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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명] 레버쿠젠 시내에서 열린 1988년 UEFA컵 우승 세리머니 도중 팬들에게 둘러싸인 차범근 'ⓒ차범근 개인 소장' |
최고와 최고 간의 대결, 특히 시대가 다르고 환경이 다른 스타들간의 가상 대결을 꿈꾸는 것은 스포츠 팬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자 재미다. 이 주제에 대한 관심은 국경도 초월하는 모양이어서 몇 년 전, 헐리웃에서는 현역 권투 챔피언과 과거 챔피언 간의 대결을 그린 영화를 만들어 적잖은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록키 발보아) 국내에서도 '선동렬과 박찬호 중 누가 더 나은 선수인가', '장정구와 유명우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등등 수 많은 'VS' 가설이 오랫동안 스포츠팬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차범근과 박지성이 한 눈에 들어오는 가장 큰 이유는 두 사람 모두 한국 축구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인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차범근이 '은하계'처럼 막연히 멀게만 느껴지던 유럽 축구를 우리 시야 안으로 끌고 들어온 인물이라면, 박지성은 미디어의 발전과 유럽 축구를 동네 골목까지 끌어들였다고 볼 수 있다.
모두가 우물 안에 있던 시절에는 유럽 축구의 존재나 위상을 제대로 알 지 못한 게 사실이다. 우물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만 듣고 환호하던 시절이랄까. 그 때 그 무대를 헤집었던 차범근의 활약은 어쩌면 그런 이유로 조금씩 폄하되어온 것인지도 모른다. 격찬이 아깝지 않은 성과를 두고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더 조심스럽게 평가하는 풍토가 아쉽게 느껴질 뿐이다.
![]() [설명 : 1981년 8월, 프랑크푸르트 훈련장에서 한 컷. 왼쪽 두번째는 당시 프랑크푸르트의 백업 공격수였던 요하임 뢰브 현 독일 국가대표팀 감독.] 'ⓒ차범근 개인 소장' |
이런 이유로 두 선수는 각각 제 나름의 업적을 기록 중이다. 하지만, 굳이 비교를 하자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박지성을 차범근에 필적한 선수로 평가하기에는 너무 이르다는 생각이다. 서태지와 빅뱅의 차이 정도라면 생뚱맞은 비교려나.
1980년대의 유럽 축구, 그리고 독일 분데스리가
20년의 격차가 주는 환경의 차이를 보자. 80년대의 외국인 선수들은 유럽 빅 리그에서 뛰는 것만으로도 이미 기량을 인정받은 셈이라 보면 됐다.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긴 했지만 지금에 비하면 외국 선수들의 출전은 무척 어려운 편이었다. 각 팀 별로 외국인 선수를 2명씩만 기용할 수 있던 80년대의 분데스리가의 경우 외국인은 확실한 주전감이 아니라면 계약조차 할 수 없었다. 당연히, 시즌 중 부진이나 슬럼프 역시 곧바로 퇴출로 이어질 위험이 컸다. 꾸준한 활약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내일 일을 장담할 수 없는 살얼음판이 외국인 선수들의 발 아래에 놓여져 있던 셈이다. 게다가 차범근은 아시아, 그것도 많은 유럽인들이 존재조차 모르던 나라 '코리아'에서 건너 온 26세의 청년이었다. 월드컵의 후광도, 마케팅의 가능성도, TV중계권 판매도 없던 그 시절, 데뷔부터 은퇴에 이르는 10년 동안 한 순간도 팀의 베스트 멤버가 아닌 적이 없던 차범근의 활약은 단순한 수치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외국에서 그냥 살기도 힘들 10년의 시간을 당대 최고 수준의 선수들과 경합하며 프로 축구 선수로 ‘서바이벌’한다는 것은 이미 그 자체로 놀라운 성과인 셈이다. 하지만, 차범근이 만든 10년의 기록은 (글 아래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단순한 '서바이벌'을 넘어선다.
