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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목사님 설교 말씀에 준해 수석 코치님의 간증 내용입니다.
지난 주일, 목사님께서 현대교회의 크리스천 대부분이 천국에 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다 지옥에 간다는 것을 여러 예와 성령께서 하신 말씀을 통해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목회자들이나 혹은 교회에 오래 다닌 분도 사실은 거의 천국에 못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취지의 성령님 말씀과 성경에 있는 말씀들을 가지고 설교해 주셨습니다. 우리 영성 학교 식구들은 오랫동안 목사님 설교를 들어왔기 때문에 잘 이해하고, 동의하시기 때문에 내가 기도 훈련을 통해서 성령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날마다 새롭게 하고 계실 줄 압니다.
사실 오늘날 기독교인 대부분은 진심으로 영접 기도만 했다면, 성령님은 오신 것이라고 그렇게 믿도록 가르침을 받고 목회자들도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은 그 가르침 이후에 실제 자기 삶과 그 가르침의 괴리가 너무 크기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내 삶을 보니까 성령님과 동행하는 게 아닌데, 성령님이 와 계신 삶이 아닌데, 내 삶의 인격도 그러하고, 삶에 맺히는 열매도 그러하고, 내가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는지 나도 잘 모르겠는데, 과연 이게 예수님 믿고 구원받은 것이 맞느냐는 의심을 사실은 하거든요. 안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무리 봐도 내가 아닌 거 같은데, 그리고 둘러보니 옆 사람도 저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구원받았다면 저렇게 살 수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이에 대해서 현대교회는 아니다. 네가 느끼지 못하더라도 성령님은 이미 오신 것이다. 성경의 약속을 봐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하지 않았냐, 다른 조건은 없지 않냐, 영접하기만 하면 된다고 했잖아. 네가 영접 기도한 순간 이 약속은 이미 이루어진 거다, 그걸 믿어라. 성경의 약속을 그대로 받아들여라. 라고 가르치죠. 그리고 또 성경 말씀을 많이 알지 못하는 경우에는 목사님이 그렇게 이야기하시니까 그런가 보다 하고 받아들이는데, 이 삶에서 생기는 괴리감, 가족관계 안에서 다듬어지지 않은 인격 때문에 발생하는 인격의 충돌, 고통 이런 것들이 삶에 널려 있는데도 불구하고, 일단은 구원은 받았다고 확신하라고 주입 당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잠깐 나누려는 말씀은 제가 영성 학교에 올렸던 글은 아니고 2012년경에 제게 성령님이 찾아오셔서 “네가 오늘 죽으면 지옥에 갈 것”이라고 하신 말씀을 듣고 기도하면서 그 당시 성령님께서 저에게 나눠주셨던 내용을 카페에 올렸던 글입니다. 어제 목사님께서 설교하신 내용과 일맥상통한 내용이어서 일부분을 다시 한번 읽어 드리려고 합니다.
저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2012년까지 23년간 내비게이터 선교회라는 곳에서 대학생 사역을 했습니다. 물론 학생으로서 배웠던 시간도 있고 졸업 이후에 제가 공군사관학교에 갔던 이유도 내비게이터 사역을 하려고 간 거였어요. 사실은 내비게이터 선교하기 위해 공군사관학교로 갔고 장기 신청해서 남았던 이유도 여기서 생도들 대상으로 계속 성경을 가르치는 사역을 하려는 목적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남게 되었는데 실제로 많은 생도에게 성경을 가르쳤고, 또 그들을 데리고 내비게이터 활동에 굉장히 많이 참여하도록 이끌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2012년도에 하나님께서 저에게 찾아오시는 경험이 있었는데, 그 내용을 한번 읽어 드리겠습니다. 혹시라도 좀 도움이 되실까 해서 그냥 부분적으로 읽겠습니다. 먼저 제 소개를 간단히 드리겠습니다.
