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창골산봉서방 닮아가는 자
2020.10.07.
병동 2층에서 나지막이 노래가 들려옵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그러면 중증환자부터 치매 노인까지 모두
자신만의 그리운 누군가, 가고 싶은 그곳을 떠올리며
노래를 따라 부릅니다.
다른 의사들과 회진부터 남다른 최고령 한원주 원장님.
그리고 원장님을 무척이나 좋아하던 환자들...
이 평화롭고 정겨운 일상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매그너스 재활 요양병원의 행복한
아침 풍경이었습니다.
한원주 원장님은 젊은 시절, 의과대학교를 졸업하고
산부인과 전문의를 딴 뒤 미국으로 건너가
인턴과 레지던트를 거쳐서 10년 동안
근무한 뒤 귀국했습니다.
당시에는 미국에서 의학을 공부한 사람이 많지 않았기에
귀국 후 개원을 하니 환자들이 수없이 밀려왔고,
부와 명예를 동시에 얻었습니다.
그렇게 잘 나가던 그녀에게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이었습니다.
인생의 의미를 잃어버린 그녀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독립운동가이자 의사였던 아버지를 떠올렸습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부터 결핵 퇴치 운동과 콜레라 예방 운동,
한센병 환자와 산골 주민들을 위한 무료진료에
앞장섰던 아버지였습니다.
한원주 원장님 아버지가 자신에게 의학을
공부하게 한 것도 어쩌면 다른 이웃들을 위해
살라는 뜻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살기로 한 이후
한원주 원장님은 부와 명예를 한순간에 버리고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살았습니다.
1982년, 국내 최초로 환자의 질병뿐만 아니라
정신과 환경까지 함께 치료하는 '전인치유소'를 열어
가난한 환자들의 생활비, 장학금을 지원하며
온전한 자립을 돕는 무료 의료봉사에
일생을 바쳤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아흔이 훌쩍 넘은 연세에도
환자를 돌보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알고
가족들도 힘겨워하는 치매 노인들을 위해
의술을 펼쳤습니다.
요양병원에서 받는 월급 대부분을 사회단체에 기부하며
주말이면 외국인 무료 진료소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주기적으로 해외 의료봉사도 다니셨습니다.
따뜻한 하루는 2년 전, 한원주 원장님을 만나 뵙고
그간의 귀한 걸음에 감사한 마음을 담아
칭찬 꽃바구니를 전해드렸었습니다.
당시 92세였음에도 주5일을 병원에서 숙식하며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안부를 묻는 원장님을 뵈며 진심으로 존경의
마음을 품었었습니다.
그리고 오래도록 우리 곁에서 귀감이
되시길 바라고 소망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9월 30일, 영원히 환자들 곁에서
함께 해주실 것 같았던 한원주 원장님이 숙환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별세 직전인 지난달 7일까지도 직접 회진을 돌며
하루 10여 명의 환자를 진료하셨다던 원장님은
갑작스레 노환이 악화해 하늘의 별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일주일을 원장님의 뜻에 따라
자신이 헌신했던 요양병원에서 보내다가
영면에 들어가셨습니다.
환자들에게 평생 최선을 다했던 한원주 원장님.
그녀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은 다음과 같은
세 마디였습니다.
"힘내."
"가을이다."
"사랑해."
정말 원장님다운 아름다운 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영원한 이별이 너무도 아쉽고 슬프지만
한원주 원장님, 하늘나라에서 평안히 쉬세요.
그리고 원장님이 남긴 이웃을 향한 사랑의 정신,
부족하지만 따뜻한 하루가 조금이나마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 오늘의 명언
사랑으로 병을 낫게 할 수 있다.
- 한원주 원장 -
마지막까지 환자 곁에..94세 '최고령 의사' 한원주씨 별세
권숙희
연합뉴스 2020. 11. 10. 18:37
남양주 요양병원서 지난달까지 노인 환자 직접 돌봐
임종 전 남긴 세마디 "힘내, 가을이다, 사랑해"
'국내 최고령 현역 의사' 한원주씨 별세 (서울=연합뉴스) 국내 최고령 현역 의사로 활동한 한원주 매그너스요양병원 내과 과장이 소천했다. 향년 94세.
경기 남양주 매그너스요양병원과 유족 측은 한원주 매그너스요양병원 내과 과장이 지난달 30일 숙환으로 별세했다고 5일 밝혔다.
사진은 고(故) 한원주 의사. [매그너스요양병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지난달 7일까지 직접 환자를 진료하던 고인은 지난달 중순께 노환이 악화해 서울 아산병원에 입원했다 지난달 23일 매그너스요양병원으로 돌아왔다.
자신이 말년을 헌신한 병원에 입원해 생의 마지막 일주일을 지내다가 영면에 들었다. 고인이 오래 생각해온 마지막 뜻이었다.
매그너스요양병원 관계자는 "모든 직원의 정신적 지주였던 원장님께서 돌아가셔서 갑자기 어깨가 다 무너진 것 같다"며 "환자분들도 한마음으로 안타까워하고 슬퍼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원장님께서는 마지막까지 반듯한 모습으로 모든 이들의 귀감이 되셨다"면서 "병상에서 '원장님'하고 불러드리면 눈을 크게 깜박이셨으며, 조용히 마지막 길을 떠나셨다"고 울먹였다.
80대 중반의 나이에 요양병원의 의사로서 도전한 고인을 직원들은 예우 차원에서 '원장님'이라고 불렀다.
'사랑으로 병을 나을 수 있다'는 지론으로 환자들에게 정성을 다하는 태도와 '국내 최고령 현역 여의사'라는 이력은 각종 TV프로그램에 소개돼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독립운동가이자 의사였던 아버지(한규상)와 독립운동가 어머니(박덕실) 사이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9년 고려대 의대 전신인 경성의학여자전문학교를 졸업해 산부인과 전문의를 취득했다.
남편과 미국으로 유학 가 내과 전문의를 딴 뒤 귀국해 개업의로 일했다. 활발하게 병원을 운영했으나 약 40년 전 남편의 죽음을 계기로 병원을 정리하고 의료선교의원을 운영하며 수십년간 무료 진료 봉사활동을 펼쳤다.
이후 80대 중반의 나이에 요양병원의 의사로 일하기 시작해 별세 직전까지 매일 10명 이상의 환자를 진료했다.
지난해 가을 '백세 현역이 어찌 꿈이랴'는 제목의 에세이집도 재출간할 만큼 왕성했으며, 별세 직전까지 노인 환자들 곁을 지키려고 애썼다.
고인이 별세 전 가족과 직원들을 향해 마지막으로 남긴 말씀은 단 세 마디였다고 한다.
"힘내", "가을이다", "사랑해".
사진은 고 한원주 의사가 생전에 환자를 진료하는 모습. [매그너스요양병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백세를 바라보는 인생, 가장 감사한 일은, "예수님을 믿게 된 일" - 세상의 부, 명예를 포기하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아픈 이들을 섬긴 한원주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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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R9Sp765GeB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