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AD. 31년, 예수 그리스도라고 알려진 남자가 죽은 해, 로마는 제2대 황제 티베리우스 치세 17년째였습니다. 당시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은 많아야 100명이었지만 300년도 지나지 않아 제국 전역에서 가장 널리 확산된 종교가 되었습니다.
한 줌도 안 되는, 유대교의 이단으로 시작한 종교가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제국의 국교가 되었을까요? 게다가 이들은 무력으로 개종을 위협한 것도 아니었고, 또는 세속권력의 비호를 받지도 않았습니다. 순수 포교활동으로만, 그리고 많은 경우 순교를 자처하면서 자신들의 세를 불렸습니다.
한 역사학자는 기독교의 교세확장을 다음과 같이 추정했습니다.
(로마제국의 총 인구를 6천만이라고 가정했을 때)
서기 41년 - 1000명 / 0.0017% 총인구대비 규모
서기 50년 - 1400명 / 0.023%
서기 100년 - 7530명 / 0.0126%
서기 150년 - 40,496명 / 0.07%
서기 200년 - 217,795명 / 0.36%
서기 250년 - 1,171,356 명 / 1.9%
서기 300년 - 6,299,832 명 / 10.5%
서기 350년 - 33,882,008 명 / 56.5%
물론, 이 수치는 실제 그러했다는 수치는 아니고 추정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짧은 시간에 정말 비약적인 팽창을 했다는 것을 가늠할 수 있죠. 그렇기 때문에 심지어 역사학자들도 이를 두고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라고 합니다.
예수는 메시아를 자처하여 제국로마로부터는 반란세력, 그리고 유대인 기득권세력으로부터는 신성모독자로 간주되어 처형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를 따르던 제자들은 그를 인간이 된 신으로 받들고, 그의 가르침을 널리 알리고자 했습니다. 제국으로부터 처형당한 범죄자이자 기존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신성모독자로 알려진 이를 따르고 그의 가르침을 더 확산시키려고 하는 것은 분명 매우 위험한 일이었지만, 소위 12제자라고 일컬어진 이들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동포들을 상대로 끈질기게 설득했고, 일부는 유대인이라는 민족을 초월하여 세계 곳곳으로 진출했습니다.
그 팽창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크게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합니다.
(1) 디아스포라 유대인
(2) 헬레니즘과의 융화와 개방성
(3) 도시중심의 포교와 자선
(4) 운
(1) 디아스포라 유대인
기독교의 확산을 이해하려면 먼저 디아스포라 유대인에 대해 알아봐야 합니다.
디아스포라 유대인이란, 당시 지중해 세계 전역에 퍼져있었던 유대인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유대인들은 특출난 상업민족으로, 예루살렘의 파괴 이전에도 고전시대 지중해 전역에 널리 공동체를 건설했다고 합니다. 현재 팔레스타인이라고 알려진 지역 외에도, 많은 수의 유대인들은 아테네, 코린트, 테살로니카, 에페소, 안티오키아, 알렉산드리아(이집트), 로마, 그리고 카디즈(스페인)에 거주했었습니다.

그리고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공용어는 당시 지중해 세계에서 널리 쓰이던 그리스어였습니다. 고전 그리스어는 아니고, 민중 그리스어, 또는 장사치들의 그리스어라고 불리던 코이네 그리스였다고 합니다.
실제로 최초의 성경은 히브리어가 아닌 코이네 그리스어로 쓰여졌고, 일부 학자들은 예수의 제자들도 코이네 그리스어를 자유롭게 구사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언어의 장벽 없이 널리 활동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그리스 무역항들을 따라서, 먼저 유대인 공동체를 상대로 유대인들이 믿던 종교를 진정으로 완성시켜줄 참 진리를 찾았다고 하면서 선교활동을 시작한 것입니다.
실제로 성경 신약에서도 찾아볼 수 있듯이 사도 바울과 베드로가 활동했던 반경은 주로 위 지도에서 볼 수 있는 도시들에 집중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로마 제국 당국도 기독교를 새로운 종교가 아닌, 유대교의 아종으로 보고 별 다른 간섭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에는 유대교에는 없는 새로운 특징이 있었습니다.