저는 1969년생입니다. 불신 가정에서 태어났고 하나님의 은혜로 7세경부터 시골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는 하나님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도 반신반의하는 상태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중3 때 처음 성경을 읽기 시작했는데 교회에서 성경 읽기 대회를 해서 아마 신약 일독을 그때 처음 한 것 같고, 고1 무렵에 성경을 완독하였습니다. 성경을 한번 읽은 후 저의 느낌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심판에 대한 두려움, 두 번째는 성경이 비논리적이고 비약하면서 설명하지 않고 지나가는 부분이 굉장히 많다는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될 무렵에 성경을 2독 하게 되었는데 그때 하나님께서는 제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하나님의 존재를 깊이 깨닫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구나! 그리고 이 성경 말씀이 진리이구나! 내가 비논리적이고 비약하는 내용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나의 이해가 부족해서 그런 거였구나! 하는 생각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때 교회에 다니는 한 친구가 저에게 에베소서 2장 8~9절 말씀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라.” 이 내용은 사실 교회에서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만으로 구원받는다. 행위로 구원을 사는 것이 아니라 구원은 거저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다. 그런 설명을 하기 위해서 많이 인용되는 유명한 말씀이죠. 제가 처음 구원에 대해서 개인적인 믿음을 갖게 된 것은 그 친구가 이 말씀을 저한테 설명해 주면서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 당시 이 친구의 말대로 주님을 영접하고 한 번 구원을 받으면 영원히 구원은 확정되고 결코, 빼앗기지 않게 된다는 믿음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처음에 몇 가지 갈등 됐던 게 뭐였냐면 성경을 2독 했기 때문에 마태복음에 나오는 이것과 상반되는 말씀을 알고 있었습니다. “눈이 범죄하거든 빼버려라 눈 빼버리고 천국 가는 것이 눈 가지고 지옥 가는 것보다 낫다.” 이런 말씀하고는 충돌이 되기 때문에 사실은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교회 친구와 그다음에 가르치던 선생님 몇 분들을 통해서 한번 영접 기도하면 영원히 구원받는다는 믿음을 저의 믿음으로 받아들이게 됐던 것이 고등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니까 감사한 마음도 있었죠. 감사했고, 나름대로 또 기도 응답도 있었고, 하나님을 경험하는 일부 사례들도 있었기 때문에 그런 믿음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고2, 고3, 재수하는 기간에 또 하나님께서 여러 영적인 축복을 많이 주기도 하셨어요. 이 영성 학교에 오기 전까지는 재수하는 기간이 하나님을 제일 많이 경험했던 시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때 막 하나님께서 제가 볼 때는 참 기적이다 싶은 많은 일로 인도해 주시는 그런 경험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까지도 늘 마음에 고통이 됐던 것은 삶 속에 있는 죄악의 습관들, 이거 죄인데, 이거 버려야 하는데 하는 건 알긴 하는데 그게 해결되지 않는 것이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다가 1989년도에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아까 말씀드린 내비게이터 선교회라는 선교 단체와 연결되어서 성경 공부 중심으로 배우게 됐습니다. 내비게이터 선교회는 처음에 5가지 확신을 가르칩니다. 구원의 확신, 기도 응답의 확신, 승리의 확신, 사죄의 확신, 인도의 확신, 다 말씀드려도 되게 좋은 말씀들이에요. 요한 1서 5장 11절, 12절, 요한복음 16장 24절, 요한일서 1장 9절, 잠언 3장 5절, 6절, 이 5구절을 암송하면서 성경 공부를 시작했고, 또 나름대로 이 내비게이터 형제들은 좀 경건하게 사는 그런 분들입니다. 세상 죄를 많이 차단하려고 하고 그냥 계속 종일 같이 있으면서 성경 읽고, 기도하고, 전도하고, 수업 들어가는 시간 외에는 거의 그렇게 지내는 걸 일과로 하는 그런 곳이었기 때문에 나름대로 보호되는 면은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좀 경건하게 사는 게 즐겁구나! 뭐 이런 것도 좀 배울 수 있었고, 천국의 소망, 또 구원의 은혜에 대해 깨닫는 믿음도 있어서 감사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일정 부분에서는 죄를 이기는 말씀대로 사니까 죄가 이겨지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 외에 요한복음 10장 28절, 29절 말씀인데,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이 말씀이 빼앗기지 않는 구원을 가르칠 때 주로 인용하는 말씀이거든요. 요한복음 5장 24절 말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해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이 구절은 구원의 조건으로 믿기만 하면 영생은 이미 가진 것이 되고 앞으로 심판은 없다고 설명하기 위해서 인용하는 말씀입니다. 또한, 요한일서 5장 13절 말씀은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니라.”인데 하나님의 아들을 믿으면 영생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이 말씀이 기록이 되었다는 취지로 인용합니다.
이런 말씀들을 제가 다 암송하고 또 그 외의 수많은 말씀을 알면서 한 번 얻은 영생은 절대로 빼앗기지 않는구나! 이런 믿음을 갖게 되었어요. 그러고 나서 2012년이 될 때까지 성경을 많이 읽을 때는 1년에 3~4번, 또 1년에 1~2번 이상은 늘 통독하고 성경 암송도 열심히 했기 때문에 아마 609절에서 1,009절 정도를 암송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러니까 성경에 나와 있는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일반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말씀들 상당수는 다 암송했습니다. 그중 ‘한 번 구원은 빼앗기지 않는다.’에 관한 근거 구절로 암송했던 것만 해도 한 30~49절 정도였기 때문에 구원은 결코, 뺏기지 않는다는 그런 생각을 아주 단단하게 가지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내비게이터 선교회에서 가장 많이 한 성경 공부가 로마서인데 로마서는 매년 한 번씩 다시 리뷰하면서 공부했기 때문에 25회 이상, 아마 성경을 배우기도 하고 가르치기도 했고 그 외 요한복음, 히브리서, 빌립보서 등등의 말씀과 또 구약의 창세기, 이사야, 사무엘 상하 등등 여러 말씀을 많이 여러 차례 공부했죠. 그리고 나름대로 사관학교에 와서도 생도들한테 전도하고, 가르치고, 또 주말에는 서울대학교에 가서 거기 학생들을 전도하고, 가르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하는 일이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고 구원의 확신을 갖게 도와주는, 그런 귀한 사역이라고 나름대로는 생각하면서 살다가 2012년도 5월에 하나님의 방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간증문이 2012년 8월에 제가 다른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글입니다. 하나님이 찾아오시고, 3개월 후에 쓴 글이라서 지금 우리 영성 학교의 어떤 가르침을 아직 받기 전이었기 때문에 약간 어색할 수 있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그 당시 저한테 해주셨던 말씀들이라서 쭉 한번 읽겠습니다.
