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2월22일 제주도 남제주군 안덕면 사계리 산방산 인근 해안에서 단란한 한때를 보내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가족.>
최근 노무현 대통령의 집안 사람들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지난 대선을 전후해 노대통령의 형 건평씨의 부동산 투기 의혹과 실질적으로 노대통령이 운영해 온 생수제조 회사 「(주)장수천」을 둘러싼 투기의혹이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집중 제기됐다. 여기에다 최근 건평씨의 처남 민경찬씨가 불법적인 방법으로 투자자금 653억원을 조성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나오면서 노대통령의 가계에 대한 세간의 궁금증이 증폭됐다고 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가계는 한마디로 「평범하다」고 할 수 있다. 노대통령의 가족 및 친인척들을 둘러봐도 이렇다 할 명망가는 없다. 가정형편도 부유하다기보다는 중하층 수준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지난 대선 유세 때 『우리 집안에는 잘 나가는 사람이 없어 부정한 돈 몇천만원만 들어와도 금방 표시가 난다』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1946년 9월1일(음력 8월6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에서 태어났다. 노대통령의 아버지는 노판석(·1900년 출생·1976년 사망)씨며, 어머니는 이순례(·1904년 출생·1998년 사망)씨다. 노대통령은 3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노대통령의 본관은 光州(광주)이며, 노씨 광주파의 32대 손이다.
노대통령 아버지 판석씨는 노대통령의 어머니 이순례씨와는 재혼이며, 노대통령의 어머니 이순례씨는 노대통령의 아버지와는 세 번째 결혼을 한 사이이다. 노판석씨는 첫째 부인 조영희씨와 결혼을 했으나, 1931년 12월19일 합의이혼을 한 것으로 호적에 기록돼 있다. 노판석씨와 조영희씨가 언제 결혼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판석씨 호적에 기록돼 있지 않다.
노무현 대통령의 어머니 이순례씨는 19세이던 1923년 3월10일 김필용씨와 첫 결혼을 했으나, 1929년 김필용씨가 사망했다. 이순례씨와 김필용씨 사이에서는 1녀 김선밀을 두었다. 이후 이순례씨는 이순풍씨와 재혼한 뒤 1933년 1월11일 노대통령의 아버지 노판석씨와 세 번째 혼인신고를 했다.
노대통령의 아버지 판석씨는 타이어 제조 기술자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판석씨는 일본과 중국 상해 등지를 돌며 재산을 모았으나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노대통령이 태어났을 무렵에는 고향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에서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노대통령의 아버지 판석씨가 이순례씨와 세 번째 결혼을 하게 된 것은 같은 고향 출신인 이씨 부친(李永昊ㆍ작고)에게 한학을 배운 것이 계기가 됐다고 한다.
노대통령의 어머니 이순례씨는 생활력이 매우 강한 여성이었다는 게 고향 마을 사람들의 얘기다. 노대통령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먹고 살기 위해 환갑이 넘도록 고구마순과 딸기를 이고 30∼40리 떨어진 마산까지 가 팔곤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노무현의 형제들
노무현 대통령의 형제로는 큰누나 명자(74), 큰형 영현(작고), 둘째 누나 영옥(66), 둘째 형 건평(62)씨가 있다.
노대통령의 큰누나 명자씨는 일제시대 때 소학교만 나와 농사를 짓던 강원도 삼척 출신의 양봉현씨와 결혼, 1남1녀를 두었다. 명자씨는 1987년 남편이 죽은 뒤 미술교사인 큰딸 애실(46)씨 부부와 함께 살고 있다고 한다. 명자씨의 아들 호식(42)씨는 울산대 화학과를 졸업한 뒤 한때 목욕탕을 운영하기도 했으나 현재는 회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둘째 누나 영옥씨는 세탁소를 운영하던 집으로 시집을 갔다. 영옥씨도 소학교만 졸업했다.
영옥씨는 남편과의 사이에서 전순실(42)·전보해(40)씨라는 두 딸을 두었다. 영옥씨의 큰사위 정재성(43)씨는 부산 동아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와 제26회 사법시험에 합격, 부산에서 변호사를 하고 있다. 영옥씨의 큰딸 순실씨는 부산여고(현 신라대)를 졸업했고, 1남1녀를 두고 있다. 보해씨는 부산 경성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노대통령의 형 건평씨는 1942년 1월30일 김해군 생림면 사촌리 145번지에서 출생했다. 건평씨는 세 번 결혼을 했다. 건평씨는 1974년 9월12일 오명례씨와 첫 혼인신고를 했다. 건평씨는 32세, 명례씨는 26세 때였다. 오씨는 경남 김해군 대저읍 노득리에서 태어났다. 건평씨와 오명례씨 사이에는 1남1녀를 두었다. 딸 지연씨는 1973년 7월29일 김해군 진영읍 본산리에서 태어난 것으로 호적에 기록돼 있다. 지연씨는 2000년 4월3일 연철호씨와 결혼을 했다. 아들 상욱씨는 1974년 6월23일 출생했다.
