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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申나라 원문보기 글쓴이: 신두순
龍平의 友情 2009 08 18 ~ 24
8월 18일 (화) 높은 구름. <龍平의 友情>
> 10:30 - 박철원 회장, 이재원 교수 동행 용평행.
* 동간 장질은 18:00 별도 출발 오후 용평도착 합류.
## 6박7일 예정으로 산수 수려하고 공기 맑은 용평을 찾게 된 동기는 나의 건강회복을 위한 요양을 겸하여 오랜 시골동무인 한우리 박철원 회장이 최근 뒤늦은 갱년기 증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불면증에 잡병이 겹쳐 심신이 전과 같지 못하다고 하소연을 하여오기에 용평 행을 함께 할 것을 권유한 나의 제의에 기꺼이 찬동을 하여 환자들끼리 손잡고 떠나는 길에 중학 동기이고 고우인 玄山 이재원 교수와 猫丹 원돈희 사장이 우정어린 동참을 선언하고 나서고 길 안내를 위해 바뿐 사업을 잠시 뒤로하고 신동간 장질이 향도를 자청하여 따라나섬으로 하여 이루어졌다.
가는 길은 예정대로 정해져서 국도를 따라 용인 - 이천- <매번 지나는 길에 들려서 점심을 하는 ‘쌍용해장국’에서 12:00경에 점심을 하고 - 여주 경유 - 문막IC에서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원주 - 둔내 - 장평 - 진부- 황계IC에서 - 용평으로 들어서는 길을 주중의 비교적 적은 교통량에 주변의 깊은 산 속으로 빨려들어 가면서 한껏 싱그러운 자연을 감상하였다.
간단한 점심 후에 떠난 차 중에 한 통의 전화는‘ # 14:30 -- 내자 전화 - 김대중 前대통령 서거 <KBS 속보> 폐렴 입원 36일만에 85세로 영면… 국민장 또는 국장 거행.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을 지낸 김대중(85) 전 대통령이 18일 오후 1시 43분 서거했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달 13일 폐렴으로 신촌세브란스에 입원, 중환자실에서 집중치료를 받고 증세가 호전돼 22일 일반병실로 옮겨 치료 중 사망.‘ 이라는 전언이다.
차 중의 세 사람은 지금 막 숨을 거두었다는 DJ에 대한 인물에 대한 회고와 향후 예견되는 장례절차, 민주당의 진로 등으로 화제가 연결되어 서로가 알고있고 세상에 회자되었던 일화들이 가는 길을 가깝게 하였다.
결론은 ‘대한민국 역사에 국장은 현직으로 서거한 박정희 대통령이 유일하였고 일반적으로 전직 대통령인 경우 국민장으로 모셨는데 모르긴 해도 그들의 주장이 정부에서 받을지 아니 받을 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우선 가족이나 야당은 다른 대통령과 차별 화하여 ’국장‘을 주장하고 나설 것이라고 판단’함.
일행은 횡계에서 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대관령 숯불고기’ 어재식 ski 가족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시간은 이르지만 저녁을 하기로 하고 특별히 service하는 등심과 토속적인 된장찌개로 저녁을 나누다.
Condo check-in하기 전에 서울에서 준비하여준 밑반찬 외에 현지에서 구입하여야할 필요한 몇 가지 식품을 사들고 도착하여 집안정리를 끝내고 우리를 안전하게 인도한 한우리 기사 아저씨는 온 길을 되 집어 횡계에서 bus편 귀경하다.
17:30 폐를 관통하는 시원한 바람과 푸른 숲을 방안에서 DJ특보라는 news나 보면서 보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 Phytoncide가 넘쳐나는 삼림욕장으로 저녁 산책을 나서다.
> 22:00 동간 장질이 서울에서 용무 후 늦게 출발하여 늦은 시각이지만 도착하여 내일부터 강원도 영동, 영서의 백두대간의 절경을 안내하겠다고 함.
## 조갑제.com : 金大中 前대통령의 死後평가 - [ 2009-08-18, 15:22 ]
그의 生涯를 평가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서는 6․15선언이 될 것이다. - 趙甲濟
오늘 他界한 金大中 前대통령(만 86)은 파란만장한 生涯를 살았다. 그의 생애는 4期로 나눌 수 있다. 1. 좌익활동가 시절(해방 직후) 2. 야당정치인 3. 대통령 4. 전직 대통령. 그의 활동을 네 가지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1. 좌익 활동가 2. 야당투사 3. 대통령 4. 6․15선언자. 그의 생애는 2000년 6․15선언 前後로 크게 나뉘어진다. 6․15선언 이전의 故 김대중씨는 민주투사로 불렸다. 6․15선언 이후의 김대중씨는 지지자에 의하여서는 평화의 使徒(사도), 반대자에 의하여서는 反헌법․反국가적 행위자로 불리게 되었다. 그의 생애를 평가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서는 6․15선언이 될 것이다.
1. 6․15선언이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왔는가, 아니면 핵폭탄을 가져왔는가.
2. 6․15선언이 한민족의 통합을 가져왔는가, 분열을 가져왔는가.
3. 6․15선언이 자유민주 체제를 강화시켰는가, 약화시켰는가.
4. 6․15선언이 韓美동맹을 강화시켰는가, 약화시켰는가.
5. 6․15선언이 북한 동포․국군포로의 인권을 향상시켰는가, 약화시켰는가.
6. 6․15선언이 헌법의 敵을 강화시켰는가, 약화시켰는가.
7. 6․15선언이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증진시켰는가, 후퇴시켰는가.
이상 일곱 개의 평가기준을 적용하면 故 김대중씨의 역사적 位相이 대충 설정될 것이다.
故人은 朴正熙․全斗煥 정권에 맨주먹으로 맞섰던 사람이다. 박정희 정권에 의하여 납치․투옥되었다. 전두환 정권에 의해선 사형선고를 받고 연금도 당했다.
그는 그런 불굴의 용기를 稀代의 학살자 김정일 앞에서는 보여주지 못했다. 그는 700만 인명의 학살에 책임이 있는 김정일과 손을 잡고 연합제․연방제 혼합 통일 방안에 합의함으로써 한반도의 유일한 合法 정통국가인 대한민국을 反국가단체인 북한 정권과 同格으로 놓는 치명적 과오를 범하였다. 그리하여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희대의 학살 독재자와 同格으로 평가받거나 동격으로 이미지 메이킹되는(특히 영상을 통하여) 사태를 自招하고 말았다. 그는 박정희에 의한 유신선포 직후 일본에서 망명생활을 하면서 북한 정권의 조종을 받는 在日인사들과 손잡고 反(반)국가단체인 韓民統을 만들었다. 그가 사형선고를 받은 이유는 이 때문이었다.
故김대중씨는 李承晩과 함께 大衆을 권력의 기초로 보았던 대중정치인이다. 이승만은 대중을 계몽․교육함으로써 한민족의 역사를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김대중씨는 계몽보다는 선동적 설득을 더 앞세웠다는 비판이 강하다.
김대중씨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그가 추구했던 민주주의가 어떤 민주주의였냐에 의하여 대충 결정될 것이다. 그는 대통령이 된 이후, 그리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이후 촛불난동과 같은 법치파괴, 6․15선언과 같은 헌법파괴까지도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설명하곤 하였다. 권력을 잡은 이후의 이러한 그의 민주주의觀 때문에 민주투사로서의 그의 역할까지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오늘 내가 만난 한 전직 미국고관은 "국제사회에서 김대중씨의 영향력을 능가하는 한국 사람은 이승만․박정희뿐일 것"이라 평했다. 그의 죽음은 한국 현대사의 한 章이 넘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 장의 역사에서 그는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
# 1980년 박 대통령 서거 후에 최 대통령에 의하여 긴급조치 9호가 해제됨에 따라 4월 동국대학교에서 행한 그의 강한 호남사투리에 대통령이 다 된 듯한 양양한 자신감으로 위기관리 정부를 얏잡아보던 그 칼바람소리 나는 육성을 기억하면 온몸에 전율을 느끼면서 상종할 수 없는 위선적인 인간으로 나에게는 각인되어있다.
8월 19일 (수) 뭉게 구름.
> 08:00 장 조카님께서, 삼촌과 그 친구 분들 모신다고 이른 아침 기상하여 전기밥솥에
밥을 하고 고추장, 된장을 풀어 콩나물에 김치국을 끓여 밑반찬에 fried eggs를 얹어 영양을 더하여 조반을 대신하다. 쾌적한 환경, 좋은 친구, 금강송과 잡목이 어울어진 산과 camping장에서 훈련된 야전용 요리솜씨가 일품이니 입맛이 배가하여 솥을 긁고 숭늉에 누름 밥까지 버릴 것이 없다.
방바닥은 따끈따끈 열어놓은 창을 통하여 들어오는 늦가을 같은 시원한 공기는 폐를 관통하고 나뭇잎이 바람에 부딪쳐서 내는 갈바람소리에 불면증 환자도 중간에 화장실을 다녀오고는 내쳐서 수면을 취하였다고 하니 환경이 열악한 상태에서 그만하면 성공이 아닌가 생각이 되니 안심이 되었다.
> 10:00 길을 나서기 전에 잠시 용평resort의 최대시설의 하나인 Gondola를 타고 rainbow ski slop의 정상에 올라 resort주변의 경관을 안내하고 등산로는 시간절약을 위해 사양을 하고 정상 coffee shop에서 마음을 축이다.