간혹, 차범근의 소속 리그와 소속팀의 무게가 낮다며 그의 커리어를 폄하하는 이들도 있다. 최근 들어 많이 약해지긴 했지만, 7,80년대의 독일 분데스리가는 그야말로 유럽 최강의 리그였다. 차범근이 유럽으로 건너간 1979년 UEFA(유럽축구연맹)이 발표한 리그 랭킹에서 독일은 총점 52.617점을 획득하며 1위에 올랐다. 2위 네덜란드(39.200), 3위 벨기에(38.300), 4위 잉글랜드(38.141) 등을 압도적인 점수 차로 누르고 선두에 오른 것이다. (스페인은 5위, 이탈리아는 9위) 독일은 1985년 잉글랜드에게 1위 자리를 내주고 이탈리아에 이어 3위로 밀려날 때까지 리그 랭킹에서 줄곧 선두를 유지했다. (독일은 1990년 한 차례 정상을 탈환한 뒤, 통독 이후로는 한 번도 다시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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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 |
1980 |
1981 |
1982 |
1983 |
1984 |
1985 |
1986 |
1987 |
1988 |
1989 |
1위 |
독일 |
독일 |
독일 |
독일 |
독일 |
독일 |
잉글랜드 |
이탈리아 |
이탈리아 |
이탈리아 |
이탈리아 |
2위 |
네덜란드 |
잉글랜드 |
잉글랜드 |
잉글랜드 |
스페인 |
잉글랜드 |
이탈리아 |
독일 |
소련 |
소련 |
독일 |
3위 |
벨기에 |
벨기에 |
스페인 |
네덜란드 |
잉글랜드 |
스페인 |
독일 |
소련 |
독일 |
독일 |
스페인 |
4위 |
잉글랜드 |
스페인 |
네덜란드 |
스페인 |
유고슬라비아 |
스코틀랜드 |
소련 |
벨기에 |
스페인 |
스페인 |
소련 |
l 잉글랜드 리그 소속 클럽들은 1985년 헤이젤 참사 이후 5년간 UEFA 주관 대회 출전 금지 조치를 받았다.
리그의 수준이 높은 덕분인 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감독들도 많았는데, 차범근 역시 독일에 머문 10년 동안 '토탈사커의 창시자'인 리누스 미셀(1988~1989/레버쿠젠), 서독 대표팀 감독 출신으로 이후 바이에른 뮌헨과 독일 대표팀 감독을 다시 맡은 에리히 리벡(1985~1988/레버쿠젠), 일본에 축구 동메달을 안겨주고 바이에른 뮌헨 감독도 역임했던 전 대한민국 올림픽 대표팀 감독 크라머(1983~1985/프랑크푸르트), 유고 최고의 축구 스타 출신인 브란코 제벡(1982~1983/프랑크푸르트) 등 명장들의 지도를 받았다.
UEFA컵과 차범근
더군다나, 차범근의 데뷔 시즌은 79/80 시즌의 경우, UEFA컵 4강에 오른 네 팀이 모두 독일 팀이었을 정도였다. (바이에른 뮌헨, 프랑크푸르트, 슈투트가르트, 묀헨글라드바흐) 당시 독일 분데스리가의 위용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UEFA컵이니 별 것 아니라는 독자들에게 덧붙이고 싶은 설명은 당시 UEFA컵의 위상은 현재 기준으로 따지면 UEFA컵보다 챔피언스리그에 가깝다는 것이다. 챔피언스컵은 1992년에 현재의 챔피언스리그로 확장되기 전까지 각 리그 우승팀들간의 대결로만 압축되어 있었는데, 그래서 각 리그 2~4위권 팀들이 모여 치른 UEFA컵은 챔피언스컵보다 더 큰 규모와 그에 못지 않은 위상을 가진 대회였다. 그리고, 이 대회에서 차범근은 독일 진출 첫 해인 79/80시즌 프랑크푸르트 소속으로, 87/88 시즌에는 바이엘 레버쿠젠 소속으로 각각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유럽 축구 역사상 2개의 다른 팀에서 UEFA컵을 두 번 들어올린 8번째 선수다.
