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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탱자일기
2024.07.20.토
제목 : 아들아!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아들아!
이 인생 맷집으로 즐겨보자!
금요일, 토요일 나름 맑은 날씨였는디,
토요일 밤부터 장대비가 내린다.
그 좋게만 들리던 빗소리도 간빔에 아들을 만나고 느낀 짠헌 마음을 씻겨 내리지 못허고 있다.
'자식을 키워봐야 부모의 맘을 안다!'는
옛 어른들의 말이 가슴시리게 가슴을 후빈다.
아들과 7년간의 응어리를 풀었기에 글이 무지 길다. 소설의 소재로 써도 좋을 듯하여 될 수 있음 대화체로 써보기로 헌다.
어제는 교대역 11번 출구에서 쭈욱 올라가는 서울회생법원에 갔다.
5년전 타일공사대금을 나름 쫌씩 갚아오던 태동요양병원법인에서 법인회생을 신청하였는디, 받아들여져서 채권신청을 허러오라는 것이였다.
집에서 전산으로 허는 방법도 있다고 했는디, 컴퓨터 알러지가 있는지라 서울구경도 헐 겸! 아침에 보산산을 갔다가 늦은 아침을 묵고, 농협을 들렸다가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야 가평역을 출발해서 교대역으로 갔다.
청춘열차가 빠르긴 헌디, 휴가철인지라 매진이여서, 전철을 탔는디, 전철은 가평에서 많이 타고 춘천쪽에서는 많은 사람이 없어서 널널허게 자리를 잡고 앉아서 서울을 향했다.
2003년 12월 '자라섬개발제안서'에 "가평역을 수도권 주5일근무가 정착이 되면, 수도권 휴양객들의 간이역으로 맹글겠습니까? 종착역으로 맹글겠습니까? 자라섬을 개발허면 수도권 휴양객의 종착역으로 맹글 수 있으나, 가평자라섬을 개발허지 않으면 강촌이나 춘천으로 가는 간이역이 될 것입니다!"라고 당당허게 제안했던 문구가 생각난다.
그 당시까지 경춘선 기차를 이용헐 시절에는 강촌이 활발했으나 요새는 강촌은 추억의 거리로 뒷방신세가 되고, 남이섬과 가평 풍경이 가평역을 수도권 휴양객의 종착역으로 맹글고 있지만 요새는 자라섬도 크게 일조를 허고 있슴이다.
가평에서 교대역으로 가는 방법은 청량리행 전철을 타고 가다가 상봉에서 7호선을 타고 고속버스터미날까지 가서 3호선을 타고 교대역까지 가면된다고 전철어플이 안내해준다.
그 어플은 몆 번째 칸에 타야 빠른 환승을 허는지에 대한 정보와 그것을 지켰을 적에 몇시 몇분에 도착헌다는 정보를 알려준다.
법원 업무는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을 소요해서 마쳤다.
5년 만에 공사대금을 완납받을 수 있을 듯 허다.
배고팠다.
아직 퇴근 시간까지는 두 시간이나 더 남은 시간이고, 누구를 만나 저녁을 먹고 가평으로 넘어갈까? 궁리를 허다가, 1992년 안산 고려선원에서 행자생활헐 적에 고려선원에서 경찰간부고시시험을 준비헌다고, 태릉선수촌에서 은사스님과 인연이 있었던 전 국가대표 레스링선수, 최원영(66년생)거사형님이 운영허는 신대방역 3번 출구 닭꼬치집, 레슬러를 찾았갔는디!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17일에서 21일까지 쉽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여있다.
해서 전화통화로 아쉬움을 달래고, 옆집에서 닭곰탕에 냉장고에 넣지 않은 미지근헌 맥주로 허기와 갈증을 달랬다.
그러고 있는디! 대어가 낚였다.
아들 동혁이가 바로 한 시간 전에 쓴 일기를 가족 단톡에서 읽었는지?전화가 왔다.
"아빠 어디야?"
"응 신대방역 닭꼬치집!"
"아! 아빠랑 어릴 적 갔던 레스링선수 삼촌네?"
"으응! 너도 여기를 알아? 누나허고만 온 줄 알았는디!"
"아주 어릴적 간 적이 있어! 그 때 개울에서 천둥오리를 봤잖아! 그 때 아빠가 저것이 천둥오리라고 가르쳐줬잖아! 그때 난 천둥오리를 처음 봤어!"
"그래? 그렇다면 너 아주 어릴적일텐데 그것을 기억헌단말야?"
"그렇지 그 때가 유치원 다닐 때 일걸?"
"그래! 그럴때이겠구나! 내가 가평에서 헐것이 없어서 남이섬 입구에서 닭꼬치장사를 해볼까? 허는 생각에 쉬는 날 자주 들릴 때 였을 테니까!"
"그래! 그 때 아빠가 날 자주 데리고 갔었어! 그러니까 내가 알지!"
"아 그랬구나!"
"아빠 나 요즘 한 달 간 쉬고 있어! 아빠 오늘 아빠랑 술 한 잔 할까?"
"그래! 좋다. 근디 여기는 휴가여서 나 혼자 맥주 한병에 닭곰탕을 먹는 중이다."
"그럼 우리집 근처로 오면 안돼? 나 사실 낮술 한 잔 했거든!"
"그래! 그럼 내가 그리로 갈께 어디였지?"
"아빠가 이사하준 집! 나 아직 거기 살아!" "그래? 근데 니 연락처에 아직 구의동 주소로 되어있는데 여기는 첨 살던 것 같은디, 이사한 주소를 내가 안 바꿨다. 어디였지?"
"석촌동! 석촌역에서 가까워!"
"아! 그랬구나! 니네 집이 가락시장에서 가까워서 가락시장에서 가족끼리 회를 함께 먹은 적이 있구나!"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나 걸릴까?"
"음 안그래도 통화중에 전철역 검색을 허고 있는 중이다. 으음! 잠깐만 아 40분 걸리네! 난 이제 식사를 다 했으니까! 이제 출발할께!"
"그럼 난 한 숨 자고 있을께 석촌역 6번 출구로 나와서 전화해 걸어서 나갈께! 아빠 참 뭘드시고 싶어?"
"난 아무거나 잘 먹잖아! 니가 먹고 싶은 것 있음 먹어!"