> 11:00 진부 경유 정선행.
깊은 계곡으로 빨려들어 가는 국도 옆으로 흐르는 하천의 푸른 물과 바위와 부딪치는 물소리를 감상하며 지난 시절 박정희 대통령의 산림10개년 계획의 성공작을 눈으로 확인하면서‘70년대의 민둥산을 녹화한 그 선견지명에 깊은 경의를 표하다.
> 11:30 김두영 회장 내전 - 현 위치가 어데인가. * 수미산을 넘어 정선행이라고 하니.
수미산이 어디에 있는 산이냐고 묻는다. * 성경은 읽어도 불경을 일지 않았으니 모르는 일이라고 하면서 그 잘하는 inter-net에서 검색할 것을 권하다.
* 우리는 仙境을 질주하고있는데 ‘지금 어디에 계신가‘하고 물으니 原州란다.
하도 우리끼리는 농담이 심하여 알쏭달쏭한 은유적 대화가 comedy를 연출하여 오늘도 그러려니 하였는데 우리의 현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 전과는 다른 점이 느껴지면서도 전과 같은 생각으로 웃고 치웠는데 12:00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정선읍내의 ‘동광식당’에 도착을 하고 보니 金 회장 내외분께서 먼저 도착하여 우리를 기다리고있는 것이 아닌가.
# 지난 주말 우리가 용평 행을 결행하기 전에 점심을 하면서 요양 차 1주일 요량으로 떠난 다고 하였더니 이를 귀담아 듣고 우리가 용평에서 요양을 잘하고있는지 점검 차 두분 내외가 우리가 분당에서 모여 점심을 할 적에 전문적인 솜씨로 만들어 보내주던 솜씨로 roll cake을 구어 지참을 하고 용평방문 길에 우리가 정선행이라고 하니 진부에서 방향을 돌려서 이곳으로 직행을 하였단다.
# 나는 두 번째 방문이지만 玄山 공과 朴 회장은 초행이었고 더하여서 金 회장 내외분까지 우정 있는 방문에 황기에 삶아 부드럽고 온기가 스며있는 육질의 족발에 콧등치기 메밀국수는 점심을 즐기기에 적당한 시간의 흐름으로 하여 차려진 menu로서는 일미였다. 국수를 좋아하신다는 Mrs. 金께서도 한 그릇을 비우니 더욱 반가운 일이었다. 후식으로 지참한 roll cake은 6섯명이 먹고도 남아 이 식당 종업원에까지도 차례가 돌아가서 산골의 젊은이들이 꿈에도 상상하지 못할 입에 녹아 내리는 간식을 시식하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병들어 초라한 나를 慰撫코자 원행에 점심값까지 지불하고 돌아서는 金 회장 내외분! 참으로 고맙고 감사합니다.
내 살아온 짧은 생애에서 이렇게 흉금을 트고 무슨 말을 하여도 서로가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동지들이 옆에 있어 고행의 길에도 함께 하여 주는 그 아름다운 마음을 살아가면서 어디에서 또 다시 우리가 찾을 수 있겠는가.
아쉬운 작별은 얼마나 섭섭한지 또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영영 보지 못할 이별을 맞이한 심정으로 가슴이 찡하여 콧등치기가 아니라 콧등이 시큰함을 느끼게 하였다.
우리 일행은 회차하는 길에 정선 재래시장을 둘러보고 오대산 월정사를 방문하다.
사찰 초입에 있는 영농후계자라 간판을 걸고 그 가족이 재배한 농산물을 판매하는 간이 매장에서 갓 따온 옥수수를 삶은 것을 간식으로 입에 물고 그간 몇 번 이곳을 왕래하면서 낮익은 고객이라고 아는 체 하면서 토속적인 시골의 온정을 느끼게끔 덤으로 밭에서 뽑아주는 대파며 감자 그리고 고추도 얻어서 저녁 부식으로 손색없는 꺼리를 장만하다.
나는 遠行에 energy가 많이 소모되어 월정사 일주문 앞에서 휴식을 취하고 동간, 현산, 박 회장만이 월정사 법당을 돌아보고 현산 공이 박 회장의 불가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면서 경내를 돌아보고 하산하여 긴 하루의 나들이를 마감하다.
든든한 정선의 점심에 월정사 입구의 오대산 찐 옥수수로 저녁 맛을 잃은 일행은 Condo에서 밤 맛이 나는 단 호박을 찌고 계란을 삶아서 저녁을 대신하다.
소화를 겸한 산책를 한 연후에 온기가 도는 방에 깔아놓은 요 밑으로 발을 넣고 둘러않아 이런저런 자신들만이 경험한 신변의 이야기로 짧은 밤의 시간을 줄여나갔다.
박 회장의 팥 빵 장사 이야기 - 어린시절 천안에서 호구를 위해 시작한 장사에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나름대로 맛과 질이 월등하여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요즈음은 팥의 앙꼬를 공장에서 공급받아서 특색이 별로 없지만 그 시절에는 밤새 집에서 팥을 고아서 만든 앙꼬에는 설탕의 배합비율에 더하여 소금을 얼마나 첨가하느냐가 바로 팥빵의 맛을 좌우하는 know-how임.
그리하여 만들어진 빵 가게는 입 소문을 타고 번창을 하여 재미를 보고있는데 언제부터인가 어머니께서 그 비싼 설탕의 원가를 줄여보시겠다고 그 배합비율을 무시하고 매일 조금씩 줄여나가니 어제와 오늘은 별 차이가 없지만 여러날 설탕을 줄여나가다 보면 처음과 마지막은 그 맛이 상당히 차이가 나게되어 있어 단골로 찾아오던 고객들이 발길을 하나둘 돌리게 되어 잘나가던 빵집에 그늘이 지기 시작하였다고 하면서 장사란 신용과 처음과 끝이 여일하여야 한다는 깊은 교훈을 터득하였다고 함.
## KBS news : * 정부는 DJ서거와 관련 유족의 청에 따라 장례의식을 ‘국장’으로 하기로
국무회의에서 의결.
* 북조선은 이에 조문사절을 파견하기로 결정하고 유족 측에 통보.
8월 20일 (목) 높은 구름.
> 08:30 어제 남은 찌개와 완두콩을 넣은 따끈한 밥 그리고 삶은 계란, 찐 감자, 자주색
양파와 고추장, 어제 분당에서 택배로 보내온 볶은 멸치 이만하면 아침도 성찬이다.
> 10:00 Resort 삼림욕장에서 가슴에 산소를 저장하고 11:00경에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하여 강릉 - 주문진 - 양양 - 낙산사로 이어지는 동해안의 푸른 바다를 감상하기로 하 여 출발을 하다.
부산에서 출발하여 소련의 Vladivostok로 이어지는 Highway의 중간기점은 북으로 가면서 설악의 웅장함과 동해의 푸른빛이 어우러져서 주변의 경관이 佳境을 이루고있으며 어촌과 산촌 그리고 소도시들이 한데 어우러져서 집집마다 문화주택으로 옛 빈촌의 을씨년스러웠던 풍광을 찾을 길이 없다. 국토의 균형발전의 현장이 바로 이런 것이다.
일행은 장질의 안내로 몇년전에 산불로 전소하였던 洛山寺 경내로 들어서니 몇 번의 전란 속에서 소실과 재건을 하여오다가 이제 다시금 중건을 마무리하여 오는 10월 圓通寶殿을 비롯하여 몇 개의 요사채를 준공한다고 한다.
## 참으로 기이한 것은 산불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그 울창하였던 사찰경내에 즐비하게 우거졌던 거목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반면에 어느 경우 거목의 한 부분만이 불에 닿아서 일부가 소실이 되고 그 반대편에는 불길이 닿지 안았다는 이유만으로 다시 살아나서 싱싱한 푸른 잎으로 한편의 화상의 쓸어 담으면서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이곳에 꿋꿋하게 옛을 지키고 있는 것은 조선조 세조 임금시절에 세운 7층 석탑만이 묵묵히 건재하여 옛이야기를 전하고 있으며, 火魔가 처참하게 할퀴고 지나간 자리에 인간이 그래도 인공적으로 조경을 하고 건물을 재배치하여 옛 모습을 살려내니 그런대로 새로운 불교성지로 다시 태어나는데 손색이 없어 보이는 것이 다행스러워 보였다.
洛山寺에서 발길을 돌려 ‘함흥식당’<장질 산악회 선배 운영>에서 내는 생선회와 전복죽으로 점심을 하면서 다리의 경련을 풀다.
이 식당은 6.25전란에 함흥이 고향인 할머니께서 피난을 내려오셔서 고향과 가까운 이곳에 정착을 하고 호구를 위해 해변에 포장을 치고 전복죽을 쑤어서 지나는 길손을 대접하던 것이 대를 이어 옛 맛과 service로 관광지를 찾는 많은 고객들의 선전으로 옛 맛 그대로를 살려 오늘도 찾는 이가 줄을 있고있다고 한다.
우리는 백두대간을 관통하는 56번 국도를 따라 해발 1.000m가 넘는 九龍嶺과 雲頭嶺을 넘어 용평으로 들어가기로 하고 얼마 전만 하여도 차로 넘어도 하루가 걸리는 험준한 길로 큰 마음을 먹지 않는 한은 그리 쉽게 접할 수 없는 강원도의 Alps를 감상하기로 하였다.