![]() [설명 : 스페인 명문 FC바르셀로나와의 8강전을 앞두고 발간된 경기 프로그램. 수비사레타 골키퍼, 게리 리네커, 베른트 슈스터 등의 모습이 보인다.] 'ⓒ차범근 개인 소장' |
이처럼 차범근은 선수로 뛰는 내내 팀의 주축으로 활약했고 소속팀의 역사적인 순간마다 이정표를 제시하며 기념비적인 기록을 남겼다. 아래에 제시하는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열 번의 시즌을 치르면서 부상을 제외하면 선발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적이 거의 없는 철저한 자기 관리와 꾸준한 성적은 여느 톱클래스 선수들 못지 않은 수준이다. 한국에서 ‘곧바로’ 날아간 데뷔 시즌부터 스스로 은퇴를 선언하고 선수 생활을 정리한 은퇴 시즌에 이르기까지 꼬박 10년을 최고의 자리에서 보낸 것이다.
유럽 최고의 골게터로 살다
마지막 2~3시즌을 공격형 미드필더로 보직을 변경해 뛴 차범근은 이전까지 매 시즌 두 자리 골을 터뜨리며 팀의 주축 멤버로 활약했다. 특히 최종 득점 4위에 오른 85/86 시즌의 활약은 특기할만한데 34경기에 모두 출전해 17골을 터뜨리며 레버쿠젠을 다음 시즌 UEFA컵에 진출시켰다. 당시 차범근의 기록(17골)은 해당 시즌 1위(슈테판 쿤츠[보쿰])보다 5골 뒤지는 것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쿤츠가 5개의 PK골을 포함한 기록인 반면, 차범근은 단 1개의 PK골도 없이 17골을 쌓아올렸다는 사실이다. 차범근 아래 순위에는 현 바이에른 뮌헨 감독이자 전 독일 대표팀 감독인 위르겐 클린스만(16골)이 랭크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표) 1985/1986 독일 분데스리가 최종 득점 순위
1위 슈테판 쿤츠 (보쿰) 22골
2위 칼 알괴버 (슈투트가르트) 21골
3위 프랑크 노이바트 (베르더 브레멘) 20골
4위 차범근 (바이엘 레버쿠젠) 17골
5위 위르겐 클린스만 (슈투트가르트) 16골 – 87/88 득점왕
5위 토마스 알포스 (카이저슬라우테른) 16골 – 84/85, 88/89 득점왕
21위 로타르 마태우스 (바이에른 뮌헨) 10골
28위 루디 펠러 (베르더 브레멘) 9골 – 82/83 득점왕
![]() [설명 :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당시 독일 대표팀 감독이던 위르겐 클린스만과 만난 차범근] |
여하튼, 이 시즌에 차범근은 독일의 한 신문사에서 주는 '시즌 MVP상'을 받을 정도로 큰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시즌 직후에 열린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불가리아 등 상대팀들의 집중 견제 대상이었는데 소속팀 레버쿠젠은 차범근을 위해 당시 스태프 진이 부족했던 대표팀 선수단의 상황을 고려, 구단 전속 팀닥터를 월드컵에 급파해 최고 스타의 몸을 직접 챙겼다.
차범근의 득점 기록이 갖는 의미
득점의 절대적 수치를 뛰어넘는 지표는 공격수로 뛰는 동안 매 시즌 팀 내 최고 득점자였다는 점이다. 소속팀의 순위가 중위권의 범주를 넘지 못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팀 내 리더로서의 역할을 짐작케하는 대목이다.
공격수로 뛴 7시즌 동안 리그에서 두 자리 수 골을 기록한 것이 6차례라면 최고 수준의 골게터라는 표현은 당연히 따라 붙는 찬사다. 현재 프리미어리그 득점 1위인 니콜라 아넬카(첼시)는 12번의 풀타임 시즌을 치르는 동안 두 자리 수 이상의 리그 골을 터뜨린 것은 7차례다. 웨인 루니(맨유)가 성인 무대에 풀타임 데뷔한 이후 현재까지 치른 6시즌의 리그 출전/득점 기록은 차범근의 첫 6시즌과 기록이 거의 유사하며 독일의 골게터 미로스라프 클로제(바이에른 뮌헨)의 경우 득점왕을 차지한 05/06 시즌(25골)을 제외하고 비교하면 오히려 차범근보다 리그 골 수가 적다.