"아냐! 아빠허고 단둘이는 오랬만이닌까 아빠가 드시고 싶은 거 말해! 아빠 닭보다도 오리 좋아하잖아!
근처에 오리 잘하는 집이 있는데 오리 드시러 가실레요?"
"그래! 그것도 좋겠다."
"그랭! 그럼 난 한 숨 자고 있을테니까 도착해서 전화해!"
"그래! 편히 쉬고 있어라!"
그렇게 난 신대방역에서 종합운동장으로, 종합운동장에서 석촌역으로 가는 전철을 갈아타고 석촌역으로 갔다.
아들과는 2년 여만에 처음 만나는 것이다.
아니 일요일 청담동에서 남국이네 딸이 결혼식을 헐 적에 청담동 커피 솝에 근무중인 아들을 마님과 딸네미와 차 한 잔 했으나 근무중인 아들과는 별 대화를 나누지 못허고 나왔기에 더 아쉬움이 있었다.
아들 동혁은 내 4형제와 작은 할아버지까지 해병대가족인 가족모임에서 본 모습에 자연스럽게 해병 1202기로 지원해서 김포 2서단에서 자주포운전병으로 지난 7년 전 6월에 전역을 허자마자 하루도 쉬지 못허고, 구의동의 어느 커피숍에서 바리스타로 일허면서, 자신이 좋아허는 노래을 했다.
아들은 가평군청소년 종합예술제 보컬부문에 일등을 허고, 가평군대표로 경기도대회에 출전하여 경기도에서 2등을 헌, 나름 공인된 노래 실력을 가지고, 실용음악대학을 진학허라고 했지만 대학 대신 해병대를 전역해서 빠른 사회생활을 하고 싶다고 해병대를
고등학교를 졸업허자마자 의장대로 지원했으나 번번히 떨어지고, 일반 보병으로 지원해서 입대를 했다.
그리고 전역헐 무렵, "아들! 내가 어떻게든 니가 원하는 편도 비행기표를 만들어 줄테니까! 기타와 내가 고교시절에 사준 공연용 앰프를 들고, 버스킹을 허면서, 현지 알바를 허면서 지구 한바퀴 돌고 와서, 니가 무엇을 할 것인지? 궁리를 해봐라! 그러다가 사랑허는 여인을 만나서 결혼을 해도 좋다.
내가 말이야! 어떤 노인의 세계크루즈여행기 책을 읽었는디! 이런 부분이 있더라! 나도 그 부분에 큰 공감을 헌다. 어느 할머니가 홀로 크루즈여행을 허더란다. 그 때 어느 젊은 부부는 빚을 내어서 크루즈여행을 허고 있던 부부가 있었지! 그 젊은 부부를 보고, 그 할머니가 한 탄을 허고 헌 말을 난 아들헌테 전해주고 싶다.
그 할머니는 젊은 시절 남편과 열심히 일해서 노후에 세계 크루주여행을 허자고 45년 동안 적금을 했단다. 그러나 그 45년을 채우지 못허고 남편인 할라버지는 몇 해 전에 이 세상을 떠나고 홀로 크루즈여행을 헌다는 것이다.
그래서 빚을 내어 크르즈세계여행을 허는 젊은 부부의 용기와 현멍한 결정에 찬사를 보낸다는 책의 내용이였지!
어쩜 인생은 긴 여행일 수 있단다.
우리 옛 노래에도 '노새 노새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노나니라 차차차!'라는 노래가 있단다. 한 살이라도 젊었을 적에 여행으로 지구 세상 사람들이 어찌 사는지? 충분히 구경허고 나는 어떻게 살까? 를 고민해도 된다는 의미란다. 그렁께 지구를 한 바퀴 젊었을 적에 돌아봐라! 이 것도 젊응께 더 쉽께 헐 수 있을것이다.
애비도 이 한반도를 다 돌아본 후에 기필코 이 지구를 다 돌아볼 것이다."
라고 했지만 아들은 이 애비처럼 해병대를 제대허고 하루도 안 쉬고 바로 자기가 하고 싶은 노래와 커피솝 바리그타 일을 시작했다.
나 또한 바보처럼 전역허자마자 영등포 시장 육교 건너 영헬스클럽에서 헬스크레이너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그 다믐해 방송대 농학과에 진학을 허고 이제까지 숨가프게 헐떡임서 달려온 것이 너무 많이 후회스러움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너처럼 자유분방허게 살아온 놈이 뭐가?"라고 그럴 수 있지만 내가 가평을 떠나 한반도 남반부를 두바퀴 돌기 7년 전까지는 내 나름 처절허게(?) 살아왔다.
53세로 이생을 떠나신 아부지 상여 밑에서 "아부지처럼 이 좁은 나주를 벗어나지 못한 삶을 살지 않겠소!"라고 다짐했지만 나주에서 20년, 서울에서 10년, 나주보다 더 작은 가평에서 20년을 살고 있는 자신을 돌아보고, 막둥이인 아들이 해병대를 전역허고 독립선언을 허자마자!
결혼 전 마님과 세번째 약속헌대로 그 조건의 충분조건이 완성되었기에 나도 독립을 선언하고 가평을 떠나 유랑을 시작헌 것이였다.
아들과의 7년 전 얘기를 허다가 삼천포로 흘렀다.
석촌역에 도착했다.
석촌역에 도착해서 아들헌테 전화를 했는디, 전화를 받지 않는다.
아들이 잠을 자고 있겠다고 했는디, 깊은 잠에 떨어졌나보다. 석촌역 주변을 돌아봤다.
석촌역 주변의 오리탕이나 오리관련 간판이 있는지? 둘러봄서 먹자골목을 둘러봄서 동혁이가 잠에 깨어서 전화허기를 기다렸다.
신대방역 포차거리에서 닭곰탕에 맥주 한 잔을 했던 배부른 자의 여유일 것이다.
5년 전 동혁이를 이사해주고 둘러봤던 그 건물, 그 거리 그대로였다.
5년동안 가평은 너무나 많이 변했는디!
서울 석촌동은 변함이 없다
이제 더 이상 변허기 힘듬이다.
오리에 관련한 간판은 있을 만헌 곳에 없었다.
카카오네비에 오리전문점을 검색해 본께 1.7km지점에 한 오리전문점이 나온다.
'이 동네는 아닌가보구나!'허는 생각이 들었다.
