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우리 언제 또
만나요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문 진
순
큰딸 네 집 마당 한편에 잎보다
먼저 핀, 자두 꽃이 어스름 저녁 불빛에 하얗게 빛나는 밤이다. 모닥불이 타오르는 뜰에는 삼겹살과 대하가 철판 위에서 익어가고, 아파트 소음
구속에서 벗어난 아이들이 마당과 골목을 뛰어다니며 소리를 지르고 넘어져 울고 웃고, 어미 개와 강아지 두 마리까지, 덩달아 뛰느라 온 동네가
시끄럽다. 나의 생일은 그렇게 지나간다.
강원도 정선과 광주에서 유치원과
어린이집이 같이 방학을 하여, 우리 집에 임시탁아소를 차리기로 하고 불렀다. 24일이 출석 수업일이어서 셋째네 집을 간이정류소로 정하여 손녀와
손자들이 커다란 가방을 앞세우고 들어섰다. 3개월 만에 만나는데 서로 부르며 달려들어 손을 잡고 안아주고 볼만하다. 세 딸의 아이들 여섯 명은
쉴 새 없이 지저귀며 이방 저 방으로 몰려다닌다. 아래윗집 신경 쓰여 주의를 주는데 집게손가락을 입에 대고 소리를 지르는 모습들이
우습다.
먼 길 운전하고 오느라 힘들어,
가볍게 한 잔 하는 딸과 사위들에게 내일 만날 시간이 없으니 잘 가라고 이야기하고 집으로 오는데, 탁아소 장소가 바뀔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25일 할머니 집으로 가자는 말에
“싫어요. 이모 집이 더 좋아요. 장난감도 많아요.” 이구동성이다. 당연히 임시탁아소 원장은 방학 중인 셋째가 맡고, 나는 아침저녁으로
출퇴근하는 보모가 되었다. 날은 덥고 인원수가 많아, 먹고 떠들고 싸우며, 물 달라, 화장실 간다, 원장과 보모는 엉덩이를 땅에 붙일 시간이
없다. 초등학교 4학년인 지수와 2학년 주영이가 같이 놀아주며 동생들 샤워는 전담으로 맡아주어 분업을 했는데도 바쁘다.
뛰기 방, 영화관에다 큰 딸네
집까지 가서, 대형대야 세 개가 동원되어 물놀이 장이 되고, 민겸이는 피아노 모서리에 이마가 찢어져 성형외과도 갔으니, 아기 보아준 공은
없다더니 맞는 말이다. 작은 상처지만 엄마 아빠 떨어져 있으니 더욱 마음이 아프다.
10여일이 지나 헤어지는데
안가겠다고 떼를 쓰는 지윤이와 민겸이를 보며 원장과 보모는 지쳐서 주저 앉았다.
폭염주의보와 경보가 번갈아 바뀌며
찜통더위가 계속되는데 2주 만에 제주공항에서 다시 만났다. 총 18명 중 아들과 막내 사위는 휴가기간이 달랐고, 고등학교 2학년인 큰손자
승준이가 같이 올 수 없었다. 어른 여덟 명, 아이들 일곱 명, 펄쩍 뛰며 달려드는 아이들과 함께 빌린 2대의 차에 오르는데 여섯 명의 아이들이
쪼르르 한 차에 올라 누나와 형이 안전띠를 매어 주었다.
네 살 배기 하겸이와 우현이도
엄마 아빠를 찾지도 않았다. 미리 계획했던 대로 아이들 위주로 관광명소를 결정하고, 돌아다니다 점심을 먹고 돌아와 일부는 아이들과 수영장으로,
일부는 온통 바다만 눈에 가득한 넓은 거실에 앉아 작은 고깃배들이 떠다니는 풍경에 취했다.
3시간을 수영장에서 놀고 와서도
아쉬워하던 아이들이 서귀포 매일시장의 닭튀김에 손길이 바쁘고, 베란다 가득 빨래가 널리기 시작했다. 딸과 사위들은 주거니 받거니 하던 술잔을
놓고, 라이브 카페인 잔디밭으로 자리를 옮겼다.
마라도에 가는 날, 큰딸의 둘째
서린이가 영화도 보고 미술관과 시장도 돌아다니겠다며 혼자 서귀포에 남았다. 중학교 2학년이니 걱정이 되지만 대견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알게
모르게 이렇게 자라는 것 같다.
3박 4일 가족여행을 마치고
떠나오던 날 큰사위는 어린 조카들이 달려들어 안기고 뽀뽀를 하여 아주 감동이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회사 일로 하루 먼저 떠난 셋째사위도
아쉬워하고, 나흘 동안 운전한 둘째 사위와 큰딸도 수고가 많았다.
그중에서도 아이들의 한마디는 나를
기쁘게 했다.
“할머니, 우리 언제 또
만나요?”
볼수록 더 보고 싶은 마음은
아이들이나 어른이나 똑같은 것 같다. 두 팔을 들어 크게 하트를 만들며 사랑하는 손자손녀들에게 말해 주었다.
“우리 모두 추석에 또 만나요.”
추석은 2주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2017.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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