(표) 유럽 통산 기록 (1978~1989)
자국 리그 유럽 대회 경기 골 팀순위 경기 골
1978/1979 다름슈타트 1 0 - (비자 문제로 귀국)
1979/1980 프랑크푸르트 31 12 9위 11 3 UEFA컵 우승
1980/1981 프랑크푸르트 27 8 5위 5 2 UEFA컵 출전
1981/1982 프랑크푸르트 31 11 8위 6 1 컵위너스컵 출전
1982/1983 프랑크푸르트 33 15 10위 (리그 득점 10위)
1983/1984 레버쿠젠 34 12 7위
1984/1985 레버쿠젠 29 10 13위
1985/1986 레버쿠젠 34 17 6위 (리그 득점 4위)
1986/1987 레버쿠젠 33 6 6위 3 2 UEFA컵 출전
1987/1988 레버쿠젠 25 4 8위 10 2 UEFA컵 우승
1988/1989 레버쿠젠 30 3 8위 2 0 UEFA컵 출전
합계 308 98 37 10
+ DFB포칼(FA컵) 통산 27경기 13득점
[커리어 통산] 372경기 131득점 (PK 득점 없음)
[설명 : 은퇴를 결정한 1988/1989 시즌, 주말에는 리그 경기에 빠짐없이 출전하면서 주중에는 독일 축구협회가 마련한 코칭 스쿨을 다녔다. 원래 은퇴 스타들만 수강하던 코스였고 현역 스타로는 차범근이 유일했다. 리누스 미셀 감독의 배려 덕에 가능했던 일. 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는 슈투트가르트-바이에른 뮌헨을 거쳐 현재 볼프스부르크 감독을 맡고 있는 펠릭스 마가트.] 'ⓒ차범근 개인 소장'
내 손 안의 보석도 소중하다
스타들의 면면을 비교하고 우열을 논하는 것이 스포츠를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인 것은 분명하다.한국 축구의 대표적인 아이콘이라 할 두 인물에 대한 비교는 그래서 늘 흥미롭고 화제를 모으는 이슈일 것이다.
하지만, 매번 느끼는 아쉬움은 몇몇 팬들의 극단적 평가와 지나친 겸손이다. 자신이 잘 알지 못하거나 좋아하지 않는 스타(혹은 팀)를 깎아내리고 비난하거나, 같은 국적을 가진 선수들의 성과를 오히려 쉽게 인정하지 않는 풍토에 대한 씁쓸함이 쉽게 가시지 않는 것이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식의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 오히려 외국 선수들의 성과를 더 크게 인정하는 겸손함은 여러 면에서 아쉬운 대목이다.
어떤 스타의 성과나 기량을 얼마나 인정하느냐의 여부는 각 개인이 판단할 일이지만, 그런 주관적 견해가 공공의 공간에 공격적인 언사로 등장할 때 그것은 일종의 폭력이 된다. 말 없는 박수와 공연한 '악플'의 차이는 생각보다 매우 크다. 이미 선수 생활을 접은 지 20년이 지난 차범근의 '과거사'를 이리도 길게 끄집어내어 놓는 것은 이런 작은 수고가 불필요한 감정의 낭비와 자학의 악순환을 끊는 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지만, 내 손 안의 보석이 귀한 줄 아는 게 더 먼저일테니까.
차붐에 관한 기사중 요근래에 가장 정확한 기사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며칠전에 차붐기사가 올라왔을때 박지성,나카타,나카무라,이영표,카리미,샤츠키흐,다에이 등이
유럽에서 어느정도 성공했지만 차붐의 반에반도 못따라 간다. 라고 댓글 단 적이 있습니다.
물론 그 댓글을 달고 반박성 댓글은 어느정도 올라왔지만 이 기사를 본 후
또 한번 느꼈습니다...반에반도 못따라간다는것을....
물론 커리어나 국제대회 성적은 빼놓고 말한것 입니다.
차붐이 갖고 있던 팀의 상징성, 그리고 차붐의 경기력은 정말 아시아 그 어떤 선수도 못따라가는것 같습니다.
첫댓글 영웅
피케이도안찻는데////
삭제된 댓글 입니다.