'맞아! 석촌! 이 근처에서 국민학교에서부터 나주고등학교까지 함께 댕겼던 이쁜 금선이가 무슨 음식점을 오픈했다는 것을 다시중학교밴드에서 본듯 헌디! 난 바다로 떠도니라고 개업식때도 못 갔는디 전화 한 번 해볼까? 이왕이면 그 친구집에서 전라도 음식 맛을 보는 것이 좋겠고 아들도 소개시켜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금선이가 반갑게 전화를 받는다.
"응! 점수야!"
"나 석촌역인디! 너 이 근처에서 무슨 식당을 헌다고 그러지 않았냐?"
"응! 석촌이야? 어쩐 일로?"
"응! 석촌에 내 아들이 사는디! 아들허고 오늘 저녁을 묵기로 했거든!"
"아 그래? 난 석촌이 아니고 복정역에서 쫌 들어오는 위례에서 불고기집을 허지!"
"아! 그래? 여기서 두세 정거장 밖에 안되네. 옛날 한국체대가 있던 곳이겠네!"
"그렇지!"
"그래! 아들허고 상의허고 될 수 있음 이쁜 금선이도 보고 아들허고 같이 갈께!"
"응! 니 얼굴도 보고 싶다! 무조건 와라! 니 얼굴 본지도 언젠지 모르것다야!"
"알았어! 아들이 전화오면 상의허고 전화헐께!"
위례신도시는 내가 장산도로 가기 전 2018년도 하반기에 6개월간 타워크레인 설치헤체 일을 헐적에 어느 상가빌딩 타워크레인 헤체작업을 했던 곳이다.
이런 생각을 허고 있는디, 동혁이한테 전화가 왔다.
"이빠 전화했었네 어디야?"
"응! 도착해서 전화했는디!, 아들이 전화를 안 받아서 아직 잠에서 덜 께었구나! 허고 니 동네 한바퀴 돌고 있었지! 근디! 니 동네에 오리집 간판은 안보이던디?"
"아! 그 오리집은 택시타고 좀 가야돼!"
"그렇지? 그런것 같드라고, 그러면 오리말고 돼지갈비먹으러 가면 어떠것냐? 애비 국민학교부터 고등학교 여자동창이 복정역근처 위례에서 돼지갈비집을 헌다는디! 택시타면 15분정도 간다는디! 어쩌겠냐?"
"오리집도 그 정도 걸려! 일단 만나게 아빠는 어디야? 응! 동네 한바퀴 돌로 다시 석촌역 6번 출구에서 일기를 적음서 아들이 깨어나서 전화허기를 기다렸지!"
"에이! 전화 받을 때까지 전화를 허지 그랬어? 진동으로 해 놓은 것을 낌박했단말이야!"
"아냐? 그렇게 많이 기다리지 않았어! 글고 니가 처음 전화헐 적에 닭곰탕에 맥주를 두병이나 비우고 있던 참이라 배도 든든해서 오리려 니가 더 늦게 잔화허기를 바라고 있었지!"
"알았어! 내가 글리 갈께!"
"여지친구랑 같이 오냐? 아까 여자친구랑 같이 있던 모양이던디!"
"아냐! 혼자 갈께! 오랜만에 아빠하고 할 얘기도 많아! 글고 여자친구와 먼저 술을 한 잔 했어서 오늘은 안돼! 나 혼자 걸어가고 있는 중이야! 5분 후면 도착해!"
"그래!그럼 난 운동이나 허고 있을께!"
장마철이라서 반바지에 윗도리는 나시에 핸드폰과 핸드폰 보조밧데리외 충전기를 담기위해 늦가울용 홍색 개량한 복 조끼를 입었다.
여름용 조끼는 핸드폰의 무게를 감당허지 못허고 주머니가 찢어지기 땜시 여름에도 주머니가 튼튼헌 가을 조끼를 나시 위에 자주 입고 댕긴다.
걸리적거리는가방같은 것일제라도 손에 들고 댕기기 걸리적거리는 것을 좋아허지 않기 땜시다.
마침 인도로 자동차 진입방지 봉이 잇어서 그 봉을 두손으로 잡고 가볍게 풋샵을 험서 쪼그리고 앉아 있어서 움츠려진 허리와 가슴에 펌핑을 했다!
아들놈은 운동을 많이 허고 있을까?
동혁이 할아버지인 내 아부지는 180의 훤칠한 키에 누가 봐도 시조할아버지인 배현경장군의 후손 다웠는디, 키가 아주 작은 엄마를 만나서 우리 4형제가 170cm언저리에서 왔다갔다를 해서 '난 반드시 종자복원을 허리라!"다짐허고 마침 키가 163인 마님이 내게 대시를 해 오길래 마님으로 받아들여서 아들 동혁이의 키는 180cm로 종자걔량을 했다.
난 그것만은 성공했다고 자부헌다.
검은 상하의를 입고 걸어논 아들이 보였다.
보얀 얼굴에 훤칠한 키! 근디! 운동을 안허는지? 내보다 배가 더 불록해 보인다.
"아들! 너 운동을 안허냐? 나보다 배가 더 나온것 같아?"
"응! 사정이 있었어! 3년 전에 허리가 많이 안 좋아서 운동을 쉬었고, 요즘 한 달반 백수를 했더니 이러네!"
"그럴수록 운동을 해야지! 애비는 너 알지? 내가 몇살까지 배에 초코렛이 있었다는것을, 나도 이제 다시 초코렛을 복원허기 위해 운동을 다시 세작했다."
"알았어! 다시 운동할거야! 우리 한 번 안아봐야제!"
허고 길거리에서 나를 껴안는다.
우린 그랬다.
아니 나는 그랬다.
딸네미와 아들네미가 아주 어릴적부터 아침에 헤어질때와 저녁에 만날때 아이들의 가슴이 으스러질 정도로 힘차게 안아주고 헤어지고, 또 만나면 가슴을 으스러제게 안아주었다.
어떤 책에서 아이들을 힘차게 안아주는 것이 오장육부를 튼튼허게 해 줄 뿐 아니라 정서적으로 안정감과 유대감을 심어줄 수 엤다는 것을 알았다.
실제로 해본께 아이들과의 유대감에 엄마보다 좋아짐을 느꼈다.
