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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에 걸린 나에게>
<서장>
너는 이런 사람이야.
너는 2005년 1월 25일에 태어났어.
이름은 강도윤이고, 사천에서 태어나서 마산으로 이사를 하였지.
뭐….
7살 때에 처음 안경을 썼고, 초등학생 때는 영재학급에 들어가서 수업을 받았어.
아니, 이런 건 됐고.
본격적으로 중2병이 시작될락 말락 하는 14살 때부터 네가 기억하면 돼.
잊어버렸을까 봐 다시 한번 말할게.
너는 2005년 1월생이야.
그때쯤이면 2090년인가? 넌 못해도 85세 할아버지야.
옆에 있는 간호사에게 듣기 싫다느니, 과자나 달라느니.
칭얼대지 않고 있길 바라.
네가 부모님을 부양해야 할 판에 지금 뭐 하는 거냐?
지금부터 네가 잊고 지내서는 안 될, 중요한 이야기들을 하나씩 말해주도록 할게.
옆 사람 책 읽어주는데 졸지 말고 들어.
1
<지금 죄송하다고 3번 말해>
너, 네가 14살 때 무슨 짓을 했는지 알면 깜짝 놀랄걸.
지금 인터넷에 나오는 뉴스 보이니?
학생들이 술을 마시다가, 담배를 피우다가 경찰에 적발되었다는 기사가 많이 있을 거야.
사람들은 우리나라엔 미래가 없다며 걱정하거나, 그 아이들을 문제아라고 부르면서 욕하고 있겠지.
그거, 네 14살 때에 모습이야.
엄마 아빠는 모르실 거야.
네가 그러고 놀았던 거 말이야.
(1) 14살 때의 너는 너무도 철이 없었어.
학교에서 너를 소개할 때 특기, 취미가 모두 게임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말이야.
못 믿겠으면 웹사이트에 op.gg를 친 뒤 ‘강도땡’을 검색해봐.
네가 14살 때였던 2018년, ‘시즌 8’이라고 적힌 곳에 몇 시간인지 다 적혀있어.
그 시간 동안 게임도 했지만 반대로 부모님과 다툼도 잦았지.
그때마다 항상 너는 제발 내버려 두라고 말했어.
하지만 넌 단순히 게임만 한 게 아니었어.
용돈을 받으면 꼬박꼬박 게임에 2만 원씩은 돈을 썼지.
나중엔 게임으로 남는 게 하나도 없는데 말이야. 그러나 멈추지도 못했어.
너는 일명 ‘쇼핑 중독’이라고 불리는 병에 걸려 버렸던 거야.
그렇다고 다른 곳에서 지출을 줄이지도 않았어.
특히나 친구와 놀 때는 엄마한테서 돈을 타갔지.
금전적으로 헤펐었어.
(2) 그러다가 엄마와 싸우면, 너는 가출을 해서 피시방에 틀어박혔어.
그리고 친구들이 오면 나가서 놀다가 가족들에 대한 험담을 일삼았지.
그러다 보면 그 순간만큼은 기뻤고, 재미있었어.
네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생긴 셈이 되었으니까.
그런 일이 잦아져서 더욱 친구를 찾게 되고, 가족과는 더욱더 멀어지게 되었지.
어느 날, 부모님의 귀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이 들어갔어.
그날 너의 엄마는 엄청나게 우셨어.
그때 너는 폭언을 했지.
네가 평생 후회할 말을 말이야.
“이럴 거면 왜 낳았어, 그냥 버리지 왜 키웠냐고!”
그러고 집을 나간 적도 있었단다.
(3) 너는 어릴 때 담배 냄새를 아주 싫어했었어.
아빠가 담배를 피우고 돌아오실 때면 담배 좀 끊으라고 말한 적도 있었지.
네 친구가 담배 피우는 걸 알았을 때도 담배 좀 끊으라고 말을 했어.
그러자 친구가 말했지.
“왜, 너는 안 피우냐?”
“그걸 왜 펴, 몸에도 안 좋은 거”
“야, 한번 펴봐. 스트레스 직빵이야.”
“그래?”
그 호기심 때문에, 너는 담배를 입에 댔어.
그때부터 조금씩 외박을 일삼으면서 좀 논다고 하는 친구들과 놀기 시작했어.
농구를 하러 나간다곤 하고 피시방에서 친구를 만나 다른 곳으로 놀러 나가기도 했어.
그래놓고 엄마가 전화하면 받지 않았지.
지금 당장 죄송하다고 세 번 말해.
2
<너…. 여행 한번 안 갈래?>
2018년 가을, 너는 엄마로부터 충격적인 질문을 듣게 되었어.
“세계여행 갔다 올래?”
너는 절대로 안 간다고, 싫다고 했어.
너는 한국에 있어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어.
그때의 넌 이미 세상의 중심이 너였고, 많은 학생이 부러워하는 영웅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엄마는 더 이상 질문하지 않으셨어.
‘다시는 안 물어보겠지?’ 네가 한 생각이었어.
그러나 일주일 뒤, 엄마가 다시 한번 너에게 물어보셨어.
이번엔 조금 강압적이게 말씀하셨지.
“세계여행 다녀와.”
넌 따졌어.
안 간다고 했는데 왜 그러냐고, 안 간다고, 대체 왜 날 그런 곳에 보내냐고 말이야. 그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어.
“너 하는 꼬락서니를 봐라. 500만 원 입금했으니, 갔다 와. 안 가면 500만 원 날리니까. 아깝잖아?”
돈은 아깝지만, 가기 싫은 게 먼저였어.
네가 왜 가야 하는지도 몰랐어.
그때부터 조금씩 바빠지기 시작했어.
옷도 사러 다니고, 학교 휴학 신청도 했지.
그러다가 상담 날이 되었단다.
양주에서 상담했는데, 양주에 가는 내내 왜 가냐고, 진짜 싫다고 또 싸웠어.
그러다가 양주에 도착했지.
양주에 도착하니 써니쌤과 대장님이 테이블에 앉아 계셨어.
아, 모르려나? 그분들은 너랑 같이 여행한 선생님이자 총 책임자셔.
처음엔 넌 고개를 푹 숙이고 절대 가기 싫다고 말했어.
네가 댄 핑계는 배구였어.
너, 배구부원이었잖아.
그러자 대장님이 물어보셨어.
“너는 배구가 좋냐, 배구를 같이 하는 친구들이 좋냐?”
너는 대답하지 못했어.
친구가 좋았거든.
그 마음을 읽기라도 하듯, 대장님께서 말씀하셨었어.
“친구가 좋다면, 너는 한국에 남을 이유가 없다.”
너는 어느새 고개를 들고 대장님의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하게 되었었지.
대장님의 눈은 맑았어.
네가 지금까지 봤던 사람들 중에 제일 말이야.
대장님의 눈을 본 후, 무슨 자신감인진 모르겠지만 뭔가에 이끌리듯, “여행, 가겠습니다.”라고 말하게 되었어.
그런데 여기서 더 큰 문제가 일어나.
상담은 잘 마쳤어. 하지만 여행을 원래 가기 싫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마음이 변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어.
집에 가서 너는 또다시 부모님에게 가기 싫다고 떼를 썼어.
그때는 그대로 가면 정말로 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었지.
더더욱 게임을 찾았고, 친구를 찾았어.
가출하기도 했어.
여행은 결국 네 말로 인해 결정되었는데, 이상하리만큼 억울했어.
왜 너만 이런 삶을 살아야 하고, 왜 너에게만 여행을 강요하는지 몰랐어.
그러다가 전체가 모이는 날이 되었어.
엄마는 너에게 공연을 하나 준비해야 한다고 하셨었지.
뭔 이런 곳이 다 있나 싶었어.
언제나처럼 이름 말하고 취미와 특기를 말하면 끝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라니.
싫었어.
근데 하지 않으면 5만 원을 내야 했었어.
너는 5만 원 내기는 너무 싫었어.
모르는 사람에게 돈을 준다는 느낌이었거든.
거기에다 설상가상으로 자기소개 시간에 엄마가,
“우리 아들은 랩을 준비했습니다!” 하며 사람들의 기대치를 높여 버린 거야.
그렇게 만들었는데 아무것도 안 하긴 뭐했지만 준비한 게 없어서 아는 노래 부르고 들어갔지.
그리고 집에 갔어.
1주일 후에 또 그 사람들을 만날 걸 생각하니까 짜증 났어.
너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안 좋아했거든.
그래서 놀 때도 항상 친한 사람들이랑만 놀았었어.
합숙 날에는 혼자 버스를 타고 양주터미널에 가서 대장님을 기다렸어.
양주에 도착하니 그때 본 사람들이 모여 있었지.
자기소개 시간에 다들 자신의 매력을 보이는 시간을 가졌는데, 너는 무엇을 할지 몰랐어. 그래서 그냥 앉아서 말했지.
“저는 15살 강도윤이고, 마산에서 왔어요.”라고.
그랬더니 사람들이 수군댔어.
‘쟤가 15살이라고?’
‘와 완전 노안’
‘20살 일줄 알았는데’
그때 너 꽤 노안이었거든.
지금 얼굴을 어릴 때도 가지고 있었어.
덕분에 지금 동안이란 소리를 듣지 않니?
어쨌든, 그러고 앉으려고 하는데 써니쌤께서 다른 건 없냐고 물으셨어.
“저는 사람들을 잘 못 사귀어요, 그러니까 천천히 친해져요.”
네가 한 말이야.
그렇게 자기소개가 끝나고 너는 아래층 소파에 앉아 혼자 앉아 있었어.
그러자 써니쌤이 물어보셨지.
“친구들이랑 안 노니?”