바로 (2) 헬레니즘과의 융화와 개방성이 였습니다.
플라톤
요한복음은 태초에 말씀이 있었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말씀은 성경 원전에 <로고스>라는 단어로 나타납니다. 태초에 <로고스>가 있었다. 그리고 <로고스>가 사람이 되었다. 지극히 그리스적인 발상입니다.
실제로 사도 바울은 기독교의 논리를 고전 그리스 철학과 접목시키려고 많이 노력했고, 그 후 많은 성직자들도 플라톤의 논리와 기독교를 접목시키고자 했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가 대표적이죠.
육신과 영혼의 이원론, 이데아와 물질, 기독교의 가르침을 그리스 고전의 언어로 소화시킨 것입니다.
이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탈출구를 마련해주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그리스 세계와 유대세계의 경계인에 위치한 이들로, 정체성이 흔들리면서 혼란스러워 했었는데,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은 유대인이면서 동시에 헬라인(그리스인)이 될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이 기독교도가 되기 위해서는 <할례>를 할 필요가 없으며 <먹는 것>에 대한 제약도 필요없다고 한 것은 큰 기폭제가 됩니다.
이와 관련해서 성경에서도 한 에피소드를 찾을 수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의 꿈에서 천사가 나타나 불결하다고 생각되는 고기를 먹으라고 하자, 베드로는 불결한 것은 먹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하느님은 베드로에게 <나의 창조물을 불결하다고 하지 말라>라고 하면서 음식을 도로 가져갔다고 합니다.
이는 베드로는 이 계시를 기독교가 이방인들에게도 열려 있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로마인 백인대장을 찾아가 그를 기독교로 개종시킵니다.
기독교는 유대교의 교리를 심화발전시킨 것이라고 하면서도 동시에 유대교에게 적용되는 많은 풍습을 없앴습니다. 그리고 그 교리 또한 헬레니즘을 받아들이면서 정교화되었고, 이는 그리스인들의 호감을 샀습니다.
그리스인들 본인 중에서도 놀고 먹고 마시는 신들의 세계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들이 많았고 이들은 기독교를 통해 자신들의 정신 세계를 한 차원 더 끌어올리고자 했던 것입니다.
한편 기독교는 (3) 도시 중심의 운동이었습니다. 한 학자에 따르면 기독교는 당대의 Urban Revolution(도시혁명)이었다고 합니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농촌이나 시골이 아닌 도시에 거주하던 사람들이었고, 그리스인들 또한 도시 중심의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는 이들을 중심으로 퍼져나갔습니다. 따라서 기독교의 확산은 마치 역병이 유행할 때와 마찬가지로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네트워크로 발전했습니다.

초기 기독교의 중심지
일반적으로 기독교가 가난한 사회적 약자, 즉 노예나 사회의 하층민들 중심으로 퍼졌다고 알려져있지만, 사실은 도시의 신흥 부르주와(?)들을 중심으로 퍼졌다고 합니다.
그렇게 낮지도 않지만, 동시에 그렇게 높지도 않은 계층 사이로 기독교는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하면서 도시민들 사이에서 일종의 패션, 유행을 일으켰다는 것이죠.
그 중에서는 권력층과도 가까운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로마에서 순교한 이그나티우스라는 주교는 동지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나를 구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나는 주님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며, 기쁜 마음으로 주님께 갑니다. 오 형제, 자매들이여, 나의 길을 방해하지 마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이 대목은 뒤집어보면, 그를 구명해주기 위해 손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합니다.
도시에서 기독교 공동체는 많은 자선활동을 했는데, 특히 복지체계가 갖추어지지 못한 고대세계에서 이는 엄청난 강점이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과부, 노인, 병자들을 돌보았고, 이는 특히 가뭄이나, 기근, 역병이 돌 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이들은 같은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적극적으로 도와서 더 많은 이들로 하여금 기독교로 개종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정말 빈자들만의 공동체였다면 이러한 자선활동을 하는 것이 불가능했겠죠.