어느 날부터는 성장헌 동혁이가 더 쎄게 날 껴안은 것을 보면서 아들이 성장허고 있구나를 느꼈다.
근디! 실망스럽게도 아들의 완력에 너무 연약허다.
"아들! 니가 더 세게 안아서 애비의 허리에서 우두둑 소리가 나야되는것 아냐?"허고 키큰 어들 척추골에 깍지손을 대어 아들을 들어올림서 힘차게 안아올린께 아들의 허리에서 우두둑!;소리가 난다.
"오! 시원한데! 위에도 해줘!"그래서 위에서 아래로 부분적으로 허리를 풀어줬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어느 식당 주차요원이 웃는다.
"아빠! 아빠 친구가게까지 걸어갈까?"
"에이 멀어! 옛날 너를 성남에서 낳았을적에는 가락시장역에서 성남까지 뛰어서 출퇴근을 했었지! 근디! 오늘은 시간이 많이 걸려! 내가 네비를 찍어보니까! 옛날 한국체대가 있는 곳이야! 복정역에서도 한 참 들아가는 곳이야! 걸어가면 한 시간 넘게 걸려! 난 막차라도 타고 가평까지 가야되고, 내일 건강검진이 있어서 21시 이후에는 뭘 먹으면 안된다고 그랬어!"
"그래! 그럼 택시타고 가자! 난 가락시장역인 줄 알아제! 저쪽으로 가면 택시를 탈 수 있어! 가게 이름이 뭐라고 그랬지?"
"응! 여기 문자에 명암을 보내왔어" 허고 문자를 보여주었다.
석촌역에서 가락시장방향으로 좀 걸어간다.
"택시가 올거야! 좀 멀리 있데 ××××번이 올거야 그걸타면 돼!"
"아! 카카오택시를 부른거구나!"
"응! 우리 참 너무 오랜만이지 아빠!"
"그래! 우리 언제 만났지? 내가 배다로만 7년을 싸돌고, 넌 커피숍에 근무허다본께 명절때도 잠깐 스치듯 아침에만 만나서 같이 허심탄해허게 술 한 잔 마실 기회가 없엇구나! 고등학괘시절에는 금요일 치맥을 했는디 말이야!"
"그래! 아빠가 너무했어! 아들이 해병대를 제대했은데 아빠는 바다에 있었잖아! 내가 얼마나 서운했는지 알아?"
"아! 그때? 아들 내가 너 제대허기 몇 개월 전부터 '아들 해병대를 제대하면 아빠처럼 제대허자마자 취업허지 말고, 내가 편도 비행기표를 니가 원하는 어느 나라든 만들어 줄테니까 버스킹을 허든 현지 알바를 허든 제구 한바퀴를 돍고 와서 뭔 일을 헐지 생각해보라고!
내가 했었잖아!
시방이라도 안 늦었다.
니가 지금이라도 그렇게 헌다면 그 비행게표는 어떻게든 구해 줄께!
글고 니 입으로 당시 제대하자마자 집으로 안오고, 재대 당일은 동기들허고 놀고, 그 다음날부터 어느커피숍에 출근을 헌다고! 이마 내 기억으로는제대를 헌 달 앞둔 말년후가 때 이미 강동구청 근처에 원룸을 얻어서 이사를 허고 귀대를 햇던것으로 기억허는데 안그랬나?
그래서 나도 그 때, 니 엄마헌테 독립해서 배닷가로 유랑을 시작헌 것이제! 3년간은 나도 다시 해병대를 입대한다는 마음다짐으로 불가에서 흔히 말허는 만행을 떠난 것이제! 난 아들이 제대했다고 신고하러 동해바다로 오기를 기다렸다. 김포 자주포병과는 일반 보병보다 바다에 살 시간이 별로 없잖아! 해병대는 보병만이 진짜 해병대인거야! 보병을 제외하고는 일반 땅개나 참새들허고 다를 것이 뭐냐?
너 여름에 전투수영이나 IBS 훈련 받아봤냐? 자주포는 그런거 없었지?"
"우리도 여름에는 그런 훈련 받아! 희망자에 한해서!"
"그래서 아들은 받아 봤냐? 20개월 동안 받을 시간도 없었겠다. 기본 병과 훈련만 받아도 6개월이 넘어갈텐디!
그래서 동해바다로 오면 전투수영이라도 내가 갈쳐줄라고 했는디!"
"난 전투수영과 IBS훈련을 지원해서 받았지!
아빠는 엄마가 아빠 먼나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 나서 입원했는데도 가평에 오지 않았잖아! 그때부터 난 아빠를 미워했어!"
"그래? 난 나중에는 그것을 헤제했는디 ! 불가에 새로 출가허는 맙으로 3년 계획으로 떠난거야! 그래도 난 현지에서 일을 해서 매일 8만원씩 엄마헌테 입금을 허고 나머진 막걸리를 먹었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은 니 엄마가 내게 면회를 오는 조건으로 내가 매일 돈을 8만원씩 보내 준거야! 근디! 니 엄마가 처음 온 날! 니 엄마가 뭣 때문인지 말도 않고 삐저서 차를 몰고 떠난거야! 그러다가 사고가 난 거야! 그래서 나도 화가 더 났지! 너도 니 엄마 성격 잘 알잖아! 일방적 자기 잿대를 만들어놓고 그것을 지키길 강요하고, 안 지키면 절교하고! 그러다가 교통사고가 났는디! 죽을 정도도 아니고 교통사고의 의례적인 단순터박상이라는디! 내가 가보고 싶었겠냐? "
"그래? 그럼 그렇수도 있겠네!
근데 그 때 엄마는 그런식으로 나헌테 얘기를 허지 않았어!"
"그래! 그래서 혜련이도 힘들어 해! 근데 너한테도 그런식으로 얘기를 했단 말이야?"
"택시온다!"
"그래! 그런 얘기는 술 한잔 허면서 하자! 7년 동안 쌓인 응어리를 다 풀어보자! 하하하하!"
택시는 목적지를 말도 안했는디, 목적지 근처에 다왔다고 내리시란다.
택시비를 결제헐라고 카드를 내밀었는디, 이미 결제가 다 끝났다고 헌다.
"뭐지? 키카오택시가 이런거야?"
"아빠는 카카오택시 이용한해?
"응! 애비가 택시를 이용헐 일이 없잖아!"