“왜요?”
“아니, 첫날인데, 애들이랑 놀면서 친해져야지.”
“아까 말했듯이 전 사람들을 잘 못 사귀어요. 오늘은 혼자 있고 싶어요.”
“네가 사람들을 잘 못 사귀면 노력을 해야 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고 언제까지나 혼자 있을 순 없잖니? 1년 동안 있을 건데, 계속 그렇게 있으면 천천히 친해지지도 못해.”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다가 위층으로 올라갔어.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이랑 이야기를 섞진 않았어.
그렇게 의미 없는 시간을 보냈는데, 계속 위에 있던 건 밑에 있으면 또 한소리 들을까 봐서였어.
그런데 갑자기 민석이 형님이 탁구를 하자고 했었어.
탁구를 하다가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놀다 보니 어느샌가 편해졌지.
벌써 적응하기 시작한 거야.
그러다가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들려왔어.
그건 바로 일기를 써야 한다는 거였어.
여기서는 매일 일기를 써야 했지.
처음엔 어이가 없었어.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몰랐지.
얼른 반 페이지 대충 쓰고 자려고 했어.
다음 날 기상 시간은 7시였어.
집에서 한 번도 7시에 일어난 적이 없었어.
빨리 자고 싶은 마음에 대충대충 일기를 쓰고 잠을 청했지.
<이걸 왜 해야 하는데요?>
넌 언제나 불만이 많았어.
다음 날 일어나서 일기를 냈지만, 여전히 찜찜했지.
쓰기 싫었거든.
그런데 넌 또 다른 소식을 듣게 되었어.
여행을 떠나면 단어, 독해, 토론 같은 것도 해야 한다고.
짜증 났어.
너는 이러려고 여행을 간다고 한 것이 아니었는데 말이야.
이름만 하반하 세계여행학교고, 그냥 수용소 같았어.
학교보다도 싫었지.
그렇게 작년에 한 것들을 듣고 있을 때였어.
“아침밥 먹으러 오세요!”
누군가 소리쳤어.
넌 밑으로 내려갔지.
다들 돕는 분위기였지만 그냥 앉아 있었어.
밥을 먹을 땐 노래를 부르고 먹어야 했어.
지금 생각해보면 좋은 노래지만, 식전에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어.
기억나면 한번 불러봐.
“I say thanks to mother Gaya, I say thanks to father sun….”
기억 안 나겠구나.
어쨌든 노래뿐만이 아니고 다른 일도 해야 했어.
워커라고 해서, 설거지와 요리를 하는 거였는데 첫날에 설거지해야 했지.
워커라는 것을 하기 싫었지만 해야 하는 일이니까 했어.
워커를 하다가 갑자기 북을 치러 나오라고 해서 워커를 후딱 끝내고 빨리 북을 치러 갔어.
그때부터 새로운 것투성이였어.
하지만 한결같이 왜 해야 하는지 몰랐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찰나,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라고 호준이 형님이 물었어.
“나도 처음엔 못했어. 하다 보니까 재밌었지. 해봐, 뭐든 하면 할 수 있어. 자, 지금 잘해야 여행 가서 더 고생 안 한다?”
한참 북을 치다가 너는 호준이 형님에게 물었어.
“형님,”
“왜?”
“형님은 몇 번째 하반하 오는 거예요?”
“세 번째야,”
“왜 그렇게 하반하에 오는데요?”
“모르겠는데, 그냥 하다 보니까?”
이해할 수가 없었어.
그때의 너에겐 그것도 지옥이었는데, 여행 가면 더 지옥이라는 말을 듣고 나서부터 2년 차로 오는 사람들이 모두 이상하게 보였었어.
<말문이 트였다>
합숙 마지막 날까지 너는 해야 할 일만은 하고 살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하지는 않았어. 합숙 마지막 날은 부모님이 오셔서 북 치는 것을 보시는 날이었어.
근데 그날부터 너랑 이대로 지내기가 뭐하겠다.
생각했는지 다들 말을 걸기 시작했지.
넌 준원 형님과 친해졌었어. 별거 아닌 이야기였지만, 기뻤어.
언제나 너의 무서운 인상이나 말투로 인해 말을 안 거는 사람이 많았거든.
그때 말문이 트인 이유는 누군가와 친하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내가 신경 쓰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어.
너도 이제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놀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거야.
그렇게 이야기를 하던 중, 부모님들이 하나둘씩 도착하기 시작했어.
하반하 정기수에 처음 간 사람들은 다들 부모님을 만나러 간 게 보였어.
너도 마찬가지였지. 그런데 8기와 비밀병기를 간 사람들은 달랐어.
부모님들이 필요한 게 없으신지 물어보거나 커피를 내오는 학생들도 보였어.
그제야 너는 비로소 왜 3년 차까지나 다녔는지 알게 되었어.
자신이 변한다는 걸 실감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
네가 사람을 못 사귀었는데 이제는 네 의지로 친구를 만들 수 있다는 것, 네 의지로 다른 사람을 챙길 수 있는 것, 그런 것들이 다른 사람들을 하반하 2, 3년 차로 만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
너의 부모님은 좀 늦게 양주에 도착하신 편이었어.
집이 머시니까.
엄마는 오시자마자 너에게 물으셨어.
“어디 아픈 데는 없어? 힘들진 않고?”
너는 울음이 터질 뻔했어.
지금까지 속썩이면서 살았는데, 엄마는 너를 먼저 생각하셨어.
너는 울음을 참으면서 말했지.
“여기 오길 잘한 것 같아.”
그러나 너는 이미 써니쌤과의 상담을 마치고 나서 가겠다고 해놓고 삐뚤어진 적이 있어.
너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단다.
출정식 날에 네가 엄마에게 여기 오길 잘한 것 같다고 말했지만, 다시 한번 삐뚤어져 버린 거야.
넌 차에서 엄마와 대화를 했어.
“엄마,”
“왜?”
“하반하에 왜 가라고 했어?”
“너한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려고.”
“엄마,”
“응?”
“하반하는 이상해. 일기도 써야 하고 설거지도 해야 하고 나중에 여행 가면 단어랑 독해도 해야 한데.”
“그건 네가 원래 해야 하는 거야.”
“....”
대화는 그리 길지 않았어.
엄마는 곧 주무셨지만, 너는 아빠와 잡다한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어.
이제 일주일 남았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무거웠던 거지.
네가 어릴 때의 이야기를 했는데, 아빠는 너와 낚시를 간 것까지 기억하고 이야기하셨지.
너는 텐트에 있었고 아빠는 낚시하셨는데도, 아빠는 너와 함께한 것, 간 것, 본 것을 다 기억하고 계셨어.
집에 돌아가서, 습관적으로 컴퓨터를 켰어.
곧바로 게임을 시작해서 평소 함께 게임을 하던 친구들과 함께 날을 샜어.
그걸 본 엄마가 말씀하셨어.
“이제 여행 가려면 슬슬 끊어야 한다.”
그러면 너는 한결같이 대답했지.
“아니 곧 가는데 좀 내버려 둬!”
싸우진 않았지만, 엄마, 아빠의 마음은 산산조각이 나 있었을 거야.
합숙을 하고도 바뀌지 않은 너의 모습을 보고 한숨 쉬시지는 않았을까 한 번 생각해봐.
3
<새로운 세상으로>
3월 16일이 되었어.
너의 가족들은 인천공항으로 가기 위해 아침 일찍 출발했어.
전날 핸드폰을 하다가 늦게 잔 넌 차에 타자마자 잠이 들었어.
눈을 떠보니 공항 근처에 도착해 있었어.
이제 진짜로 가는구나 싶었지.
3월 17일의 아침이 밝았어.
너희 가족은 6시에 일어나서 공항으로 향했어.
공항에서 항상 하듯 티켓을 받고, 가방을 보냈어.
그런 뒤에 부모님에게 절을 하고 떠나는 행사를 시작했지.
억울하고 화났었지.
아까 말했듯이 왜 가는지 몰랐으니까.
출국 시간이 다가오고 엄마에게 가기 싫다고 말했지만, 너의 엄마의 답변은 듣지 못했어.
엄마가 울고 계셨거든.
그렇게 찜찜한 마음을 가지고 낯선 곳에 도착했어.
15kg짜리 무거운 가방을 메고 낑낑대며 계단을 올라갔지.
그거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여행을 시작했는데, 네가 상상했던 부유한 호텔은 네 눈에 보이지 않았거든.
허름한 집에 들어가서 가방을 풀고 침대에 앉으니 어딜 더러운 옷을 입고 침대에 앉냐고 대장님께 혼났었어.
그러고 불려갔어, 공지사항을 들어야 했기 때문이지.
그때,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어.
“슬로바키아에 가서는 단어, 독해, 리딩을 해야 해. 내일 일기제출 시간은 6시야”
단어? 독해? 리딩? 심지어 6시에 일기제출? 정말 싫었어.
너는 그게 항상 걱정이었어.
공부한 적이 없었거든.
오죽했으면 국어 점수가 53점이었겠니?
다음 날이 되었고, 너는 주말이었지만 작년에 다녔던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단어 20개를 적기 시작했고, 독해도 2페이지 하기 시작했지.
아침 9시가 되었고, 아침 식사를 하게 되었어.
아침 식사 메뉴는 빵, 잼, 계란이었어. 외국식 식사의 첫 시작이었지.
앞으로는 계속 그렇게 먹을 줄 알았어.
그 날은 관광을 가는 날이었는데, 너는 보조 배낭을 메고 카를교로 갔어.
카를교는 체코의 유명한 관광지였어.
그곳에 가니 이제 진짜 여행을 하는구나 하는 실감이 났어.