일부 학자들은 도시의 중간계층(그리고 일부 상위계층)이 주도한 운동이었기 때문에, 이런 자선활동이 가능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폭발적인 운동이었기 때문에, 로마제국은 이에 대해 위협을 느꼈고 탄압했습니다.
서기 300년에 이르면 이미 기독교가 제국 전체 인구의 10%에 달하는데 이들 대다수가 도시 거주민들이라고 한다면, 이들이 지닌 영향력을 단순 퍼센티지를 훨씬 상회하는 것이었을 겁니다.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한 것은, 결국 이미 도시 사회의 주류가 되어버린 기독교의 지지를 얻기 위한 정치적 술책이었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수도를 천도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당대 그리스반도와 터키반도가 가장 부유한 지역이기도 했지만, 기독교 또한 마찬가지로 그리스 계 도시들에서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콘스탄티누스는 자신의 정치적 근거지를 이곳에 마련하고자 했던 것이죠. (당시까지만 해도 이탈리아 반도는 기독교가 확고한 주류를 차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고 기독교는 (4) 타이밍 (운) 이 좋았습니다.
기독교가 번창하기 시작할 무렵, 많은 종류의 일신교가 유행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이시스(ISIS, 이슬람 국가가 아니라.... 이집트의 여신 ISIS) 여신, 시빌라 여신, 그리고 미트라 태양신 등 다신교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일신교류가 전반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고 이는 전통적인 다신교의 권위가 상당히 떨어졌다 것을 보여줍니다.
특히 이시스 여신에 대한 신화는 성모 마리아의 이야기와 상당히 유사하다고 하는데, 아마 기독교가 여기서도 일부 모티브를 차용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로마인들은 이집트 여신 이시스를 상당히 로마화하여 묘사했었는데, 이러한 형상화가 결국 마리아까지 이어졌습니다.
로마인들이 묘사한 이시스 여신

실제로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 또한 기독교를 공인하기 전에는 본인부터가 미트라교(태양을 숭배하는 일신교)를 믿던 사람이었습니다.
다양한 종류의 일신교가 유행하고 있던 참에 기독교는 그 중에서도 가장 조직적이고,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었기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했던 것이고, 탄압과 순교에도 굴하지 않는 이들이 보여준 굳센 의지와 자선은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고 결국 여러 비슷한 유행중에서도 기독교가 가장 확실한 경쟁력을 보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중세시대와 근세까지 사람들은 기독교가 왜 제국 전역으로 확대되었나에 대한 물음에 단순히 <신께서 그것을 바라신다 DEUS VULT)라는 문장으로 대답했었는데
요즘 진행된 연구 해석을 보니 상당히 재미있고 참신하군요.
첫댓글 기독교인들은 저걸 근거로 신이 역사했다 주장하지요.
Sol Invictus Constantinus Maximus Augustus!
기독교인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나 생각이 드네요. 물론 신앙인이라면 믿어야 맞는거긴 하겠죠.
신의 역사라고 믿으면 믿는대로니까요. 신앙이지 않습니까ㅎㅎ
신앙인이라고 무조건 믿기만 하는 사람도 아니고, 신앙인의 스펙트럼은 다양합니다...
아닙니다. 기독교가 로마제국에 퍼진 것은 로마인들이 진정한 로만인의 정신을 잊고 점차 타락하고 그리스화 되어서입니다.
- by 소금들판 할매-
에로영감. 엠버밍 해드려요?
@▦무장공비 쉬~~~~~잇!
@▦무장공비 !
일전에도 이슬람 관련해서 이슬람도 변해야 한다는 얘길 한 적이 있었는데 기독교와 이슬람의 큰 차이는 역시 개방성에 있는 듯 합니다. 유일신교라는 근본적 특성상 한계는 있겠지만 기독교는 상황에 맞게 많이 변형된 상태로 운영되고 실제 어떤 측면에서는 변형이 장려되기도 하죠. 반면 이슬람교는 그런 측면에서 좀더 경직된 부분이 많은 듯 합니다. 아무래도 사상적 바탕이 로마-그리스 문화에 있어서 그런 것일까요?