산밑의 골짜기마다 적은 마을에는 물이 맑아 송어회집이 나그네를 부르고 지난날 호구를 위해서 산채며 떡을 빚어 지나는 길손을 맞이하려고 그 먼 오솔길에 새벽이슬을 털고 양양까지 나가서 길옆에 쪼그리고 앉아 호객을 하면서 산골 오지에 태어남을 한탄하던 그들이 요즈음은 정부의 균형발전정책에 힘입어 산골 마을에 computer로 inter-net home page를 개설하고 산채며 널리 회자된 유명상품을 안방에 앉아서 예약주문을 받아 생산 배송하여 부촌을 이루니 가정마다 승용차와 작업차에 더하여 기계농기구까지 소유하는 부농중의 부농이 된 시골이 어제의 시골이 아님을 현장에서 보면서 아~~ 대한민국 좋은 나라라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
疊疊山中 九折羊腸이 이런 길을 보고하는 말일 것이다. 雲海 밑으로 천길 낭떨어지 우거진 잡목은 jungle 그대로이고 인적은 물론이려니와 어쩌다 지나는 철지난 피서객을 태운 승용차가 이곳이 길임을 인식케 한다.
구룡령의 정상이 1.000m가 넘고 길손이 한가한 이곳에 휴게소를 갖는다는 것이 무리인 것 같다. 고개를 넘어서니 언제인가 휴게소 비슷한 것이 있어서 백두대간을 등반하는 산악인들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한 적이 있다고는 하나 이제는 그 기능이 상쇄되어 산림청의 산불감시요원의 숙소로 이용되고 있었다.
500m쯤을 내려온 길옆에 칡 차며 음료수를 그리고 간단한 감자부침을 내놓는 쉼터에 아주머니가 딱 된장을 바르면 좋을 듯한 토종(꼬리가 없는)견을 옆에 하고 앉아서 잠시 쉬어가겠다는 우리들을 밝은 미소로 환영한다. 칡차 한잔에 헛소리 열 마디가 오가는 두메나 산골에서 비가와도 설탕물을 주지 않아 굶어죽는 토종벌을 키우는 방법을 전수 받고, 지나는 길손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17년이나 이곳에서 山사람의 소임을 다하는 비결은 얼굴에 깊은 골이 노무현이 처럼 파인 산적같이 생긴 남편의 지극한 사랑 때문이라고 한다.
고랭지 채소며 특용작물도 이제는 계약재배 또는 inter-net으로 종자에서부터 판매까지 경작자들의 의도대로 조절을 하니 더 이상 중간상인들의 설자리가 좁아지는 현실은 바람직한 영농의 과학화, 정보화가 널리 보급되고있어 이 또한 선진영농의 현장이라 생각되었다.
> 19:00 산골에 빨리지는 석양을 보면서 잠시 피로를 풀고 현산 공과 장질이 도시가 그리워 먼저 하산을 한단다. 2박3일간 때로는 심각하게 때로는 우스개 소리로 우문현답에 현문우답이 오가면서 지난 시간이 오랜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22:30경 분당에 현산 공 귀저하고 23:00 제기동에 장질 임무마치고 안착하였다는 소식이다.
두분 모두에 그동안 헌신적으로 베풀어준 노고에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To shinara - 신동간 장질 - 삼촌과 그 악당들을 entertain하느라 고생이 많았음.
그 바쁜 와중에 소중한 시간을 쪼개어서 강원의 Alps를 감상할 수 있게 하여준 고마운 뜻을 오래 기억하겠음. 악당들을 대표하여 거듭 감사 - lucas. 08/25/22:40
## <changsoh@hanmail.net>['국가반역전과자'의 국장]
2009년 8월 20일 목요일, 오전 09시 02분 30초 +0900
조갑제 칼럼 "DJ를 국장으로 치르면 안 되는 14가지 이유"
李明博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그만둘 각오를 하든지 대한민국의 간판을 내릴 각오를 하지 않는 한 反국가범죄로 확정판결을 받았던 사람을 國葬으로 예우할 순 없다.
國葬은 경비 일체를 국가가 부담한다. 공무원들은 의무적으로 참배해야 한다. 국민들은 弔旗를 달아야 한다. 보통은 대통령이 장례위원장이 된다. 대한민국이 喪主인 셈이다. 국민들에게 사실상 故人에 대한 애도와 존경을 강제하는 儀式이다.
지금 언론은 김대중씨를 미화하고 있지만 어떤 여론조사로도 김대중씨에 대한 절대적 지지자보다는 절대적 비판자가 더 많다. 그런 반대자도 관례에 따른 국민장 정도는 용인하고 故人의 명복을 빌 준비가 되어 있으나 國葬은 국가와 자신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모독으로 생각한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애도할 마음이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도 故人에 대하여 국가가 애도를 강제하는 國葬은 양심의 자유에 대한 위반이며 일종의 전체주의적 儀式이 된다.
1. 前職 대통령은 국민장, 현직 대통령으로 사망한 경우는 國葬이라는 관례가 수십 년 간 정착되었다. 이 관례를 깨야 할 정도로 김대중씨의 죽음이 애국적이었고, 그의 업적이 이승만, 박정희만큼 위대하였다고 볼 수 없다.
2. 그는 일본에서 망명생활을 하던 1973년에 북한정권의 조종을 받는 반역적 在日인사들과 손잡고 反국가단체 한민통을 만들어 의장에 취임하였다. 이 일로 사형확정 판결까지 받았다. 감형되고 사면되긴 하였지만 이 판결은 그 뒤 再審대상이 된 적도 없어 역사적 기록으로 영원히 유지될 것이다.
3. 그는 해방 직후 좌익활동가였다. 본인은 轉向하였다고 했으나 그 뒤의 從北的 행적을
종합할 때 이 주장을 모두 믿기는 매우 어렵다.
4. 그는 현대그룹을 앞세우고 국정원을 시켜서 국민을 속이고 불법으로 4억5000만 달러를 간첩 두목 김정일의 해외 비자금 계좌 등으로 보내주고 김정일과의 회담을 성사시켰다. 이 회담에서 김정일과 함께 反헌법적 6.15 선언에 합의, 연방제 적화통일 방안을 사실상 수용, 남한내 좌익들에게 반역활동의 자유를 주었다. 대한민국을 미증유의 위기에 빠뜨렸던 사람을 국장으로 대우할 순 없다.
5. 김대중씨는 북한의 핵실험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인물이다. 李明博 대통령도 김대중 정부 시절에 북한으로 보내준 金品이 핵 개발에 쓰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6. 김대중씨는 국가반역범죄 前科者이며, 많은 국민들로부터 국가반역혐의를 받고 있다.
더구나 李 대통령 또한 김대중 대통령이 핵 개발을 도왔다는 의심을 국민들과 공유하고 있다.
7. 그런 대통령이 김대중씨를 國葬으로 대우하도록 결정한다면 우리는 李明博 대통령이
자신의 인기를 위하여, 김대중 지지자들과 북한정권 추종자들을 위하여 대한민국의 명예와 권위를 팔아먹고,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포기하였다는 의심을 가질 의무와 권한이 있다.
8. 김대중씨에 대한 國葬은 김대중씨가 저지른 反국가적 행위에 대하여 면죄부를 주는 효과 를 부를 것이다. 다수 국민들이 그를 反국가단체 수괴인 김정일에게 굴종하고 대한민국의 國益을 희생시킨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그런 사람을 영웅으로 公認해주는 國葬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통령의 자기부정이고 국가부정이며 김대중 세력에 대한 아부이다. 국가원수이자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조국과 헌법정신을 배신하는 행위이다.
9. 국군지휘부가 국군통수권자가 核개발을 도운 사람이라고 지목까지 하였던, 反국가범죄 전과자 영정 앞에 일렬로 도열하여 참배하는 모습을 본 국군 장병들이 무엇이라 생각하게 될까? 이런 군대가 과연 북한군과 북한정권과 내부의 敵에 대하여 적개심을 가질 수 있겠는가? 主敵의식이 모호해진 군대가 과연 국토방위와 국가의 안전보장이란 헌법상의 신성한 의무를 다할 수 있나?
10. 김대중에 대한 國葬은 반역면허증인 6.15 선언, 10.4 선언을 李明博 대통령이 존중하는 것으로 비쳐질 것이다.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과 헌법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문서를 존경하는 대통령은 자동적으로 탄핵의 대상이 된다.
11. 남북한 좌익세력은 ꡐ김대중 國葬ꡑ을 일종의 면죄부, 반역면허증으로 활용하여 자유를 파괴하는 자유를 누리려 할 것이다.
12. 이에 대하여 분노한 애국세력도 행동하기 시작하면 국가는 ꡐ김대중 國葬ꡑ을 계기로 분열상태에 빠질 것이다. 물론 장기적으로 보면 헌법정신과 애국심으로 무장한 대한민국 세력이 최후의 승리자가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김대중 지지세력뿐 아니라 李明博 대통령도 국가 배신자로 낙인 찍혀 정치적으로 매장될 것이다.
13. 李 대통령이 김대중 國葬을 결심하면 이는 자신의 정치적 장례식을 준비하는 일이 될 것이다. 신상옥씨는 ꡒ대한민국이 망하지 않는 한, 김대중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ꡓ고 썼었는데, 대한민국이 망하지 않는 한 李明博 대통령도 용서 받지 못할 것이다.