그 다리 위에서 밑에 흐르는 강을 바라보면서 너는 한숨을 내쉬었단다.
<운수 나쁜 사람>
하반하는 네 생각에 아주 이상한 곳이었어.
하반하엔 아까 말했듯이 워커라는 제도가 있었지.
워커는 요리 워커, 설거지 워커, 시장 워커로 나누어져 있었어.
너는 시장 워커로 지목받았었지.
체격이 커서 힘을 잘 쓸 것 같다는 것 때문이었어.
사람들은 너를 부러워했어.
시장 워커는 소위 말하는 꿀 보직이었던 거야.
설거지나 요리를 하지 않으니까 말이야.
기분 좋았지.
그런데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어.
다음 날 너는 7시 기상이었지만 6시에 일어나야 했어.
시장 워커였으니까.
슬로바키아의 시장은 2km나 떨어져 있었어.
빠른 배달을 위해 조깅을 해서 시장을 갔어.
첫날, 너는 힘들어서 곧 걸어가기 시작했고, 쇼핑이 거의 다 끝났을 때쯤에 마트에 도착했지.
왜 조깅을 해야 하는지 몰랐어.
지금까지 전에 조깅을 한 건 농구장 두 바퀴가 다였어.
그랬기에 2km는 너에게 엄청난 시련이었지.
시장을 가기 싫어질 정도로 말이야.
그러나 한번 시작한 일을 그만둘 수는 없어서 힘들었지만 매일 6시에 일어나 2km 조깅을 해서 마켓에 도착했었지.
그런데 하반하에선 워커만 하는 게 아니었어.
슬로바키아에서는 스키도 타야 했지.
9시에 아침을 먹고 스키복을 입은 뒤 밖으로 나가야 했어.
스키 타는 것은 좋았어.
네가 유일하게 즐길 수 있는 시간이었거든.
그런데 어떤 사고가 일어났어.
스키를 탄 지 일주일 째 되는 날이었어.
언제나처럼 너는 스키를 타고 있었단다.
그런데 거의 다 내려왔을 때쯤에 모글에 스키가 박히면서 고꾸라졌어.
다리를 움직일 수가 없었어.
평소에는 잘만 빠지던 스키가 그날따라 안 빠져서 다리가 꺾였었지.
그래서 중간이었던 너는 옆으로 이동할 수가 없었어.
그때 대장님이 내려오셔서 너를 들어서 바깥으로 옮겨가셨어.
그러고는 바로 병원에 갔지.
병원에선 내출혈이 있을 수 있으니 무릎에 주사를 놔준다고 했었어.
가벼운 주사일 줄 알았는데, 엄청나게 큰 주삿바늘이 네 무릎으로 들어갔어.
고통 때문에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어.
진짜 아팠거든.
다행히 피는 나오지 않았어.
그러나 한동안은 제대로 다리를 쓸 수 없게 되었어.
그래서 너 혼자 숙소에 남으면서 아침 설거지를 했지.
억울했어. 너만 다치고, 너만 못 탄다고 생각했어.
그것도 오랫동안 말이야.
그렇게 슬로바키아가 끝날 줄 알았어.
막바지까지 다리에 붕대를 하고 있어서 못 탈 줄 알았거든.
그런데 어느 날 대장님이 너를 부르셔서 다리 상태가 어떠냐고 물어보셨어.
사진을 찍어야 해서 스키장에 가야 하는 이유 때문이었지.
너는 스키를 타고 싶은 마음에 괜찮다고 대답했지.
그렇게 다음 날, 스키를 타게 되었어.
처음에는 생각보다 상태가 괜찮았어.
그런데 타면 탈수록 다리에 무리가 되어서 사진을 몇 장 찍는 동안 위태위태 했어서 그걸 보신 써니쌤이 너에게 돈을 주시며 차와 쿠키를 먹고 쉬라고 하셨었어.
그래서 가장 싼 레몬차와 버터 쿠키를 사서 먹었었지.
어쨌든 슬로바키아에서 스키 타는 3일을 남기고 너는 다시 스키를 탈 수 있게 되었었어.
그 뒤로 다시 다치진 않았단다.
무사히 스키를 타고 다음 여행지로 이동했었지.
<부모님과의 첫 통화>
“네가 없으니 편하다.”
첫 통화 때 네가 들은 말이야.
하반하에 거의 적응할 때쯤 너는 그리스에서 부모님과 첫 통화를 했어.
처음엔 별 얘기 안 했었어.
엄마 아빠는 어떻게 지내시고, 너는 뭐 하고 지내는지 말씀드렸지.
그러다가 엄마가 흐느끼셨어.
바로 전에까지 “네가 없으니까 편하다.”라고 말씀하셨던 분이 말이야.
너는 엄마를 너무 몰랐어.
그 말이 진심인 줄 알고 있었지.
엄마가 흐느끼는 것을 보고, 그제야 그게 진심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어.
너도 울었어.
이번엔 집에 가고 싶은 것 때문에 운 게 아니었어.
지금까지 부모님을 실망하게 한 게 죄송했어.
속썩였는데 부모님은 널 그리워하셨지.
너는 부모님보단 한국에서의 자유로운 생활이 그리웠는데 말이야.
넌 그때 처음으로 부모님의 소중함을 느꼈어.
매일 집에 계시니까 당연히 있어야 하는 존재로 생각하고 있던 거야.
그러나 이젠 정말 소중하고, 너를 가장 지지해주시는 분이란 것도 깨달았어.
한국에 돌아가면 정말 부모님께 잘해드리고 싶었어.
<이상과 현실>
뉴스에선 미국에 관해 이야기가 자주 나올 거야.
미국은 지금 사람들이 말하는 강대국이지.
너는 미국에 한번 가보고 싶었어.
네가 14살 때도 미국에는 위인들이 많았고, 부자도 많았거든. 그땐 미국이 강대국으로써 우리나라를 도와주고 있을 때였단다.
터키에서의 생활이 끝나고, 너는 미국으로 떠났어.
미국에 처음 들어간 순간, 너는 드디어 꿈에 그리던 미국에 왔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네 생각과 미국은 완전히 달랐어.
더러운 도로와 위험했던 우리 숙소(근처가 좀 안 좋은 곳이었어)는 너의 환상을 깨기에 충분했단다.
미국의 LA는 칙칙한 곳이었어.
너는 차라리 한국이 더 살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렇게 미국에 대한 환상이 점점 사라질 때쯤 너는 앤드류라는 사람의 집으로 가게 되었어.
그곳은 LA와는 아주 달랐어.
그곳에서 우린 축구도 했고, 럭비도 배워서 하곤 했지.
너는 그곳이 좋았어.
그곳에서 하는 텐트 생활도 좋았고, 그곳에서 하는 공연도 좋았어.
아, 공연 얘기하니까 떠오른 건데, 그때 너는 마을 주민들을 앤드류네 집으로 초대해서 다 같이 공연하고 놀았단다.
사람들의 또 다른 분위기를 즐기면서, 미국에 있는 나날이 끝이 났단다.
<어려운 길을 택해>
미국을 갔다가 너는 캐나다로 갔어.
캐나다에선 이안이라는 사람의 집에 가서 일하고, 텐트에서 잤었어.
그곳에서 한 일은 세 가지인데, 수로 파기, 나무 심기, 쓰레기 치우기.
이렇게 세 가지였어.
너는 항상 쓰레기를 치웠는데, 그 쓰레기는 보통 쓰레기가 아니었어.
폐차나 음식물 쓰레기, 30년 된 캔도 있었지.
쓰레기까진 힘들지 않았어.
대신 그 쓰레기가 있었던 곳이 열악한 상황이었어.
일명 ‘mosquito house’라고 불렸던 그곳은 정말 이름 그대로 모기가 득실득실했어. 기피제를 뿌리고 긴 팔을 입어도 하루에 20방은 기본이고, 잘못하면 50방도 물렸었어.
그래도 너는 처음 시작한 일이니까 끝까지 하겠다고 하고 계속해서 쓰레기를 치웠어.
이안네 집에는 이안도 있었지만, 이안의 아내였던 베로니크도 있었어.
너는 베로니크와 합계 계속해서 호흡을 맞추며 일하는 데에 익숙해졌어.
나중에 일이 모두 끝나고 베로니크는 고맙다며 따봉을 날렸어.
마음에 드는 듯했지.
첫날 그곳에 들어갔던 사람들은 대부분 다른 일로 가는데, 너는 계속 그곳에 있으며 일했어.
그러다 보니까 너한테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물어보는 사람들이 생겼고, 그곳에서 자연스럽게 팀장이 되었어.
모두가 피할 때 해서 얻게 된 값진 경험이었던 거야.
너는 어려운 길을 택해야겠다고 생각했어.
‘만약 네가 이 말을 기억할 수 있다면, 항상 어려운 일을 하도록 해.’라는 말을 써니쌤 한테 들은 후로 말이야.
나가 선정한 써니쌤 어록 top 3중 하나야.
“인생에는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다. 만약 어렸을 때 내리막길을 먼저 간다면 커서 너희는 오르막길을 오르며 살 거야.”
네가 어릴 때 했던 방탕한 생활 때문에 네가 지금 치매가 있을 수도 있어.
<싸우기 싫어요>
시간은 흘러서 에콰도르 과란다로 가.
에콰도르 과란다 에선 써니쌤, 대장님의 딸인 종하쌤이 살고 계셨던 집에서 생활하게 되었어.
그곳은 해발 2,000m였는데, 뛰기만 하면 숨이 벅찬 곳에서 1달 동안 매일 같이 축구나 농구 같은 스포츠를 했었단다.
