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이은규
섬에 도착한 직후
너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고 했다
바다조차 힙하지 않으면
반짝반짝 펠롱펠롱 별 대신 바다 뷰 카페의 필라멘트
전구들이 눈을 감았다 잘도 떴다 힙하다, 라는 말의 뜻을
나는 잘 몰랐지만 아 그렇구나
바람구두를 즐겨 신었던 랭보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게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그가 무기상이 되어 떠돌다 죽었다는 이야기를
아직 믿을 수 없고
알고 있지 이 섬에 바람, 돌, 여자가 많다는 거 아 그렇
구나 다시 태어나면 정물이 되고 싶다던 한 사람의 이름이
떠올랐지만 금세 지우기 위해 노력했다
매진, 구좌 당근 케이크 먹기에 실패한 네가
팽하고 토라진 것과 무관하게
다음 여정인 신당의 팽나무 한 그루 앞에 도착했다
소원을 들어준다는 나무에는
가지마다 흰 종이들이 묶여 있고
오래전 글 모르는 이들이 저 흰 종이를 가슴에 대고 소
원을 빌었다는데, 왜 모든 소원에는 지울 수 없는 이름이
숨겨져 있을까
추운 바람이 불어오면
나뭇가지 어디쯤 매달려 있는 한 사람의 소원이
밤마다 웅―웅 울 것만 같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을 문득 그리워하는 사람처럼
내가 엉뚱해, 처음 와본 바다 풍경을 오랫동안 그리워할
수 있다니
저기 붉은 동백숲은 싫고
흰 까멜리아는 좋아
샤넬 미니백을 검색하던 네가 투명하게 웃을 때
오늘의 마지막 여정이 이어지고 있었다
바람구두도 없이
해 저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