주일에 함께 성경 공부하면서 가르치는 한 형제를 위해 다음날인 월요일 밤에 금식하면서 주님께 간구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1대1로 성경을 가르친 그 학생은 어린 시절부터 믿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습니다. 이 학생의 부모님도 내비게이터 선교회 스태프 간사였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대학교에 갈 때까지 예수님 영접 기도를 여러 번 했던 형제였는데, 문제는 이 형제에게 그 당시 제 기준으로 볼 때도 구원이 없었습니다. 그의 인격에서도 또 그가 살아가는 삶의 동기도 하나님 나라를 향해 살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 그런 상태였습니다. 형제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는 영접 기도하고 지옥 안 가는 것으로 만족해요. 저는 부모님처럼 예수님께 헌신하며 살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천국 가서 상급 받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어요. 그냥 지옥만 안 가면 돼요.” 그 형제가 저한테 성경을 공부하는 동안 반복적으로 했던 이야기입니다. “지옥 안 가기만 하면 돼요. 천국 상금, 하나님 나라, 아무 관심 없어요. 지옥만 피할 수 있는 복음을 가르쳐 주세요.” 이게 그 형제의 마음이었죠. 이런 마음으로 영접 기도를 100번 했다고 한들 그것이 구원받는 믿음일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이런 마음으로 영접 기도한 사람이 구원받는다면 예수님께 찾아왔던 부자 청년은 아마 억울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주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는데 “주님, 이 형제가 어떻게 해야 정말 거듭날 수 있을까요? 하나님, 저에게 말씀을 주셔서 이 형제가 자신의 죄를 직면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성령님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했는데 그날 밤에 주님께서 저에게 말씀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귀로 들리는 소리가 아니었고 제 영혼 깊은 곳에서 순간순간 알게 되는 그런 음성이었습니다. 주님의 질문이 시작됐습니다.
하나님: 너는 구원 받았느냐?
수석 코치: 예.
하나님: 문제는 너다. 너는 지금 지옥문 앞에 있다.
수석 코치: 주님, 저는 거듭난 지가 20년이 더 지났고 구원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회개하여라. 깊이 회개하여라. 너는 지금 이대로는 지옥에 갈 것이다. 계시록 3장 5절을 읽어라.
계시록 3장 5절 말씀을 찾아보았습니다.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여기에서 이기는 자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겠다는 말씀이 제 마음에 아주 깊이 들어왔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이기지 못하는 자는 생명책에서 이름을 지우겠다는 뜻이 아닌가 하는 것이죠.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다는 것이 과연 사실일까? 지금까지 나는 한번 얻은 것은 절대로 빼앗기지 않는다는 말씀, 그런 종류의 말씀만 뽑아서 30~49절을 암송하고 있는데,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다는 말씀을 나는 왜 늘 이렇게 간과하고 지나갔을까? 그날부터 3~4일 동안 신약을 마태복음부터 계시록까지 다시 읽었습니다. 성경 구절 하나하나에 면밀하게 줄을 그어가면서 읽으며 내가 암송하고 있던 말씀과 반대되는 수많은 말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엄청나게 많은 말씀에 새롭게 눈이 떠졌는데 그중에 몇 구절에 대해 주님께 여쭈었던 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 말씀은 제가 암송하고 있는 말씀이었기 때문에 주님께 설명해 달라고 요청을 드렸습니다. 이 말씀에서 믿는 자는 이미 구원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고, 신분의 변화가 완전히 일어났다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도 구원이 빼앗길 수 있습니까? 라는 취지의 질문을 드렸습니다. 주님은 요한복음 5장 24절 밑에 있는 29절을 읽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주님의 심판은 행한 대로 이루어진다는 취지의 말씀으로 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내가 주관적으로 영접 기도했다거나 24절 말씀을 암송하고 있다고 해서 심판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행한 그것을 믿음으로 보신다고 하셨습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나올 것이고,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그다음에 제가 드린 질문은 요한복음 10장 28절, 29절,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말씀입니다. 하나님 한번 얻은 구원은 하나님이 내 손을 잡고 있기 때문에 빼앗기지 않는다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예수님의 손과 아버지의 손이 동시에 저를 붙들고 있기 때문에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다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주님은 바로 앞에 있는 요한복음 10장 27절을 읽으라고 하셨습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빼앗기지 않는 구원에 대한 약속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는 자, 하나님이 그들을 알고 있으시며 그들은 하나님을 따라 순종하고 있는 자들, 바로 그들에게 준 약속이라는 말씀입니다. “나의 양이 되어서 내 음성을 듣고, 내 말을 듣고 따르며 순종하는 자들에게 준 약속이다. 순종과 관계없이 주관적인 믿음에 관한 것이 아니다.”라고 답하셨습니다.
세 번째로, 제가 드린 질문은 요한일서 5장 12절, 13절 말씀입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내가 하나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함이라.” 아들을 모신 자, 영접한 자, 나에게는 영생이 있고 구원을 확신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려고 성경을 기록했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렇다면 나에게 구원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는데, 나에게 구원이 있는 것 아닙니까? 라고 여쭈었습니다. 주님은 요한일서 앞에 나와 있는 1장에서 4장까지를 전부 다시 읽으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모신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하나님을 영접한 자가 어떤 자인지, 1장에서 4장까지 밝히 기록해 놓았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그중에 몇 개 발췌한 내용입니다.
