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28일 화요일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 학자 기념일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31-35 31 그때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왔다. 그들은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불렀다. 32 그분 둘레에는 군중이 앉아 있었는데, 사람들이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3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34 그리고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35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세상에 하느님나라를 만듭시다.
논어의 계씨편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자왈; 군자유구사. 시사명, 청사총, 색사온, 모사공, 언사충, 사사경, 의사문, 분사난, 견득사의. 子曰; 君子有九思. 視思明, 聽思聰, 色思溫, 貌思恭, 言思忠, 事思敬, 疑思問, 忿思難, 見得思義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에게는 아홉 가지 생각하는 바가 있다. 보는 데 있어서는 분명할 것을 생각하고, 듣는 데 있어서는 똑똑할 것을 생각하고, 안색은 온화할 것을 생각하고, 모습은 공손할 것을 생각하고, 말은 충성스러울 것을 생각하고, 일을 함에는 공경스러울 것을 생각하고, 의심스런 것은 질문할 것을 생각하고, 성이 날 때는 어려움을 겪을 것을 생각하고, 이득을 보게 되면 의로움을 생각하는 것이다.”
세상을 볼 때에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밝혀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눈을 흐리는 매체들이 너무 많은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TV, SNS 등을 통해서 엄청난 정보들이 눈을 통해서 들어옵니다. 사람들이 전철을 타거나 버스를 타고서도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지금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눈이 흐려져 있습니다. 잘못된 정보에도 눈은 더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귀를 통해서도 많은 정보들이 여과 없이 들어옵니다. 그 정보에 대해서도 우리는 똑똑하게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분별력을 더 키워줄 성령의 예지가 필요한 때입니다. 잘못된 정보를 식별할 은총을 내려주시기를 청해야 합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는 보는 데 있어서는 분명할 것을 생각하고 듣는 데 있어서는 똑똑히 사리 분별을 해야 할 것을 생각하라는 말씀을 명심해야 할 때입니다.
사람의 인상은 그 사람을 표현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얼굴에 온화함과 인자함이 감돌아야 합니다. 내가 외국에 가서 첫인상은 사람들의 얼굴에서 느끼는 웃음이었습니다. 미소 짓고 있는 얼굴은 모든 사람을 평안하게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얼굴은 모두 심각하고 진지합니다. 웃음 끼가 사라진 얼굴입니다. 심지어는 험상궂기까지 합니다. 온화한 얼굴은 보는 사람들도 편안합니다. 수도원에 가거나 수녀님을 만나면 그 모습이 참으로 공손합니다. 섬기러 온 사람 같습니다. 섬기러 온 사람과 섬김을 받으러 온 사람은 천지차이로 다릅니다. 스님들을 만나도 공손합니다. 두 손을 합장한 모습에서 공손함을 만납니다. 우리는 더 온화해지고 공손해져야 합니다.
말을 할 때는 충성스러워야 한다는 공자의 말씀은 우리를 부끄럽게 합니다. 충성(忠誠)스럽다는 말은 바른말과 옳은 말을 한다는 말입니다. 남이나 자신을 속이는 간교한 말이나 허언(虛言)이 아니고 교황님께서 싫어하시는 뒷 담화나 험담도 아닌 것입니다.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이 옳은 일입니다. 우리는 너무 말을 함부로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일을 함에 있어서 공경스럽게 해야 한다는 것은 모든 일을 최선을 다하여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정성을 다하여 일을 하여 모든 사람에게 혜택(惠澤)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일을 함에 있어서 공경을 다한다는 것은 아무리 작은 일이라고 할지라도 신중하고 큰일처럼 최선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자가 작은 토끼를 잡을 때에도 큰 들소를 잡을 때와 같이 최선을 다한다는 뜻입니다.
의심스러운 것은 질문할 것을 생각하라는 공자의 가르침은 세상 모든 일을 함에 있어서 의혹을 품지 말라는 것입니다. 쉽게 판단하지 말고 오해와 편견과 선입견을 갖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모르면 질문해서 의혹을 풀고 진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잘 모르는 채 무슨 일을 하거나 사람을 판단하거나 진리를 왜곡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질문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말고 예를 갖추어 질문하는 것이 예(禮)에 오히려 맞는 다는 말씀입니다. 화가 날 때에는 그 분노를 풀어내는 데에 마음을 두지 말고, 그 분노를 풀었을 때 불러올 어려움을 먼저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세상에서 어려운 일은 화풀이를 하였을 때 그 화풀이로 인하여 일어나는 일입니다. 분노를 참아내기도 해야 하고, 현명하게 삭이기도 해야 하고, 분노를 잘 조절하기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기도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득을 보게 되면 의로움에 쓸 것을 생각하라는 공자의 가르침을 새겨들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손해가 생기면 하느님을 원망합니다. 그리고 이득이 생기면 자신이 잘해서 그런 줄로만 압니다. 자신이 노력해서 이득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느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이득이 생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이득을 선한 일에 쓸 줄 알아야 합니다. 대전 성심당에서는 매일 밤 9시에 매장에 남은 빵을 양로원이나 고아원 등에 나눠준답니다. 그래서 매일 빵이 남아서 이튼 날까지 가는 일이 없답니다. 그 일을 70년 가까이 해 오고 있답니다. 이득을 의로운 일에 쓸 것을 생각하는 것을 자비로운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뜻은 ‘세상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자비를 베풀며 살아서 모두 구원받는 것’일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군자가 되어서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느님나라를 이 세상에 만드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