14. 李 대통령이 믿는 神이 그를 붙들어 주어 국가와 자신에게 치명적인 결정을 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기도하는 심정이다. 그럼에도 법을 잘 지키는 성실한 국민들의 이런 희망을 배신하고 좌익세력에 굴종하는 결정을 내린다면 국민들도 헌법정신을 받들어, 자유민주, 法治체제를 수호하기 위하여 행동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행동하는 양심'이 어떤 것인지, 김대중씨에 대한 참 民心이 어떤 것인지 그때 가면 알게 될 것이다. 애국시민들은 國葬거부운동을 벌일 권한과 의무가 있다. 이명박은 대한민국의 배신자가 될 것인가, 오늘밤의 결정이 그의 평생을 좌우할 것이다.
촛불난동 격려자, 反국가단체 결성자, 간첩 두목에게 4억5000만 달러를 보낸 공작의 최종 책임자, 6.15 반역선언자, 北核 개발 지원자를 國葬으로 모시는 결정을 내리는 인간은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이승만, 박정희, 그리고 수많은 애국자들의 魂靈이 그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국가반역 집단에 대한민국을 팔아 자신의 안전을 사려는 자를 응징하는 데서 대한민국 再生의 길이 시작될 것이다.
## MB 왕따시킨 북한 - 류근일 한양대 대우교수
북한의 아태평화위원회가 통일부 등 우리쪽 공식 통로를 배제한 채 임동원, 박지원 씨 등에 직접 조문단 파견의사를 통지한 것은 대한민국의 국가성에 대한 공공연한 능멸이요 모독이다.
조문단 파견 자체는 정부도 ꡒ반대할 이유 없다ꡓ고 말했다. 그렇다면 북한당국은 마땅히 우리 정부의 공식 창구에 남행 의사를 전달했어야 했다. 북한의 이런 ꡐ通民封官ꡑ 술책은 앞으로도 우리정부와 국민을 이간시키고 정부를 고립시키기 위한 ꡐ반보수 진보대연합ꡑ의 상투적인 전술로 지속될 것이 뻔하다.
문제는 이명박 정부가 이에 대해 소극적, 미온적으로 대하는 탓으로 이명박 정부 스스로 자체의 입지를 낮추고 있다는 점이다. ꡐ중도실용ꡑ이라는 것을 잘못 이해해서 그런지 어쩐지는 알 수 없으나 어땠던 그것이 마치 원칙도 일관성도 없는 便法주의처럼 작동하고 있는 한 징후인 셈이다.
이래서는 정부의 체통도 설 수 없고 국가와 국민의 準據도 확립될 수 없다. 나라다운 나라라면 일정한 룰(rule)의 배타적인 집행자로서의 확고한 인정을 내외로부터 받을 수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이 문제는 국장과는 다른 차원에서 엄중하게 대처해야 할 국가의 주권에 관한 사항이다. 백보를 양보해서 설령 '좋은 동기'로 온다고 쳐도 프로토콜에 맞지 않는 행위를 의도적으로 한다는 것은 ꡐ좋은 동기'를 악용하는 ꡑ좋지 않은 동기'가 잠재돼 있음을 반영한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는 매사 이런 식으로 왕따 당하고 뒤통수 맞으면서도 그냥 헤헤헤 하며 적당주의로만 임할 경우 정부로서의 권위와 권능을 하나 하나 상실해 갈 것이 우려된다. 제 밥그릇은 제가 찾아먹어야 한다고, 정부와 대통령은 제 체통을 제가 챙겨야 한다.
더 걱정인 것은 이명박 정부만 권위와 권능을 잃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결국은 대한민국과 그 국민도 앉은자리에서 함께 이등병으로 강등 당한다는 점이다. 정부가 칠칠맞지 못하면 국민이 망신당하는 법이다.
8월 21일 (금) 높은 구름.
두 사람이 떠난 Condo의 아침은 을씨년스럽다.
게으름을 떨고 늦잠을 자고 일어나 그래도 아침식사는 하루의 중요일과라 맛있고 영양가 있게 차렸다. 강낭콩 밥에 된장찌개, 게란 부침, 자색양파야채와 양념에 핀 북어무침, 깍두기까지 곁들이고 후식으로 복숭아와 사과 그리고 삼림욕장을 오르면서 take-out한 coffee한잔 이만하면 누가 이것이 산사의 홀아비 식단이라 하겠는가.
## cell phone message - * 완연한 가을 높은 하늘 푸른 산 맑은 공기 21/08:25
# 최선미 - 안녕히 주무셨어요. 여기도 매미소리가 가을 느낌입니다.21/08:38.
# 이재원 - 천당에 갔다온 듯하오. 원 공에게 사전교육 시켰으니 잘 할거요.08:30.
# 원돈희 - 터미널에서 10시10분 출발 횡계 도착 예정 12:50 이따보세 09:43.
# 신수정 - 안추우세요? 서울도 어제 비 오고 오늘 좀 선선해요. 09:01.
* 18‘c 아주 쾌적.09:05.
* 보안실에 옥수수 효자촌 - 17:08 - 누님께서 전달.
> 12:50 횡계 Bus Terminal에서 정시에 猫丹 公 pick-up.
> 13:30 <시골식당 - 토종닭 백숙> 12km의 계곡을 따라 나있는 오솔길 끝자락에 도암댐이있는데 원래 목적은 수력발전을 하여 강릉 일원에 전력을 공급하기로 설계를 하였던 것이 지역 주민들의 고랭지 특작물 재배에 사용된 농약의 공해로 인하여 담수 된 수질이 순환이 되지 않고 침전된 농약으로 하여 물이 썩어 2002년 이후 더 이상 발전을 할 수 없게 되어 무용지물이 되어 관리인 1명이 오가는 관광객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고 있는 이 길 중간에 ‘시골식당’이란 간판을 걸고 토종닭 백숙과 찹쌀로 끓인 닭죽을 맛깔나게 하고있어 멋처럼 용평을 찾아 준 특강 교수의 입맛을 돋우기 위해 잡목이 우거진 오솔길을 따라 안내를 하여 싱싱한 쌈에 찐 감자와 닭고기를 곁들여 쌈장으로 간을 하여 쌈을 싸서 먹는 맛 또한 일미임을 적어둔다.
> 16:00 <강릉 대관령박물관 방문>
* 대관령 舊 국도를 구비쳐 내려가다 보면 강릉시가 운영하는 박물관이 있다.
# 洪 씨라고 하는 여인이 평생동안 거금을 들여 수집한 민속자료를 건물까지 지어서 소장품을 모두 이곳에 담아 강릉시에 기증하였다고 한다. 아직도 이런 기증 또는 기부문화가 열악한 이 나라에서 마음을 비우고 가볍게 인생을 정리하고 떠나겠다고 결행한 아름다운 마음씨는 참으로 칭찬 받아 마땅한 보기 드문 한국인임을 다시 느끼게 한다. 며칠 전에 유명을 달리한 DJ라는 인물은 세간에 알려지기로는 동교동에 그 많은 현금과 미국 등 해외에 많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고 하면서 땡전한푼 사회에 환원은커녕 병든 자식의 병원비에 쓰려는지 입으로만 ‘사랑하고 존경하는 국민‘만 찾았지 정말 어려운 우리의 이웃을 위해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위선자를 이 정부는 그를 ’국장’으로 보내는 허약한 정권의 끝을 보는 듯하다.
> 17:00 <寶賢寺 방문- 강릉시 성산면 소재>
* 몸통이 불게 광채가 나는 금강송이 빼곡하게 에워싼 계곡을 15분 정도 들어가면서 느껴지는 자연의 그 깊은 심연에서 불어오는 맑은 바람과 개천의 물소리는 산사의 스님의 목탁소리가 아니어도 도시의 소음과 찌든 공해에 오염된 인간을 부끄럽게 한다.
신라시대 창건되었다는 사찰은 몇 번의 중창으로 오늘에 이르렀으며 주지 스님이 직접 나서서 가을의 송이를 얻기 위하여 우거진 잡목을 제거하는 간벌을 하고 계셨다.
칠석과 백중이 가까워서인지 불자들의 발걸음이 잦아 조용하여야할 산사가 인간의 냄새가 난다. 경내를 돌아보고 청량수 한잔으로 땀을 식히고 저무는 해를 아쉬워하면서 용평에 거주한다는 처사의 권고와 안내로 길 없는 길인 林道를 따라 대관령을 오솔길로 넘어 용평 Condo에 도착 간단한 용평식 저녁을 하고 묘단 공의 한 자락 특강을 경청하다.
8월 22일 (토) 맑음.
> 아침 TV news에 서울소식을 전한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장례식장, 동작동 국립현충원, 전국의 추모인파 등 영양가 없는 news보다는 산 속에서 적은 것이지만 맑은 공기와 싱싱한 식단 그리고 추억으로 얼룩진 삶의 현장에서 체험한 인생 역정의 역사가 더 진솔하고 아름답다.
> 06:30 따듯한 구들에 등을 붙이고 창문을 열고 누워있노라면 들어 쉬는 숨 속에 찬 기운이 가슴을 열고 구멍을 내고 관통하는 착각 속에 정신이 자연적으로 맑아진다. 이런 기분으로 매일을 보내다 보니 가는 날이 아쉽고 도시가 마음에서 멀어지는 이유를 다소 나마 이런 경험을 통하여 알 것 같다.