1장 6절,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나는 스스로 하나님과 사귀는 믿음이 있다고 말하는데 실상 죄를 짓고 있다면, 어둠 가운데 행하고 있다면, 그는 거짓말이다. 예수님은 순종의 행함과 동떨어진 믿음은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하나님과 친밀한 사귐을 가지고 있다고 아무리 자기가 이야기하더라도 실제 삶에서 어둠 가운데 행하고 있다면 그는 거짓말쟁이요, 진리를 행하는 자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1장 7절,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우리는 예수 피로 내가 영접 기도하는 순간 나의 과거, 현재, 미래의 죄까지 다 씻음을 받았다고 했는데 예수님은 이 말씀에서 내가 빛 가운데 행하고 있을 때만 예수 피는 나에게 유효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하면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릴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2장 4절로 6절 말씀,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이게 믿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예수 안에 살고 있다. 예수님이 내 안에, 내가 예수님이 안에 있다고 스스로 이야기하면서 주님의 계명 말씀은 지키지 않는 자는 거짓말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의 안에 살고 있다면,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함으로 나타낸다는 것이 2장 말씀입니다. 2장 9절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는 바꿔 말하면 예수님께 구원받았다고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형제를 미워하는 것만으로도 내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에서 탈락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장 17절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영생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에게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에는 오직 믿음만으로 얻는 구원에 대한 말씀이 수없이 나와 있지만, 요한일서는 요한복음에 나와 있는 그 믿음의 내용의 실제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해석해 주고 있습니다.
3장 15절,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교회에서, 혹은 가족 안에서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다면 살인이라고 예수님이 진단하시고 살인하는 자에게는 영생이 없다고 단언하십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구원받은 게 아닌 상태입니다. 이게 성경의 진단이었습니다. 미워하면서도 내가 영접 기도를 했기 때문에 구원받는다. 누가 죽도록 싫은 데도 나는 영접 기도를 했기 때문에 구원받는다. 그런 일은 없다는 것이지요. 미워하고 있다면 나는 살인하고 있는 자이며 살인한 자에게는 영생이 그 안에 없다는 것이 5장 1절 말씀에도 나옵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을 때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난 거듭난 자인데 어떻게 입증되냐면 낳으신 이이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그에게서 난자, 하나님의 자녀 된 형제를 사랑함으로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낳았다는 사실을 입증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데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 영혼들, 사람은 사랑하지 않는다. 이것은 이율배반이다. 그런 믿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이런 말씀을 쭉 읽게 하신 이후, 하나님의 약속은 위의 말씀들처럼 빛 된 하나님의 자녀로 순종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자에게 주신 영생의 약속 말씀이며 믿음이란 삶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16절 말씀을 제가 또 여쭙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16절,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이 말씀을 여쭈었습니다. 갈라디아서 전체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얻는 구원이라는 주제로 기록돼 있습니다. 그중에 한 말씀이 2장 16절 말씀이죠. 예수님께서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율법의 행위를 가르친다면 그것은 저주받은 복음이라고 갈라디아서에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누군가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도 저주받을지어다 다른 복음은 없나니 오직 예수 믿는 믿음뿐이다. 율법의 행위가 우리의 구원을 입증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거든요. 사실은 그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지금 예수님이 위에서 하시는 이런 말씀들은 다 행위하고 맞닿아 있는 것 아닙니까? 라고 그 당시 제가 예수님께 질문을 드린 겁니다. 그때 주님의 대답이 같은 갈라디아서 5장 16절로 21절 말씀을 읽으라고 하시며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이 머물러서는 안 되는 삶이 나온다. 그런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9절 이후 말씀입니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을 받지 못할 것이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말씀하셨지만, 자기의 죄를 떠나지 않고 옛 삶, 하나님 믿기 전 옛 생활, 죄악 된 삶을 그대로 붙들고 지속하고 있는 자는 절대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같은 갈라디아서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대교회는 이 5장 16절을 아예 가르치지도 않아요. 이런 내용은 아예 언급도 하지 않습니다. 앞부분 “율법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이것만 계속 반복해서 가르쳤고 저도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수석 코치: 주님, 행위 구원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하나님: 아니다. 첫 번째, 나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삶이 마귀의 종이 된 삶이며 마귀와 결혼하고 마귀를 사랑한 삶이며 그 끝이 지옥의 불 심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두 번째, 이 죄악 된 자를 구속하기 위하여 내가 십자가에 피 흘린 사실을 믿고 오직 이 피로만 죄 씻음을 받음을 믿고 철저히 회개하는 것이다. 세 번째, 이제 마귀와의 혼인 관계를 끊고 나의 신부가 되기로 결단하는 것이다. 나를 영접한다는 말의 의미는 나와 결혼하는 것이다. 네 번째, 나와는 법적인 결혼식을 하고서 실제로는 죄 가운데 머문다면 이것은 날마다 마귀와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삶의 돌이킴이 없이 죄 안에 거하면서 구원받았다고 확신하는 자들은 마지막 날에 불륜 현장에서 벌거벗은 채 본 남편에게 발견된 여인의 신세가 될 것이다. 그런 자들을 나는 모른다고 할 것이다.
