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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부분 당선작
기분 좋은 날
이수경
4교시 체육시간에 이어달리기 하다가
옆에 뛰던 현태 발에 걸려 넘어지면서
무릎에 불등걸 철썩 붙는 것 같더니
슬며시 번져 나오던 피가 비명을 지르네
새파랗게 놀라 운동장에 털퍼덕 앉았는데
“어머, 어머, 어떡해”
여자애들이 우르르 몰려오고
배꽃 같은 선생님이 하얗게 달려오고
“수리수리 마하수리 호리호리 퐁퐁 얍
이제 마법 걸려서 하나도 안 아프다”
부반장 장효진, 내 무릎에 마법 걸고
“업혀, 어서 업혀, 양호실 얼른 가자”
맑은 향내 솔솔 나는 선생님 등 주시고
내가 좋아하는 송채원이 눈물 훔치고
영윤이 손바닥으로 부채질 해주고
다해가 물 떠와서 조심조심 먹여 주고
윤지가 헐레벌떡 약 상자 가져 오니
“야, 고것 다치고 아주 황제다 황제”
저만치서 권민호가 부러운 듯 외치는데
다치고 기분 좋아보긴 난생 처음이었다
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부분 심사평
'애송동시'영향 무려 1456편이나 응모
이준관/아동문학가
‘한국인의 애송동시’를 조선일보에서 연재한 영향을 받아서인지 응모작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무려 1456편이나 되는 많은 응모작들을 보면서 동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응모 편수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표현 기법이 세련된, 수준 높은 작품이 많았다. 응모작들을 꼼꼼히 읽고 신혜정, 정성수, 김경련, 정가람, 이상근, 이상협, 문신, 김영, 이수경의 작품을 가려냈다.
그 가운데 다시 검토를 거듭하여 다섯 사람의 작품을 골라냈다. 이상근의 ‘설거지’는 깔끔하게 완성되긴 했으나 참신성이 떨어졌다. 이상협의 ‘조율’은 메시지는 분명하지만 너무 관념적이었다. 문신의 ‘쬐끄만 게’는 중의적 표현의 묘미를 잘 살려 동심을 절묘하게 표현한 좋은 작품이었으나 너무 소품이었다. 김영의 ‘외할머니 밥상’은 외할머니의 뜨거운 사랑이 가슴 뭉클한 감동을 주었지만 함께 보내온 작품의 수준이 약했다. 이수경의 ‘기분 좋은 날’은 산문적인 면이 걸리긴 했지만 아이들의 따뜻한 마음결이 녹아 있는 건강한 동심을 재미있고 자연스럽게 그려낸 점이 좋았다.
어려울 때 서로 위로해 주는 따스한 동심을 진솔하게 표현한 동시로서 그 흐뭇한 동심이 절로 미소를 짓게 하는 가슴 훈훈한 작품이었다. 함께 보내온 다른 작품들도 재미와 동심의 여운을 주는 수준작이라서 역량에 신뢰가 갔다. 단 한 명을 뽑아야 하기 때문에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던 많은 응모자들에게 미안함과 함께 격려를 보낸다.
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부분 당선소감
"7년간 글쓰기 공부,행복했습니다"
이수경
지난 7년간 노박이로 밤을 지새우며 글쓰기를 공부했습니다. 그 사이 행복했습니다. 골목길에서 꽃눈개비 같은 아이들이 바람에 나부끼듯 놉니다. 함성소리, 웃음소리, 친구를 부르는소리가 하늘에 가득합니다. 그 속에 환하게 웃는 아이, 수줍은 아이, 슬프고 아픈 아이, 배고프고 힘든 아이, 절망하고 외로운 아이들의 마음이 있습니다. 그 아이들이 왁자그르르 나에게 몰려와 내 이야기 좀 들어달라며 재잘재잘 이야기합니다. 몇은 책상을 두들기며 서둘러 쓰라고 재촉하기도 하고, 소곤소곤 속삭이며 비밀이야기를 전해 주기도 합니다. 그랬습니다. 몸은 어른이 되어버렸지만 여전히 나의 속에는 아이가 살고 있고, 그래서 나는 아이들의 친구입니다. 나의 동시는 아이인 나의 이야기이고, 세상 모든 아이들의 이야기입니다.