지난날 시골 형님께서 상경을 하시어 며칠 계실 적에 ‘서울은 못 살 곳이야. 매연으로 눈이 따가워 눈물이 나고 호홉이 무겁고 힘들어 돈주고 살라보라고 하여도 못 살 곳’이라 하시던 그 말씀이 이해가 간다.
> 08:30 묘단 공이 일찍이 중국무역을 할 적에 익힌 延吉式 된장찌개로 아침을 하고 삼림욕장에서 Phytonchide를 간식으로 가슴에 담고 가까운 또 다른 산사인 上院寺를 찾아 나서다.
> 11:00 <上院寺 訪問>
* 평창군 진부 월정사 경내에서 깊은 계곡을 따라 20여분 비포장도로를 따라 그 끝점이 상원사이다. ‘70년대 이곳을 가려면 오솔길에 이슬을 털고 새벽잠을 설치고아 오르던 곳이었는데 그런대로 비포장이지만 대로가 나있어 차로 쉽게 갈 수 있으니 세월은 오래 살고 볼일이다. 이곳에는 신라시대 주조된 국보의 동종이 있고 그 뒤편에는 사람들이 오르기가 힘이 들어 그렇지 부처님 진신사리가 안치된 적멸보궁이 있다.
상원사도 근래에 불사를 일으켜 요사채며 법당 등이 새로 들어서고 禪茶苑까지 만들어 기념가계도 준비하여 멋처럼의 참배 객에게 많은 service를 하고 있었다.
朴 회장은 4살짜리 딸을 위해 福주머니를, 나는 우리들의 우정을 위하여 부엉이 목조각품으로 시주를 대신하여 기념으로 나누다. 오가는 길옆에는 야생 다람쥐를 주의하라고 하는 안내판이 곳곳에 있어 무슨 의미인가 하였더니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않는 다람쥐들이 길손이 건네는 음식물을 반기며 따르는 것이 잘 길들여진 사육되는 야생이 아닌 야생이 어린아이들의 장난기를 돋우게 한다.
상원사를 나오는 길에 월정사 일주문안의 전나무 오솔길에 미련이 남아, 나는 편도를 걷고 원 사장은 비포장 도로에 인조 뼈로 이어놓은 허리가 요동을 하는 바람에 통증이 오는지 위에서 세족을 하고 朴 회장만이 전나무 숲길을 왕복하고 진부로 나서다.
가는 곳에 식도락이 빠질 수 있겠나. 서울에서 만난 후배가 추천한 珍富의 ‘남경막국수’를 찾아 나섰다. 야채에 곁들인 보쌈과 막국수는 명품에 가까웠다. 가히 추천할만한 장소였다.
> 용평으로 들어오는 길에 동계 Olympic을 겨냥하여 조성한 Alpensia resort를 길옆에서 지나치면서 감상하다.
> 간단한 저녁<감자와 옥수수 그리고 동해 이창우 선생이 택배로 송달한 지장수로 만든
연두부를 곁들임>으로 일손을 덜고 묘단 공의 인생 2막 특강 경청.
## 인간이 치사하게 사경에서도 양심에 반하는 언어를 구사하더라 - penicillin shock
으로 死境을 헤매면서도 부인에게 당부하는 말 가운데.
> Letter from : <songjk7@naver.com> - 09-08-22(토) 12:03:58
金大中 선생께 告함! - 2009년 8월 6일
선생께서는 지난달 13일 폐렴증상으로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한 후 장기간 인공호흡기를 부
착하면 합병증이 생길 수 있어 목에 새끼손가락크기의 구멍을 낸 뒤 여기에 인공호흡기의 관을 연결시켜 산소를 공급받고 계신 줄 압니다. 더군다나 오래 전부터 투석시술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니 건강이 많이 악화된 게 사실인가 봅니다.
건강악화에 대해서는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올립니다. 하기사 그 연세 되면 기력도 쇠잔할 때가 되기도 되었습니다.
호적에는 1924년 1월 6일생이고 주민등록에는 25년 12월 3일생이나 선생은 스스로 23년 1월 6일생이라 주장하고 있으니 출생에도 많은 비밀이 있기는 있는 모양입니다.
혹자는 윤대중이라 하고 혹자는 제갈대중이라 하나 선생께서 김대중이라 하니 그렇다 칩시다. 탄생은 창조주의 섭리이지 어찌 선생의 의지가 눈곱만큼이라도 반영되었겠습니까? 그러하니 성씨에 너무 집착하지 마세요. 건강에 해로우니..선생의 성씨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수군대는 참새들을 보면 할 일도 참 없는 답답한 군상들로만 보일 뿐입니다. 그들 모두 다 자신의 성씨에 자신 있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秦始皇이 자신의 출생 비밀을 지키기 위해 生母와 通情하고 있는 生父 呂不韋를 죽였다고 해서 그가 후세에 장양왕의 親子로 인정받은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인간은 그런 하찮은 성씨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업적으로 평가받는다는 것을 역사는 말하고 있습니다.秦始皇이 焚書坑儒만 하지 않았다면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주로 추앙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께서는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감추기 위해 호주제 폐지를 부채질하여 후세들의 가문의 씨앗을 섞어버리는 우를 범했습니다.
선생께서는 해방 후 신민당 목포시당 조직부장으로 활약한 적이 있습니다.
신민당은 공산당과 합당하여 조선노동당으로 된 게 아닙니까? 신민당 당수 백남운은 1948년 자진 월북하여 1967년에는 최고인민회의 의장(우리의 국회의장)까지 지낸 골수 공산주의자이며 길일성 충성분자 였습니다. 말하자면 선생의 상관이 북한에서 큰 출세를 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북에서 선생을 음으로 양으로 많이 챙겼겠지요.
유신을 선포하자 선생은 일본으로 도피하였습니다. 나라에 큰 일이 생기면 해외체류중이라도 급거 귀국하는 게 국회의원 도리인데 어찌하여 도망을 갔습니까? 도둑이 제발 저리다고 켕기는 게 많으니까 줄행랑 친 게 아닙니까? 일본에서 총련과 손잡고 韓民統을 결성하여 그 의장으로 취임하려한 것이 증거입니다.
필리핀의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이 별세했다합니다. 그녀의 남편 아키노 상원의원은 죽음을 무릅쓰고 조국의 민주화를 위하여 주위의 만류와 정부의 협박에도 구하고 입국하다가 마닐라 공항에서 피살되었고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마르코스 독재정권이 무너졌으며 코라손 여사가 대통령에 취임했지요. 아키노 부부는 리핀 역사에 애국지도자로 영원히 기록될 것입니다.
선생께서는 4수만에 호남인의 98% 지지에 힘입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얼룩진 많은 오점은 대통령의 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지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국민들은 그렇게 되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국민들의 기대와는 달리 우려했던 본래의 모습이 여실이 나타났습니다.
첫째 선생은 6.15선언이라는 민족반역을 저질렀습니다.
대통령 되기 전까지 북한과의 모종의 커넥션이 있었다 할지라도 북한에 비하면 십배나 강한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된 이상 주도적으로 북한을! 요리해야 함에도 김정일의 위압에 눌려 적화통일 방안인 고려연방제에 합의했습니다. 그리고 문학적 숫자의 현금과 물자를 지원했습니다. 그러나 북한 동포는 여전히 헐벗고 굶주리고 정치범 수용소에서 탄압받고 있으며 돌아 온 것이라고는 핵폭탄과 미사일뿐입니다. 그리고도 뻔뻔스럽게 노벨평화상을 로비해서 어거지로 챙겼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대북 퍼주기를 멈추는 게 그렇게 배가 아픕니까? 500만표 이상의 표차로 당선된 대통령을 독재자라면서 사회단체와 민주당, 민노당이 합세해서 타도하라고 선전선동질 하는데 ! 隔 전직 대통령으로서 입에 담을 수 있는 소리입니까? 전직 대통령이면 국가 원로인데 이제 원로로서 나라의 발전과 장래를 위해 말을 아껴야 하며 한 말씀한다면 태산처럼 장중하여야 함에도 그렇게 경망스런 언행을 했어야 되겠습니까?
둘째 선생의 부정부패의 도는 너무 심해 대한민국 방방곡곡에서 악취가 풍겨 코를 막고 살아야 할 지경입니다. 국회의원 공천헌금 얼마나 받았습니까?
공적자금 미회수분의 반은 선생이 챙겼다는 소문이 자자합니다. IMF 빙자하여 좋은 은행, 좋은 땅, 좋은 건물 외국회사에 팔면서 수천억 원의 커미션 받았다는 소문이 사실입니까?
수많은 순진한 사람들을 도박장으로 유혹해서 가산을 탕진케 한 강원랜드의 사실상의 오너라는 얘기도 있고요.
남의 눈 피하느라 사과상자에 넣은 뇌물을 전직 국회의원의 집으로 가져오게 하고 그걸 다시 아들집으로 보냈는데 중간 보관자는 서재도 모자라 베란다에까지 쌓아두었으며 돈 냄새에 골치가 아파 잠도 못 잤다고 기자회견까지 한 사실을 국민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일이 열거도 어려운 그 많은 게이트의 몸통은 선생이 아니시던가요?
