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앓이
상념이 지나치면 해가 되는 법이라.
차가 지나치면 배가 아팠다. 하물며 공짜는 어떻겠는가.
그녀는 아픈 배를 움켜쥐고 책상에 머리를 박은 채
그렇게 뚱한 얼굴로 한시간을 버티고 있었다.
꼬릿꼬릿 꼬여오는 창자의 뒤틀림은
차라리 피가 철철나는 눈에 보이는 외상이 더 낫지,
라는 생각이 들 만큼 오랫동안 계속되고 있었다.
사실 그녀가 다른 동료들에게 이런 저런 걱정보다는
그럼 그렇지라는 투의 눈빛을 받는 이유도 자신에게 있었다.
-그러게 누가 그렇게 아이스크림을 많이 퍼 먹으래?
할 말이 없었지만 아픈 사람의 사고 회로는 지나치게 격정적으로 향한다.
그녀에게 들리고 보이는 건 모두 배 아픈 탓으로 보일 뿐이었다.
“화장실 갔다 와요.”
“필요 없어.”
“그치만 계속 그렇게 앉아 있는 것 보단 낳아요.
아니면 약이라도 먹고 오던가.”
그녀의 왼쪽,
사람이 지나갈 수 있게 터놓은 길을 빼면
바로 옆의 책상에 앉은 아멜리아가 그녀의 안위를 걱정하는 투로 조용히 이야기했다.
그 아가씨도 다른 동료들과 같은 반응이긴 했지만.
“리나 잘못이잖아요. 그러게 누가 그렇게.”
“공짜였다고! 정말 너무들 하네.”
그녀는 짹 소리를 지르고 다시 궁시렁 거리며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더 이상 할말이 없다 너 잘났다라는 식으로 아멜리아는 혀를 끌끌 차고는
‘정의….' 어쩌고를 궁얼거리다가 그녀의 매서운 시선에 그 아가씨는 홱 돌아섰다.
“누구에게 탓을 넘기는 거냐.”“신경 쓰지 마.”
이번엔 뒷자리. 그녀의 뒷자리는 제르가디스 그레이워즈의 자리.
말 없이 서류 처리에 열중하던 그가 낑낑대는 그녀의 모습을 못 봐주겠는지 한마디 툭 내뱉었다.
원래 그런 말투긴 하지만 왠지 오늘은 화가 나기까지 한다.
“무슨 상관이야.”
“뒤에서 시끄럽다.”
“이씨 못됐어!”
사무실이 조용하진 않지만 워낙 행동과 모습이 튀는 그녀라 시선 집중.
그러나 신경쓰진 않는다.
“뭘 봐요!”
뻘겅 고질라가 화나면 무섭다. 그들은 그걸 잘 알고 있었다.
“리나씨. 뜨거운 물을 좀 마시는 건 어때요? 배가 차서 그러니까.”
“뜨거운 물은 딱 질색이야.”
그녀의 정면에 위치한 책상에 자리잡은 피리아가 조언한다.
서류 뭉치를 어디선가 잔뜩 들고와서는 책상에 내려놓고는
빼꼼히 그녀를 쳐다보며 이야기한 것이다.
“휴우, 그럼 이러나 저러나 방법이 없네요.”
“뭐가.”
“자요.”
“엥?”
“오늘 중으로 리나씨가 해결해야하는 서류에요.”
“피리아! 난 환자라고!”
“정말 아픈 사람은 이런거 저런거 안 가려요!
그리고 누가 봐도 리나씨 아픈건 리나씨 탓이라고요.
그러니까 서류를 해결 못 할 이유도 없는 거에요.”
“그 그런!”
“자, 여기 있어요.”
피리아는 매정하게 서류를 툭 내려놓았다.
그 폼이 꼭 유능한 변호사 같아서 한풀 기가 꺾인 리나는
입에서 달싹거리는 이런 저런 말들을 차마 내뱉지 못하고
자리에 앉아버려서 시야에서 사라진 피리아에게 뭐라고 말하기 어색했다.
“씨이, 다들 나만 가지고 그래.”
도망치는 건 아니지만 그녀는 아픈 매를 움켜쥐고 사무실을 빠져 나왔다.
-여기 있다가는 신경성으로 더 악화 될 거야!
그래봐야 갈 곳은 사무실 밖 복도의 휴게실.
“끄응.”
“어라? 리나씨. 아직도 그러고 계신 겁니까?”
“이잌.”
한 남자가 그녀의 앞에 와서 앉았다.