"아까! 아빠가 목적지를 얘기했잖아 그때 택시를 부를적에 목적지를 입력했고, 요금이 나오면 자동으로 결제가 되는거야!"
"아! 그래? 참 편헌 세상이긴 허구나!"
도로에서 모퉁이를 지난께 금선이네
해뜨는 소돼지갈비 간판이 보인다.
금선이는 미리 세 자리 셋팅을 해 놓았다.
시간은 벌써 일곱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직 세 테이블인가가 손님이 있었다.
우린 그 사이에 자리를 잡아져 있엇다.
아들과 금선이를 서로 인사를 시켜줬다.
나는 돼지갈지를 내심 원했는디, 묻지도 않고 아들은 "소갈비 드셔! 내가 쏠테니까!"허고 호기를 부린다.
사실 난 소고기는 육회면 모를까 궈먹는 것은 별로 안 좋아헌다.
궈먹는 기름진 것이 내 입에는 안 맞다.
날로먹는 인생이라 날로 먹는 것은 무지 좋아헌다.
언젠가 정육 소고기 전문점을 갔을적에 친구들은 궈먹엇지만 난 날고기를 먹었다.
어릴적 아부지는 겨울 시제 때, 돼지 한마리를 잡아서 손수 손질허시면서, 정육점을 운영하셨던 실력을 발휘해서 대청에서 돼지 한마리를 큰 통나무 상에 올려놓고 돼지를 헤체하셨는디, 돼지육회를 해마다 나한테 맛보여주셨기에 난 돼지도 역시 궈먹는 것보다 날고기를 더 좋아헌다. 돼지는 갈고리촌충이 있어서 바로 잡고, 안심과 같은 특수부위만 육회로 먹을 수 있는디, 윧회도 소보다 돼지육회가 나는 더 맛있게 먹는다.
근디 아들의 호기를 그대로 받아주었다.
그 대신 술은 내가 마시고 싶은 것을 골랐다.
난 찬술를 좋아허지 않는다.
글고 사실 나일 건강검진이 잡혀있어서 21시 이후에는 음식을 섭취허지 못하기에 술도 적당히 마시고 싶었고, 아들도 이미 전자가 있어서 상기되어 있기에 간단허게 마실라고 복분자를 골랐다.
가게는 써빙허는 사람도 없이 금선이 혼자 움직이고 있었기에 냉장고의 소주를 집으면서 "금선아! 냉장고에 넣지 않은 복분자는 없냐?"
"복분자는 냉장고에 있는것 밲에 없는디!"
"그래? 어쩔 수 없구나! 조금만 먹어야헌께 그냥 냉장고거 먹을란다.
아들 아들도 복분자주 마셔볼레?"
"아니! 난 처음 마셔보는데, 난 그냥 매시던 소주 마실레!"
해서 소주와 복분자주 두병과 소주 한 병을 가지고 식탁에 앉았다.
찬 복분자를 한 병을 마시는 동안 찬기운을 최소화허기 위해서였다.
근디! 나중 생각허면 결과적으로 차라리 따뜻한 소주를 마실껄 그랬다.
멸치배를 8개월간 탈 적에 선주도 상원의 소주를 좋아허고, 배에서는 막걸리도 없어서 소주를 마셨는디, 상온의 소주는 소주를 막걸리 마시듯 마셔도 잘 소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들은 내게 복분자주를 따라주고 난 아들헌테 소주를 따라줬다.
"아들 복분자주 한 번 맛 볼래? 난 술의 찬 맛 싫어해! 특히 찬 소주는 더욱 싫거든! 복분자주도 상온에 것을 마셔야 복분자의 참 맛을 느낄 수 있을텐디! "했더니, "그래 복분자가 어떤 맛인지 맛보고 싶어!"헌다.
복분자주로 건배를 했다.
"아빠! 이렇게 아빠랑 단둘이 술 마셔본는 것이 처음인거 알아?"
"아! 그렇구나! 가족끼리 어울려 마셔본 적은 있었도 단둘이는 처음이구나!
미안하다. 애비가 7년동안 바다로 싸돌기 바빴고, 넌 써비스업종에 있다본께 명절에 시간없었고! "
"아빠! 난 7년 만에 처음 쉬어보는거야! 이런 것을 보면 아빠 아들 어니지?"
"하하하하하하! 그래 그걸보면 아빠 아들이다. 근디말이야! 너는 모르는 것이 있어! 나도 해병대를 제대하고 너처럼 하루도 놀아본 적이 없어!
제대를 허기 전에는 3개월 동안 전국에 있는 전역한 해병대 동기들과 선임들을
만나러 삼천리금수강산을 다 돌아보자라고 생각했는디, 인사차 들린 영등포 영헬스클럽에서 붙잡히는 바람에 나도 하루도 쉬어본 적이 없이 바쁘게만 살아왔어! 그래서 내 아들은 그렇지 않기를 바라는 맘에 지구 한바퀴를 돌아보라고 그랬던거야!"
"그래도 아빠는 중간중간 많이 놀았잖아?"
"아니! 여러가지 일을 했지만 난 일주일 이상 놀아본 적이 없어! 업종전환을 헐 적에는 반드시 다음 일을 허기 위해서 기존 일을 그만 두었으니까? "
"그래! 근데 난 아빠가 많이 놀았다는 생각을 허지?"
"그럴 수 있겠다. 저녁에 대리운전을 하고 낮에는 여러가지 일을 했으니까?
근디 이건 모를것이다.
우리가 하색에서 어쩔 수 없이 읍내로 나와서 내가 7년 전 동해로 떠날 때까지 야간 대리운전을 했다는 것을! 아! 하색에 살면서도 했으니까 15년을 대리운전했단다. 가평에 행복콜대리운전 사무실을 내기 전에도 밤에는 대리기사로 활동허고 낮에는 일상적인 직장을 댕겼지, 남들이나 아들이나 낮에 허는 일을 자주 바꾸는 것을 보고, 한가지 일을 끝까지 허지 못한다고 생각허지, 사실은 택시운전을 허고도 싶었는디, 엄마가 결사반대를 해서 못했다. 대리운전을 헐적에 택기기사가 제일 부러웠거든! 엄마는 택시기사를 허면 애비가 바람날거라고 생각을 했던 모양이야!"
"아빠 남자대 남자로써 물어볼께! 솔직허게! 아빠! 아빠는 바람핀적 없어?"