시 공부를 통해 나를 여기까지 이르도록 이끌어 주신 윤희상 시인님께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엄마의 동시를 읽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던 아이와 따뜻한 응원의 눈빛을 보내주던 남편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기꺼이 손을 잡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 고맙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초콜릿을 내밀던 정훈이, 학원가는 길에 힘들다고 눈물 훔치던 주영이, 친구에게 맞았다고 화단 옆에 앉아 울던 현태, 몸이 많이 아파 수술을 앞둔 소희야, 힘내. 그리고 모든 아이들아 힘내! 너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희망이야. 용기를 잃지 마. 사랑해.
2009 강원일보 신춘문예
솜사탕
김 환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아파트 공터
할아버지가 낡은 솜사탕 기계를 돌린다
덜컹거리는 소리
골목을 흔들고
손수레 위로 둥글게 감겨드는
바람소리, 아이들 소리
쳐다보는 아이들 눈 속으로
하얗게 새떼들이 날아오른다
챠르르! 챠르르! 페달을 밟을 때마다
오색실구름이 피어나고
와! 구름을 타고 날아가는 아이들
어스름이 천천히 공터를 지우면
창문마다 둥근 불빛이 내걸리고
솜사탕처럼 부푼 아이들
하나, 둘 푸른 별이 된다
풍부한 상상력 동원 장점
우리나라의 앞서가는 신예작가들의 동시를 살펴보면 재미가 있고, 발상이 기발하고, 소재와 주제가 다양한 편이다.
다만 시의 압축, 시의 사유, 비유 면에서 부족한 점이 보이는데, 이번에 예심을 거쳐 본심에 넘어온 8명의 작품 중 4명의 작품은 이러한 염려를 많이 하지 않아도 되는 대체로 우수한 작품들이었다.
‘못’은 구어체 어미를 사용한 사물동시로 나의 아픔을 통해 다른 너의 아픔인 상처가 치료되는 따뜻한 사랑의 우수한 시이나, 독자의 이해의 어려움과 함께 보내온 작품의 수준이 좀 떨어지는 편이었다.
‘세탁기’는 신선한 발상으로 가족의 옷을 의인화하여 가족의 화합을 표현한 발견의 재미성이 돋보인다.
하지만 시의 발상이 어느 문학상에서 수상한 작품과 비슷한 면이 있고, 함께 보내온 ‘연필’은 선자들이 한참 눈길이 간 작품이다.
‘할머니의 재봉틀’은 당선작과 놓고 오랫동안 심사위원들이 고심했던 작품이다.
재봉틀이 기차가되어 추운 겨울 가족들을 따뜻한 사랑의 나라로 데려다 주며, 멈춰선 재봉틀의 꿈이 남북통일의 꿈을 염원한다고도 확대해석이 가능하다.
함께 보내온 ‘백자 달항아리’와 ‘겨울 미나리 꽝’도 우수작이었으나, 신춘문예에서는 진부한 작품보다는 신예다운 발상과 표현이 선자들의 눈길을 더 끌 수 있음을 알려드린다.
고심 끝에 ‘솜사탕’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시라는 존재의 집을 짓는데 솜사탕은 아이들의 시선을 낚아오는 좋은 미끼이며, 시인의 풍부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덜컹거리는 솜사탕 기계에서 새떼가 날아오르고, 아이들이 오색실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날고, 밤이면 솜사탕처럼 꿈이 부풀어 아이들이 푸른 별이 되는 상상과 환상의 세계로 독자를 안내하는 활기찬 작품이다.
함께 보내온 작품들도 당선작과 함께 상상력과 재미성과 꿈이 돋보인다.
당선된 이는 시에서 가장 필요한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이며,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자신의 장점을 살려 노력한다면, 우리나라 동시단의 큰 동량이 되리라 믿는다.