이것이 주님의 대답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제가 한 번 얻은 구원으로 영원히 빼앗기지 않으며 설령 내가 죄를 좀 짓는다 하더라도 그 죄가 나의 이 구원을 빼앗아 갈 수는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주님은 그렇게 살다가 나를 만날 때는 불륜 현장에서 남편에게 들킨 여자와 똑같은 신세가 될 것이고, 나는 그들을 모른다고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현대 교인들 대부분이 바로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법적인 결혼은 예수님하고 했다고 생각합니다. 영접 기도도 공적으로 했고, 공적인 세례도 받았고,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라고 공적인 선포도 했지만, 실상 일상의 삶은 마귀와 늘 불륜 관계 속에 있는 채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크리스천 대부분의 현실이고 저 또한 그러했습니다. 그때 저는 주님께 또 항변합니다.
수석 코치: 주님, 하지만 제가 진심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을 때 한 번으로 완전한 제사를 드리신 주님께서 저의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까지 다 용서하신 것이 아니십니까? 최초 영접할 때 회개가 분명하고 진심이었다면 설령 지금 죄짓고 회개하지 않는 것이 구원에 영향을 줄 수 없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 사망 사고가 절대 일어나지 않는 도로에 사망 주의 표지판을 누가 세우겠느냐? 30센티미터 깊이의 그 얕은 도랑에 누가 익사 주의 표지판을 세우겠느냐? 성경 말씀에 그토록 회개하지 않으면 구원받은 자라도 멸망할 것이라 이야기하였고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것이라 말하였는데 너희는 내가 절대로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경고하고 있다고 일컫느냐?
현대교회가 가르치고 있는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것이 바로 주님의 경고 표지판들을 전부 다 무시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죠. 주님께서는 성경 안에 수많은 경고 표지판을 세워놓고 이대로 살면 지옥 간다. 이대로 살면 망한다. 돌이켜야 한다. 회개해야 한다. 이런 말씀의 경고판들을 여기저기 세워 놓았고 특히 계시록의 일곱 교회를 향해서는 주님께서 너희가 회개하지 않으면 촛대를 옮긴다는 말씀을 통해서 그들을 버리시겠다는 취지의 말씀을 많이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절대로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대한 주님의 경고 말씀이다. 그냥 자식들한테 너 또 그러면 죽어! 한다고 해서 죽이는 부모가 어디 있냐? 그냥 그렇게 하지 말라고 사랑으로 너그럽게 ‘하면 죽어.’하는 것이지, 진짜 죽이려고 하는 거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성경에 있는 경고문에 대해 현대교회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은 ‘그게 실제로 그렇게 된다는 게 아니고 하지 말라고 한 강한 경고다. 그 정도로 받아들이면 된다.’ 이렇게 해석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해석에 대해서 너희가 나를 만홀히 여기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죽지도 않을 곳에 사망 주의 표지판을 세우겠냐? 얕은 도랑에, 누가 빠져도 죽지 않는 곳에 익사 주의 표지판을 세웠겠느냐? 너희는 내가 그렇게 했다고 지금 내 말을 만홀히 일컫고 있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베드로후서 3장 9절 말씀을 주셨습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이 말씀을 받은 성도들은 이미 나를 믿고서 극심한 고난의 때를 인내하며 참고 있는 자들이다. 그런 그들이라도 항상 회개하며 깨어있지 않으면 멸망에 이를 수 있다. 작은 죄들을 용납하면서 점점 양심이 둔해져 가는 자들, 참된 회개를 잊은 채로 구원받았다는 스스로의 확신에 안주하는 자들은 점점 양심에 화인 맞는다. 마귀는 구원받은 성도라도 삼키려고 두루 다니며 찾고 있다. 마귀의 전략은 작은 죄로부터 시작해서 점점 큰 죄로 이끌어가면서 회개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위선 속에 빠져든다. 그리고 멸망할 것이다. 바로 현재 너처럼 하면서 지옥 간다는 사실을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회개하라. 회개하라. 철저히 회개하라. 아담과 하와가 100가지 죄를 지어 사망이 들어온 것이 아니다. 단 하나의 불순종이 온 인류에게 사망을 가져왔다. 지금부터 너의 죄를 낱낱이 알려주겠다.
첫 번째, 음행의 죄.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는 간음이라고 나는 가르쳤다. 너는 고등학교 시절에 성경을 처음 읽을 때 그런 일로 인하여 고통스러워하며 회개하였다. 그런데 지금 너는 인터넷에서 그런 것을 보면서, 그런 것을 접하면서 회개하고 있느냐? 정말로 다윗의 회개처럼 회개하고 돌이켰느냐? 간음하는 자는 지옥에 간다.
두 번째, 실제 간음의 죄. 너는 결혼하기 전에 창녀를 찾아갔다. 너의 나이 20대였다. 그것은 나중에 너와 결혼한 너의 아내에게 가장 큰 죄를 지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결혼 후에도 같은 죄를 지었다. 다윗처럼 내 앞에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으면 지옥에 갈 것이다.
세 번째, 거짓말의 죄. 계시록 21장 8절,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라.” 큰 거짓말, 작은 거짓말 차별이 없다. 위기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스스로 ‘화이트’라고 변명하면서 소소한 거짓말들을 하고서 회개했느냐? 너는 작은 거짓말들은 죄로도 여기지 않지 않았느냐? 심지어 사역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거짓말하지 않았느냐?