그리고 영세서민들의 임대 아파트 사기분양에 (주)한양과 한통속 되어 서민들의 가슴에 멍들게 하지 않았습니까? (주)한양이 상업은행 등으로부터 불법대출을 받았고 한양이 그 은행부채 6천7백억원을 대통령 되자 변재 책임이 없는 주택공사가 대신 갚도록 했지요. 주택공사의 자본은 국민혈세로 조성됐는데 결국 쓰리쿠션 돌려 국민세금 6천7백억을 (주)한양과 선생, 기타 등이 붐빠이 한 셈이 되네요. 그런데 이를 폭로한 임대 아파트 대책위원장인 서민대표를 왜 정신병자로 몰고 테러했습니까?
동교동 아방궁에는 에스컬레이터가 있고 지하정원이 있으며 욕실이 7개나 된다면서요?
아니라고요? 그러시면 집 구경 한번 해봄이 어떨런지요. 그러면서도 입만 열었다하면 서민이 이러쿵저러쿵 한다면서 서민의 대변자인양 설을 푸시는데 그야말로 ꡐ행동하는 양심이 아니라 행동하는 욕심ꡑ이라는 표현 외에 달리 표현할 방법을 못 찾겠습니다.
셋째 선생의 후안무치한 상습적 거짓말이 국민교육에 지대하게 끼친 악영향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ꡒ나는 거짓말 한 적은 없다. 단지 약속을 못 지켰을 따름이다.ꡓ 라는 이 명언(?)은 두고두고 후세에 회자될 것입니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 조폭범죄와 사기가 만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경찰, 검찰, 판사들은 내 몰라라하고 외면하고 있습니다. 정의와 양심이 실종된 사회가 되었습니다. 도덕이 무너지고 사회가 이렇게까지 타락된 데에는 선생의 상습적 거짓말을 본받은 선생의 제자들이 요직을 두루 차지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넷째로 전자개표기 부정선거로 대통령직을 네다바이 했다고 일각에서는 여전히 이의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부정부패, 민족반역 등 자신이 지은 죄를 덮어두려고 정치적 양아들이며 몸의 반인 사람을 억지로 대통령에 내세웠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고 자신할 수 있으면 왜 전자개표 프로그램을 제출하지 않습니까?
인생의 막을 내릴 때가 가까이 오면 인간은 모두 회개한다는데 그 많은 돈 저승까지 가져갈 수 있습니까? 이명박 대통령은 331억 원을 사회에 환원했습니다.
선생께서도 3조3천1백억 원을 서민을 위해 환원할 의향은 없으신지요. 선생께서 믿는 천주님도 입이 아닌 행동으로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이 오염될 것 같아 병원에 계속 모셔둘런지 모릅니다. 지난날의 모든 죄를 고백하고 국민으로부터 용서받는 양심선언을 기다려 봅니다.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告할 것은 하도 많지만 대충 이 정도로 끝내겠습니다...<fin>
8월 23일 (일) 快晴 - 가을 하늘.
> 10:00 ~ 15:00 <오대산 소금강 유원지 행>
* 오늘은 원행보다 세족을 하기로 하고 주문진 근처 연곡에 위치한 소금강 유원지를 찾았다. season이 좀 지나서인지 피서객이 적당하여 계곡의 그늘진 자리가 여유가 있어 돗자리를 펴고 세족을 하다.
한기를 느낄 정도의 시원한 물 속에 노니는 산천어에 인간의 음식을 전하고 넓은 바위에 저고리를 벗고 햇빛을 받으며 바로 따온 복숭아로 간식을 하면서 지내는 시간은 세상에 어느 다른 귀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바꿀 수가 없다.
이곳은 지난 ‘80년 정부이양을 앞두고 최규하 대통령을 모시고 설악산으로 하계휴가 중에 소금강유원지와 월정사로 넘어가는 지방도로를 확장 포장 공사 중인 그 현장을 방문 작업근로자를 격려하면서 산촌의 오두막 처마 밑에서 경호실에서 준비한 coffee 한잔으로 소나기를 피하던 기억이 새롭다.
제주 산업시찰 시에 구입하였던 댕댕이 줄기로 만든 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집고 초가집 처마 밑에서 떨어지는 낙수물을 시선 없이 쳐다보시던 그 모습의 사진 한장이 나의 앨범에는 빛도 바래지 않고 남아있어 그 참담한 모습이 영영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 15:30 <연곡 꾹저구탕>
# 주문진에서 강릉방향으로 나가는 길옆에 길손을 손짓하는 간판이 오후의 시장함을 눈치 채게 한다. 요즈음 시골식당가 선전물에는 TV에 소개된 것이 명소인양 크게 서 붙였고 심지어 어떤 집은 ‘TV에 한번도 나오지 않은 집’이란 것을 선전으로 내건 집도 있다.
이름조차 생소한 연곡의 ‘꾹저우탕’ 흥미가 시장기보다 앞선다.
주인을 찾아 물어보니 벽에 써놓은 그 유래를 읽어보란다.
일찍이 관찰사 정철 선생이 이곳을 지날 적에 대접한 민물고기 어죽의 변형이다.
주인 왈 ‘3년 묶은 고추장을 풀어 매운맛을 최소화하고 청정수에서 잡은 잡어를 갈아 국을끓여 수제비를 떠 넣고 야채를 곁들인 것이 일품이었으며 은어튀김에 동동주 한잔이면 천하가 손안에 있는 것이 아니겠는지.
> 14:00 국회 : 김대중 前 대통령 영결식 국회서 엄수
제15대 대통령을 지낸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23일 오후 2시 국회에서 각계 인사 및 시민의 애도 속에 엄수됐다.
영결식은 국민의례와 묵념에 이어 고인 약력보고, 장의위원장인 한승수 국무총리의 조사와 평화민주당 총재권한대행을 지낸 박영숙 미래포럼 이사장의 추도사 낭독 순으로 이어졌다. 이후 천주교, 불교, 기독교, 원불교의 종교의식이 거행됐으며 DJ의 생전 모습이 담긴 영상이 상영되고 유족 등 참석자들의 헌화가 뒤를 이었다. 성악가 김영미 씨와 평화방송 소년소녀합창단이 ꡐ그대 있으매ꡑ와 ꡐ우리의 소원ꡑ을 불렀고 이어 3군 조총대원의 조총 발사 의식을 끝으로 1시간 10분에 걸친 영결식이 마무리됐다. 이날 사회는 연극배우인 손숙 전 환경부 장관과 조순용 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이 맡았다.
장의위원회측은 이날 영결식에 장의위원을 비롯한 각계 주요 인사, 시민 등 2만4천명을 초청했다. 행사에는 이명박 대통령 내외를 비롯해 김영삼, 전두환 전 대통령,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인 권양숙 여사, 김형오 국회의장 등 3부 요인, 한나라당 박희태, 민주당 정세균 대표를 비롯한 정당 대표, 주요국 조문사절단 등도 자리를 지켰다.
한편 국회사무처는 헌정사상 처음 전직 대통령의 국장이 국회에서 엄수됨에 따라 국회 실무지원단을 구성, 조문객을 맞았다.
국회사무처는 20일 오전 김 전 대통령의 장례가 국장으로 결정된 직후 조기를 게양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삼가 애도합니다'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을 본청 건물에 걸었다. 또 휴가를 떠난 사무처 직원들도 조기에 복귀토록 해 장례 준비에 대한 도움을 요청했다.
조문객이 언제라도 조문 할 수 있도록 국회를 24시간 상시 개방해, 음료 및 그늘막 제공, 임시화장실을 설치하는 등 조문객들에게 최대한 편의를 제공했다. 이와 함께 주요 전철역에 셔틀버스를 연장 운행하여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조문객들의 국회 접근성을 높이는 한편, 국회의사당 뒤편 둔치주차장의 이용료를 면제하고, 둔치주차장에서 분향소까지 셔틀차량을 운행했다.
## 故 김대중 前 대통령 추모예배 -김형오 국회의장 추모사
21일 오전 7시30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故 김대중 前 대통령 추모예배가 열렸다. 추모 예배는 호산나선교회(회장 이용규 목사)와 민주당 기독신우회(회장 김진표 최고위원) 공동 주관으로 열렸으며, 김삼환 목사(KNCC회장, 명성교회)의 설교, 김형오 국회의장과 정세균 민주당 대표의 추모사, 소강석 목사(새 에덴교회), 천정배 민주당 의원의 조시와 추모기도 등으로 진행됐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추모사에서 "故 김대중 前 대통령은 선각자 였으며, 바로 그 점 때문에 오해와 비난을 받기도 했다"고 회고하면서 故 김대중 前 대통령의 업적을 높이 평가했다.
>> ꡐ靑瓦臺葬ꡑ으로 변질된 ꡐ國葬ꡑ - 국민이 거부하고 있다
李대통령은 앞으로 조기를 다는 것은 물론 조문조차 거부한 대다수 국민들을 상대로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 - 李東馥
** 오늘은 故 金大中 전 대통령의 ꡐ國葬ꡑ 영결식의 날이다. 지난 닷새 동안 진행된 ꡐ국장ꡑ 과정은, 물론 사람에 따라 달랐겠지만, 많은 국민들로 하여금 이 나라의 대통령이 그들의 소중한 나라 대한민국을 얼마나 뒤죽박죽의 나라로 만들어 놓고 있는지를 새삼 실감하게 만들기에 족한 것이었다. 아무리 보아도 망령이 났다고 할 수밖에 없는 공중파 TV들의 과장 보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고 김대중씨의 죽음에 대한 일반 대한민국 국민들의 애도와 추모 열기는 사실은 냉담하기만 하다.