건평씨는 부인 오명례씨가 1976년 4월2일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다음해인 1977년 12월25일 오순정(47)씨와 재혼을 했으나 1979년 합의이혼을 했다. 오순정씨는 1957년 11월5일 경남 진주시 동성동에서 태어났다. 건평씨와 오순정씨 사이에는 딸 현지씨를 두었다.
건평씨의 두 번째 부인 오순정씨는 현재 건평씨와 같은 지역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내 한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기자는 2002년 10월과 2003년 6월6일, 2003년 11월에 둘째 부인이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를 찾았다. 그러나 그 때마다 두 번째 부인을 만날 수 없었다. 아파트의 현관 문도 잠겨 있었다. 이 부인은 현재 창원시 남양동에서 음악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경남교육청에 확인 결과, 이 부인이 운영하고 있는 음악학원 설립자는 노건평씨다.
건평씨의 두 번째 부인과 얽힌 여러 가지 사연
노건평씨는 1969년 3월 세무공무원(9급) 생활을 시작한 뒤 8년간 재직하다 마산세무서에 근무하던 중 뇌물수뢰 사실이 드러나 공무원직에서 물러났다. 건평씨는 동마산세무서에 근무할 당시인 1975년 7월 황모씨로부터 『부동산 투기 억제세가 부과되지 않도록 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40만원을 받은 혐의가 1978년 4월에 드러나 검찰에 구속됐다. 이 당시 건평씨에게 부탁을 했던 황모씨는 1977년 결혼한 두 번째 부인의 어머니다. 따라서 건평씨는 두 번째 부인과 혼인신고를 한 다음해인 1978년 뇌물수뢰 사실이 드러나 검찰에 구속됐는데 이로 인해 부산지방국세청으로부터도 직위해제(파면) 처분을 받았고, 다음해인 1979년 두 번째 부인과 합의 이혼한 것이다.
당시 마산세무서 징계위원회가 작성한 노건평씨의 징계처분 이유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75년 7월 초 마산시 소재 다방에서 황모씨로부터 그 남편 오모씨가 양도한 대지 1100여 평에 대한 부동산 투기 억제세를 부과받지 않도록 해 달라는 부정한 청탁을 받고 돈 40만원을 받은 후, 관할 세무서로 발송돼야 할 부동산 투기 억제세 과세자료를 절취, 세금을 징수할 수 없게 했다>
당시 마산세무서장 명의로 된 보고서에는 「본건 수뢰사건의 내용을 볼 때 가정불화로 사건이 표면화된 것」이라고 기록돼 있다.
민미영씨의 주소지 이전
건평씨는 두 번째 부인 오순정씨와 합의이혼을 한 지 4년 뒤인 1983년 현재 부인인 민미영(47)씨와 세 번째 결혼을 했다.
건평씨의 세 번째 부인인 민미영씨는 현재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화마을에서 건평씨와 딸 희정씨, 세 명이서 살고 있다. 민씨는 경남 창원군(현 창원시) 창원면 서상리에서 태어났다.
민씨는 건평씨와 혼인신고를 한 이후 혼자서 주소지를 네 차례 옮긴 것으로 주민등록등본에 기재돼 있다. 경남 김해군(현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38번지에서 1989년 1월31일 경남 창원시 서상동 359-1번지로 옮긴 뒤, 다음해인 1990년 4월17일 다시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38번지로 이전했다.
민씨는 다시 2년 뒤인 1992년 4월5일 경남 거제군(현 거제시) 일운면 망치리 49-1번지로 옮겼고, 10개월 뒤인 1993년 2월27일 다시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38번지로 돌아왔다. 민미영씨가 1989년 1월31일 주소지를 경남 창원시 서상동 359-1번지로 이전을 할 때는 건평씨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희정)도 함께 이전을 했고, 이 때 딸은 8세였다.
기자는 2003년 6월5일 오전 노건평씨와 민미영씨 부부를 만나기 위해 봉화마을 집을 찾아 갔으나 건평씨 부부는 집에 없었고, 딸 혼자서 집을 지키고 있었다. 건평씨의 딸 희정씨는 기자에게 『아버지는 출타하셨고, 어머니는 옆집에 가셨다』고 했다. 희정씨는 부산의 신라대학교 성악과에 다니다 3학년 때인 2003년 학교를 그만 두었다.
최근 불법적인 방법으로 653억원을 모금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민경찬씨는 민미영씨의 동생이다.