근대역사가들이 '암흑시대'라는 소리를 했을 정도로 똥망한 유럽의 프랑크/게르만계 촌놈들이 "쩌... 쩐다"하면서 앞다투어 북아프리카나 안달루시아, 아랍에서 열심히 초빙했던게 무슬림 건축가와 예술가들이었지 말입니다... "아라베스크양식"이라는 말은 우리 나라 교과서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 정도죠. 거의 모든 학문과 예술 분야에서 유럽이 일시적 퇴락을 회복하는데 엄청난 영향을 끼쳤던게 다름 아닌 이슬람제국들이었는데요.
@PRODIGAL 종교적인 금제로 인하여 이러저러한 것들이 금지되었다면, 그 외의 부분에서 갖은 창의력과 개방성, 재치를 발휘하여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여유와 유연성을 애초에 중세초기 유럽인들에게 가르쳐준게 이슬람의 문화였고, 말씀하신 그 "로마-그리스의 사상적 바탕'의 명맥이 끊어지지 않고 보존되어 유럽으로 역수입된 것도 이슬람제국 덕분이었습니다. 로마와 그리스의 각종 철학론을 갖고 서로 열심히 키배뜨던게 죄다 이슬람 철학자, 사상가들인걸요. 수학 분야에서도 "유럽의 누구누구가 발견한 법칙" 상당 부분이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이슬람 수학자들이 먼저 발견한 것들이 훨씬 많습니다.
@PRODIGAL 즉, "이슬람의 경직성"이라는 것은 종교의 문제가 아닙니다. 결국 정치, 사회, 문화, 그 제반 "환경"의 문제, 사람의 문제죠. 지금 중동권의 현실과 많이 다르던 시절, 영화와 영광과 여유가 있던 시절에 똑같이 이슬람 믿으면서도 전혀 달라보이는 시절이 있었다는게 그 가장 커다란 증거가 아니겠습니깡.
물론, 어쨌든 종교이니만큼 내적인 한계와 문제점도 분명 있습니다만 다른 종교라고해서 그런 한계나 경직성이 없는 것도 아니고, 중요한 것은 그러한 종교적 특질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세속의 삶과 조화될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PRODIGAL 소위 '서양'이 세계를 장악한 이래 오늘날 문화의 보편적 기준이 되면서 기독교가 지금처럼 '잘 나가는' 종교가 되기 이전의 기독교도 충분히 문제가 많았죠. 굳이 줄줄 예시를 들지 않아도 다 알만한 것들 있잖습니까... 이단심문, 마녀사냥, 십자군전쟁 등등... 좀 심하게 말하자면 유럽 본토에서 레반트에 막 도착하여 설치기 시작하는 십자군들이 하는 짓거리가 딱 IS 짓거리였는뎁쇼. 그러나 환경이 급격히 바뀌면서 다 변했죠. 우리는 오늘날 '관대한' 기독교가 근대 이후로 들어섰다고 상상합니다만, 실제로는 불과 100~150년 전인 19세기말, 20세기초 기독교만해도 만만찮게 근본주의적이고 극단적이었어요.
@PRODIGAL 오늘날 미국이나 프랑스, 영국, 아시아의 일본이나 우리 나라 등과 비슷한 급수로 대충 "발전된 현대국가"가 무슬림권에 단 한 국가도 없다는 것만 봐도 (싱가폴이 예외려나요) 결국 "우리"와 "그들"의 진정한 차이가 어디에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잖아요. 죄다 신생독립국, 거의 제3세계 취급받을 정도의 똥망한 상황에서 장기적인 전쟁, 내전, 정치적 혼란, 외세의 끊임없는 개입으로 신음해온 나라들입니다.
