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곤명과 귀주 여행을 마치고 / 안성환
누구나 중국 여행은 서너 번쯤 다녀왔을 것이다. 56개 민족과 120여 개 언어가 공존하는 나라가 바로 중국이다. 나 역시 3~4년 주기로 벌써 다섯 번째 중국 여행이다. 갈 때마다 중국은 늘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이번 여행은 조금 특별했다. 아내의 지인들 모임에 남편들이 ‘꼽사리’로 끼어 함께 떠난 여행이었다. 모두 16명, 그야말로 멋진 하모니 팀이었다. 우리는 김해공항에서 베이징을 경유해 곤명과 귀주 지역으로 향했다.
이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16명을 이끈 문재천 회장이다. 열정과 리더십이 웬만한 가이드보다 뛰어났다. 순간순간 재치 있는 유머와 순발력으로 팀 분위기를 이끌어 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하루 평균 1만5천 보에서 많게는 2만 보까지 걸었으니 거의 체력전이었다. 여행도 결국 건강해야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이번 여행은 4박 5일 일정이었다. 하지만 이 다섯 날의 시간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생각을 넓히는 여정이었다.
첫 번째로 찾은 곳은 곤명의 운남성 석림이었다. 그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단 하나였다.
“와!”
그 이상의 표현이 떠오르지 않았다. 석림은 수억 년 동안 이어진 지각 변화와 풍화 작용이 만들어 낸 자연의 장엄한 기록이다. 자연은 끝없는 인내로 시간을 쌓아 지금의 모습을 만들었고, 인간은 그 위에서 문명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무분별한 개발이 자연의 균형을 흔들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석림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었다.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할 스승이라는 사실을.
둘째 날 우리는 중국의 오성급 호텔에 묵었다. 2인 1실로 총 8개의 객실이었는데, 그중 하나가 무려 40평짜리 특실이었다. 우리는 그곳에 모여 각자 가져온 술과 안주를 펼쳐 놓고 여행 시작 세레모니를 하기로 했다.
문제는 누가 그 특실의 주인이 되느냐였다. 문재천 회장이 제안했다.
“사다리타기 어떻습니까?”
모두 환호했다. 사다리를 타며 당첨이 결정되는 순간까지 모두 숨을 죽이고 바라봤다. 결국 그날의 주인공은 동열 씨 부부였다. 당첨자도 낙첨자도 모두 환호했다. 그 열광은 마치 대형 공연장을 방불케 했다. 아마 그날 특실에서의 잠은 평생 기억에 남을 것이다. 10개월 뒤 중국산(?) 아기가 태어날지도 모르겠다.
셋째 날 우리는 귀주성 만봉림으로 향했다. 운남성에서 귀주성까지 버스로 약 3시간 거리였다. 연일 1만5천 보 이상을 걷다 보니 모두 피곤했는지 차 안은 조용했다.
도착까지 약 1시간 30분이 남았을 때 나는 가방에서 하모니카를 꺼냈다. 옆에 있던 아내가 옆구리를 찌르며 눈치를 줬다.
“다 자는데 왜 하모니카를 꺼내?”
나는 못 본 척하고 하모니카를 입에 댔다. 조용한 음률로 연속 15곡을 불었다. 신기하게도 코고는 소리마저 사라지고 차 안은 절간처럼 고요해졌다. 그날 버스 안은 ‘안성환 미니 그랜드 쇼’가 된 셈이다.
잠시 후 도착한 곳이 만봉림이었다. 이곳은 면적만 해도 서울의 세 배, 울산의 두 배쯤 되는 곳이다. 이름 그대로 수많은 봉우리들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수억 년 동안 지각이 솟아오르고 바람과 비가 깎아 만든 풍경이다. 봉우리들은 서로 경쟁하듯 솟아 있지만, 멀리서 보면 하나의 장엄한 풍경을 이룬다.