지금부터 말할 사건의 시발점은 이 운동에서부터 시작된단다.
피구를 하던 날이었어.
언제나와 똑같이 팀을 나누고 피구를 시작했지.
한참 피구를 하고 있을 때 민수 형님이 던진 공에 호준이 형님의 거시기가 맞았어. 호준이 형님은 쓰러져 있었는데, 민수 형님은 미안하다고 하지 않았어.
그날 밤, 호준이 형님이 사과하라고 민수 형님 방으로 왔었어.
방엔 너와 민수 형님, 민석 형님, 지헌이가 방을 쓰고 있었어.
너 같으면 그냥 사과했을 것 같은데 민수 형님은 그게 아니었나 봐.
둘의 말다툼이 길어졌고, 옆방에서 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준우 형님이 와서 형님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냐며 민수 형님을 때리기 시작했어.
넌 말렸지. 네가 형님들 중에 가장 따르고 좋아하던 준우 형님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굳게 믿고 있었거든.
너는 준우 형님이 남의 문제에 끼어들지 않고 자기 자신이 중요한, 딱히 다른 사람을 해하거나 하는 경우는 없다고 생각했어.
그러나 너는 준우 형님을 너무 몰랐어. 말리는 너마저도 죽일 듯이 쳐다보며 잡지 말라고 소리 지르던 그 모습은 너에겐 충격적이었어.
그러나 너는 이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어.
너는 이 일을 써니쌤께 알리지 못했어.
네가 생각하는 의리는 학생끼리의 문제는 학생끼리 푸는 것이라고 생각했거든.
나중 가서 민수 형님이 기절하고, 같은 방에 있던 사람들 중 폭력을 휘두른 사람을 제외하고 써니쌤이 모두를 부르셨어.
거기엔 너와 지헌이, 민석 형님, 세훈이가 있었어.
너는 사실대로 이야기했어.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던 것, 학생끼리의 사소한 다툼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말이야.
“저는 사실 그게 의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민수 형님이 저렇게 쓰러진 것을 보니 마음이 아팠어요.”
“그래, 네가 어제 인사하러 올 때 네 얼굴이 좋지 않았어. 그런데 도윤아, 그런 건 의리가 아니고 사람을 좀 더 망치는 거야. 준우는 그런 애란다. 너는 아직 모를 수 있지만, 오늘 같은 일이 많은 아이였어. 의리는 그 친구를 더 좋은 쪽으로 이끌어 주는 거야.”
아직도 조금은 이해가 안 돼. 그런데 저 말에 반박할 수는 없을 것 같아.
<학교에서 가장 강한 아이>
이번에도 과란다야.
너는 세다는 것의 기준이 잘 싸우거나 목소리가 커서 다른 사람들의 기가 죽게 되는 것으로 생각했어.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너는 학교에서 가장 강한 아이가 되어있었지.
과란다에서 어떤 일을 했길래 네가 가장 강한 아이가 되었냐고?
그거를 알기 전에 너는 하반하의 정산에 대해 알아야 해.
하반하에선 일기, 단어, 리딩, 독해의 필수 과목과 독서록, 세계사, 디베이트 등의 선택 과목이 있어.
그렇게 1주일 간 네가 한 결과물들을 가지고 $ 단위로 돈을 받는 식이야.
너는 항상 소감문을 길게 쓰는 편이었어.
소감문에는 네가 했던 것에 대한 만족, 후회, 다짐을 썼지.
어느 날 너는 하반하에 있었던 침묵 시간에 대해서 소감으로 쓰게 되었어.
침묵 시간은 매일 밤 9시 이후에는 떠들거나 말을 하면 안 된다는 규칙이야.
이를 어기면 –1$를 매일 받게 되지.
너는 이 규칙이 너무 싫었어.
이 규칙은 너를 빚더미에 안기게 한 적도 있거든.
그래서 너는 소감문에 침묵 시간을 10시 이후로 늘려주시면 안 되냐는 글을 이유를 들어서 썼어.
안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써니쌤은 그 규칙을 수용하셨어.
그리고 소감문에 좋은 의견을 내주어서 고맙다는 코멘트와 함께 +1$를 주셨지.
그러나 침묵 시간은 9시에서 10시로 바뀐 대신 –1$였던 페널티가 –3$로 바뀌었어. 당황해서 써니쌤께 다시 9시로 바꾸고 페널티를 –1$로 줄여달라고 말씀드렸지.
그랬더니 너는 협상을 가장 잘하는 아이가 되어있었어.
회의 시간 때 써니쌤은 너를 지목하며 학생들 앞에서 칭찬하셨어.
그때 써니쌤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어.
“협상할 때 상대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 네가 가진 것을 내놓으며 협상을 해야 한다. 너희가 바라는 것만 있다면 그것은 구걸이다.”
이제부터 네가 과자를 먹고 싶을 때마다 간호사와 협상을 하도록 해.
예를 들어, ‘운동하러 갔다 올 테니, 과자 주세요.’ 같은 말을 하면 간호사가 흔쾌히 과자를 줄 거야.
<배달 왔습니다!>
네가 슬로바키아에서 다리를 다쳐서 설거지 워커가 되었던 것 기억하니?
너는 다시 시장 워커가 되었었어.
시장 워커들은 인도네시아에선 시장에 갈 일이 많았지.
첫째로 아침 식사 때 나시 짬뿌루 라는 도시락과 과일, 주스, 물, 빵을 사서 가야 했고, 저녁 땐 나시 고렝을 사가야 했거든.
그러다가도 과일이나 빵이 떨어지면 시장에 가서 부족한 물건을 사서 돌아와야 했어.
그러나 시장 워커는 좋았어.
네가 한숨 돌릴 때나 혼자 생각할 게 있을 때 나갔다 오면 기분이 좋아졌거든.
거기다가 또 혼자 나갈 수 있다는 자유로움과 그 해방감도 좋았어.
아침마다 조금 더 일찍 나가 아무도 조깅 하지 않는 시간에 조깅했지만, 좋았어.
시장 워커 팀들과 여러 가지 이야기도 하고, 물을 사고 따로 먼저 돌아갈 때면 수레를 끌고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갔었어.
숙소로 돌아가면 문집을 쓰던 모두가 너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주었어.
꽤 감동적이었지.
넌 배달을 시장 워커로만 한 건 아니었어.
너는 네가 번 돈을 평소 고마웠던 학생들이나 감사했던 선생님들을 위해서 써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윤쌤에겐 티셔츠를, 써니쌤에겐 올빼미 석상을, 대장님꼔 코끼리 나무 조각을, 해인쌤껜 오레오, 진성쌤껜 커피를 드렸어.
그리고 가끔 번 돈으로 아이스 커피를 사서 선생님들께 드리기도 했단다.
그런데 정작 부모님 선물은 사지 못했어.
너를 낳아주시고, 키워주신 절대적인 존재인데 말이야.
엄마는 드림캐처가 가지고 싶다고 하셨었어.
꼭 사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았어.
정신없이 다른 사람들 선물을 사다 보니 드림캐처를 살 돈이 없었던 거야.
그다음 정산에서도 돈을 벌었지만, 드림캐처는 사도 아무도 안 본다고 하는 민승쌤의 말에 넘어가 결국 드림캐처를 사지 않았어.
그러다가 엄마와 통화를 하는 날이 왔어.
엄마는 그때마다 드림캐처를 샀냐고 물어봤지.
“드림캐처는 샀니?”
“아니, 사도 아무도 안 본대서”
“그래도 사지…. 꼭 하나 가지고 싶었는데.”
“인도네시아는 별로인 것 같으니까 태국 가서 하나 살게.”
“그래….”
엄마의 목소리는 실망한 듯이 기어들어 갔어.
사실 엄마는 드림캐처를 가지고 싶기보단 아들이 약속을 지켰으면 하는 바람이었던 것 같아.
누군가 내게 인생에서 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냐고 물어보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2019년 11월이라고 대답할 거야.
인도네시아에 돌아가서 꼭 드림캐처를 사려고 해.
<끝끝내 너는>
태국은 하반하 9기의 마지막 여행지였어.
태국만 끝나면 학수고대하던 귀국이었지.
그때 너는 하반하 1년 교육 과정이 끝나고 나서 하는 비상파티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너는 연극과 자작랩을 해야 했어.
인도네시아부터 연습한 비상파티 공연은 이제 곧 다가오고 있었지.
태국 야시장에 가기 전에 너는 가기 전에 너는 써니쌤께 이 공연을 보여드렸고, 20$를 받았어.
정산을 한 뒤에 너는 야시장에 가서 찬영 형님과 물건도 사고 이야기도 했지.
태국에서 드림캐처를 찾았지만, 태국의 드림캐처는 너무 비쌌어.
네가 가진 돈으로 살 수 없었지.
그래서 다른 걸 샀었어. 코끼리 조각상 4개를 샀었지.
그거라도 가져다드려야겠다는 마음이었어.
하지만 끝내 약속은 지키지 못했지. 드림캐처를 사 간다는 그 약속 말이야.
그러다가 마지막 통화 날이 되었어.
마지막 통화 날에 너는 엄마와 길다면 긴 이야기를 했어.
“내년엔 하반하에서 뭘 할 거니?”
“음…. 모르겠는데…. 처음엔 여기 2, 3년 오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 됐는데 비밀병기에 갔던 사람들이 다들 나보다 일도 잘하고 나보다 리더 자리에 올라가 있는 것을 보고 이끌리듯이 선택한 거야. 지금은 여기서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내년이 불확실하기도 하고.”
“그래?”
“응, 성인이 아니더라고 준우 형님, 재훈 형님, 준수 형님은 무섭고 그러니까….”