"하하하하하하! 그래! 니가 말 잘 꺼냈다. 난 단 한 번도 엄마와 결혼허고 바람핀적이 없다.
결혼 전에도 난 여자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다고는 말헐 수 없으나 여자를 성적으로 생각허지 않고 살았었었다.
왜냐허면 애비는 고등학생시절부터 정치를 허고 싶었기에 여자를 이용헐 줄은 알았어도 정확허게 일정헌 선을 긋고 살았지! 특히 애비헌테는 한 살 아래 미경이 고모가 있어서 여학생들헌테 함부로 헐 수가 없었고, 니 할아부지가 또 그렇게 가르쳤단다.
글고 너는 모르지만 난 해병대를 제대허고 일년 후에 안산고려선원에서 머리를 깍고 행자생활을 딱 1년허고 만년행자를 허겠다고 속세에 나왔기에 시방도 부처님의 제자인 행자라는 생각으로 살고 있어! 나도 물론 사내이니까 이쁜 여인들을 보면 한 반즘 사궈보고 싶고, 하룻밤 자고 싶은 맘이 생기지! 이건 동물적인 본능이야!
그런디! 우린 동물이 아닌 이성이 있는 사람이잖아! 그 이성으로 동물적 본능을 제어할 줄 아는 사람이 참 인간인거야! 그런디, 동물적 본능에 충실해서 자기 자신의 동물적 본능이 끌리는대로 사는 사람들이 있어! 그것을 부처님은 사람의 탈을 썼으나 축생계에 있는 사람이라고 말씀허신거야!"
"맞아 아빠 말이 맞아!"
"그래서 아들! 난 아들헌테 말허고 싶은 것은 결혼을 안고 여자친구를 사귀더라도 절대 양다리를 걸치지 말라라고 말허고 싶어! 난 머스마들의 의리보다 부부간의 의리를 더 중요허게 생각허고, 또 너 같이 결혼을 허지 않고 여자친구와 사기기만 헌다면 그 여자친구와의 의리는 남자들의 의리보다 더 소중허게 지켜라! 라고 말하고 싶어! 왜냐허면 사랑행위를 헐 적에 서로 보여줄껏 안 보여줄껏 다 보여주고 사랑행위를 허잖아! 엄마헌테 못보여줄것도 여자친구한테는 보여주잖아! 그러니까 부부간과 여자친구간의 의리를 그 어떤 것보다 중요시 해야되는거야!
만약! 그 의를 파기하고 싶다면 깨끗하게 요새말로 쿨허게 놓아주는거야! 난 언제든지 니 엄마헌테 그런다. 내가 싫어지거나 부담이 되면 언제든지 말해라! 난 한치의 미련없이 놓아주고, 나도 자유의 몸이 되고 싶다고!
아들! 아들도 그런 아들이길 바란다.
근디 니 엄마는 날 끝없이 의심을 해왔지! 그럴 수 밖에 없다는 것도 난 알아!
왜냐허면 엄마와 난 자라온 환경이 아주 달라!
난 너희들처럼 국민학교에서 대학까지 남녀공학이였고, 엄마는 국민학교만 남녀공학이였고, 이성에 관심과 호기심이 많을 중.고등학교시절에는 여고만 댕기다가 애비와 엄마는 대학에서 만났어!
난 고등학교시절에는 남녀공학인 학교에서 한국청소년연맹 한별단 활동을 하면서 매주 토요일에는 남녀 각각 30명이 모여서 리더쉼 토론도 하고, 손잡고 포크덴스도 추고, 한 달에 한 번 씩 1박2일도 텐트치고 야영을 댕겼기에 여자들에 대한 이성적 호기심이 보다는 친구라는 동료의식이 앞섰지!
난 그 당시에도 정치적 야망이 있었기에 조직을 이끌기 위해서는 적당한 이성을 이용헐 줄 알아야한다는 것을 터득했어! 일꾼 머스마들을 부려먹을라면 능력있고 이쁜 여학생들을 적당헌 거리로 끌어들이면 그 여학생들을 보고 일헐 수 있는 남학생들이 조직에 합류헌다는 것을 터득했지! 애비가 남녀공학고등학교 학생회장을 했으면 여학생들헌테 인기가 있었겠어? 없었겠어?"
"당연히 많았겠지! 내 아빤데 지금도 아빤 멋있어! 그래서 엄마는 불안한거야! 근데 진짜 결혼하고 여자친구 없었어?하하하하 "
"이놈이! 이때까지 뭔 얘기를 들은거야!
그래 내 주위에는 수 없이 많은 여자들이 있었지! 니 엄마를 방송대 학생회에서 만났는디, 니 엄마는 나를 바람둥이로 알았단다. 우리 방송대는 직장에 댕기다가 토요일 오후에나 일주일에 한 번 만나거든, 그러면 모든 사람들이 악수를 허면 특히 반갑고 친한 동료들은 남녀구분없이 내가 아들을 만나면 꺼안듯이 팔을 벌려 포웅을 했지! 내 동료들은 나를 다 알아! 내가 팔을 벌리면 다 웃으면서 남녀구별없이 다 안겼어! 사실 나도 내가 언제부터 그랬는지? 나도 모르지만 그랬어! 그걸 본 니 엄마는 '배선배는 바람둥인거봐! 조심해야겠다!'라고 생각했데.
근디! 사실 니 엄마도 처음 소개받아 만났을적에 내가 팔을 벌리니까 안기더라! 하하하하! 글고는 난 니 엄마를 기억 못했어! 근디 니 엄마는 그 날을 잊지 못했더라고 나중 얘기를 들어본께! 하하하하"
"그러고 보면 아빠는 나주로 안내려가길 참 잘했어!"
"뜬금없이 무슨?"
"만약 아빠가 나주로 내려가서 정치를 했으면 제일 먼저 미투 사건에 걸려서 지금쯤 정치생명이 끝나서 타락했을거야! 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 맞아! 안희정충남도지사 서건이 처음 나왔을적에 니 엄마가 내가 제일 요주의 인물이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너 엄마헌테 들었냐? 난 시방도 가평에서 옛날 봉사활동 같이 허던 누님들 길에서 만나면 포웅하는디! 요새는 그 누님들이 먼저 포웅해! 그게 어때서! 서양사람들 포웅하는 것은 괜찮고! 내가 포응허는 것은 거기기허냐? 맘을 삐딲허게 묵는 사람들이 이상헌 상상으로 상을 맹그는거지! 하하하하하하하!