이창건(아동문학가·서울예일초교사) 김진광(한국아동문학회 기획심의위원·삼척여고교감)
내안의 아이를 꺼낸다
물안개 피어나는 강의 맞은편을 향해 아이는 두 팔을 벌렸다.
어린 물푸레나무 가지 같은 겨드랑이 사이로 허공이, 바람소리가 깃털처럼 돋아났다.
금세라도 날아갈 듯한 어깨 위로 산 능선이 고요하게 흘러왔다 흘러갔다.
원추리꽃이었다가, 휘파람새였다가, 새털구름이었다가.
시간의 골짜기들이 여름을 지나 가을이 되는 동안 아이는 그렇게 내 몸속에 혼몽처럼 살고 있었다.
날마다 내 안의 기슭에 찾아와 물비늘처럼 반짝이는 것을, 이파리처럼 파닥이는 것을, 별처럼 흘러가는 것을.
나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아이를 세상 밖으로 불러내 젖은 볼을 비비며 가만히 속삭여주고 싶었다.
안녕? 나야! 내 안의 아이를 꺼내 준 심사위원들께 감사드립니다.
정정한 시의 길로 이끌어 준 구림 이근식 선생님과 경주대 손진은 교수님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경주대 문창반 문우들과 언제나 열정적인 ‘시 in’ 동인 여러분들과 가족과들 함께 이 기쁨을 나누겠다.
시에 이어 동시까지 길을 열어준 강원일보사에 고맙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좋은 시로 보답하겠습니다.
△김 환(본명:김영식) △1960년 경북 포항출생 △경주대 사회교육원 문예창작과 수료 △2007년 강원일보신춘문예 시 당선 △포항해양경찰서 근무
부산일보
일기장
조윤주
일기장은
기억의 냉장고야
하루에
보고 듣고 한 일
싱싱하게 보관해 주는
그냥 내버려 두면
쉽게 상해 못 먹게 되는
음식처럼
기억도 생생할 때
보관해 두지 않으면
사라져버리게 돼
엄마가 장 봐 온
채소를 다듬듯이
하루에
일어난 일
잘 다듬어서 넣어 둬야지
심심할 때
오래된 일기장
꺼내 읽으면
냉동실에서 꺼낸
아이스크림처럼
꽁꽁
얼어있던
옛날의 기억이
살살 녹으면서
달콤한
추억
맛보게 해 줄 테니까.
당선소감 - 동심 보는 눈 더 키울게요
어릴 때 아버지는 가끔 일기장 검사를 하셨습니다.
형제들을 모아 놓고 긴 훈시가 끝날 때쯤 일기장을 가져와 봐라, 했습니다. 내용과는 상관없이 한 사람이라도 일기가 미루어져 있거나 글씨가 흐트러져 있으면 호통을 쳤습니다. 일기장 검사는 우리들의 성실성에 대한 확인이셨습니다. 일기장을 다 쓰면 잃어버리지 않도록 한 묶음으로 엮어 주셨습니다.
중학생이 되자 더 이상 일기장을 가져오라는 말씀은 안 하셨습니다. 하지만 일기를 쓰지 않으면 하루가 정리되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오래 전 일기장을 꺼내 읽으며 달콤함에 젖기도 합니다.
명장도서관 디딤돌 회원들과 달맞이고개에 있는 화랑 전시회에 갔다가 당선 소식 들었습니다. 꿈이 아닌가 함께 있던 사람들에게 확인해 보게 하였습니다. 하늘에 계신 부모님께 이 기쁜 소식 먼저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동심을 보는 눈을 키워주신 김재원 선생님께 이제야 기쁜 소식 전해드릴 수 있어 기쁩니다. 더욱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채찍과 격려 아끼지 않았던 선배님들, 친구들, 글나라 문우들, 그리고 편지가족과 디딤돌 회원님께 고마움 전합니다. 항상 가까이에서 도와주는 가족과 형제들에게 고마움과 함께 이 기쁨 나누고 싶습니다.
부족한 글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과 부산일보사에도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조윤주 / 1963년 경남 하동 출생. 안락초등학교 방과후 논술 지도. 편지가족 부산·경남 회원. 명장도서관 디딤돌 회원.