@PRODIGAL 그런 환경에서는 이성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살아남을 수가 없어요. 극단적인 자기방어, 자기생존을 위한 소규모 부락사회로 유지되어온 상황이고, 그 상황이 아직도 타개되지 않았는데도 그냥 어느 순간 "무슬림들이 합리적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말도 안되는 코메디고, 그걸 우리들이 원하는 것처럼 담박에 해내지 못한다고 해서 그들이 믿는 종교가 원이라고 결론 짓는 것은 더 큰 코메디입니다.
우리 나라를 보고 "한국이 선진적 민주화를 못 이루고 자꾸만 권위주의적인 정치적/민주적 퇴보를 경험하는 것은 그들의 유교적 정서가 근본적으로 민주주의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누군가 말하는 것과 똑같죠.
@PRODIGAL 대단히 중요한 맥락을 하나 누락하고 계시는데요. 이슬람 신학 자체가 근본주의적으로 변하고, 과학자들을 탄압하며, 영성을 위해서라면 다른 모든 건 희생해도 된다는 식으로 대단히 나쁜 쪽으로 변해간 건 이미 최소한 12세기부터의 일입니다. 그 조짐은 9세기 때부터도 있었고요. 12세기 때도 이슬람이 "극단적 자기 방어, 자기 생존을 위한 소규모 부락 사회"였나요? 아니 그러하였습니다.
@마법의활 그런 부분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누락시킬 의도는 없었고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느 종교에나 상존하는) 본원적(즉, '근본주의적') 요소들은 현대의 보편적/민주적/인본주의적 가치관들과는 화해의 여지가 없는 최악의 형태로 충돌을 야기할 수 밖에 없는가"라는 질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내용을 통해 역사적 경험 및 환경의 차이 등에 따라 실제로는 (소위) '세속적'인 가치관들과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하며 평화를 유지해 온 기간이 상당히 있었다는 점에서 이슬람을 위해 "결코 그렇지 않다"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지요.
@마법의활 말하자면, '유전병력'에 비유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뭔가 좋지 않은 것을 물려받는 경우가 많죠. 암과 같은 각종 질병의 가족병력은 물론, 그 못지 않게 심각하게는 정신분열증이라든지, 사이코패스적 성향이라든지, 이미 유전적 차원에서 '문제'가 있는 그런 경우들이죠. 하지만 그러한 "인자"가 모든 경우에 반드시 발현된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마법의활 스스로 건강을 챙기고, 외부의 조언과 도움을 받고, 심신의 건강을 위해 조심하는 등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부정적 '인자'들을 다스리며 살아가고 있거든요.
이러한 비유에 대입했을 때, 우리는 과연 중동이라는 지역이 "스스로 건강을 챙기고, 외부의 조언과 도움을 받고, 심신의 건강을 위해 조심할 수 있는" 환경이었는가를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이 점을 생각하지 않고 오늘날 이슬람의 문제를 이슬람 그 자체의 것으로만 소급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 기독교 내의 근본주의적 스탠스도 장난 아니게 잔혹하고 무지막지한 형태로 발현된 경우가 많았는데, 이것이 극복되는 계기가
@마법의활 "이슬람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기독교의 (뭔가) 대단히 발전적이고 융통적이고 자애로운 사상적 가치"가 따로 존재했기 때문이아는 결론은 코메디라고 생각해요.
그런 '기독교는 뭔가 다른' 것이 존재했더라면 애초에 똑같이 광신적이고 잔혹한 모습을 보인 시절이 있었던 것 부터가 설명이 안될 뿐더러, 설사 그런 무엇인가가 존재한다고 할지라도 "왜 하필 역사의 특정 시점 이후에 그것이 주도적으로 발휘되며 근본주의를 밀어내게 되었는가"라는 물음으로 오면 결과적으로는 무의미해지죠.
결국 문제는 "근대화"입니다.