니 엄마는 그런 나를 끝없이 불안해하고 의심을 했었지! 난 아무것도 없는디! 그것으로 이 애비가 얼마나 구박을 당허고 살아왔는지 니는 모를것이다. 니 누나헌테는 많이 화풀이를 했나보더라!"
"나도 알아! 나한테도 많이 그랬어! 니 애비닮아서 그런다고! 난 아빠를 닮은데가 없는데 이 뽀족헌 코 빼고는 닮은데가 없어! 하하하하 "
"이놈아! 애비를 닮아야헐 것이 하나 있어! 니가 봤다시피! 엄마는 나와 싸웠다고 생각허는데 난 엄마와 싸운적이 없다고 생각헌다.
내가 아무리 술을 먹고 들어가도 엄마가 술먹고 외박했다고 꼬집고 때려도 내가 엄마를 때린 적을 본적 있냐?"
"없었지! 그건 인정해!"
"엄마의 외박 기준은 24:00이야! 1분이라도 늦으면 외박인거야! 그렇게 술을 먹고 오면 때리고, 때리다 자기 손이 아쁘면 꼬집었지! 그래도 난 꼬집지만 말고 마음껏 패세요 하하하하 "험서 엄마를 못꼬집도록 꼭 안아불지! 그것은 니 할아버지헌테 배운거야!
절대 여자헌테 손지검을 허면 안돼는거야! 남자는 인생을 맷집으로 살아아허고, 또 여자를 사랑헐라면 맷집으로 사랑을 해야허는거야!!
근디 말이야 나도 인간인지라! 어처구니 없는 일로 바람파웠다고 의심을 받을 적에는 옛말에 홧김에 서방질헌다는 말이 있거든! 나도 홧김에 바람을 피우고 싶어!
근디! 양다리는 싫어서, 엄마가 하도 그래서 5년 전 엄마 생일 선물로 이혼서류를 줬었지! 하하하하!"
"들었어! 엄마가 아빠허고 이혼헌다고 전화왔었어! 나 상관말고 잘 알아서 허라고 했지! 근데 이혼 언허고 또 잘 살던데 하하하하!"
"바빠서 4주 후에 오라는 것을 생각없이 지나갔지! 아 그날이 우리 가족봉사단 중에 한민이라고 있었지!, 그 아부지가 돌아가시고, 시신기증을 했는디 1년이 되어 장례를 치룬 날이였다더라고 그러더라!, 그날 장마비가 엄청 쏟아졌지! 그 후로는 애비헌테 헤어지자는 말을 입에서 안나오더라 하하하하 "
"나도 여자친구와 다툴 때가 있는데 여자들은 참 어려운거 같아!"
"그래! 그래도 남자는 맷집으로 여자를 꼬옥 안아줘서, 권투선수들이 더 못 맞겠으면 크린치를 허듯이 꼬옥 안아줘야허는거야! 절대로 같이 때리면 안돼고! 도저히 안돼면 깨끗이 놓아주는 것이 진짜 남자인거야!
애비라고 어찌 남자인디, 웃음서 다가오는 여인들에 대한 유혹과 호기심이 없었게냐? 난 웃은 여인들은 잘 생겼거나 좀 못생겼어도 이쁜 한 예술품 보듯이 좋아헌다.
그러나 거기까지란다.
근데 너 운동은 안허냐?"
"사실 나 3년 전에 허리가 엄청 아빴어! 다른 사람같으면 직장이고 뭐고 때려차우고 입원했을거야! 근데 참고 일을 했어! 허리를 구부리지 못해서 무릎을 끓고 일했어!"
"그랫구나! 지난 번 청담동 커피숍에 갔을적에 큰키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출라고 꺼부정한 자세가 허리에 많은 부담이 생기겄더라!"
"그래 힘들어! 일어설 때 눈물이 찔끔 났다니까!"
"허리 근육 강화운동을해라! 척추를 감싸고 있는 근육을 튼튼허게 해야 척추가 꺼저서 눌리는 것을 예방할 수 있는거야! 나도 일주일 전부터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이제 힘이 붙기 시작했어!"
"그래! 아빠! 나하고 팔씨름 한 번 해볼까?"
"그래? 글고 보니까 너 아직까지 이 애비를 한번도 이겨본 적이 없잖아!
고등학교시절에 레스링을 해도 안됐짆아! 해병대를 제대하고는 한 번도 그럴기회가 없었지만,
보아허니 운동도 안허는것 같은디 니가 날 이길 수 있겠어? 하하하하하하!"허고 있는디!
"야! 뭔 얘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해 부자가 보기 좋다야!" 허고 식사 손님이 다 가고 우리 부자가 있는 테이불로 금선에가 옴서 말헌다.
"잘 됐다. 너도 같이 한 잔 허자! 긁고 금선이 니가 심판 좀 바라! 아들이 팔쎄름을 허잖다.
니가 내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찍어라!"
"야! 니가 힘이 아무리 쎄다고 해도 젊은 사람헌테는 안돼지!"
"아니! 이놈이 아직 한 번도 나를 이겨본적이 없어! 이놈은 키만 컸지 운동을 안해서 안돼! 난 운동을 매일 허잖아!"
"좋아요! 내가 운동을 안했어도 아빠는 이길것 같은데!
허고 금선이가 준비해준 테이블에서 팔씨름을 위해 손을 동혁이 손을 잡았다.
잡아보면 안다.
이놈이 술도 많이 취해 있기도 하지만 운동을 못해서 기가 다 빠져 있다.
"아들! 운동을 전혀 안허는구나! 운동을 좀 해라! 넌 날 못 넘긴다.
난 가만히 버티고만 있을테니까 니가 넘겨봐라! 니가 얼마나 용을 쓸 수 있는지 지켜봐야겠다.
금선이 심판 잘 보고 동영상 촬영 잘래라이!"
"가만히 있어! 아직 준비가 안됐어!"
"그래! 금선이가 준비! 땅! 허면 힘을 쓰는거다잉!"
"자! 준비 땅!"허고 동영상을 찍기 시작하자 동혁이가 힘을 쓴다.
그런디 넘 약해졌다.