심사평 - 흔한 소재에 시적 환상 심어
한 편의 좋은 시를 읽는 것도 행복이다. 그만큼 좋은 시는 오염된 우리들 마음을 치유하고 무한한 위안과 즐거움 그리고 사랑과 평화를 느끼게 해준다. 그래서 새해가 되면 다들 새로운 좋은 시를 기다리는 것이 아닐까.
올해 동시부문 응모자는 223명으로 무려 1천45편이나 되는 많은 작품이 들어왔고, 응모 편수가 늘어난 만큼 수준 높은 작품도 많아 심사하는 즐거움도 있었다.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6편으로 김희철의 '지우개', 채영의 '할머니의 재봉틀', 김환의 '털실감기', 이현주의 '사과의 길', 조윤주의 '일기장', 최경실의 '다보탑을 만드는 엄마'이다.
'지우개'는 새로운 발상이긴 해도 지우개의 참이미지를 형상화하는 데 미흡하다는 생각이 들며, 이제는 낡아 거실 한 구석에 먼지를 쓰고 있는 '할머니의 재봉틀'은 시적 환상으로 이끌어 가려고 노력한 점은 보이지만 이미지를 좀 더 응축시키지 못한 점이 아쉽다. '털실감기'는 아름다운 전경을 시적 감성으로 그렸지만 풀고 감고 하는 단순한 이야기보다 이 겨울 털실처럼 따스한 사랑이 들어 있다면 좋은 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사과의 길'은 서술에 순서가 바뀐 느낌이 들지만 이렇게도 동시를 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시이다. '다보탑을 만드는 엄마'는 참신한 발상과 끝부분이 시를 돋보이게 하고 있다.
'일기장'은 흔하게 다루는 소재인데도 무리한 기교 없이 차분하게 동심의 세계로 이끌어 가면서 시적 환상과 아름다운 꿈을 심어주고 있으며, 함께 보낸 다른 시도 수준 이상이라 올해의 당선작으로 뽑았다.
한국일보
징검돌
배산영
처음부터 제자리를 찾은 건 아니었어
물속에서 이리 저리 흔들렸지
센 물살이 다가올 때
넘어질 것 같아
눈이 아찔했지
내 등을 밟고 간
수많은 발자국
많이 아팠지만
그렇게 흔들리면서 자리를 잡았지
이젠
거친 물살, 거친 발걸음에도
끄덕하지 않아
가만 들어봐
내 곁에서 들리는
흐르는 물소리
[당선소감] 동시와 몰래 연애 접고 이젠 진짜 사랑 꿈꿔
저녁밥상을 준비하다 맞이한 당선 소식, 그 무슨 반찬보다도 맛난 밥상을 마주한 저녁이었습니다. 어린애 같다고, 그래가지고 사회생활은 어찌하누 늘 걱정하시던 엄마 앞에서 조금은 어깨에 힘주며 웃어보인, 지난 2년여 동안 참 많이 아파하고 힘들어하던 큰아들 준이가 축하해요 엄마, 하며 조금은 뚝뚝하게 건네주는 말이 그래도 싫지 않은, 아쉬움이라면 군대간 작은 아들 준엽이가 문득 더 보고 싶어지기도 하는 저녁이었습니다.
여기까지 급히 오느라 미처 돌아보지 못하고 챙기지 못했던 모습들이 이제야 보이고,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드는, 때로는 상처주고 상처받아 마음 끙끙 앓던 시간들 이제야, 그대들이 나를 잡아준 벽과 손 잡은 못이고 징검돌이었음을 이제는, 나도 그대들의 손을 잡아주는 징검돌이 되고 싶어지는 저녁입니다. 그동안 동시를 마음에 품고 남몰래 연애하던 짓 그만두고 이제 진짜 사랑을 해보고 싶은 저녁입니다
곳곳에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는 눈빛들, 더는 놓치지 않고 낮고 천천히, 나의 주파수를 정확히 맞추고 가고 싶은, 그래서 이 다음 삶의 한 페이지를 넘기는 날 누군가의 위안이 되는 김 모락 나는 따끈한 시를 조촐히 밥상 위에 올려놓고 또다른 우주에로의 여행을 살짝 미소지으며 떠나고 싶은 그런 저녁입니다.