@PRODIGAL 기독교도 나름 문제가 많았다지만, 기독교가 흔히 생각하는것처럼 중세의 불관용에서 근대의 관용으로 넘어갔다는것은 사실과 다른 인식입니다. 오히려 중세 교회는 상당히 유연한 집단이었다는게 최근의 학설이구요(자체 내 이단에게는 단호했지만 타종교에는 나름 유화적이었다는 증거도 많습니다), 이 관용이 후퇴하는건 종교개혁으로 유럽의 종교적 통일성이 깨어지는 시점입니다.
@PRODIGAL 더욱이 고려해야 할 점은 그리스도교가 처음부터 경전에 한점한획도 손상없이 문자 그대로 믿어야 하는 종교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이러한 주장은 상당히 근래에 등장한 근본주의 개신교의 주장이죠) 중세 내내 교회는 성서의 알레고리적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놓았고, 이 점이 중요한 시기마다 교리의 경직을 방지하고 신학 논의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기반이 되었지요. 경전의 묘사와 다른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연구를 포함해서 말입니다.
@mr.snow 다시 한 번 "삔트"를 맞춰본다면, 그러한 경향성이 현재 우리가 공포스럽게 바라보는 '이슬람, 중동, 테러'라는 요소에 있어서 과연 얼마나 결정적인 요소를 차지하는지 의문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앞서 거론했듯, 기독교가 그러한 유연성이 존재했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강조하건데) 그런 형이상학을 떠나 실제 행위의 차원에서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근본주의로 인해 무고한 이들의 피를 흘리게 하고 그 공포를 통해 군림하던 그런 시대가 결코 없지 않았다는 겁니다.
@mr.snow 그렇다면, 말씀하신 것과 같은 그 "유연함이 내재되어 있는" 그 기독교임에도 왜 그런 유연성이 작동하지 못하고 무력화 되어 그런 피비린내나는 공포를 동반하는 시절이 있었냐는거죠. 어째서 성지에 "Deus Lo Vult"를 외쳐데며 무슬림이라면 무조건 목 댕겅댕겅 날려대는 사람들이 있었으며, 어째서 동시에 이미 토착화된 2세대, 3세대 기독교인들은 걍 멀쩡히 무슬림들이랑 무난하게 함께 살기도 했냐는 겁니다. 전혀 다른 양상의 두 가지 현상이 같은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보인다면, 그에 따라 내리는 결론은 (매우 단순하게도) 종교 본연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그것을 믿는 인간을 둘러싼 문제라는 결론이 나오잖슴까.
@mr.snow 특히, 의미심장한 것은 테러의 직접적인 주동자와-행위자가 불일치하기 시작했다는 것 -- 쉽게 말해, 대상이 되는 국가에서 토착화된 극단주의자들이 소위 '본토'의 사상적 대의에 '순응' 혹은 '귀의'하는 형태가 현재 21세기 진입 후 테러의 기본 패턴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모든 무슬림 계통에서 동일하게 테러가 빈발하는게 아니라 주로 '특정' 계파/유파에서 다른 계파/유파를 향한 내부항쟁의 형태가 두드러진다는 것입니다. 테러 자체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존재했으나, 예를 들자면 80년대에 레이건 정권 등지에서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프로파일링할 사람들과, 그로부터 대략 30년 후 오늘날 주목하게 되는
@mr.snow '테러리스트'의 프로파일이 완전히 다르다는 점도 많은 것을 시사하죠.
이슬람이라는 종교 자체의 문제가 없다는건 물론 아닙니다. 많은 문제가 있겠죠. 애초에 무함마드 등장 일곱 세기 정도 이전 시점에서 예수가 등장했던 고대로마와는 달리 7세기면 이미 확고한 역사시대라고 봐도 무리가 없는 시점에서 등장한 '신의 예언자'라고 하는 것부터가 아무래도 미심쩍은데다가, 그 사람이 태어난 지역과 환경, 문화를 고려할 때 '관용'이나 '평화'의 의미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다른 정도는 너무나 당연하거든요. 하지만, 그런 정도의 차이가 그대로 1500년 가까운 세월 뒤에까지 그대로 이어지는 폭력과 살상의 배경이라는
@mr.snow 것은 납득하기가 꽤 어렵거든요.