노무현 대통령 부인 권양숙씨
노무현 대통령과 부인 권양숙씨는 1975년 결혼을 했다. 이 부부 사이에서 난 장남 신걸(30)씨는 이후 이름을 건호로 바꾼다. 딸 자연(28)씨의 이름도 정연씨로 바꾸었다. 노대통령 부부가 자신의 아들, 딸의 이름을 바꾼 것은 노대통령의 어머니 이순례씨가 『자녀의 이름을 바꾸어야 대성한다』고 권유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권양숙씨는 부산 계성여상을 다니다 3학년 때 중퇴했고, 2003년 3월 숙명여대 「최고여성지도자 아카데미」 10주 과정을 이수했다. 주요 수강과목은 「여성지도자의 리더십」, 「여성지도자와 국제매너」 등이었다고 한다.
권양숙씨는 비교적 화통하고 활달한 성격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상도 사투리 어투가 강하긴 하지만 화술이 세련된 편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지난 대선 때 『노후보가 집안 일을 돕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잠자리에 들 때) 님도 눕고 나도 누우면 저 등불은 누가 끄나」라고 하면 남편이 일어나서 불을 끈다』고 즉답할 정도로 성격이 매우 밝은 편이라는 것이다.
노대통령 부부는 아들 건호씨의 출생신고와 함께 혼인신고를 했다. 건호씨는 2002년 8월 연세대를 졸업하고 LG전자에 입사했다. 서울 여의도여고와 홍익대 역사교육학과를 졸업한 정연씨는 주한 영국 대사관에서 근무하고 있다.
노대통령의 아들 건호씨는 2002년 12월25일 연세대 동문회관에서 부산상고 동문회장인 신상우 전 국회부의장의 주례로 배정민(27)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정민씨는 경남 김해 출신으로, 김해여고와 연세대를 졸업했다. 정민씨의 아버지 병렬씨는 농협중앙회에서 부장으로 근무하다 퇴직한 뒤, 최근 농협중앙회 산하기관에서 임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대통령의 처가
노무현 대통령의 처가 쪽도 평범하기는 노대통령 집안과 마찬가지다. 부인 권양숙씨 집안은 노대통령이 중학교 1학년 때인 1959년 경남 김해로 이사를 왔다고 한다. 노대통령이 살고 있던 김해시 진영읍 봉하부락 왼편 산 밑에 위치한 권씨의 집은 대나무가 많아 「대밭집」이라고 불렸다.
권양숙씨는 1남3녀 중 둘째다. 노대통령 장인 권오석씨는 1922년 경남 창원군 진전면 출신이다. 진전보통학교를 졸업하고 5년제 밀양농잠학교를 3학년까지 다니다 1943년 지방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마산시 진동면 면사무소에서 근무했다. 권씨는 1945년 12월 친구와 함께 막걸리에 메틸 알코올을 섞어 마셨다가 친구 1명은 숨지고 자신은 시력을 잃어 다음해인 1946년 면사무소를 그만 두었다고 한다.
노대통령의 장모 박덕남(84)씨는 은행원인 외아들 권기문(49)씨와 살고 있다. 기문씨는 노무현 대통령의 처가 쪽에서 노대통령과 자주 만나는 유일한 사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문씨는 부산상고ㆍ경성대 회계학과를 졸업하고, 1973년 한일은행에 입행해 현재 우리은행에 근무하고 있다. 부인 정귀필(46)씨와의 사이에 수현(20, 서강대 자연과학부 1년), 상혁(18, 부산 중앙고 3년) 등 1남1녀를 두었다.
권여사의 오빠 창좌(58)씨는 1988년 건설회사에 다니던 남편(김재석)과 사별하고 아들 김경우씨와 함께 서울에서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권여사의 여동생 진애(52)씨는 남편 이승남(57·상업)씨와 부산에서 거주하고 있다. 진애씨는 어릴 적 이름이 「외진」으로 이씨와의 사이에 1남2녀를 두었다. 장녀 이혜진(26)씨는 부산의 부경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지난 대선 때 민주당 부산 선거대책위원회 유세팀에서 이모부인 노대통령의 당선을 도왔다. 혜진씨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회문화여성분과위원회 실무요원으로 선발되기도 했고, 현재 청와대 비서실에 근무하며 고모인 권양숙씨를 돕고 있다.●<2004년 3월호>
첫댓글부인을 왜 종종 때리고 그걸 자기 수기에 자랑스럽게 썼는지 알겠네요.....화련하게 자라셨군요,정서상으로 문제 가 많아보이네요.....지금이라도 권여사랑 행복하고 사이가 좋으셔서 그 불동이 국민에게 안 튀길 바랄분입니다.권여사도 비전향 장기수 딸이고 두 분 다 참 사연이 많으시군요,그래도 성공은 축하함
첫댓글 부인을 왜 종종 때리고 그걸 자기 수기에 자랑스럽게 썼는지 알겠네요.....화련하게 자라셨군요,정서상으로 문제 가 많아보이네요.....지금이라도 권여사랑 행복하고 사이가 좋으셔서 그 불동이 국민에게 안 튀길 바랄분입니다.권여사도 비전향 장기수 딸이고 두 분 다 참 사연이 많으시군요,그래도 성공은 축하함
노지에서 자란 시금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