커리어면에서는 이미 뛰어넘었다고 생각합니다. 월드컵 4강 챔피언스리그 4강,우승,프리미어리그 우승,칼링컵 우승,클럽 월드컵 우승,에레디비지에 우승..무수히 많은 우승을 했고 거대한 빅클럽에서 주전급을 활약을 하는 훌륭한 선수라고 생각하고 저 또한 팬입니다..하지만 차붐의 팀에서의 핵심,에이스,상징성,경기력은 차붐이 최고죠~
커리어는 비슷하다보는데.... 그래도 박지성 <<<<<<<차붐
커리어가 골 수 까지 포함인가요? 클럽 우승 경력만이 커리어라고 보면 박지성이 우위인데..
차붐은 비교 요즘 선수들에 비교 되는것 자체가 굴욕 그 당시 프로리그도 없던 우리나라에 그것도 공군(다름슈타트랑 계약했다가 기간 6개월 안채웠다고 귀국해서 물거품)도 갔다온 상태에서 혈혈단신 축구화만 가지고 20대 중반에 나이에 건너가서 이룬게 저 정도 입니다. 정말 피파 올해의 선수나, 발롱도르 받는선수 나오지 않는이상 비교될 선수는 없다고 봄
마가트 감독의 젊은 시절 사진은 첨보네요 ㄷㄷㄷ
전설 그 자체
ㅇㅇ 그 어느 아시아선수도 못따라감 아직 멀었음 지성횽이 이어줄꺼라 믿음
서형욱씨 글은 언제나 참재밌더라구요ㅎㅎㅎ, 좋은 내용 잘읽었습니다
리그 우승은 못해본게 아쉽겠넹
예전 갈라타사라이가 UEFA컵 우승을 했을때,유럽 전역의 터키인들이 광란의 파티를 벌였었죠.그때 핵심멤버였던 게오르게 하지는 아직도 영웅으로 기억되고 있고....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 UEFA컵을 두번씩이나 들어올린 차붐에 대해 심하게 깎아내리는거 같습니다
ㅇㅇ
전설이네
아시아에서 저정도로 성공한 선수는 극히 드문데도...무슨 펠레나 마라도나하고 비교해서 까는 인간들이 이 밑에 있다면 그냥 입 다물고 쓰던 리플 지우세요~
뢰브의 굴욕ㅋㅋㅋ
헐 미셀감독이랑도 친했네;; 진짜 대단하신듯..
미셀 밑에서 뛰었는데요 뭐...미셀이 자기가 지도했던 선수들 중 요한 크루이프랑 차붐이 젤 뛰어났다고 말했다고 하니...그냥 ㅎㄷㄷ. 은퇴 직전에는 미셀이 플레잉코치로 아약스 오라고 했는데 차범근이 거절하고 왔다고 차범근이 말했었음.
그때랑 좀 다르긴 하지만 지금 epl에서 외국인 보유 선수 2명만된다고 한다면 누굴 고를지 생각해보세요. 2명안에만 들어도 대단한 것입니다. 그런데 데뷔시즌에 상위권팀인 프랑크푸르트에 갔습니다. 지금 리버풀 정도라고 생각할수 있겠네요. 리버풀에서 외국인 선수 2명 골라보십시요. 토레스하고 알론소를 고르겠죠. 간단히 말해서 차범근=토레스. 그런데 풀햄정도 되는 중위권 팀으로 이적하더니 챔피언스리그에 진출 시킵니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동점골 넣고 챔피언스리그 우승시킵니다. 비유하자면 이정도 겠죠.
비유가 진짜 피부에느껴지내열... ㅅㅅ
정말 기가막힌 비유 !!!!!!!!!
까라 마음껏... 진실은 결코 변하지 않는 법. 대한민국의 자랑.
차범근에 대한 객관적인 설명..더 이상 논쟁이 필요가 없게끔 하는 글임에도 그래도 까고 싶은 사람이 있을듯.
제개인적으론 까는글이라기보다는 몇몇 선수들이 존경한다는 그런글 은 잘못된사실인데 그걸 지적해주면 깐다고 하더군요
서태지와 빅뱅... ㅈㅈ ㅡ.ㅡ;;
군대도 갔다 왔다는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