“그럼 내년에 회장을 한번 해봐.”
“회장…? 사실 잘 모르겠어. 회장이라고 다 힘이 있는 건 아니더라.”
“그럼 어떤 사람이 힘이 있는데?”
“글쌔….”
“생각해봐, 아, 그런데 드림캐처는?”
“아 그거, 여기는 너무 비싸서 코끼리 조각상 4개 샀어.”
“그래…? 잘했어…. 다른 거는?”
“선물 샀지…. 쌤들꺼….”
핑계를 댈 수밖에 없었어.
넌 약속을 지키지 못했으니까.
드림캐처를 사가겠다고 했지만 결국 지키지 못했으니까.
드림캐처는 못 산 게 아닐 수도 있어.
그때 너는 다른 선물을 산다는 핑계로 드림캐처를 안 산 거지.
사실 내년에도 하반하에 올 건데, 내년에 사자는 생각도 있었을 거고 말이야.
하지만 너는 곧 닥칠 재앙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했어.
<Say Good Bye>
귀국하고 일주일 후에 비상파티 때문에 합숙했어.
비상파티가 끝난 뒤에 하반하 졸업증을 받았어.
이제 정말로 하반하 9기가 끝났지.
비상파티와 졸업증 수여까지 다 끝나고 모두 함께 밥을 먹으러 갔어.
밥을 먹고 너는 지금까지 하반하 9기를 이끌어 주신 써니쌤, 대장님, 선생님들과 함께 여행한 학생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한 뒤에 앞에 계셨던 양주 할머니, 할아버지께도 양주에 가면 항상 반겨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렸지.
그러자 어른들이 환호하셨어.
세훈이 아버지께선 네가 다른 형님들보다 더 멋있다고 말해주셨어.
어쨌든 밥을 먹고 나서 모두 함께 고맙다고 말했어.
9기 학생들을 더는 만나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슬프기도 했지만, 드디어 1년 과정이 끝났다는 생각에 후련하기도 했지.
4
<새로운 시작에는 늘 차질이 생긴다>
<첫 번째 산>
집에 가서 너는 내년에 하반하 10기를 갈 준비를 했어.
독해도 했었고, 단어도 외웠어.
처음 1주간은 말이야.
그런데 1주일이 지나고 너는 다시 친구들과 놀기 시작했어.
다시 피시방을 갔고, 다시 술을 찾고, 담배를 찾았지.
9기에 다녀왔으니 1년 동안 참았던 것들을 다 해보자 하는 생각이었어.
학교에 다니고 있는 친구들도 만나서 또다시 놀았지.
친구들은 더 심하게 게임에 중독 되어 있었고, 담배도 더 많이 피웠지.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
여느 때처럼 컴퓨터 앞에 앉아서 게임을 하고 있었어.
너는 게임을 켜고 ‘게임을 이용한 지 7시간이 되었습니다.’ 같은 메시지가 떴음에도 불구하고 무시하고 게임을 했지.
뒤에서 일하던 엄마가 게임을 그만하라고 했는데도 너는 계속 게임을 했어.
8시부터 게임을 했으니 4시쯤 된 시간에 이 일이 일어났어.
참다못한 엄마가 너에게 크게 화를 내며 컴퓨터 전원을 꺼버렸어.
한창 게임 중이었던 너는 짜증을 냈지.
그러자 엄마가 말했어.
“어떻게 하반하에 다녀와도 바뀌질 않냐! 써니쌤한테 말하기 전에 그만해!”
“엄마는 맨날 써니쌤, 써니쌤! 진짜, 10기도 가는데 좀 놀게 해주면 안 돼?”
너는 엄마가 써니쌤한테 말한다고 하기 전까진 딱히 반응하지 않았었어.
그때 너는 써니쌤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웠거든.
써니쌤 이야기만 나오면 엄마한테 화를 냈어.
그날따라 말다툼이 길었지.
참다못한 너는 밖으로 나갔어.
나가서 또 피시방에 가서 게임을 했고, 8시까지 친구집을 갔다가 10시에 밖으로 나갔었어.
결국, 갈 곳이 없어서 할머니 집에 갈까 하다가 그냥 집에 들어갔었어.
다음 날은 엄마가 일을 나가는 날이었어.
너는 메모 하나를 남겨둔 뒤 저금통을 들고 나갔어.
이번엔 친구집에 가기 좀 그래서 다시 피시방에 갔지.
게임을 하던 순간만큼은 부모님과 싸웠다는 사실도 잊고 게임을 했어.
컴퓨터를 페이스북에 연결해서 친구와 연락을 했었어.
잠시 후, 봉변이 일어났어.
엄마가 피시방으로 온 거야.
“뭐해?” 엄마가 물었어.
너는 대답하지 않았어.
엄마는 너를 끌고 갔어.
집으로 들어가서 2시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이야기를 했지.
“너한테 하반하는 뭐였냐? 어땠길래 네가 이렇게 행동하는 건데?”
대답하지 못하자 아빠가 말했어.
“내가 뭘 잘못했길래 네가 그러냐?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내가 뭘!!!”
그러고 왈칵 눈물을 쏟으셨어.
아빠가 우시는 것을 몇 번 보지 못했어서 너는 어안이 벙벙했었어.
“너 뭐해! 아빠한테 어서 죄송하다고 해!”
잠시 뒤에 너는 겨우 입을 열 수 있었어.
“때려 주세요.”
네가 한 말이야.
그러나 아빠는 끝내 너를 때리지 못하셨어.
너는 부모님께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말한 적이 없었어.
그날, 너는 진심으로 부모님께 ‘죄송합니다’하고 말했어.
<두 번째 산>
원래 하반하 10기는 3월에 시작해야 했어.
그런데 4월에 시작하게 되었었지.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우한 폐렴(Covid-19), 쉽게 말해 코로나가 전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었었기 때문이야.
사람들이 모두 마스크를 쓰고 다녔고, 다른 사람들과 만나길 꺼려 했었어.
결국, 세계여행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하반하 세계여행학교는 출국하지 못하게 되어서 한국에 있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던 거지.
써니쌤 대장님께서 다행히도 강원도 영월에 있는 폐교를 구입하시게 되어서 폐교에서 하반하 10기들이 생활하게 되었지.
2020년 1월 후반이었을 거야.
그때부터 북 수업을 영상으로 하기 시작했고, 세훈이가 영월에서 공사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어. 너는 그 소식을 듣고 가겠다고 했지.
너에겐 새로운 길이 필요했어.
계속 집에 있어봤자, 게임만 할 것 같고 그래서 영월에 가는 것을 결정한 거야.
그때 써니쌤과 상담을 했었어.
써니쌤이 물으셨지.
“올해 10기는 어떻게 보낼 거니?”
엄마와 같은 질문이었어.
너는 엄마한테 말한 것처럼 써니쌤께도 말씀드렸어.
“모르겠어요,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고요.”
“난 네가 부회장을 했으면 좋겠다. 준수 형님 도와서 회장단 한번 해봐.”
“네? 저요?”
“그래,”
“한번 생각해볼게요.”
잠시 뒤에 써니쌤께서 또 다른 이야기를 하셨어.
“옛날부터 폐교를 가지고 싶었는데 한국에 있게 되어서 폐교를 가지게 되고.. 기쁘네. 여기 진짜 좋지 않냐?”
너는 대답하지 못했어.
사실 세계여행이라는 그 메리트 때문에 하반하 10기를 선택한 것이었거든.
너는 영월에 있어야 하는 너의 처지에 대해서 불만이 많았어. 항상 무언가에 태클을 걸고 싶었고, 그러다 보니 집에 있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지.
결국, 9기 여행을 하기 전의 너로 돌아가 버린 거야.
너는 써니쌤께 “6월까지 못 나가면 집에 있으려고요.”라고 써니쌤께 말씀드렸어.
“도윤아, 네 가장 큰 단점이 뭔지 아니? 하고 싶은 게 아니면 안하려고 하는 거야. 원하지 않는 경험에도 배움이 있다는 말을 들어봤니? 인생은 그런 거란다. 네가 하고 싶은 것만 할 수는 없어. 이 한국에서의 시간을 기회로 만드는 것은 너한테 달려있지. 난 네가 행운아라고 생각한다. 부모님이 너에게 엄청난 투자를 하시니까 말야. 네가 집에서 있으면 무슨 일을 할 것 같냐? 학교도 안 가지, 돈도 안 벌지. 이 상태이 너는 아직 부모님이 감당하시지 못해. 여기서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너를 돌아봐봐. 장소가 어디든 상황이 어떻든. 이 시련을 이겨내는 건 너에게 달려있어. 지금은 내가 무슨 말 하는지 모를 수도 있을 거야.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경험은 쌓이는 거란다. 네가 나중에 어떤 일을 할 때 중요한 스펙이 될 거야.”
너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들었어.
딱히 반박할 게 없었거든.
너는 돈을 많이 벌고 싶었어.
그러나 세계여행은 갔다만 와도 사람들이 ‘오….’ 하면서 대우해주는데, 과연 한국여행은 그럴까, 싶었어.
결국, 고민하다가 4월이 오고 말았어.
<새로운 만남>
하반하 10기는 4월에 정읍에서 시작했어.
정읍에 가니 반가운 얼굴이 많이 보였어.
바로 하반하 9기의 일부 학생들과 선생님들이었지.
“여어~ 강도윤이~”
“어 뭐야, 안녕하세요.”
“어, 그래 10기도 잘 보내라.”
스쳐 지나가면서 하는 일반적인 인사였지만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기뻤었어.