생글거리는 얼굴에 비리비리해 보이는 남자였지만
촐랑이는 말투 속에 무언가 비밀스러운 것이 숨어있는 것 같은 사람 제로스.
“넌 또 왜 나타난거야.”
“리나씨가 아까부터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요.”
“사람 속 긁어놓으려고.”
“사실 저도 그 가게의 아이스크림을 좀 먹을 수 있을 가 싶어서 근처에 왔는데
이런, 리나씨가 다 먹어버려서 한 입도 못 먹었잖아요.”
“그게 화가 나서 왔단 말이야?! 또 어떻게 들어왔어??!”
“그건, 비밀입니다.”
생긋, 언젠간 저 상판을 뜯어 고치고 말겠다고 기필코 다짐하지만
사실 제대로 시행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
단발머리의 가벼운 차림의 저 남자는
그녀와 같은 직장의 사람도 이 건물에 취직된 인간도 아니었다.
그런데 어떻게 들어와!
“꺼져, 너랑 놀 기분 아니야.”
“자업자득, 리나씨가 벌인 일은 알아서 책임 지세요.
그리고 리나씨 만나러 온 건 아닙니다.”
“무슨 소리야.”
“저도 할 일이 없어서 여기 온 건 아니라구요.
오늘 리나씨는 너무하네요. 아이스크림에 화풀이까지.”
“야야!”
저 혼자 삐친 남자는 휙 하니 돌아서서 어디론가 가버렸다. 이걸 워쩐데.
“아이씨….”
그녀는 괜히 눈물만 나와서 입을 삐죽 거렸다.
-다들 미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괜찮냐고 부드럽게 말도 못해주냐.
아프면 뭐든게 서러워지고 뭐든게 섭섭하다.
아픈 사람을 조금 잘 보듬어줘서 작업에 성공한다는 건 결코 빈말이 아니다.
하지만 그녀 성질이 어디 보통 사람만 하랴.
괜시리 서러움에 고개만 숙이고 있던 그녀에게 무언가 휙 날아왔다.
“엉?”
“리나. 괜찮아?”
“가, 가우리….”
“자 뜨거운 캔 커피. 우리 층엔 그거 안 팔잖아.
어디에 있는지 까먹어서 일일이 확인하고 사오느라 늦었어.
마시란 거 아니야. 배에 대고 있어.”
“가우리….”
“우리 할머니가 배아플땐 배에 뜨거운거 대고 있는게 제일 좋.
어, 어라? 왜, 왜 울어 리나.”
그래. 누가 뭐래도 그녀의 바로 옆자리,
칸막이가 없어서 늘 시선에 있고 엉뚱한 질문이나 해파리 같은 머리,
붕어 같은 기억력으로 그녀를 괴롭혀도 뭐니 뭐니 해도 그가 최고다.
연한 금발이 잘 어울리는 그 남자.
“리, 리나. 그, 그렇게 배가 아픈거야?”
“잠깐만.”
의외의 작업은 저런 감동이 성공시키는 것이다.
그녀는 배 아픔에 서러움이 겹쳤던 눈물을 훔쳐냈다.
캔 커피가 정말 뜨겁지만 그게 뜨거운 건 단순히 캔 커피여서가 아니었다.
가우리의 정성이라고 그녀는 속으로 빽빽 우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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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에
단편소설입니다.
히나리아랑은 전혀 관련 없는 소설이지요...
그저 다정한 가우리의 모습이 눈에 잠깐 그려져서
무작위로 타자를 쳤지요.
뭐든 지나치면 해가 되나 봅니다.
인형이 지나치게 크면 떨어지나 봐요.
또 인사합니다.
케이크를 잘 만드는 제로스는 이상한 걸까요?
사실 의자에 발가락을 부딪치고 아픈데 욕먹어서
서러움에 써 본 소설입니다.
첫댓글 우어어어 ;ㅁ; 멋져요 케이크를 잘만드는 제로스는 넥스트에서의 영향이 너무 커서 좀 어색할지도요 [퍽퍽퍽] 하지만 제로스가 요리까지 잘한다면 그의 팬들은 완전 넘어가지 않겠습니까 [예를들면 저라든가..] 가우리는 의외의 상황에서 센스가 있군요 ;ㅁ;
케이크를 잘만드는 제로스는 윗분의 말씀대로 넥스트의 영향이 크기때문에 조금 어색할듯(?) 합니다;;
멋져요~♡
ㄲㄲㄲㄲㄲ완전 좋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리나가울이로군요 !!!!배앓이하는 리나도 나쁘지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