현재에 발생하는 문제의 원인은 언제나 현재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어떤 문제가 정말로 "원래 그런 놈들이라 이런 식으로 되는 것은 1,500년 전부터 정해져있었어"는 식의 결론을 내리는 것은 "현재의 문제"를 모두 클리어한 이후에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다면 그 때 가서 고려해볼 가능성이지, 지금 이 시점에 중동의 상황을 고려할 때 오늘날 무슬림 문제를 오늘날 정치와 사회에서 찾지 않고 1,500년 전으로 소급해서 생각하는 것은 좀 아닌 것 같아요.
@PRODIGAL 글쎄요. 말씀하시는 바를 보면 중세는 타종교의 목을 날리는 근본주의가 득세하는 시절인 것으로 생각하시는것 같은데, 최근 연구가 가리키는 바는 별로 그렇지도 않거든요. 중세 그리스도교 신학과 철학에서 상당히 중요하게 다뤄지던 관념이 관용입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있지 않느냐고 하시겠지만, 그게 없었던 시절은 그 어떤때도 없었구요. 주로 말씀하시는게 십자군 전쟁인데, 무슬림이라면 무조건 목 날렸느냐? 그건 결코 아닙니다. 일단 십자군 원정 자체가 종교를 강요하거나 무슬림을 개종시키려는 전쟁도 아니었구요.근본적으로 비잔티움 제국의 실지 회복을 돕는게 명분이었지요
@PRODIGAL 그리고 무슬림이라면 무조건 죽였던 것도 아닙니다. 학살과 파괴가 많이 일어난것은 사실입니다만, 그것도 당시 전쟁에서는 흔한 일이었습니다. 흔히 논의되는 예루살렘 학살만 해도, 그리스도교, 무슬림, 유다인 연대기 저작들의 기록을 검토해볼때, 예루살렘에 거주하던 무슬림 주민들을 모조리 죽인것은 절대 아닙니다. 전형적인 중세의 군사원정에 종교적 레토릭을 더했을뿐, IS처럼 종교의 이름으로 온 세상을 정복하거나 그 종교로 강제개종을 시키려는 목적은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PRODIGAL 그리고 제가 이슬람은 태생적으로 바뀔수 없는 전근대성을 갖고 있다거나, 폭력적이라거나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주장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이슬람 신학에서 쿠란은 무함마드가 받은 최종계시로 되어있고, 따라서 여기에 원칙적으로 손을 댈수가 없습니다. 이런 면이 이슬람 신학이 세속 학문의 성과를 받아들여서 유연하게 발전하는데 장애가 되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이걸 극복하는게 현재 이슬람 신학계에 주어진 과제라고 할 수 있겠고 말입니다.
@PRODIGAL 지금 크웨사 유저는 계속해서 끈질기게 한 가지 중요한 걸 누락하는 중입니다. 아니라고 말해도요. 원래부터 건강 관리가 어려운 환경이었다고 해도, 그 환경이 생기기 전부터 이미 도박, 음주, 담배, 폭식 성향이 강해지기 시작했던 사람이 환경 탓만 한다면 그런 변명을 누가 진지하게 받아줄 수 있을까요? 1,500년전부터 정해져 있던 건 아니었어도, 800년 전부터 점점 정해져 가고 있었다는 건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슬람 신학이 적어도 생긴 이후부터 몇 백 년 동안은 기독교 세계의 그것보다 인류 보편 기준에서 선진적이었다곤 해도, 그건 현재 시점에선 이슬람이 제대로 바로잡힐 수 있는 가능성이지, "지금의 전반적인 이
@PRODIGAL 슬람 주류 신학계의 풍토"가 아아주 문제가 있으며, 이슬람 문제는 그러므로 이슬람교도들의 책임도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쉬운 말로 남탓만 하면 안된다는 얘기죠.
