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방이 두 개?-
서울 가는 김에 다래한테 다녀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원룸 살림 날때도 혼자 스쿠터 타고 다니며 짐을 옮겨놓았다던데..
뭘 어찌 정리해 뒀는지 궁금해서 물어보면 나름 깨끗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대답이다.
내가 따라가서 해 주지 못한 걸 안타까워하면 욱은 옆에서 한껏 흥분한다.
" 짐은 뭐 있다고! 지가 다 알아서 하지. 밥은 뭐.. 사먹으면 되지.. "
이렇게 간단히 말해버리니 어이가 없어 더이상 대놓고 걱정하질 못했다.
뭐가 제일 먹고 싶을까?
벌써 내 보따리는 두 개나 되었다.
청소기와 드라이기를 가져오라는 특명에 그리고 어제 늦게 계란 15개를 풀어서 준비한 반찬통.(제법 무겁다)
내 가방과 짐이 두 개라..
집을 나서던 내게 바다가 걱정되는 눈길로 바라봤다.
"어머니, 분명히 가방 한 개는 잊어버리겠네요. ^*^"
운전하던 욱이 또 한 마디 거든다.
"뭐할라고 가방을 두 개나 가지고.. 가방 하나에 다 쑤셔넣지!"
"됐거덩. 그 얘긴 그만 하시지.(계란말이를 넣었다는 말은 못했다. 보나마나..ㅋㅋ)"
게다가 난, 플랫폼에서 산 2,000원짜리 카페라떼도 하나 들고 있었다.
이거이거 욱이 알면 난리 날 사건 아닌가?ㅎㅎ
안내방송은 친절히 흐른다. "승객여러분, 내리실 때는 가지고 온 물건을 잘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래. 저거 믿고 이제부터 푹 자두는거야..
내릴때는 아까의 그 커피컵이 또 성가시다.
그냥 두고 내릴까 고민하던 순간 눈에 들어온 글귀.
"쓰레기는 의자 밑에 두셨다가 내리실때 가지고 역내의 쓰레기통에 버려주시기 바랍니다"
에헤이.. 괜히 읽었다.
가방 두 개? 잃어버리긴 커녕 컵까지 알뜰히 챙겨서 서울에 잘 도착했네요..
- 다래 상봉하다.-
"다래야.. 니 먹으라고 계란말이 해왔어"
"정말요? 아. 맛있겠다."
날씨가 제법 쌀쌀했던지 이 넘은 속에 긴 가디건을 입고 또 겉에 진잠바를 걸쳤다.
음.. 멋있군.
"머리는 잘랐니?"
"아뇨. 잘라야죠"
그 사이에 다래는 내 가방을 한 개 받아들고 컵까지 쓰레기통에 버려주었다.
이제 마.. 나는 니만 믿고 따라 댕길란다.히힛.
좋다. 잡은 손이 따뜻해서 좋고 음성이 맑아서 좋고 나를 보호해줄 덩치가 되어서 좋았다.
- 원룸 들여다 보기 -
하룻밤 다래랑 그 방에서 자고 오라는 욱의 말이 아니더라도
이왕 서울에 발 디딘 김에 집에 가서 밥도 해주고 빨래도 하고 이것 저것 챙겨주고 오려니
기차표를 다음 날 오후로 예매해 뒀다.
"나,, 자고 갈란다."
" ?? 그러실래요? 제가 오늘 늦게 들어오고 내일 아침 일찍 나갈텐데.."
괜찮아. 니는 니 맘대로 해.
볼 일을 같이 마치고
거기서 바로 택시를 타고 녀석의 원룸으로 go go.
기사한테 내가 알지 못하는 이상한 장소를 이야기 해 주고는
뭣이 피곤한지 택시 안에서 쿨쿨 잠을 잔다.
뻘쭘한 나는 혼자 이리 저리 고개를 돌려 밖을 보다가 느낌으로 다 와갈 무렵에
다래를 흔들어 깨웠다. 순간 창밖 화단에 노~랗게 핀 산수유가 눈에 띄었나 보다.
"어머니, 저거 개나리지요?"
운전기사와 내가 크게 웃은 건 아무 잘못이 없다.ㅋㅋ
원룸에 들어갈때 빵과, 우유, 라면, 참치, 계란 , 쌀, 파, 아이스크림, 물 등을 샀다.
뜨아~
방문을 여는데 신발 냄새, 이불 냄새 등 각종 냄새가 코를 찌른다.
창을 있는대로 다 열어두고 정신 차려보니
방의 행태가 한 눈에 다 들어왔다.
접고 필 수 있게 된 침대는 늘상 펴져 있고
그 위에 이불이 아무렇게나 뒤엉켜있고
베란다에는 언제 빨았는지 옷가지들이 잔뜩 널려있고(그래서 불을 켜지 않으면 어둡다)
그 좁은 컴퓨터 책상 위에는 핸드로션, 로션, 립스틱, 열쇠, 잔돈, 거울, 시계, 장식양초, 씨디,
엠피쓰리, 밧데리 등이 널브러져 있다.
책상의자에는 외투, 짧은 티 두 장, 츄리링이 겹겹이 걸쳐있어 발통이 잘 굴러가지 않을 정도이며,
바닥에는 전기압력밥솥, 책가방,빨래 바구니, 세제 등으로 공간 활용(?)이 되어있고
샤워실 바닥엔 머리카락이 수세미 처럼 엉켜붙어있다.
곳곳에 머리카락은 또 왜그리 많은지..
너무 너무 좁은 원룸인데 너무 너무 많이 늘여놓았으니 청소할 것이 많겠다 싶었지만
장갑끼고 설쳐대니 워낙에 좁아서 그런지 별로 시간도 안걸린다.
머리카락은 완벽하게 소탕했다.
청소 할 동안에 녀석은 또 침대에서 잔다. '저렇게 피곤할까?'
냉장고를 열어보니 과자 한 봉, 쥬스1개, 쌀 약간, 사과 3개(이건 있는지 존재조차 모르고).
이곳에선 전기로 할 수 있는 것만 가능한 지라 전기 밥솥에 밥을 해두고
또 우리 다래가 제일 좋아하는 계란 말이를 했다.(이 정도면 며칠은 먹겠지..)
그.러.나.
이 넘이 언제 집에서 밥을 먹게 될 줄은 누구도 모른다.
첫댓글 2탄이 있는 것이여, 뭐여? 한창 재미있어지려 하는데 끝났네? 히히.
어머니의 마음이....아, 그런것이군요...
2탄 없어요.^*^
다래는 자는 모습도 순하다. 아드님 보고 오니까 좋지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