그 모습을 보며 사람 사는 세상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결국은 조화를 이루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자연은 서두르지 않고 긴 시간을 묵묵히 견디며 질서를 만들어 간다. 만봉림은 바로 그 사실을 조용히 말해 주고 있었다.
저녁에는 현지인보다 더 입맛에 맞는 식사를 했다. 디저트로 망고와 블루베리를 맛있게 먹고 호텔로 돌아왔다.
그런데 밤 11시쯤부터 배 속에서 천둥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새벽 2시부터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5분 간격으로 화장실을 들락날락해야 했다.
설사가 계속되니 나중에는 항문이 아파 휴지로 닦기도 힘들 정도였다. 그 모습이 마치 황과수 폭포처럼 쏟아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혹시 신이 나에게 황과수 폭포의 위력을 미리 체험하게 하는 건가?”
불안해진 나는 ‘AI 교수’에게 물어봤다. 망고를 먹으면 체질에 따라 설사를 할 수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지사제를 먹고 흰 죽과 따뜻한 물을 마셔 탈수를 막으라는 조언도 들었다.
다행히 일행 중 지훈 씨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캄보디아 여행 중 망고를 먹고 크게 고생한 적이 있다고 했다.
아침이 밝았고, 아내 친구 외숙 씨가 지사제를 주었다. 이어 현심 씨가 장 보호약을 또 건네줬다. 나는 그 약들을 닥치는 대로 먹었다.
잠시 후 신기하게도 속이 말끔해졌다. 정말 천만다행이었다.
이제 진짜 폭포를 보러 황과수 폭포로 향했다. 높이 77.8m, 폭 105m의 거대한 물줄기가 쉼 없이 떨어지는 장관이었다. 나이아가라 폭포보다 규모는 작을지 몰라도 중국은 자연을 관광 자원으로 만드는 능력이 대단했다.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자연을 단순히 감탄의 대상으로 두지 않고, 가치 있는 자산으로 살려내는 지혜일 것이다. 또한 폭포의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 인간도 겸손하게 세상을 이롭게 하며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특히 관광지 주변의 특산품 판매와 먹거리 상권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었다. 관광객이 머무는 시간과 소비 흐름을 정확히 읽고 있었다. 관광을 하나의 국가 전략 산업으로 보는 태도가 느껴졌다.
빈 머리로 떠났다가 돌아오는 길에는 생각이 가득해 졸음이 쏟아졌다. 눈으로 본 풍경보다 마음에 남은 질문이 더 많았다. 우리의 문화유산도 이렇게 체계적으로 가꾸고 이야기로 엮어 산업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중국은 공항이나 지하철, 공공기관 출입 시 얼굴 인식 시스템을 많이 사용한다. 찬성하는 사람들은 보안이 강화되고 범죄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반면 반대하는 사람들은 개인의 얼굴 정보까지 국가가 관리하는 것은 사생활 침해가 될 수 있다고 걱정한다.
결제 방식도 인상적이었다. 현금이나 카드보다 휴대폰 결제가 훨씬 많았다. 알리페이와 위챗페이 같은 QR 결제가 약 80~90%를 차지하고, 현금 사용은 10% 정도라고 한다. 가이드는 앞으로 현금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나는 마치 20년 후의 세상을 미리 보는 느낌이었다. 첨단 기술의 발전에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려움도 느꼈다.
AI(인공지능) 시대를 지나 AGI(범용인공지능), 그리고 인간 지능을 넘어서는 ASI(초지능) 시대까지 이야기되고 있다. 과학자들은 앞으로 5년 안에 AGI 시대가 올 수도 있다고 말한다.
만약 어느 날 AGI가 예상치 못한 문제를 일으킨다면 모든 통신이나 시스템이 마비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직 현금 사용율이 20%가 넘는 한국이 오히려 더 안정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 여행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었다. 자연과 문명, 기술과 인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했기에 더 기억에 남는 여행이었다.
2026년 3월 11일 여행을 마치고 안성환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