오늘의 맛난 밥상 차려주신 한국일보사와 심사위원님께 깊이 감사의 두 손 모읍니다.
[인터뷰] "마음의 주파수맞추면 모든것이 동시가 됩니다"
"소복이 쌓이는 첫눈처럼, 먹물이 스며드는 한지처럼, 풀꽃 같이 작지만 향이 있고 울림이 있는 것, 그것이 동시의 매력이 아닐까 해요."
안산 경일초등학교 교사 배산영(51)씨는 교단에서는 이미 문재(文才)로 이름이 알려져 있다. 1993년 수필전문지 '창작수필' 신인상을 받고 등단했고 2000년대초부터 동시를 쓰기 시작한 뒤로는 '교원신문' 교원문학상(2006), 행자부 공무원문예대전 우수상(2007) 등 연거푸 상을 받았다.
대학시절(인천교대)부터 문학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품어오긴 했지만 갓 시작한 교직생활에, 연년생인 어린 두 아들 뒤치다꺼리에 눈코뜰 새 없었던 20대 때는 글쓰기와 연을 맺지 못했다.
10년쯤 지나자 마음의 여유가 생겼고 수필로, 동시로 세상의 문을 두드렸다. "수필로 시작했지만 수필을 쓸 때는 솔직히 난감하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다"는 배씨는 "아이들의 모습을 늘 관찰하면서 아이들과 대화하는 기분으로 자연스럽게 동시를 쓰게 됐다"고 회상했다.
"'마음의 주파수'만 맞추면 모든 것이 동시가 된다"는 배씨에게는 당선작에서 볼 수 있듯 자연과의 대화, 사물과의 대화가 중요한 시적 제재다. "아이들이 그런 것들에 눈을 뜨도록 살짝 뚜껑을 열어주는 것이 동시"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고 오규원 시인의 동시집<나뭇속의 자동차>를 아끼는 동시집이라며 "이 동시집은 색이 조금 다르다. 길을 안내하면서도 아이들 각자가 느끼도록 한다"고 소개하면서 자신의 시적 지향점을 우회적으로 이야기했다.
"신춘문예 당선으로 산봉우리 하나를 넘은 기분"이라는 배씨는 지난해로 교단생활 30년이 됐다. 그는 시업(詩業)에 매진하기 위해 5년 후에는 교직을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동시 쓰기 외에도 서예, 전각, 수채화 등을 꾸준히 배우며 '조화된 교양인'을 꿈꿔왔다는 그는 아이들과 어른들이 모두 즐거워할 수 있는 동시화집을 내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어린이들 스스로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는 동시를 쓰고 싶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미덥다.
[심사평] 케케묵은 소재지만 '자리잡기' 주제 쉽게 펼쳐내
신춘문예 응모 동시 작품을 읽을 때마다 '변하지 않는 것' 두 가지를 확인하게 된다. 그 하나는 동시 쓰기를 '최대한 유치한 정서로써 아이들 세계를 노래하거나 자연에 빗대어 노래하기'로 오해하고 있는 것이며, 또 하나는 시대성을 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다.
세계 경제위기 현실을 반영한 소재로서의 '고된 아버지'가 빈번히 등장하고, 다문화 가정을 상징하는 '베트남 아줌마'와 '짝꿍네 베트남 엄마' '필리핀 엄마'가 드문드문 눈에 띄는 것이 자연스럽게 여겨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물론 작품의 완성도에 있을 것이다.
어떤 소재를 택하든간에 그것이 작품의 주제를 펼쳐내는 데 적절한 비유 또는 바탕 재료로 활용되지 못하고 겉돌 때, 완성도에 이바지하지 못할 때, 우리는 하필 왜 이 소재를 택했는가 라고 묻게 된다.