스스로 건강도 안 챙기고 외부의 조언과 도움도 씹으면서 심신의 건강을 조심하지 않는 자가, "부정적 인자를 다스리며"살아간다고 볼 수 있을까요?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마법의활 그것은 일종의 예정설이넵쇼. 신학의 풍토와 신앙에 대한 인간의 태도가 변해가는 이유를 주변환경과의 인터액션에서 찾지 않고, 그 자체로 수 백년 전 부터 이런 식으로 변할 수 밖에 없었다 찾는데 말이죠.
'유전자' 비유도 전혀 잘못 알아들으신 것 같고요.
이해하기 쉽게 한 줄 추가해드리자면, 70년대 강원도 탄광의 막장에서 살아가는 광부들을 조사해봤더니 온갖 암과 폐병으로 천수 못 누리고 죽는 사람들 비율이 어마무시하게 많은데, 그 과정에서 "허구한날 중노동에 일 끝나면 제대로 쉬지 않고 술이나 퍼먹고 하고 있으니 이건 광부들 탓이다"라는 소리 하고 계시는 겁니다. (아, 네. 물론 광부들 탓이긴 하죠).
@mr.snow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 정도를 모르는건 아닙니다. 제가 문제 삼는 것은 그 "차이"라는 것을 -- 양쪽 모두에 대해 -- 지나치게 큰 것으로 바라보고 계신다는 점이에요. 종교적 해석의 차이가 행동양식에 있어서 지대한 차이를 불러오는 경우는 그 종교가 삶의 양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를 차지하는 분명한 이유들이 있는 환경에 한정됩니다. 세속적 가치와 인본주의가 종교적 가치를 누르거나, 종교 내로도 흡수되어 보편적 기준가치와 충돌을 가능한한 줄이고자 하는 시기와 환경이 있는 것인데, 현재 상황에서 이슬람의 '발원지'가 되는 곳은 그러한 환경에서 유리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는거죠.
@PRODIGAL 예정설이 아니라, 이미 벌어진 일을 말하고 있는 뎁쇼. '유전자 비유'는 여기서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것도 모르고 있고요. 신학의 풍토 자체가 무려 800년전부터 그랬던 게 이때까지 일관성 있게 주욱 발전하는데, 그게 어떻게 "예정설"이 됩니까?
벌어진 현재를 미래로 밀지 마세요.
이해하기 쉽게 추가했다는 일화...어처구니 없군요. 70년대 강원도 탄광 막장에서 살아가는 광부들하고 이슬람 세계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죠. 광부들이 술을 퍼먹을 수밖에 없는 사회적 상황하고, 이슬람 세계가 상황이 엄혹해지기도 전에 이미 자체적으로 안 좋게 될 소지가 심해져 있었는데 그걸 어떻게 같은 선상에서 비교합니까?
@PRODIGAL 게다가 그 "주변 환경"이란게, 12세기부터 그랬나요? 이 질문에 여적까지 답변하지 못하고 같은 소리만 반복하시는데 참 답답합니다. 외재적 요인과 내재적 요인이 있는데, 그 내재적 요인은 크웨사 유저가 어처구니없는 광부 비유로 그렇게 쉽게 일축할만큼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솔까말 그 70년대 광부들 사례로 본다고 해도, 그 광부 집단 전체가 광업에 종사하기 3세대 전부터 "도박, 음주, 담배, 폭식 성향이 강했"다면 그땐 그건 광부들 탓이란 소리가 먹힐 수밖에 없습니다-> 이게 불가능하니까, 엉터리 일화란 것이지요.
"부정적 인자를 다스리며" 살아갈 수 없는 환경을 말해서 거기에 대해 지적했는데,
@PRODIGAL 갑자기 왠 70년대 광부 드립이나 주워섬기는 지 원...
또한, "그 정도를 안다"면, 그 "차이"를 이렇게 '지나치게 작다'고 주장할 수가 없습니다. 이슬람 신학이 보편적 기준 가치와 갭이 벌어진 게 최소 800년인데, 크웨사 유저는 고작 18세기부터 이때까지의 200년 동안 벌어진 일만 "환경"으로 보고 있습니다.
몹시 편향적인 관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