어찌된 영문인지 알 수 없지만, 공중파 TV는 마치 작당이나 한 듯이 이상한 각도로 촬영한 분향소의 똑같은 조문 장면을 수없이 반복하여 방영하면서 조문 열기를 과장하여 보도하려 애쓰고 있지만 이들 보도들은 동시에 영결식을 하루 앞둔 22일 현재 언론이 전하는 전국적인 분향소 조문객 수는 47만 명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4800만 명의 국민 가운데서 47만 명이라면 글자 그대로 ꡐ새 발의 피ꡑ라고 할 만하다. 이것은 석 달 전 스스로 목숨을 거둔 고 노무현씨의 ꡐ국민장ꡑ 때 500만 명을 운운하던 조문객 숫자와는 천양지차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뿐이 아니다. ꡐ국장ꡑ이라면 모든 국민은 관공서는 물론 각자의 가정에도 弔旗를 게양해야 한다. 언론은 고인과 평생을 티격태격해 온 政敵으로 病床에서 이미 生死의 경계선을 헤매고 있던 당사자인 고인을 상대로 일방적으로 ꡐ和解ꡑ를 ꡐ선언ꡑ(?)했던 고인의 직전 대통령 金泳三의 상도동 자택 대문 앞에 걸린 조기 사진을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시내는 물론 전국의 어디를 가도 조기를 내건 가정을 발견하는 것은 가뭄에 콩 나기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 이번 ꡐ국장ꡑ의 기이한 풍경의 하나다. 엊그제 고인의 정치적 근거지였던 光州市를 다녀 온 사람이 전하는 모습은 그곳에서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분향소가 洞 사무소마다 차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분향소를 찾는 조문객들의 모습은 뜸하기만 하더라는 것이었다.
이 같은 ꡐ국장ꡑ의 모습은 두 가지 사실을 극명하게 드러내 준다. 그 하나는 대다수 국민이 극단적으로 愛憎이 교차하는 감정을 가지고 고인을 대하고 있다는 사실이고 또 하나는 이번에 고인의 장례 격식을 ꡐ국장ꡑ으로 만든 李明博 정부의 결정이 극도로 무리한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정부의 ꡐ국장ꡑ 결정이 알려진 후 과격한 보수애국 시민단체들은 거리에서 격렬한 ꡐ국장 거부 운동ꡑ을 전개해 왔다. 물론 이들의 거리 투쟁의 실제 참여자는 소수의 행동파에 국한된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절대 다수의 국민들은 조기 게양을 거부하고 분향소 조문을 자제함으로써 ꡐ국장ꡑ에 대한 거부 의사를 無言으로 示威했다.
필자가 사는 아파트에서도 관리소 측이 하루 몇 번씩 단지 내 방송 시스템을 통하여 조기 게양들 독려해 왔지만 이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은 ꡐ쇠 귀에 경 읽기ꡑ였다. 이 같은 일들은 이번 고 김대중 씨의 ꡐ국장ꡑ은 말은 ꡐ국장ꡑ이었지만 실제로는 ꡐ政府葬ꡑ, 아니 그보다도 ꡐ靑瓦臺葬ꡑ으로 의미가 축소변질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같은 無理手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이 몫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번에 고 김대중씨의 죽음과 관련하여 스스로 결단한 결정 가운데 ꡐ국장ꡑ이라는 장례의 격식보다도 많은 애국시민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킨 문제의 결정은 고인의 장지를 서울 동작동 현충원의 국립묘지로 정한 것이었다. 국립묘지는 특히 1945년 해방 이후 1948년 대한민국이 건국 과정과 1950-53년의 6.25 전쟁 수행 과정, 그리고 그 뒤의 산업화 과정에서 끊임없이 지속된 북한의 대남 군사 도발로부터 대한민국을 수호하다가 목숨을 바친 호국 영령들의 묘역이다.
그런데, 죽음의 순간까지도 대한민국보다도 북한의 이익과 입장을 옹호하는 데 진력했던 고인의 유해를 이 신성한 호국 영령들의 묘역에 安葬한다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만약 幽魂들의 세상인 저승이 실제로 존재하기라도 한다면, 이제 오늘부터 현충원 국립묘지에서는 함께 묻힌 고인의 유혼과 그를 제외한 수십만 호국 영령들 사이에 이승의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ꡐ반지의 帝王ꡑ의 장면을 연상시키는 大戰亂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과연 단언할 수 있을 것인가.
현충원 국립묘지는 통일의 그날까지 ꡐ6.25의 노래ꡑ과 ꡐ전우가ꡑ가 항상 계속하여 울려 퍼져야 할 호국의 도량이다. 그런데 그 같은 국립묘지의 김대중 묘역은 앞으로 그를 추종하는 이 나라의 '친북종북ꡐ 세력들이 시도 때도 없이 ꡐ6.15 남북공동선언ꡑ과 ꡐ10.4 남북정상선언ꡑ 이행 촉구 집회를 갖는 장소가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있는 것인가?
그렇게 된다면, 북한의 직간접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다가 산화하여 그곳에서 永眠하고 있는 호국의 혼백들은 집단으로 移住 길에라도 나서야 할 판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될 경우 그들이 대한민국의 국토 안에서 어딘가 이주할 수 있는 곳이 과연 있기는 하다는 것인가? 이명박 대통령과 그가 이끄는 정부의 관리들은 과? ?이 같은 가능성을 상상이라도 해 보았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 고 김대중씨의 장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비극적인 단면의 하나임에 틀림없지만, 고인의 他界를 ꡐ다행ꡑ(?)스럽게 생각하는 보다 많은 수의 나라를 사랑하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존재를 아예 무시외면하면서 그들의 상처받은 마음에 대해서는 아무런 배려도 하지 않는 이상한 모습을 드러내 주었다.
이로써, 그는 재작년 그를 대통령으로 뽑아준 유권자들의 票心을 또 한 차례 무자비하게 짓밟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제 오늘로 ꡐ국장ꡑ 기간이 지나고 나면, 이 대통령은 미망인 李姬鎬 여사에게 건넸다는 ꡒ고인에게 ꡐ국장ꡑ으로 예우할 ꡐ업적ꡑ이 있었다ꡓ는 자신의 말과는 달리 고 김대중씨가 ꡒ국가와 국민에게 피해를 입힌 일을 많이 했을 뿐 아니라 국가를 반역하는 일도 한 사람ꡓ이라는 생각 때문에 조기를 다는 것은 물론 분향소로 조문하는 것조차 거부한 대다수 국민들을 상대로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 고 김대중씨에 대한 장례를 통하여 또 한 차례, 어쩌면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큰, 마음의 상처를 입고, 이 대통령과 그의 정부에게 등을 돌린 많은 사람들이 과연 앞으로 이 대통령과 그의 정부를 얼마나 믿고 따를 것인지 불안해지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만약 이 대통령이, 그를 대통령으로 선출해 준 보수 성향 유권자 대다수의 정서는 모르는 체 외면하면서, 지난 번 고 노무현씨에 대한 ꡐ국민장ꡑ에 이어 이번에는 고 김대중씨에 대한 ꡐ국장ꡑ을 고인의 ꡐ좌파ꡑ 추종세력들에게 일종의 ꡐ뇌물ꡑ로 진상함으로써 그들의 환심을 사서 ꡐ협조ꡑ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같은 생각이 대한민국 현대사의 흐름과 얼마나 괴리된 비현실적인 착각인가를 깨닫게 되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으리라는 것을 작년 봄 ꡐ광우병 촛불시위 파동ꡑ의 과정이 웅변해 준 바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그의 정부가 이 같은 自明의 사실을 아직도 깨우치지 못했다면 이! 나라가 앞으로 겪어야 할 시련과 불행은 그들만의 몫으로 좁혀질 것 같지 않다. <fin>
> <edasan@edasan.org> - 사람은 죽어야 올바른 평가를 받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였습니다. 국장기간에 보도되는 그분에 대한 평가를 듣다보니 문득 영조․정조 시대에 소수파로, 진보적 사고와 정의로운 정치적 신념 때문에 고난받으면서도 대업을 성취했던 번암 채제공(1720-1799)의 업적이 생각납니다. 1762년 영조 38년,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비참하게 목숨을 끊은 참변이 일어났습니다. 그 4년 전 세자를 폐하려는 영조의 명령이 있었을 때에는 도승지로 있던 채제공이 몸을 사리지 않고 막아서 겨우 사태를 수습했으나, 세자의 참변이 있던 당시는 하필이면 채제공이 모친상으로 조정을 비운 때라 그런 일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른바 ꡐ임오사건ꡑ(1762) 이후 시파와 벽파사이의 당파싸움이 거세져 조정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습니다. 다수의 집권세력인 벽파, 소수이자 소외계층인 시파, 채제공은 시파의 영도자로서 집권세력인 벽파에게는 가시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채제공은 학식이 높고 인격이 뛰어나 임금의 돈독한 신임을 얻었고 벽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승승장구 고관의 지위에 올랐습니다. 영조 때 병조․형조․호조판서를 역임했고 정조 등극 뒤에는 더욱 신임받는 신하로 고관을 역임합니다. 하지만 벽파의 드센 공격에 끝내는 긴긴 추방생활을 하게 됩니다. 付處되어 8년을 산속에서 숨어살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정조는 채제공의 뛰어난 학식과 인격을 잊지 않고 8년 후 특별명령을 내려 추방당한 그를 정승인 우의정 자리에 등용하여 임금을 보필하게 합니다. 이어서 채제공은 좌의정에 올라 영의정이 없는 獨相으로 3년 동안 권력을 잡고 온갖 제도를 개혁하며 문물제도를 정비해 정조의 치세를 이룩합니다. 그런 시절에 진보적인 다산일파들도 하급관료로서 제 역할을 했습니다. 채제공은 곧 영의정 자리에 올랐지만 보수세력인 벽파의 극성스러운 반대 때문에 영의정 시절에는 화성축조의 공을 이룩하는 일 말고는 큰 개혁을 진행하지 못했습니다. 채제공은 1799년 80세로 세상을 떠났고, 정조는 국민장에 가까운 최대의 예우로 그를 장사지냈습니다. 친히 묘비문을 지어 비를 세워주고 문집을 간행하도록 친히 서문까지 지어주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바뀌어 정조가 세상을 떠나자 체제공은 사후이지만 중죄인으로 처벌받게 되고 모든 관직을 박탈당합니다. 심지어 아들까지 귀양살이하는 처절한 처지에 이르고 맙니다. 보수세력의 반격은 그렇게 혹독하였습니다. 1823년에야 영남에서 만인소가 올라와 마침내 채제공은 모든 지위와 관직을 되찾고 복권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조선후기 최고의 명재상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정조는 생전에 채제공의 초상화를 그리도록 명하여 그 초상화가 지금도 전해지는데, 그 초상화에 찬양의 글로 바친 다산의 화상찬이 기록으로 전합니다.
