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배에 실어 보낸 사랑
매 주일 요양병원에 계신 장로님을 모시고 왔다.
지난주는 허리통증으로 외출이 어려워 전날 찾아갔다.
불편한 몸에 성도들의 안부부터 물었다.
여전히 교회와 오만 선교사님의 형편을 걱정하였다.
복음 사역을 위해 준비한 헌금도 챙기셨다.
사랑은 건강할 때만 하는 일이 아니었다.
월요일, 간호사실에서 듀오덤이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근처 약국에서 얇은 것과 두꺼운 것을 샀다.
몸 상태를 살핀 뒤 우선하면 KS병원 진료받기로 약속하고 나섰다.
그 길로 효령 타운 복지관 동시 반을 향하였다.
첫 시간, 의인화로 동시 쓰는 강의였다.
백석 시인의 ‘개구리네 한솥밥’의 창작 배경이 새삼 흥미로웠다.
문학은 삶의 경험에서 출발하였다.
구체적이고 생생한 느낌을 담아야 했다.
둘째 시간은 숙제를 올려 합평하는 자리였다.
차례를 기다리는 교실은 긴장감이 흘렸다.
내 동시 짝꿍의 목소리는 유난히 날카로웠다.
“글 쓴다는 분이 아직도 이 정도? 실망스럽네요!”
그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교실을 뛰쳐나가고 싶었다.
숙제를 내는 것조차 두려워졌다.
차라리 글을 그만 쓸까?
분이 차고 애달팠다.
손아래 짝꿍을 편하게 대하기 어려웠다.
그날 책장에서 ‘팀 켈러의 기도’를 꺼냈다.
고난 가운데 태어난 책이라는 사실이 마음을 붙잡았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묵상하며 상한 심령을 기도로 삭였다.
문득 글쓰기보다 중요한 일이 ‘나는 누구인가?’의 인식이었다.
세상 지식이 많다고 자신을 아는 것 아니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면 많은 것을 알아도 의미가 없었다.
본회퍼 목사님의 ‘나는 누구인가?’
시를 떨리는 가슴으로 읊조렸다.
‘나를 가장 잘 아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셨다.’
하나님을 깊이 알아갈수록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답이 선명해졌다.
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존재였다.
그 사실을 붙드는 순간 평안이 깃들었다.
혼돈의 세상에서 사랑으로 덮고, 기다림이 이기는 길이었다.
상처를 상처로 갚지 않고 기도로 품었다.
전화위복으로 삼아 망설이던 숙제를 냈다.
선생님께서 ‘첨삭할 부분이 없다’며 그대로 넘겼다.
뱁새 가슴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수업을 마치고 인바디 검사실로 갔다.
간호사가 결과지를 보고 놀랐다.
“3개월 전보다 좋아졌네요.
체성분 개선을 위해 노력하신 게 보여요.
원하는 대로 조절하는 것 쉬운 일이 아닌데요.
부단한 자기 관리의 결과예요.
지금의 생활 습관을 잘 지켜나가시길 바랄게요.”
뜻밖의 칭찬에 가벼운 걸음으로 돌아왔다.
짝꿍이 단톡방에다 수업 시간 미완성의 동시를 올려놓았다.
망설이다 정중한 합평을 썼다.
“늘 느끼지만 순간을 붙잡아 낳은 동시에 시적 사유의 깊이가 담겼네요.
의인화가 작품 속에서 잘 어우러져 읽는 재미를 더해 주네요.
여름을 조는 사람으로 그리고,
매미 소리를 한낮 깨우는 작은 손짓으로 표현한 발상이 참 신선하네요.
‘석류처럼/
쩌-억 벌린/
여름의 입’
뜨거운 더위가 입을 크게 벌린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지고,
벌어진 석류의 이미지가 여름의 열기와 절묘하게 겹쳐지네요.
짧은 동시, 독자의 귀와 눈을 깨우며 여름의 생동감을 전한 작품이네요.
작은 언어로 큰 여름을 그려 낸 여운이 오래 남네요.”
감사의 답이 돌아왔다.
사람 맘은 참 묘했다.
상처를 받은 자에게 따뜻한 글을 쓰자 내 상처도 아물었다.
그날 간식을 마련한 문우에게도 감사함을 전했다.
“오늘 김규식 어르신께서 정성껏 준비한 간식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빵과 요구르트! 한 사람 한 사람 나누어 주신 손길은 감동이었습니다.
무더위에 김 선생님의 배려로 몸도 마음도 든든히 세웠습니다.
귀한 섬김에 감사드리며 강건하시고 기쁨 가득한 날 되시길 기원합니다.”
요즈음 새벽기도 마치자마자 달린다.
만만치 않은 10킬로미터 뜀질에 살이 깎였다.
따가운 여름 하늘을 이고 있는 옥수수와 벌레들의 합창에 힘이 났다.
패밀리랜드 내리막에 가속이 붙었다.
산자락에서 지렁이들이 무수하게 기어 나와 발을 내딛기 어려웠다.
뜨거운 땅을 피해 물맛, 바람 맛보러 온 것일까?
밟으면 꿈틀거릴 것 같아 이리저리 뛰었다.
태양은 점점 뜨겁게 달구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먹구름이 몰려와 소나기가 쏟아졌다.
메마른 땅이 촉촉하게 젖었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태풍을 일으킨 것처럼,
작은 생명의 움직임이 거대한 자연의 변화를 불러왔다.
굵은 빗물은 바닥을 쓸어내렸다.
그 물길 따라 흘러간 생명들은 굶주린 물고기의 밥이었다.
모든 것이 자연의 순리였다.
폭염을 견디다 못해 작은 방에 에어컨을 달았다.
시원한 바람 속에서 꿀잠을 잤다.
차마 하지 못한 말이 가슴에 쌓여 별이었다.
꿈속에 하현달을 품고 종이배를 접어 물 위에 띄우려는 순간,
샛별처럼 카톡 소리가 들렸다.
새벽 두 시, 누군가 도종환 시인의 ‘종이배 사랑’한 척을 띄웠다.
기대감에 머뭇거리다 사라져 버렸다.
요리조리 찾아 ‘마음 챙겨 주는 사람’ 블로그에서 만났다.
시의 결구 앞에 마음이 흔들렸다.
“내 이 세상 떠난 뒤에 너 남거든 기억해다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시를 덮었다.
잔잔한 마음으로 달력 이면에 필사해 뒀다.
사랑은 멀리 있거나 거창하지 않았다.
안부 한마디, 빵 하나,
병실을 찾는 한 걸음,
상처를 덮는 침묵,
누군가를 위해 띄워 보내는 종이배였다.
그 작은 것들 속으로 조용히 흘렀다.
오늘도 마음속에 종이배 한 척을 접는다.
사랑을 싣고, 기도를 싣고, 안부를 실어 살며시 띄워 보내련다.
그 사랑이 오늘의 나를 살렸다.
2026. 8. 8 서당골 생명샘 발행인 광주신광교회 이상래 목사
첫댓글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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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 감사합니다
행복한 삶 누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