네 번째, 도둑질의 죄. 너는 왜 사무실에 있는 A4 용지를 집에 가져다 쓰고 있느냐? 불법 복제 영화나 소프트웨어를 쓰는 것은 장물을 구입한 것이다. 도둑질하고도 회개하지 않는 자는 지옥에 갈 것이다.
사무실에 A4 용지가 박스로 늘 보급이 되잖아요. 그러면 다 쓰지도 못하거든요. 한 박스 있으면 뽑아봐야 얼마나 뽑아 쓰겠어요. 그러니까 집에 그냥 1~2권 가져다 집에서 늘 썼어요. 그리고 학용품, 볼펜이나 이런 것들도 뭐 사무실에서 쓰다가 집에 가져가서 그냥 썼거든요. 양심의 가책, 전혀 없었습니다. 게다가 하나님께서는 그때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내가 너한테 종이 살 돈을 안 주더냐?”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게 얼마라고 남으면 반납해야지, 왜 그걸 집에 가져다 쓰고 있느냐? 그런 취지로 말씀하셨습니다. 애들 어릴 때 만화영화 CD 이런 거, 서울 남부터미널 앞에 보면 5천 원에 3장, 이렇게 복사해서 엄청 많이 팔아서 그거 가져다가 맨날 애들 보여주고 했거든요. 사실은 주님이 안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런 것을 다 해결하라고 하셨습니다.
네 번째, 교만의 죄. 너는 내가 전도하고, 양육한 영혼으로 인하여 나에게 영광 돌리지 아니하고 너의 열매인 것처럼 자기를 자랑하였다. 사역에 대해서도 동기가 자기 자랑이 된 것에 대해서 하나님이 굉장히 싫어하셨습니다. 나의 십자가로 이룬 구속 사역인데 나의 영광을 왜 도둑질하였느냐? 다른 성도들보다 성경 말씀 많이 안다고 생각하며 교만의 죄를 저질렀다. 교만한 자는 내가 미워하는 자이며 멸망하게 될 것이다.
다섯 째번 위선의 죄. 바리새인처럼 너는 이토록 많은 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거만하게도 내 앞에 나와 기도할 때 “하나님, 저를 복음의 일꾼으로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를 이 죄악 된 세상에서 구원하사 거룩한 일꾼으로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라고 내게 기도하였다. 너의 역겨운 기도가 나를 고통스럽게 하였다. 너의 회개하지 아니하는 신념이 나에게 고통이었다.
회개하라. 회개하라. 너의 어떤 죄라도 나의 보혈의 공로로 덮어 씻음을 받지 못할 죄가 없다. 나를 영접하기 전에 모든 죄가 진실한 회개와 영접으로 씻음을 받음같이 나를 믿은 이후에도 회개하는 자만이 날마다의 죄를 씻음 받을 것이며, 생명의 성령님 법안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 것이다. 나의 신부야, 거룩하라. 현재의 너는 나와 약혼한 상태이다. 천국이 너에게 약속이 되었지만, 혼인 잔치가 이루어지는 날까지 거룩하라. 혼인 잔치는 내가 너를 부르는 날, 나팔 소리와 함께 이루어질 것이다. 그날이 실제 결혼 잔치이다. 그날까지 날마다 목숨 걸고 회개하라. 그리고 깨끗한 행실로 세마포 옷을 입으라. 나의 보혈은 어떤 죄라도 진실되게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를 깨끗하게 한다. 이런 말씀을 주셨습니다.
2012년 5월 말에 이렇게 말씀하셔서 이 일이 있고 1주일인가 2주일 후에 제가 내비게이터 선교회를 떠나게 됐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말씀을 듣고서도 제가 그동안 20 몇 년간 배웠던 내용을 더 가르치는 것은 완전한 위선이고, 완전히 가짜 복음을 가르치는 것이었기 때문에 더 이상 내비게이터 선교회에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내용을 제 위에 있는 코치들, 리더들에게 보냈습니다만, 아무도 받아들이지 않았고 김재철 형제가 지금 약간 맛이 가서 이상해졌다고 판단했습니다. 제가 이끌고 있었던 팀 형제들에게 이 내용을 그대로 다 읽어줄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에서 회개하지 않으면 우리도 망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더니, 제가 전도하고 10년, 15년 가르쳤던 형제들이지만, 1명도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그런 식이면 누가 구원받냐? 그런 기준이면 구원받을 사람이 어디 있냐? 복음이라는 게 은혜 아니냐? 은혜의 복음은 어디로 사라졌냐? 그러면서 반발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이곳에 있을 수가 없구나. 더 이상 여기서는 가르칠 수가 없구나. 해서 선교회를 나왔습니다.
