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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명화 사진작가
나는 9년 전부터 중남미 배낭여행을 시작으로 중남미인들의 역사와 삶 그리고 음식 문화를 연구하고 있다. 중남미는 감자, 토마토, 옥수수, 고추 등의 원산지이자 우리에겐 생김새와 모양도 낯선 다양한 열대 과일을 먹을 수 있는 곳이라 기대감이 컸다. 특히 브라질은 내게 새로운 맛의 세계를 열어 주었다. 바다(대서양)와 맹그로브 숲, 아마존 밀림 등 다양한 자연환경에 여러 가지 기후대가 섞여 있어 무한대의 음식 재료를 자랑한다.
브라질 가정에선 보통 밥과 콩을 기본으로 채소와 고기 등 여러 음식을 한 접시에 담아 먹는다. 브라질의 대표적 음식으로는 아카라제(Acarajé)와 모케카(Moqueca), 슈하스쿠(Churrasco), 페이조아다(Feijoada)를 들 수 있다.
아카라제는 브라질의 첫 번째 수도였던 사우바도르의 대표 음식 중 하나로 아프리카어로 '불덩이를 먹다'라는 뜻이다. 하얀 콩을 갈아 손바닥만 하게 타원형으로 빚어 즉석에서 덴데 기름(야자수 기름)으로 바삭하게 튀겨내고, 반을 갈라 그 속에 새우와 여러 가지 소스 등을 넣어 먹는다. 아카라제는 우리나라의 떡볶이 같은 거리 음식으로 브라질식 패스트 푸드라 할 수 있다. 아프리카 밀교인 칸돔블레의 여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먹던 음식이라 우리나라의 헛제삿밥과 비슷한 느낌이다.
모케카는 브라질 동남부 해안을 따라 발달한 요리다. 채소를 볶고 새우 등의 해산물에 코코넛 밀크를 넣고 덴데 기름 등으로 맛을 낸다. 식감을 자극하는 노란색으로 달큼하고 상큼한 국물이 일품이다. 우리나라의 뚝배기 같은 냄비에 담겨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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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브라질 소년이 브라질 벨렝의 시장가 좌판에서 브라질 음식을 팔고 있다. 소년이 들고 있는 접시에 담긴 음식은 밥과 콩을 기본으로 야채와 고기 등 여러 음식이 섞인 일반적인 브라질 가정식이다. /박명화 사진작가 제공
슈하스쿠는 브라질의 카우보이인 가우슈(Gaúcho)들의 음식이다. 두툼한 통고기와 소시지 등을 꼬치에 넉넉히 꽂고 굵은 소금과 후추를 뿌려 그릴에 지글지글 구워내면 웨이터들이 손님이 원하는 부위의 고기를 즉석에서 썰어준다. 무한 리필해주는, 육즙이 가득한 브라질식 바비큐다.
모두 입맛을 당기는 브라질의 대표적 음식이지만 진정 브라질다운 음식은 역시 페이조아다이다. 브라질이 포르투갈에 지배당하던 시기에 만들어진 페이조아다는 콩을 뜻하는 포르투갈어 페이자웅(Feijão)에서 유래하였다. 18세기 초 금 채굴을 위해 강제로 브라질에 끌려온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은 극심한 노동과 굶주림에 고통받았다. 19세기 들어 이들의 평균 기대 수명이 20세를 넘지 못했다고 하니 노동강도를 짐작할 만하다. 노예들은 지천으로 깔린 검은 콩과 유럽의 주인마님들이 버린 돼지 혀, 귀 등의 돼지 부속 고기와 소시지를 모아 먹었다. 일종의 '생존 음식'이었던 셈이다. 우리의 부대찌개와 동지팥죽을 섞어 놓은 듯한 맛은 한국인의 향수를 야릇하게 자극한다.
밥에 쓱쓱 비벼 먹는 이 음식은 포르투갈이 이슬람의 침략을 받은 것과도 연관이 있다. 포르투갈이 이슬람을 통해 쌀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페이조아다에는 아메리카,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 네 대륙의 맛이 녹아 있다. 브라질의 역사와 문화를 설명하기에 가장 적절한 음식이라고 하겠다.
노예제 폐지 후 자유의 몸이 된 흑인들이 재해석한 페이조아다는 20세기부터 최고급 식당 메뉴에 오르게 된다. 브라질 전역에서 사랑받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열량이 높은 이 음식은 다이어트에는 큰 적이지만 체력 소모가 많은 브라질 축구 선수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음식이다.
☞박명화는
중남미 전문 사진작가. 2005년부터 중남미 여행을 하며 자연 풍광과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저서로는 '그라시아스 라틴' '루타 40' 그리고 중남미 인문 여행서인 '올라(Hola) 남미 여행100'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