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이슬러는 1875년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태어나 1962년 뉴욕에서 세상을 떠난 20세기 전반기 최고의 바이올린 연주가이다. 신동이던 그는 7세의 나이로 빈음악원에 최연소 입학해 헬메스베르거에게 바이올린을, 브루크너에게 이론을 배웠다. 10세때 파리 음악원으로 옮겨 마사르에게 바이올린을, 들리브에게 작곡을 배운 그는 12세의 나이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게 되었다. 이듬해 미국 순회공연을 갖고 돌아와 그로부터 약 10년간은 의학을 공부하고, 군복무도 하느라 음악과 잠시 멀어졌다.
1898년 빈 필에 입단했고, 이듬해 니키쉬 지휘의 빈 필과 협연해 성공을 거둔 후, 50년 가까이 당대 최고의 스타 연주자의 지위를 누렸다. 제 1차 세계대전때 참전했다 부상당하기도 했던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의 조짐이 보이자 치를 떨며 미국으로 향했다. 그런데 미국에서도 교통 사고와 시력과 청력이 약해지는 불행을 당했다. 하지만 1947년 카네기홀 은퇴 연주회에서
무대에서 물러날 때까지 성실히 연주에 임했다.
크라이슬러는 탁월한 기교와 서정미가 풍부한 연주로 사람들을 깊게 감동 시켰는데 <사랑의 기쁨>, <사랑의 슬픔>, < 비엔나 기상곡>, <크라이슬러의 자장가>등 많은 바이올린 소품들을 작곡해서 자신의 연주곡목을 풍부히 했다. 이 중 <사랑의 슬픔>은 <사랑의 기쁨>과 한 쌍을 이루는 유명한 곡인데 이는 비엔나의 옛 민요를 주제로 삼아 작곡한 왈츠이다. 가단조인 이 곡은 약간 어두운 느낌이면서 유려한 선율로 이루어져 있고 부주제로 된 중간부를 거쳐 다시 주부로 되풀이 되는 3부 형식이다.>
<사랑의 기쁨>과 <사랑의 슬픔>을 같이 들으면 형식은 같으나 느낌이 다르므로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사랑의 슬픔’과 ‘사랑의 기쁨’은 그의 작품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곡일 것이다.
오늘날 클래식에 친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좋아한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크라이슬러의 작곡인 사랑의 기쁨"이나 사랑의 슬픔은 너무나 낭만적이고 분위기 잇는 소품들이라 그가 도무지 20세기의 사람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낭만적인 감수성과 화려한 테크닉으로 전세계의 음악팬을 열광시킨 클라이슬러 그 자신이 직접 연주하기 위해 1백30곡 정도의 바이올린 소품을 썼는데, 자기가 만든 곡을 비발디, 쿠프랭, 퓨냐니, 슈타미츠, 디터스도르프 등 옛날 작곡가의 작품이라고 속여서 발표해 많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 이유는 "비평가들이 조롱할까봐" "연주회 프로그램에 자기 이름이 자꾸 나오는 게 싫어서"였다는 것. 아무튼 크라이슬러는 앙코르 곡으로 매번 똑같은 걸 연주하면 안 되니까 자꾸 작곡을 했고, 그 덕분에 우리는‘사랑의 기쁨’ ‘사랑의 슬픔’은 물론, ‘아름다운 로즈마린’‘빈 기상곡’ ‘중국의 북’등 1백 곡이 넘는 주옥 같은 바이올린 소품들을 갖게 된 셈이다. 어쨋든 사랑의 슬픔은 빈의 옛 민요에 의한 왈츠곡으로 주된 선율에 이어 다음 선율이 이어져 발전되는 a단조의 곡으로 사랑의 기쁨과는 대조적으로 감미롭고 애상적인 분위기의 아름다움이 보인다.
첫댓글 감사~
시골버스2님..
감하시어 감사드립니다.
주피터 선배님
멋진 작품
감사히 머물다 갑니다
늘 행복하세요
은향 후배시인님
언제나 감사를 드리오며..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