그리고 신 목사님 만나 뵐 때까지 2년간 우리 집에서 우리 가정과 또 한 가정, 11명 정도가 가정 예배를 드리다가 이 일이 있고 2년 후, 2014년 8월에 신 목사님이 대전에 영성 학교를 시작하시기 전에 찾아뵙고 있었던 일들을 쭉 말씀드렸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일이네요. 12년 전에 있었던 일인데 읽은 이유는 어제 목사님께서 설교하셨던 내용처럼 구원받는 길을 끝까지 간다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한때 내가 진심으로 믿었다 하더라도, 그리고 그 회심이 정말 진심의 회심이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끝까지 주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7장에서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 거절당하는 이 사람들은 사역자들입니다. 평신도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능력을 행하고, 병을 고치고, 예언하는, 선지자 노릇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다 사역자들입니다. 그 사역자도 그냥 말만 하는 사역자들이 아니고 심지어 성령의 능력을 행했던 사역자들입니다. 이런 이들도 마지막 날에 주님께 거절당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예수님은 우리에게 경고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어떤 죄인이라도 회개만 하면 죄 사함을 받고, 씻음을 받아 구원받을 길을 예수님이 여셨다는 이 놀라운 복음이 있지만, 실상 끝까지, 혼인 잔치 자리까지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신부가 되어 입성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제가 이 기도 훈련을 통해 결단코 교만해지지 않게 도와주시옵소서. 된 줄로 여기는 마음, 그런 마음 갖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날마다 회개만 해도 죄 씻음을 받게 되는데, 날마다 정직한 회개만 해도 천국 갈 수 있잖아요. 그런데 된 줄로 여기며 내게 나타난 능력을 마치 나의 능력인 것처럼 자랑한다거나 자기 공로나 자기 의나 자기 영광으로 삼다가는 주님께 거절당합니다.
예수님께 온 많은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라고 말씀하세요. 모르겠다. 너희를 모른다. 이렇게 말씀하세요. 거절당해요.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어요. 예수님이 모르는데 어떻게 천국에 들어갑니까? 생명책에 니 이름이 없다. 하시거든요. 내가 너를 모른다는 것은 생명책에 너의 이름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꼭 아신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도 이 사람을 알아주시느니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도 이 사람을 알아주시느니라. 결국,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는 것이 핵심입니다. 우리가 기도 훈련을 통해서 무슨 사람이 되려고 하냐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 사람만 하나님이 알아주신다 그랬습니다.
기도 훈련 열심히 하면 능력도 나타나고 할 거예요. 여러분이 다 능력의 사람이 되고 또 내 성품도 변화되어서 거룩한 성품으로 바뀐 것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그것을 자랑하거나, 그것으로 자기 만족에 빠지면 안 됩니다. 내가 변화되어도, 하나님께서 내게 오셔서 내 성품을 이렇게 바꿔주시니 주님의 은혜입니다. 주님 아니라면 저는 자기 잘난 맛에 거만 떨며 살다가 지옥 갈 수밖에 없었는데 제게 오셔서 저의 성품을 두들겨 깨뜨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도 주님 이 본성이라는 게 살아 있어서 이따금씩 불쑥불쑥 올라와요. 주님 도와주세요. 제 본성에 지배되지 않고 성령에 지배되는 인격으로 남은 생애를 계속 살 수 있도록 주님 도와주시옵소서. 이런 겸손함으로, 주님 역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저 같은 인격에도 찾아오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립니다. 이 사랑의 기도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이고, 사랑하고자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알아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도 이 사람을 알아주시느니라.
거절당하지 않는 비결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있습니다. 사랑함으로 순종하고, 사랑함으로 사역하고, 사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역도 커지면 이게 다 일입니다. 사실 많은 사람을 돌본다는 건 굉장히 큰일입니다.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하고, 상담해야 하고, 내 열정을 쏟아야 하고, 자기 시간도 사라지고, 나중에 엄청 피곤한 일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사역도 ‘어쩔 수 없이’가 아니라 주님이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생명 주심으로 나를 사랑하여 주셨사오니 나도 다른 영혼을 위하여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 내 생명을 나누는 자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이게 동기가 되어야만 사랑하는 사역을 계속할 수가 있습니다. 영혼을 사랑해서, 그를 아껴서, 그의 구원을 위하여 참 목자의 심정으로 사랑할 때, 사역을 통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사역을 통해 영혼을 깊이 사랑하는 것을 배워 나가게 됩니다. 사랑하는 자만이 주님이 알아주시는 자가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 대전 식구들도 어제 목사님 주셨던 말씀을 기억하면서 구원의 길이 참으로 쉽지 않다, 좁은 길이다. 예수님은 누누이 말씀하셨고 좁은 길이요, 좁은 문이라 그러셨습니다. 가는 길도 협착하고 들어가는 문도 바늘구멍처럼 작다고 말씀하십니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그러셨습니다. 그보다 더 어렵다고 그러셨죠. 다 불가능한 이야기 아닙니까? 근데 어떻게 우리가 갈 수 있습니까? 오직 성령의 도우심만으로, 오직 성령님이 오셔서 우리를 인도하실 때만 우리가 이 좁은 길을 걸어갈 수 있고 좁은 문을 통과하여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겸손함을 유지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신다고 그랬잖아요. 그러니 교만의 빛이 조금이라도 나온다면 지옥에 간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 겸손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어떤 것도 내 영광으로 잡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게 있는 전부가 다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이것을 인정해 드리는 게 아니라 이것은 실제입니다. 이걸 실제로 인정해야만 겸손한 겁니다. 내 건강도, 내 돈도, 내게 주어진 모든 것도 다 하나님 것입니다. 하나님 것입니다. 나는 잠시 맡은 청지기에 불과합니다. 주님 청지기로 살아가게 도와주시옵소서. 이 겸손한 태도로 주님을 구하면서, 사랑하면서 살아간다면 이 좁은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우리 대전 식구가 다 끝까지 천국 가는 식구들이 되길 원합니다. 우리 천국 가십시다. 이 기도 하다가 지옥 간다면 그보다 더 슬픈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루에 3~4시간씩 기도하다가 교만해서 지옥 간다면 그건 진짜 저주죠.