두 심사위원이 약간의 망설임 끝에 당선작으로 낙점하는 데 동의한 '징검돌'(배산영)은 오히려 케케묵은 소재를 다루고 있다.
돌 하나가 여울 바닥에 탄탄히 자리를 잡아 어떤 거친 물살에도 휩쓸려 내려가지 않고 제 역할을 하게 되기까지의 인내와 노력은 징검돌이 되고 나서의 자신감에 찬 독백을 통해, '삶의 거친 물살을 견디고 버텨낸' 자가 온몸으로 체득한 진정성을 공유하는 감동에 이르게 된다.
압축과 상징을 구사하되 조금도 어렵지 않게 '자리 잡기'라는 주제를 구현한 시인의 노련한 솜씨는, 그러나 함께 투고한 두어 작품의 상투적이고 허전한 마무리 때문에 잠시 흔쾌한 결정을 주저하게 했음을 밝혀둔다.
시를 써본 사람은 시의 마지막 연이나 행에 이르러 긴장의 끈을 놓으면서 자기도 모르게 상투적인 감상으로 바삐 매듭지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 바람에 시 전체의 진정성마저 무너지는 난국에 처한 경험 또한 있을 것이다.
'문창호지 바르는 날' 외 8편을 낸 천선옥의 경우, 모든 시편에서 이러한 실패를 거듭하고 있어 다정하게 그려낸 갖가지 심상을 밀어내야 했다. '저녁' 외 2편을 낸 박용학의 시들은 흡사 선시(禪詩)처럼, 최소의 언어로 최대의 의미를 구현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특히 '낮은 곳에/ 피었다// 발목 근처에/ 피었다// 눈여겨보는 곳에/ 피었다'('제비꽃' 전문)는 뭇 시인과 가수들이 즐겨 노래하는 제비꽃을 다시 한 번 새로이 현현케 하는 성과를 낳았다. 그러나 짧은 시는 으레 생산력을 의심받는 법, 모쪼록 충분한 양을 투고하여 시인의 샘이 가없이 무궁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바란다.
권기호의 '연장'과 '할머니 무릎의자' 또한 순정한 마음이 길어낸 사물과 풍경을 좀 더 가치있게 조형화하지 못한 아쉬움이 큰 작품이었다. 그밖에도 '된장 담그기' 외 4편을 낸 이현주의 '느린 세탁소' '마중'이 눈길을 끌었다.
●심사위원김용택(시인) 이상희(시인ㆍ그림책작가)
2009 신춘문예 대구매일
털실감기
김영식
나는 실을 풀고
할머닌 실을 감고
호롱불빛이 감기고
부엉이소리가 감기고
사과처럼 둥글어지는 실타래
나는 지겨워져 빨리 풀고
할머닌 엉킨다며 천천히 감고
슬슬 하품이 감기고
펄펄 함박눈이 감기고
어느새 호박처럼 커진 실타래
할머닌 뽀송뽀송 나를 감고
나는 도란도란 할머닐 풀고
◇ 당선소감
골목을 걷고 있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툭! 쳤다. 돌아보니 바람이 살짝 덧니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흰 손을 잡고 교차로가 훤히 내다보이는 커피숍에 마주앉았다. 오후는 강물처럼 흘러가고 사람들은 거리를 부유하고 있었다. 삶은 이처럼 타인의 얼굴을 하고 예기치 못했던 순간에 불현듯 나를 찾아오는 것이었다.
‘아! 우린 왜 이제야 만나게 되었을까요?’
그녀의 목덜미 위로 커피향이 안개꽃처럼 피어나고 있었다. 저 아찔한 바람의 머리에 새털구름 한 조각을 올려놓을까? 아니면 구절초 한 송이를? 망설이는데 타닥타닥 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첫눈이었다.