그때까지만 해도 너는 새로운 사람들과 이야기 하기 힘들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
근데 막상 말을 하니까 잘 되었어. 1년 동안 다른 사람들과 24시간 붙어 있다 보니까 다른 사람들에게도 관심이 생긴 거지.
너만 생각하던 과거의 너보단 다른 사람도 생각하는 너로 바뀐 거였어.
그날 저녁,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이었어.
9기 때에 네가 사람들을 잘 못 사귄다고 했던 것 기억하지?
그러나 이번엔 달랐어.
“저는 하반하 9기 학생이었던 강도윤입니다. 저는 제가 사람을 잘 못 사귄다고 생각했는데 10기에 오니까 다른 사람들이랑 잘 지낼 수 있게 되어서 기쁘네요. 벌써 몇 명이란 말도 텄고요. 1년 동안 친하게 지내면 좋겠습니다.”
네가 먼저 다른 사람에게 친하게 지내자고 한 것은 내 기억상으로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아.
어쨌든 자기소개를 한 뒤에 밤이 깊어갔어.
앞으론 다른 사람들과 싸우지 말고 잘 지내야겠단 생각과 함께 너는 잠자리에 들었단다.
5
<여행의 첫 시작>
하반하 10기는 정읍에서부터 시작했어.
여행은 내장산으로 시작되었지.
내장산은 가을엔 단풍이 예쁘게 져서 풍경이 예쁜 곳이었단다.
4월인 봄에 내장산을 올랐던 넌 단풍을 보면서 산행을 할 수는 없었지만 오랜만에 산을 타니까 재미있기도 했어.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걷기도 했고.
그러나 써니쌤한테만은 잡히지 않아야 했어.
공교롭게도 그날은 써니쌤, 대장님의 결혼기념일이었거든.
먼저 정상에 올라서 써니쌤을 감동시키는 이벤트를 계획했었어서 그런지 빨리 빨리 올라갔지.
결혼 기념일 서프라이즈는 성공적이었어.
써니쌤이 올라오시고 너를 비롯한 10기 학생들은 사람의 서약이라는 노래를 불렀어.
그런데 너는 마냥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단다.
너는 단 한 번도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을 제대로 챙긴 적이 없었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부모님인데 말이야.
써니쌤은 써니쌤이니까 챙겨드리고 부모님은 거의 안 챙겨드렸던 너의 행동을 후회했어. 아니, 챙기기 전에 며칠인지도 몰랐어.
너는 부모님은 그냥 당연한 존재라고 생각했어.
네가 힘들 때마다 위로해주는 존재.
네가 필요할 때 그 자리에 있는 존재.
하지만 하반하를 보내신 이유는 독립해서도 지금처럼,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시는 것이었어.
더 이상 부모님은 당연한 존재가 아니었던 거야.
문득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을 딱 한 번 챙겼던 게 기억이 나네.
네가 9살 때였을 거야.
그때 너희 집은 늘 엄마만 있었어.
아빠는 출장을 가셨고, 엄마도 일을 다니시며 너와 동생을 돌봤지.
그때 너는 엄마가 하는 말을 듣고 선물을 사야겠다고 생각했었어,
“오늘은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이야~” 라는 말을 듣고 말이야.
그런데 너는 수중에 가진 돈이 많지 않았어.
가진 거라곤 딸랑 5천 원이었지.
5천 원으론 선물이라고 살 수 있는게 얼마 없었단다.
그런데 그때 5살짜리 동생이 물었지.
“오빠, 선물 살 거야?”
“응 근데 5천 원밖에 없어.”
“나 만 원 있어. 같이, 케이크 사자.”
동생에게서 만 원을 받아서 근처 빵집에서 가장 싼 생크림 케이크를 사서 저녁 때 드렸더니 엄마가 펑펑 우셨어.
그런데 네 그 순수했던, 부모님을 생각하던 마음은 대체 어디로 간 걸까.
너는 대체 어떤 삶을 산 걸까.
뭐가 부족해서 너만을 챙기며 산 걸까.
10기 여행을 시작하고, 끝날 때까지 가장 크게 느낀 것 중 하나야.
<1주일간의 휴식 기간>
정읍 합숙이 끝나고 너는 집에서 일주일간 휴식 시간을 가지게 되었었어.
친구도 만나고 들어오고 게임도 했지만 몇 가지 달라진 점이 있었어.
일단 식사가 끝난 후 설거지는 네가 했어.
엄마가 바쁘신 날에 너는 밥 먹고 싱크대에 놓으라는 엄마의 말을 듣고 나서 설거지까지 했어.
돌아오신 엄마가 기뻐하셨어.
그날 저녁에 엄마는 내 초등학교 때 친구 엄마들과 통화하면서 내가 오늘 설거지를 했다고 자랑하셨어.
사실 이렇게 설거지, 2인분이라는 사소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녀가 나를 위해 설거지를 했다는 그 자체만으로 자녀가 기특해 보이고 세상 그 어떤 자랑거리보다 큰 것이라는 것을 너는 그때 느꼈어.
그 후로부터 설거지를 네가 하자, 엄마는 더 이상 게임하는 것에 대해서는 딱히 뭐라하시지 않으셨어.
오래할 때만 이제 그만해라, 하고 말씀하시는 정도였지.
그리고 오시는 분들마다 너에게 기특하다고 말씀하셨어.
모든 부모님들은 다 똑같나 봐.
아무리 잘 나가도 자녀가 속 썩이면 근신이 가득하고 자녀가 부모에게 잘하면 전교 1등 안부러운 그런거 말야.
너는 항상 부모님께 잘 못해드렸어.
그런데 하반하란 곳은 너에게 새로운 태도와 삶을 가지고 해주었지.
넌 부모님께 잘해드리고 싶었지만 너에겐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이 남아있을 뿐이었어.
<길들이기>
“저기, 길들인다는게 무슨 의미야?”
“그건 서로 친하게 되는 거야.”
“친하게 된다고?”
“그래. 그러니까 이런 거야. 나한테 너는 수많은 아이들 중에 한 사람이야. 너에게 나도 수많은 여우들 중 한 마리에 지나지 않아. 그러니까 너하고 나하고는 서로 없어도 괜찮아. 그러니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서로 친하게 돼. 그러면 나는 너에게 하나뿐인 여우가 될 거고, 너는 나에게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 되는거야.”
(중략)
“항상 똑같은 시간에 오는 것이 좋아. 만약에 네가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기분이 좋아질 거야.”
-어린 왕자 中
하반하 9기 때는 항상 대장님, 써니쌤의 커피를 진성쌤이 타시다가 나중에 가서 준우 형님이 탔었어.
10기가 되고, 너는 항상 선생님들의 커피를 담당했지.
준우 형님의 뒤를 이은 거야.
제주도 여행을 하던 어느 날, 네가 밥을 먹고 커피를 타기 너무 귀찮아서 하루 동안 커피를 타지 않은 적이 있어.
그날, 써니쌤이 너를 부르셨어.
“어린 왕자라는 책을 읽어봤니? 아, 너는 작년에 독서록 썼구나. 술 마시는 나그네 파트가 가장 인상 깊었다고 했지?”
“네”
“선생님은 여우를 만나는 장면이 참 인상 깊어. 나는 네가 어린 와자가 여우를 길들인 것처럼 커피로 우리를 길들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중에 가서 우리한테 한 행동을 나중에 너희 부모님께 했으면 좋겠다.”
너는 다른 사람에게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되어보고 싶었어.
너는 앞으로 다시는 커피를 빼먹지 않으리라 다짐했어.
그 다짐은 네가 너한테 한 약속이었지.
실제로 그날 후로 커피를 거의 빼먹지 않았어.
바쁠 때나 아플 때나 항상 커피를 탔지.
이 글을 쓰는 지금, 써니쌤은 이렇게 말씀하셔.
“내가 커피를 연하게 먹는 거를 애들이 알고는 있는데, 이상하게 네가 타는 커피가 아니면 맛이 없네.”
커피로 사람을 길들이는 데에 성공한 거야.
사실 다른 사람들의 커피가 맛이 없는 건 아닐 거야.
써니쌤은 네가 커피를 탄 시간과 정성을 평가하신 것이라고 생각해.
검정고시를 보러 갔을 때도 너는 습관처럼 커피를 타서 부모님께 드렸어.
이번엔 밖으로 크게 기뻐하시진 않았지만 하반하 10기가 끝나고 집에 가서 커피를 타려고 해.
내가 이 길들이기를 선보일 사람은 바로 부모님이야.
<시련>
시간은 흘러서 제주도 여행을 시작할 때 쯔음으로 거슬러 올라가.
제주도 아르본 리조트에서는 정주 국제학교 라는 학교의 학생들과 축구 시합을 했었지.
물론, 이제 시련은 아니야.
하반하에선 아까 말한 정산이라는 활동을 해야만 했어.
정산은 일주일 간 우리가 공부한 것을 가지고 돈을 받는 거였어.
너, 엄마한테 용돈 받는 거 좋아하잖아.
그 용돈을 네가 번다고 생각하면 돼.
어쨌든 정산을 하다가 벌어진 일이었어.
정산은 팀 정산과 개인 정산이 있었는데 그때는 팀 정산을 하고있었어.
개인 정산은 쉬웠지만 팀 정산은 어려웠어.
다같이 잘해야 했거든.
그때 너희 팀은 경원형님, 승우 형님, 지헌이, 그리고 너까지 이렇게 4명이었어.
이 일은 승우 형님과의 일이었지.
정산을 할 때 우리팀은 다 같이 모여서 해야했어.
그래야지만 너희 팀이 받은 페널티오 리워드를 모두 나눌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승우 형님은 준수 형님과 정산표를 그리겠다고 했었지.
