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집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법’은 당연히 지켜야 할 규범이자 도리라 배워왔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법을 가장 많이 어긴 때가 군 생활을 할 때였던 것 같습니다. 연대본부 행정을 보면서, 출장비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분명히 출장비 항목은 있었을 터인데- 홍성부터 대전까지 매월 여러 차례 오가기 위해 가짜 전령증을 만들었고, 가짜 휴가증을 만들어 꼭 필요한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사수처럼 가짜 휴가증을 돈 받고 팔지는 않았지만... 제대휴가 때는 인사장교의 영을 거역하기도 했습니다. 휴가 가기 직전, 예하 부대에서 사망사고가 났는데, 그 며칠 전 주말에 도착한 안전사고 관련 지휘서신을 월요일에야 보낸 걸 문제 삼고 바로 귀대하라는 전화를 해온 겁니다. 어차피 휴가 나온 거, 내 잘못도 아닌데 싶어, 그냥 무시하고 휴가 마지막 날 귀대했습니다. 이후 아무 탈 없었습니다. 법이나 명령이라도 무시해도 되기도 하구나 하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이 생각도 군복 벗으며 반납했습니다. 이후에는 쭉 법을 잘 지키려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위키백과에서는 법을 ‘질서를 유지하고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 정의를 실현함을 직접 목적으로 하는 국가의 강제력을 수반하는 사회적 규범 또는 관습을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국가의 강제력을 수반하는 사회 규범. 국가 및 공공 기관이 제정한 법률, 명령, 규칙, 조례 따위이다.’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 세상을 보면 ‘법’을 새로이 정의해야 할 것 같습니다. 법을 가장 잘 아는 율사들이 저지르는 불법, 편법, 탈법, 제 편 눈감아주기는 정도를 넘어도 한참 넘어선 것 같습니다. 자기 생각과 다르면 법원 판결마저도 무시해 버립니다. 율사 출신 중 지도층 위치에 서서, 혹은 정치권에 알짱대는 이들이 워낙 많아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이건 분명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저 사람은 법 없이도 살 사람이야.”가 찬사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마음이 곧고 착하여 법의 규제가 없어도 나쁜 짓을 하지 않을 사람이니 부담 없이 사귈 수 있는, 항상 가까이 둘 수 있는 편안한 이를 이름이었지요.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이런 유의 사람은 ‘법이 있어야 살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너무나 착하고 순수하기에, 다른 이들로부터 피해를 보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 법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만큼 세상이 험해졌다는 얘기도 되는 거지요. 법의 한자인 ‘法’자는 물 수(水)와 갈 거(去)의 합자입니다. 그야말로 물 흐르듯이 가야 하는 게 ‘법’인 게지요. 하지만 오늘의 한국에서는 법의 흐름이 역행하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흐려진 채 흐르고 있습니다. 법조인은 법의 정신에 따라 춘풍추상의 정신으로 자신에게 더욱 엄정해야 함에도 자신에게는 고기 그물보다 너르게, 타인에게는 모기장처럼 촘촘하게 적용합니다. 양심의 소리에는 귀를 닫아버립니다. 눈을 감아버립니다. 요즘 언론 기사의 머리글을 장식하는 율사 출신들의 모습을 보면 참 부끄럽습니다. 그들이 부끄러워해야 하는데, 그들을 지도자로 끌어올리는 데 마음을 준 저 자신이 부끄러워집니다. 빨리 법이 바로 서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문득 조선시대 암행어사가 임명될 때 받은 유척 2개가 떠오릅니다. 도량형이 통일되어 있긴 했지만 조선 중기 이후 토호와 지방 관리들이 백성을 수탈하기 위해 임의로 크기와 부피를 조절했었습니다. 현물로 세금을 거둬들였던 시대이기에, 구휼미를 나눠줄 때는 됫박 크기를 줄여서, 세금을 거둘 때는 실물보다 큰 됫박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암행어사는 필수품으로 유척을 가지고 다니며 관리들의 부정부패를 밝혀냈습니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해야 하고, 유척은 누구에게나 같은 단위여야 합니다. 요즘 정치판과 관료들을 보면, 놋쇠로 만든 자인 유척 2개 중 하나는 그대로, 하나는 늘이거나 줄여 표준형의 유척은 타인에게, 변형한 유척은 자신, 자기편에 유리하게 적용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그걸 감시하는 역할,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해야겠다 싶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의 방을 매일 닦기로 합니다. 법을 의식하지 않고, 법대로 살 수 있게... 한가지 더. 오늘 율사 출신 여야 당대표가 회담을 합니다. 기대는 전혀 않지만, 기대 이상의 성과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진심입니다.
잠시 복잡한 심사를 달래려 자연을 찾았습니다. 유가사 돌탑과 소나무가 답답한 마음을 뚫어주었습니다.
https://blog.naver.com/bornfreelee/223567737538
마음의 방을 닦습니다(모셔 온 글)========
마루를 닦습니다.
어제도 닦았지만 오늘 또 닦습니다.
어제도 구석구석 닦았고 오늘도 힘껏 닦습니다.
그러나 오늘도 어제처럼 다 닦지 못합니다.
아무리 잘 닦아도 깨끗하게 빤 걸레로
다시 닦으면 때가 묻어나고
햇빛이 들어오면 먼지들의 요란한 비행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그러는 동안 마루는 깨끗하고
정돈된 마루이고 앉아 있으면
기분 좋은 마루 입니다
마음의 방을 닦습니다.
어제도 닦았지만 오늘 또 닦습니다.
어제도 좋은 생각으로 닦았고
오늘도 겸손한 자세로 닦습니다.
그러나 오늘도 어제처럼 다 닦지 못합니다.
아무리 애써 닦아도 욕심의 때가 남아 있고
불안의 먼지가 마음 한구석에
쌓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그러는 동안 사람들은
우리를 밝고 따뜻한 사람이라 생각하고
의롭고 진실한 사람이라 부릅니다.
- 월간 <좋은 생각>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