갈색의 찻잔 속으로 눈송이들이 배추흰나비처럼 내려앉고 있었다. 나는 카푸치노 같은 눈을 저어 맞은 편 바람에게 건넸다. 그녀의 쇄골이 잠시 흔들린 건 아마도 삐걱거리는 낡은 탁자 때문이었으리라. 웃을 때 드러나는 바람의 덧니 사이에 움막을 짓고 이 겨울은 좀 더 외롭고 높고 쓸쓸해져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시의 길로 이끌어주신 구림 이근식 선생님과 경주대학교 손진은 교수님에게 다시 한 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 기쁨을 경주대학교 사회교육원 문예창작반 문우들, 열정이 넘쳐나는 <시 in> 동인들, 통영의 한률 형,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과 힘이 들 때 기꺼이 곁이 되어준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김영식 ▷ 필명·김환 ▷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 1960년 경북포항 출생 ▷ 2007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 포항 해양경찰서 근무
심사평
동시의 바탕은 동심이다. 사물을 동심의 눈높이에서 조응할 때 때로는 놀람으로, 때로는 기쁨으로 새롭게 다가온다. 이 동심이 인간의 원초적 마음이며 동시에서 담아내야할 심상(心象)이기도 하다.
응모된 작품을 정독한 후 최종적으로 남은 작품은 박서진씨의 ‘가다 서다’ 외, 박월선씨의 ‘돌탑’외, 김환씨의 ‘털실감기’ 외였다.
먼저 박서진씨의 ‘가다 서다’는 참신하고 개성적인 표현은 결여되나 자연스런 심상의 전개로 동시의 특질을 잘 살렸으며, 특히 생명사랑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함께 보내온 다른 작품의 수준이 고르지 못한 것이 흠이었다.
박월선씨의 ‘돌탑’은 간절한 소원과 기도로 돌탑이 쌓여 올라간다는 시적 발상은 새롭지 않으나, 전체적으로 정제된 심상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끝 연의 안이한 처리가 시의 완성도를 떨어뜨렸다.
끝으로 남은 김환씨의 작품 중 ‘솜사탕’ 과 ‘털실감기’는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솜사탕’은 할아버지의 낡은 솜사탕 기계에서 피어나고 감겨드는 솜사탕을 통해 발현되는 동심을 환상적 시각으로 정감 있게 형상화하였다.
김환 씨의 다른 작품 ‘털실감기’는 참신한 표현과 정선된 시어, 정감 있는 운율로 형상화한 점이 돋보였다. 소재는 예스럽지만 우리가 간직해야 할 귀중한 삶의 한 정서를 동시로 되살려놓았다.
‘솜사탕’ 과 ‘털실감기’는 어느 작품을 당선작으로 결정하여도 큰 흠은 없었다. 그러나 ‘털실감기’를 최종 당선작으로 결정한 이유는 ‘솜사탕’보다 ‘털실감기’의 눈높이가 동심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털실감기’ 에는 동심이 생동감 있게 살아있다는 것이다.
당선을 축하하며 정진을 빈다. 하청호
대전일보신춘문예
경운기 소리
윤보영
경운기에 시동을 걸었다.
달달달달
오르막 길을 올라가고 있다.
탕탕탕탕
얕은 개울물을 건너고 있다.
통통통통
자갈밭길을 지나가고 있다.
탈탈탈탈
골짜기 밭에 도착한 경운기가
올라 온 길을 되새김질을 하고 있다.
덜덜덜덜덜
신춘문예 시 당선작 심사평…˝메시지 분명하고 시적 논리 합당˝
예심을 거쳐 선자들에게 넘어온 스무 분의 30여 편의 시들 중 선자들에게 마지막까지 남아 당선을 겨룬 작품은 다음 세 편이었다.
그것을 ‘시로써’ 터트릴 줄 아는 기량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선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으며, 괜스리 어렵거나 추상적이거나 한 표현 한 구절 없이 자기 소리를 하나의 작품 안에 오롯이 담아낼 줄 아는 그 시적 절제 또한 믿음직스러웠다. 한마디로 싱싱하고 단정하며 마지막 연에서 보듯 장난기 어린 웃음이 배시시 행간 밖으로 삐어져나올 듯한 작품이다. 선자들은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밀면서 그의 감각이, 그의 언어가 사념과 철학을 동반하며서, 오늘의 유행에 주눅들지 않으면서 더욱 깊은 세계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오세영, 이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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