현대 교인들은 사실 주님과 함께 있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신부가 아닙니다. 결혼이란 사랑해서 하는 거잖아요. 같이 살려고, 같이 있는 게 좋은 것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뭐냐고 물으면 같이 있는 게 즐거운 것이라고 답할 수 있습니다. 함께 있고 싶은 겁니다. 함께 있는 게 기쁨이 되는 것, 그게 사랑입니다. 기도가 바로 그거죠.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게 즐거운 거죠. ‘기도를 내가 3시간 했어요.’가 아니죠. 하나님과 같이 있는 시간이 즐겁습니다. 주님을 바라보는 게 행복합니다. 주님을 앙망하는 것이 최고의 기쁨입니다. 이것이 기도하는 목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셔서 내게 오시고 내 안에 거하시면서 그분의 능력을 나타내 주시는 것이지요.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므로 이 기도를 통해서 성령님이 찾아오시면 “높은 산이 거친 들이 궁궐이나 초막이나 내 주위에 주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이 가사가 내 것이 됩니다. 어디에 있든지, 내가 돈을 많이 벌고 있든지 적게 벌고 있든지, 몸이 어디 조금 아픈 데가 있든지 말든지, 사실 그것들도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이 됩니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궁궐이나 초막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이 마음으로 기도하기를 즐거워하는 사람이 천국 백성입니다. 그리고 주님도 이 사람을 기뻐하시고 만나기를 기다리십니다. 우리 식구들이 다 이렇게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천국 백성의 삶을 이 땅에서 살고, 하늘나라에 가서도 주님의 그 사랑을 마음껏 누리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려고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사랑하고 계세요. 심지어 내가 죄 가운데 빠져 있을 그때도 사랑하셨어요. 돌아오기를 원하셨습니다. 역겹다고 말씀하실 때조차도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찾아와 주셔서 네가 너무 역겹더라 그 말씀을 해주신 겁니다. 사랑하세요. 너무너무 사랑하세요. 우리가 기도하려고 나온 걸 하나님은 너무나 기뻐하십니다.
세상에 빠져서 내 멋대로 내 육신의 소욕을 위해 나의 인생을 허비하면서 하나님 뜻에는 하나도 순종하는 것 없이 내 멋대로 살던 내 인생 전체가 허비였습니다. 낭비였어요. 그런데 이제 하나님, 정말 남은 생애만큼은 주님 사랑하다가, 주님 기뻐하다가, 주님 사랑하는 삶을 살다가, 주님께 사랑받으며 살다가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내 사랑하는 주님을 가까이 뵙게 되는 그 영광에 들어갈 수 있게 도와주세요. 이것이 우리가 기도하는 동기입니다. 그러면 주님도 우리를 사랑해 주시고, 기뻐하시고, 우리와 함께하시기를 즐거워하실 것입니다. 우리 대전 식구들이 다 이 하늘나라 백성이 되어서 어제 목사님이 가르치신 것처럼 천국 백성의 삶을 사십시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됩니다.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기도하면 됩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목적도 내가 시간 채워 나는 게 아니라 주님 부르는 게 너무 좋습니다. 그냥 주님하고 같이 있는 게 최고예요. 하나님,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좀 보게 해주세요.
사랑이라는 것이 상호적인 거거든요. 주님 사랑에 내가 눈에 떠져서 좀 보여야 해요. 깨달아져야지 나도 사랑할 마음이 생겨요. 그런데 지금은 내가 억지로 하지만, 하나님 제가 말씀 읽을 때, 기도할 때, 주님 사랑을 내게 부어주세요.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신 그 사랑이 얼마나 큰 사랑인지를, 그 높이와 넓이와 길이와 깊이를 깨닫게 도와주세요. 주님의 이 사랑의 깊이를 알게 해주세요. 그렇게 기도하면 주님이 도와주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기도하는 것도 즐겁고 모든 삶이 기쁨입니다. 살아있음이 하나님의 영광인 사람이 됩니다. 나 같은 존재가 살아서 호흡하고 있음이 하나님께 영광이 돼요. 누군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내가 대단한 거 안 해도 괜찮아요. 사실은 대단한 능력이 없어도 괜찮아요.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존재 하나가 하나님께 영광이고, 하나님께 기쁨이 됩니다. 우리가 다 그런 사람들이 되기를 소망하면서 이 기도 하십시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무조건 행복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뭘 해도 지옥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다 지옥이에요. 사랑하면 행복해요. 우리 식구들이 기도할 때 사랑으로 기도하니까 행복하잖아요. 아직 결과가 안 나왔어도 행복하잖아요. 하나님이 이루어 주실 걸 바라보는 믿음이 생기잖아요.
우리가 회개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런저런 죄를 깨닫게 하려고 말씀하셨지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게 죄의 본질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찬양하도록, 영광 돌리도록 지음을 받았는데 하나님 관심 없이 멋대로 산 것이 다 죄예요. 사실 나타난 것은 죄의 현상이고, 죄의 본질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귀의 품성이거든요. 마귀는 하나님께 쫓겨난 존재들이고 이 마귀와 똑같은 마음이 하나님과 같이 있는 걸 싫어하는 거예요. 이것이 마귀가 내 안에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 기도해서 우리 주님의 종들이 되십시다.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아~멘
너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애쓰셨습니다~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