바라보면 근엄하여 두렵게 보이지만
가까이 뵈어보면 유순하여 뜻이 통하는 분
점잖게 계실 때야 쌓아둔 옥이나 물에 잠긴 구슬 같지만
움직였다면 산이 울리고 바다가 진동하네
거센 파도 휘몰아쳐도 부서지지 않고
돌무더기가 짓눌러도 작아지지 않았네
아무리 길고 짧은, 크고 작은 창날이 겨누어도
그분 정승에 오르는 일 막지를 못했네
그의 웅위하고도 걸특한 기개는
천길 높이 깎아지른 절벽같은 기상이었지만
사람이나 물건에 상해끼칠 생각은
전혀 마음속에 없었으니
군자답도다 그분이여!
그분이 아니고서야 백성이 그 누구를 믿을 것인가 <번옹화상찬>
채제공과 김대중, 그들이 처한 시대와 세상이 다르고, 그들의 신분과 처지가 달랐지만 극보수의 노론 및 수구독재세력의 벽파계열과 맞서 싸우느라 모진 고난을 당하면서도 높은 지위에 올라 큰 치세를 이룬 채제공은 인동초 김대중과 비교될 만한 점이 많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산이 채제공에게 바친 인물평을 저는 미흡하지만 김대중 대통령 영전에 바치고 싶습니다. 후광선생의 명복을 빕니다. - 박석무 드림
## 박석무 선생의 말씀처럼 역사에 남는 훌륭한 인물이 되기를 바라지만 이동복 교수가 지적한 대로 또 다른 평가가 있는 분이라 그렇게 채재공 같은 군자로서 국립묘지에 오래 추앙될 것인지는 두고 보아야 알 것 같습니다. - lucas.
8월 24일 (월) 높은 구름.
> 08:30 주초라고 서두를 것이 없는 산 속에서 멋처럼 양식식단으로 여유 있는 아침식사
후에 귀경 준비를 하다. <French breads with Bries chesses, Blue berry,& Orange Jam, Boiled eggs, Soft tobu, Apples, Coffee.>
> 10:00 Hotel front에서 6박7일의 남자들만의 자취생활을 고하는 check-out.
> 2박3일간 강원도를 순회하는데 좁은 국도를 묘기행진하면서 운전을 책임지고 귀경길을 책임진 묘단 공이 과로 탓인지 다리에 밤새 쥐가 났다고 하여 횡계약국에 들려 파스를 사서 붙이고 장정에 나서다.
주초의 서울행 고속도로는 여유가 있어 분당까지 2시간 20분만에 山田家에 도착하여 마침 약속이 없다는 玄山 公과 합류하여 닭고기 side dish와 우동으로 대단원의 해단식으로 가름하고 coffee shop에서 그간 계속하여온 猫丹 公의 특강에 종지부를 찍고 수료증은 인쇄중이라 다음기회에 수여하기로 하고 아쉬운 수련회를 마감하다.
이번 건강증진을 위한 특별 수련회에 협력한 모두에게 깊은 감사와 고마운 마음을 담아 마음 속 깊이 간직하려한다. 고마우이 모두여!
***
### Dragon Valley Special Seminar Summary:
첫째 날 - DJ - 그가 남긴 한국정치의 명암.
둘째 날 - 나는 누구인가 - 어제와 내일.
셋째 날 - 주변환경과 삶의 지혜<조언자를 이용하여 화해하는 부부>
넷째 날 - Sex! 우리가 알아야할 상식<묘단의 득도경 - file>
다섯째 날 -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할 줄 아는 경영기법.<일.러전쟁>
여섯째 날 - 이런 세상도 있다.<모르고 따라하지 마세요.>
** 한 인간이 떠나는 길에 애도보다 시원섭섭함이 더 진하다.>> 8/23/17:00 국립묘지 안장.
## 결혼 40주년 - 내자 귀가 길에 오늘을 잊지 않고 짖은 향기가 풍기는 꽃다발을 받쳐들고 일주일만에 용평 휴양지에서 친지들과 요양을 끝내고 돌아오는 나의 가슴에 안긴다.
> Letter from : <iychoi@hanmail.net>[모임안내]
2009년 8월 24일 월요일, 오전 09시 37분 48초 +0900
안녕하십니까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 머지않아 가을이 오려나 봅니다.
금번 모임은 가스공사 장석효 전무의 초청으로 기꾸(菊)에서 9월 7일 12시 30분에 갖습니다.
가스공사의 근래의 현황과 요즘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나 하시면서 모처럼의 회포를 푸시는 자리를 빛내어 주시기 바랍니다. - 최인영 드림.
> chosun.com : [사설] 김 전 대통령을 보내며 화해를 생각한다. - 2009.08.23 23:03
제15대 대통령을 지낸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23일 국회에서 엄수됐다. 사회자는 영구차의 입장을 알리며 "존경하고 사랑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과거 국민을 언급할 때 늘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이라고 했었다. 이제 고인 스스로가 국민의 존경과 사랑 속에 생을 마감하고 永眠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김 전 대통령을 보내며 그가 남긴 민주화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김 전 대통령, 김영삼 전 대통령, 그들과 함께 한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제도의 민주화는 이룩했다. 그러나 그 이후 20년이 지나도록 사회의 갈등을 수렴하고 국론을 원만하게 모아 가는 민주주의의 실천에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불과 얼마 전에도 여․야는 국회에서 육탄전을 벌였고 야당은 아직까지 장외투쟁을 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생전에 누구보다 확고한 의회주의자였다. 고인은 정당성 없는 권위주의 체제와 맞설 때에도 "국회가 가장 훌륭한 투쟁의 場"이라는 주장을 굽힌 적이 없었다. 김 전 대통령의 영결식장도 다른 곳이 아닌 국회였다. 국회가 기능을 잃고 권위를 잃으면 머지않아 그 禍가 나라와 사회 전체를 뒤흔든다. 여․야가 지금 당장이라도 의회주의 회복 방안을 놓고 마음 터놓고 대화하는 것이 김 전 대통령이 남긴 뜻을 진정으로 기리는 길이다.
김 전 대통령은 정치를 선․악의 대결이 아니라 현실적인 利害 조정의 과정으로 보았다. 정치가 선․악의 대결이라면 타협은 불가능하다. 지금 민주화된 우리 사회에 선․악 대결이란 존재하지도 않는데도 갈등의 양상만은 선․악 대립의 격돌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아직도 자신은 善으로, 상대는 惡으로 보는 사람들은 김 전 대통령의 지혜에 대해 깊이 생각해봤으면 한다.
김 전 대통령 서거로 우리 사회엔 화해 분위기가 조성됐다. 이 화해 분위기는 뜻밖에 만들어진 만큼 쉽게 사라질 가능성도 있다. 어렵게 열린 이 문이 닫히지 않도록 붙잡는 것은 남은 사람들의 몫이다. 우리에게 화해란 단순히 서로 안 좋은 감정을 녹이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정상화와 직결된 일이다. 지금 지역․계층․세대 간 반목으로 마비된 국가 과제들이 한둘이 아니다. 얼마든지 순리로 풀릴 수 있는 문제들이 꼬여 있다. 그 해법은 화해밖에 없다. 지역, 여․야, 노․사, 보수․진보가 화해하고 나라가 정상화되는 길을 걷게 되는 것 이상으로 김 전 대통령이 바란 것은 없을 것이다. 거듭 김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빈다.<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