처음엔 알겠다고 했어.
준수 형님이라면 표를 그릴 ㅅ 있게 할 것 같았거든.
그런데 정산이 1시간 남았는데도 우리가 기다리겠다던 곳으로 오지 않았어.
일은 이때부터 시작되지.
너는 준수 형님이 정산 하고 있는 곳으로 갔어.
그런데 한 글자도 적히지 않은 승우 형님의 정산표를 볼 수 있었어.
그래서 이제부터는 네가 같이 정산을 하기로 했지.
그런데 정산을 안하겠다며, 다른 사람과 하겠다며 밖으로 나가는 게 아니겠어?
너는 승우 형님의 손목을 잡고 말했어.
“어디 가요? 정산은 나랑 하는 거야.”
“너랑 정상 안할거야! 윤썜한테 말할거라고!”
“지금은 낵 정산 팀장이니ᄁᆞ 내 말들어요. 앉아서 볼펜 잡으시고.”
이러면서 30분을 ᄊᆞ웠어. ㅊ
\참도못한 너는 승우 형님의 다리를 툭 쳣단다.
그러자 갑자기 승우 형님이 울기 시작했어.
“아아아악! 폭행버이에요!”
얼이 나간 듯이 그것을 보고 있었지.
그러자 윤쌤이 올라오셨어.
“아무리 그래도 형님을 때리면 어떡하냐. 너도 팀장 말 들어야지, 뭐하고 있는 거냐?”
그러자 방금까지만 해도 펑펑 울던 승우 형님은 눈물을 뚝 그치고 말했어.
“도윤이랑 정산하기 싫어요.”
너는 옛날까지만 해도 사람을 꽤 잘 믿는 사람이었어.
그러나 이날부터 앞으로는 사람을 믿지 않으리. 하고 다짐했어.
넌 여기서 네 문제는 없다고 생각했지.
사람을 너무 믿어서 배신감에 화가 나는 것이라 생각했어.
모든 것이 사람을 믿고 행동해서였어.
그때 네 생각으로는 말이야.
그런데 사실 그게 아니었어, 사람을 믿어서 너에게 나쁜 일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었거든.
오히려 믿지 못하면 네가 해야 하는 일이 많아지고 일을 처리 하는게 힘들어지기 마련이었어.
그래도 여전히 사람을 믿지 못하던 습관은 존재했어.
그 습관은 12월쯤 되어서야 없어졌단다.
이제 다들 알아서 할 일을 했고, 모두가 힙을 합하면 못하는 게 없다는 것쯤은 너도 알고 있었어.
어려운 일이 있을 땐 도움을 요청하도록 해.
네가 혼자 할 수 없는 일이면 말이야.
<의미를 부여하다>
너, 하루에 용돈 얼마나 받지?
해봤자 5천 원일 것 같은데, 안그래?
16살 때의 너는 그보다 10배나 많은 돈을 벌었었어.
어떻게 그럴 수 있었냐고?
네가 살던 강원도 영월은 농촌이었어.
그런데 일손이 부족해서 일을 진행 못 하고 있으시던 고추밭 사장님께서 돈을 줄 테니 4명만 보내달라고 하신 게 이 농활의 시작이었지.
처음에는 당연히 힘들었어.
쪼그려 앉아서 줄기에 달린 고추를 따는 일이었거든.
그 일이 끝나고부터 본격적인 농사 life가 시작돼.
고추밭부터 시작한 농활은 나중에 우리가 조건을 걸고 일을 하게 돼.
첫 번째 조건은 일당 5만 원으로 7시부터 5시까지 일을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점심식사를 주는 것이야.
사실은 당연히 어른들보단 일이 느려 적은 시급이었어.
그러나 어른들이 말씀하시길, 너희가 농활을 해서 점심식사가 나온 것이라고 그러셨어.
원래는 매일 김치나 단무지에 밥을 도시락으로 싸서 드셨었다고 하더라.
그렇게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끼니까지 채워줄 수 있었던 거야.
하루는 이런 일도 있었어.
일주일간 감자밭을 가서 밭의 감자를 주워다 날랐는데, 일주일간 밭을 끝내니 밭 주인의 언니분께서 ‘내일도 와서 우리 밭을 끝내줄 수 있냐,’고 물으셨어.
사실 다음 날은 주말이었고, 뭐하고 놀지를 밭일하며 내심 기대하고 있었던 지라 고민했지만 윤쌤이 ‘내일 올래?’하며 물으셨을 때 ‘네’하며 말할 수 있었어.
학교에 돌아가니 그 소식을 들은 써니쌤께서 너에게 물으셨어.
“힘들지 않니?”
“힘들죠.”
“그런데 왜 내일도 감자밭에 가겠다고 했니?”
“사실 조금은 고민했어요. 근데 일주일간 가서 감자밭 만큼은 끝냈는데 내일 하루 더 가서 일한다고 세상이 무너지진 않잖아요? 안가면 뭔가 기록이 깨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의미 부여는 중요한 일이야.
일을 할 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거나 목표가 없으면 당연히 하는 일이 힘들어질 거라고 생각해.
<성격이 다른 사람과 일하는 방법>
이 일은 감자밭 일을 할 때 일어난 일이었어.
어느 날 다른 학생들은 먼저 다른 밭으로 가고 너와 윤쌤 + 일명 감자밭 어벤져스라고 불리는 어머님들이 남은 밭을 정리할 때가 있었어.
그때 사장님께선 구박(소쿠리)를 가지고 자루에 가서 부으라고 하셨지만 윤쌤은 더 빠른 길을 택하셨었어.
네가 자루를 들고 따라다니고, 윤쌤이 바로바로 붓는 방식이었지.
그날, 사장님과 약간의 충돌이 일어났어.
사장님은 네가 힘들다며 어서 내려놓고 있으라고 하셨지만 윤쌤은 그러지 않고 윤쌤만의 프라이드를 가지고 일을 하셨지.
사실 그땐 윤쌤이 일한 방식이 네가 보기에도 좋았어.
넌 조금 힘들긴 했지만 말이야.
왜냐하면 감자밭 어벤져스 어머님들은 줍는 게 너무 빨라서 사장님이 제안하신 방법으로 했을 땐 네가 나르는 게 늦어져서 어머님들이 빨리 구박을 달라면서 구박을 하셨었고, 윤쌤의 방식으로 했을 때는 그런 게 없었거든.
그래서 힘들지만 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 윤쌤의 방식을 따랐어.
가만히 보고 계시던 사장님이 갑자기 호통을 치셨어.
“왜 내가 하라는 대로 안하고 그래!”
그러자 윤쌤이 말씀하셨지.
“이게 더 빠른 것 같았습니다. 제 방법이 더 효율적인 것 같아서 사장님 말씀대로 안하고 제 생각대로 했습니다.”라고
“감자 포대 쓰러지면 알아서 해!”
사장님의 대답이었어.
그 뒤로 포대 안 쓰러지게 하랴, 뛰어다니랴 힘들었지.
다행히도 포대도 안 쓰러지고 다음 밭으로 무사히 이동했어.
점심시간, 너는 우연히 윤쌤과 사장님의 대화를 듣게 되었어.
“방금은 제 방법이 더 효율적인 것 같아서 사장님 말씀대로 안하고 제 생각대로 했습니다. 혹시 기분이 언짢으셨다면 사과드립니다.”
“아니야~ 나도 갑자기 화내서 미안해. 난 애가 힘들 것 같아서 그랬지.”
여기서 넌 많은 걸 느꼈어.
그때부터 지시가 떨어져도 더 좋은 방법이 있으면 그렇게 하고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책임져야겠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사실 너는 앞에 나가서 무언가 하는 걸 싫어했어.
너는 무엇이든 내빼는 것을 좋아했거든.
뭔가 하자고 하면 이끌려 다녔어.
책임디는 것도 싫었고, 이끄는 것도 싫었거든.
너는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
또 그런 사람이 멋져 보였어.
이 글을 쓰며 너는 네가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중이야.
네가 책임감 있는 사람이 멋지다고 생각하면 책임감 있는 멋진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지.
<네가 보는 너, 어떤 사람이니?>
다시 시간은 거슬러 올라가 12월 중순이야.
12월 딱 중간은 하반하 스승의 날이었지.
원래는 스승의 날이 5월 15일인데, 하반하는 12월 15일이었어.
왜냐하면 5월은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이라, 진심으로 스승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어.
어쨌든 12월 15일은 스승의 날이었고, 내가 해줄 이야기의 시점은 12월 10일 쯤이야.
그때 스승의 날 공연을 준비하는데, 너희 팀은 ‘Good job’이라는 노래를 준비했어.
수경 형님이 팀장이었고, 네가 부팀장이었는데, 부팀장인데도 의견 내지 않는 네 모습을 보며 수경 형님이 한 말이 있어.
“너는 다 좋은데, 너무 의욕이 없어. 좋아하는 일만 하려고 해.”
자존심이 상했어.
꼭 잘하고 싶었지.
그래서 그때부터 네가 남자 학생들을 맡아서 노래 연습을 했어.
인정 받고 싶었고, 멋진 사람이 되고 싶었어.
스승의 날이 끝나고 나서부터 네 평가는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어.
‘이제 조금씩 리더를 하려고 한다.’, ‘잘 이끈다.’처럼 말이야.
네가 그렇게도 바라던 멋진 사람이 된 거야.
아, 사실 이뿐만이 아니야.
진성쌤이 담당 하시던 경제학은 미리 시험 문제를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생들이 어려워 하는 과목이었어.
외우기도 해야 했고, 프린트도 다 읽어 봐야 했거든.
