두고 있는 발전의 모델이 바로 한국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지난 일주일간 주로 몽골의 초원과 사막 지대를 여행하면서 무엇보다 문명화되지 않은 대자연이 주는 매력과 정취에 흠뻑 젖어있었기에, 현대 도시의 면모를 갖추어가는 울란바타르를 돌아보자 돌연 꿈에서 깨어나듯 왠지 서운한 기분이 들었다. 어느 나라이든 경제적 풍요에 바탕을 둔 사회 발전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도시화와 산업화가 필수적인 과정이겠지만, 그 부수 현상으로 오늘날 서구적 현대문명의 결과로 초래된 소중한 자연과 환경적 가치의 훼손을 염려하는 것은 공연한 기우이고 단순히 낭만적인 감성의 소치일까?
우리는 바트 보양 스님의 자세한 안내를 받으며 옛소련의 종교 탄압으로 하마터면 완전히 파괴될 뻔했던 간단사의 경내를 주욱 둘러보았다. 어린 나이인 13세에 자발적으로 출가했다는 바트 보양 스님은 이 간단사 소속 스님으로 10년 전에 한국에 파견되었다고 한다. 맨 처음 들어가 본 관음전에는 거대한 관음상이 모셔져 있었는데 이는 옛 소련이 종교를 탄압하면서 약탈해 갔던 관음상 대신 새로 조성된 것이라고 한다. 법당 안에 우뚝 서서 그 위용을 자랑하는 관음보살은 몽골 신도들을 자애롭게 보살펴주는 수호자인 것이 분명했는데 왼손에는 큰 동거울을 들고 오른손에는 감로수 병을 들고 있는 모습이 특이하게 눈에 띄었다. 거의 모든 몽골 법당에 16 나한상이 모셔져 있는 것도 특이했다.
역사적으로 200년 동안이나 청나라의 지배를 받았던 몽골은 1912년 중국의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비로소 독립되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1945년에 와서야 완전한 독립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몽골은 또 1990년대에 들어 정식으로 민주화되고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었다고 한다. 나는 몽골 불교나 티벳 불교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기도 하거니와 스님의 설명을 들으면서도 몽골 사원들에 조성된 불상이나 보살상, 또는 여러 종류의 그림이나 장식물의 상징적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새벽부터 신도들이 와서 기도를 올리고 간다는 음력으로 매월 29일인 재일이 마침 또 오늘이라 우리는 스님들이 길게 두 줄로 마주 앉아 경전 글귀들을 펼쳐놓고 합송하는 가운데 작은 종, 바라, 징, 태평소, 나발, 북 같은 종류의 악기들을 연주하는 특별한 의식을 참관하는 행운을 누렸다.
우리가 매일 이른 아침 차에 올라 새로운 곳을 향해 떠날 때면 바트보양 스님이 늘 기도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돌이켜보니 여행하는 내내 날씨도 끝내주게 환상적이었고, 용하게도 한 달에 한 번씩 열린다는 재일에 맞춰 마니사와 간단사를 방문하게 된 것도 그렇고. 가는 곳마다 따뜻한 환대를 받으면서 우리 일행이 모두 무사무탈하게 여행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스님의 기도의 힘(!)으로 불보살님들이 우리를 잘 보살펴주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법당 안에 놓여있는 긴 대에 엎드려 오체투지도 따라 해보고 곳곳에 매달아 놓은 마니차를 지나쳐갈 때마다 오른쪽으로 빙빙 돌리고 다녔으니 경전도 이미 여러 권 읽은 셈이다.
관음전, 대웅전, 갈라 차크라전 등의 법당과 기도처와 강원이 있는 이 큰 규모의 간단사에서는 스님들이 철저한 수행과 더불어 불교 교리 및 불교 철학을 공부하고 나서 그 실력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으려면 20년이나 걸린다니 가히 놀라웠다. 몽골 스님들은 머리만 깎고 출가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문적인 불교 이론을 두루 섭렵하는 동시에 철저한 수행을 몸에 익혀야만 하니 명실공히 최고의 수행자이며 엘리트 승려들이 아닐까?
간단사 관람을 마친 후 우리는 몽골 특산품이라는 캐시미어 가게에 들렀다가 몽골인들이 시대를 초월한 대영웅으로 내세우는 신화적 인물, 징기스칸 기념 박물관을 구경한 다음, 한 음식점의 귀빈실에서 (징기스칸 시절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고 있는) 정통 샤브샤브를 먹고 나서 몽골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낼 호텔로 돌아왔다.
*후기*
나는 여행하는 동안 내 깜냥으로는 상당히 강행군이었던 일정을 따라다니느라 허겁지겁 내 한 몸 하나 건사하기에 급급했는데, 이 모든 여행을 기획하고 준비하고 실행에 옮기면서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물심양면으로 이런저런 큰 도움을 주신 도반님들 덕분에 너무나 즐겁고도 유의미한 여행을 마쳤으니, 그저 미안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동아시아의 남방과 북방 사찰들과 오래전부터 교류가 있는 국제포교사회 다문화부에 몽골 여행기를 한번 올려보라는 부탁을 받고 나는 생각나는 대로 7일간의 여정을 기록해 보았다. 그럼에도 나의 이해력 부족과 기억력의 한계로 인해 부정확한 기술도 꽤 많이 있을 것이므로, 추후 발견되면 바로잡으려 한다.
여행기에 생생한 기억으로 남을 사진들을 첨부할 수 있었던 것은 주로, 날마다 무거운 카메라와 삼각대를 메고 다니며 작품 사진들을 찍어주신 석성순 포교사님, 그리고 동영상 카메라를 휴대하고 순발력 있게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주신 여운종 포교사님, 두 분 덕분이다.
잊지 못할 몽골 여행의 국제포교사 동반자는 함아자 포교사님, 여운종 포교사님, 정경래 포교사님, 이경호 포교사님, 석성순 포교사님, 그리고 나 이진이, 이렇게 여섯명이었다.
첫댓글 도반님들과 함께한 소중한 여행경험을 생생하게 기록으로 남겨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