고등학교시절보도 더 약해졌다.
암이 짠해진다.
내 아들이 왜이리 약해졌을까?
일부러 나를 안 넘어트리는 천재적인 엑션일까?
나도 아들을 넘기지 않고 버티기만 했다.
1분! 1분이라는 시간은 팔씨름에는 몹시 긴 시간이다.
결국 아들은 날 못 넘기고 포기했다.
동영상을 찍고 있던 금선이가 도전을 헌다!
"야! 배점수! 그럼 내가 두손으로 해도 버틸 수 있어?"
"하하하하! 너 몸무게가 몇 키로지?"
"48키로!"
"진짜? 진짜라면 내가 버틸 수 있지! 내 한 팔로 60kg은 들지는 못허지만 옆으로 버틸 수는 있지!"
"동혁아! 동영상를 이대로 계속찍아봐!" 금선이는 동혁이한테 내 핸드폰을 건네주고 동혁이와 자리를 바꾼다.
두 손으로 내 손을 쥐어잡고 "자 시작!"허고 내 팔을 넘기려헌다.
동혁이보다 더 파워가 있다. 근디 견딜만 했다. 금선이는 이리저리 몸을 비틀며 내 오른팔을 넘기려했다.
"금선아! 미안헌데 내 아들의 자존심을 생각해서 너 헌테 질 수가 없다. 그러나 이기지도 않을것이다. 내가 지면 내 아들 자존심이 어찌 되것냐?"허고 버텼다! 팔이 조금 기울어졌으나 다시 금선이 팔꿈치를 왼손으로 버티고 원위치 시키니까 금선이도 내 오른 손을 넘기는 것을 포기했다.
"자! 우리 셋이 비긴거야! 하하하하!"
오랫만에 힘썼더니 술고프다. 술이나 먹자! 하하하하" 동혁이가 많이 취해보인다.
동혁이의 술주정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이미 내일의 건강검진을 위해 음식을 먹지 말라는 21시가 지나버렸다.
동혁이와 혜련이는 고등학생부터 일찌기 혜련이 고3, 동혁이 고 2때, 금요일 치맥으로 음주를 가르쳤다.
왜냐허면,
내 아부지는 명절에 음복을 허심서 "점수야! 술은 기분좋을 때 더 기분을 흥겹게 허고, 슬플 때 슬픔을 녹일 수 있는 좋은 음식이란다.
근디! 기분이 나뿔 때 술을 먹으면 분노가 고조되어서 모든 것을 파괴허고 싶은 폭정이 나온께!
기분나뿔때는 절대 술을 먹어서는 안된 음식이란다.
긍께 점수는 고등하교 졸업허면 아부지한테 술을 배워야헌다!"라고 말씀하셨는디
내가 고2때 아부지께서 저 세상으로 떠나신 후 난 아부지헌테 음주를 배울 기회를 상실했다.
그런디! 고 2수학여행 때, 담임선생님이신 최연규선생님은 반장인 최기완헌테 돈을 주고 소주 댓병 몇 병을 사오라고 하시고는 교장선생님이 우리반 차에 타셨는디, 수학여행 버스가 출발허고 얼마 후에
"애들아! 고장선생님이 내 고등학교 은사선생님이시다. 난 내 은사선생님께 술을 이렇게 배웠다. 너희들도 나헌테 술을 배워야한다. 우리 2학년 4반은 공부헐때는 확실히 공부허고, 놀 적11에도 확실히 놀아야한다. 알았냐? 반장! 가져와!"허시고는 교장선생님께 먼저 술 한 잔을 올리시고, 앞에서부터 한 잔씩 따라주셨다.
내 차례가 되었을 적에 "전 아부지헌테 술을 배우기로 했는디! 이제 기회가 없습니다. 전 술을 안배울랍니다!"라고 했더니, "이제! 내가 니 아부지 대신이야!" 허고 술을 받게 했다. 그 당시 난 최연규선생님헌테 휴학을 허게 해 달라고 떼를 쓰고 있을적에 수학여행도 안간다고 했는디,반장인 기완이를 중심으로 한 반 친구들이 비빌리 모금을 해서 내 수학여행비를 내어서 강제로 나를 수학여행 버스에 태웠었다.
해서 내가 답례헐 수 있는 것은 나로 인한 수학여행 즐거운 기분을 깨지 않는 것이 최선이였기에 최연규선생님이 따라준 시방의 종이컵 한 컵 분량, 시방의 반병분량의 소주를 벌컥벌컥 드리 마셨다.
목이 따뜻허고 내정이 짜르르허더니, 금새 우울헌 기분이 사라지고 기분이 좋아졌다.
이것이 아부지가 말씀허셨던 술이 슬픔을 녹이는 것일까?
그렇게 나는 아부지 대신 최연규선생님께 정식적인 술을 배웠다.
그래서 나도 동혁이가 고2때, 동혁이 할아버지인 내 아부지가 말씀허셨던 말씀을 그대로 전달했다.
"술은 기분좋을 때 더 기분을 흥겹게 허고, 슬플 때 슬픔을 녹일 수 있는 좋은 음식이란다.
근디! 기분이 나뿔 때 술을 먹으면 분노가 고조되어서 모든 것을 파괴허고 싶은 폭정이 나온께!
기분나뿔때는 절대 술을 먹어서는 안된 음식이란다."라고 얘기험서 가끔씩 금요일이면 아이들헌테는 치맥을 난 막걸리를 데워서 마셨다.
아들은 다행히도 필름이 끈기는 만취가 되었음에도 즐겁게 술을 마시는 좋은 습관을 가져주어서 고마웠다.
근디! 7년간 넘 업무에 출실하다본께 몸이 허약해진 모습이 내 가슴을 아프고 짠허게 한다.
아들아!
아들이 불교에 귀의했다는 반가운 말을 들어서 참 기뻤다.
마음은 부처요!
몸은 부처인 마음을 봉양허는 법당이란다.
법당이 튼실헐 때
튼실한 부처인 마음을 행동으로 실천헐 수 있단다.
법당인 몸을 튼실히 허는 일은 가장 근본적인 마음인 부처님을 모시는 근본 불사인것이다.
법당인 몸을 튼실히 허는 불사에 게으르지 말았으면 한다(((!)))
https://youtu.be/1-IMW8IljMY?si=KuTiN3zvc53q4l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