너는 수경이 형님이랑 함께 경제학 답안지를 만들기 시작했어.
수경이 형님과 너는 연극주간이었던 그때 연극을 다 끝내놓아서 경제학을 할 여유가 있었어.
그럴 여유가 없던 다른 사람들에게 답안지를 나누어주자는 것이 처음 취지였지만, 만들다보니까 네 시간을 뺏기는 것 같아서 억울했어.
다른 사람들은 못 끝내서 연극하느라고 못 만들고, 너는 연극도 끝내서 남는 시간에 네 여가 활동을 즐길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조금은 화가 난 네가 수경이 형님에게 한 말이 있어.
“형님, 우리 답안지 나눠주지 말까요?”
“왜, 갑자기?”
“아니 억울하잖아요. 우린 할 일 다하고 남는 시간 쓰는 건데 이걸 다 가져가면 억울할 것 같아요.”
“그래? 그럼 나눠주지 말자.”
주지 않기로 하고 대화가 끝났어.
시험 이틀 전에 답안지가 완성 되어서 기분 좋게 자려고 했는데 갑자기 어떤 생각이 네 머리를 스쳤어.
“운동장 50바퀴가 걸려있는데 너무 불쌍하다.”
그래서 다음 날, 모두에게 답안지를 나눠 줬었어.
이렇게 다른 사람들을 챙길 줄 아는 너, 정말 멋지지 않니?
그런데 대체 왜 지금은, 치매에 걸려서 아무것도 하질 못하니?
나는 참 안타까워.
치매에 걸려서 받기만 하는 네가 말이야.
<만약 신이 있다면>
넌 지금 신이 나타나서 너에게 소원을 빌라고 하면 어떤 소원을 빌 거야?
인터넷에서 ‘돈이 많이 생기면 좋겠어요.’, ‘행복한 삶을 주세요.’ 같은 말을 많이 볼 수 있을 거야.
1월 1일, 신년을 맞이하며 써니쌤께서 너희에게 물으셨어.
“난 산신령이다. 너희가 원하는 소원이 무엇이더냐?”
다들 각자의 소원이 있었어.
‘행복을 주세요.’, ‘배관이 뚫리게 해주세요.’, ‘토익 만점 받게 해주세요.’ 등등 많은 소원이 있었지.
그 중 써니쌤이 꼽으신 소원이 네 소원이었어.
“코로나가 얼른 종식되게 해주세요. 빨리 다른 세상으로 나가고 싶습니다,”
네가 이걸 읽는 그땐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코로나가 너무 심각해.
아직 종식되려면 멀었지만, 난 내 소원이 꼭 이루어졌을 거라고 믿어.
너, 만약 신이 나타난다면 어떤 소원을 빌래?
‘평생 먹을 과자를 주세요.’ 같은 시답잖은 소원은 빌지 마.
내가 앞서 말한 것 기억하니?
넌 적어도 75세 이상 할아버지야.
부모님을 보살펴야 하는 나이일 수도 있다고.
내가 너 같으면 중학생 때의 방탕한 생활 때문에 나빠진 건강을 돌려달라고 할 것 같아.
<종장>
압락사스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하나의 세계이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누구나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이다.”
-데미안 中
압락사스 라는 신을 아니?
압락사스는 모든 사람이 마음 속에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신이야.
선과 악, 밝음과 어둠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균형의 신이지.
너는 선할 땐 선했고, 악할 땐 악했어.
너도 압락사스를 마음속에 가지고 있었다는 증거지.
말해두지만 너는 유혹에 너무 약해.
네 마음속의 압락사스를 잘 조절해서 네가 죽었을 때 주변 사람들이 네가 좋은 사람이었다고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해.
이만 편지를 줄일게.
지금까지 내가 쓴 편질 듣고 기억이 안 날수도 있어.
왜냐면 넌 치매 환자니까.
이 편지를 누군가가 다시 읽어준다면 들으면서 가슴에 새기면 좋겠어.
-2021년 1월에, 2090년 대의 강도윤에게 강도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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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도윤이 문집 잘 읽었어ᆢ엄마 너를 너무 모르고 산 것 같아 마음이 사실 무겁다ᆢ넌 늘 선생님들께 들리는 소리가 모범생이었지ᆢ엄마 그게 다줄알았어ᆢ아니 그답을 듣고 살길 원했을거야ᆢ너의 방황은 해서는 안될행동이었으나ᆢ음ᆢ총량의 법칙을 다 써 버렸으니 이제 너 다운 아니 멋진 도윤이로 거듭날거라 생각한다ᆢ엄마가 너의 마음을 어쩜이리도몰랐는지ᆢ너에게 정말 미안하구나ᆢ이런 글을 적었다는 건 이제 유혹을 완전히 버릴수있기때문에 썼을거라 생각된다
선생님들 말씀처럼 너가하고싶은거만하지말고 다양하게 접하고 너가 1을생각하고 1만주장하지말고 1이 안되는 사항이있다고도 생각할줄아는 도윤이가됐음 해~
솔직한 문집 고맙다♡
"넌 늘 선생님들께 들리는 소리가 모범생이었지ᆢ엄마 그게 다줄알았어ᆢ아니 그답을 듣고 사길 원했을거야ᆢ"
용기없는 엄마의 과정을 우리도 아이들처럼 겪어 나가야 하는 거 같아요.
저는 가끔 일탈같은 아이들의 행동을 보면서 저 어렸을 적을 기억합니다. 지금도 저를 아주 모범학생으로 알고 계시는 부모님과 함께요. 그러나 어려움이 없이 어른이 되면 세상의 반쪽도 모르고 살게 되잖아요? 그래서 저는 아이들이 존경스럽습니다. 무엇보다 내 자신에게 솔직할 수 있는 그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저도 아침 일찍 일어나 도윤이 문집을 보고 처음엔 조금 놀랐지만 읽으면서는 오히려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질량보존의 법칙이 삶의 내용에도 적용 되거든요. 도윤이 인생에 어려운 일 다 겪었네요~^^
도윤아~
그시간에 도윤이의 선택들이 후회와 어두운 기억들일지 몰라도
지금은 그경험이 도윤이에게 약이 되고
또다른 선택을 할때 좋은 기준이 되어줄테니 결국 해피엔딩이고
다시 멋진 스타트 인거다. 그치???
화분을 키울때 때론 잡초같은게 자라기도 하고 해충이 들어 잎이 누렇게 될때도 있지만 그때마다 뽑아내고 잘라내니 다시 새잎이 나고 키가 자라는게 보여 흐뭇하더라~ 중요한건 뿌리가 건강하니까 결국 자기가 가진 모양대로 생명력을 보여주는거야~~
도윤이도 뿌리가 아주 건강하고 좋은 흙에 심겨져있는 느낌이랄까~~~^^
멋지게 풍성하게 자라날 일만 남았네~
그흙에 좋은 비료 한알이 되는 어른으로 아줌마도 노력해야겠다♡
화이팅!!!
솔찍한 글 잘 읽었어
우리모두의 마음같이
울면서 읽게 되는구나
도윤이가 원하듯이
성장하며 살아갈수있겠구나
2021년도 기대되고
응원한다
고맙다^^
도윤이가 처음에 9기로 하반하에 와서 화난 듯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던 이유를 2년이 지난 지금 알게 되었네.
문집을 통해 자기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 용기있는 도윤이에게 놀랐어.
그런 모습에 감동하고 멋지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구나.
알아주고 드러내면 더 이상 그게 너를 지배하지 못할꺼야.
새로운 길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기로 충분히 채워진 모습을 갖게 된 도윤이 축하한다... ^^
도윤이 가지고 있는 장점중 글솜씨도 있었구나.
전체 구성과 내용 전개가 짜임새 있는 멋진 문집을 완성한걸 축하해!!!
도윤이는 부모님 생각을 굉장히 많이 하는구나. 도윤아, 이번엔 글을 통해 부모님에 대한 너의 마음을 드러냈다면
10기 마치고 11기가 시작되는 3월까지 약 한 달 반 동안 집에 있을때는 말로 표현해 보는 용기를 가져보겠니?
지금의 자신보다는 더 나은 자신을 만들어 가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하는 모습이 멋지고,
반드시 너 자신에게 당당하고 마음에 드는 어른으로 성장할거라 믿어. 항상 지지하고 응원할게!!
의외의 모습에 깜짝 놀랐네. 하반하를 떠나있는 한달동안 매일 너 자신에게 도전하는 시간이 될 것 같아. 계획이 없으면 무너지기 쉽지. 하루의 계획과 일주일 계획, 한달 계획을 세워보렴. 운동도 인간관계도 공부도 봉사도 작년보다 엄청나게 성장한 너의 모습이 느껴진다. 2021년 도윤이의 해가 될 것 같아.
항상 웃으며 커피타주면서 남을 배려하고 해맑은
도윤이한테 이런 사연이 있었구나.
주책맞게 눈물을 글썽거리며 봤어.
솔직한 너의얘기를 하는것이 쉽지않았을텐데
대단해보이고 그만큼 크게 성장할것같구나.
부모님사랑도 누구보다 크고넘치는게 느껴졌단다.
11기 입학하기전에 부모님과 좋은추억 많이 만들기
바랄께.올해도 화이팅!!!
도윤아 솔찍한 글에 조금 당황은 했지만
이건 웹툰보다 재미있는 역전 드라마구나
글을 읽다가 끊을 수가 없더라
힘든 과정을 이겨냈으니
더욱 효도하는 도윤이가 되겠는걸?
올해 한번더 하반하의 문을 두드리는데
다음 편 문집이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나는 유쾌한 도윤이가 너무 좋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