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들아!,
성서조선 第 46 號 (1932年 11月)
‘세상에 제일 더러운 것은 타락한 신자요, 가장 아름다운 것은 회개한 죄인이니라’ 고 마호메트는 말했다 한다. 과연 탁월한 안목이다. 그러나 나에게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것을 들라면 신도 사이의 ‘종파심’ 이라고 하겠다.
구교도가 신교도에 대한 것과, 제7일 안식교도가 복음주의 신도에 대하여 하는 수작의 추악함은 예로 들 필요도 없다. 게다가 다 같은 복음주의인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등등이 서로 공격과 수비의 전략에 몰두하는 것은 무슨 심사인가.
하물며 기성교회의 핍박을 받고 헤매는 자들까지도 ‘종파심’의 그늘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고 한다. 아무리 좋게 보아도 ‘종교’ 그 자체를 집어 던지고 싶고, 인간 세상까지도 저주하게 만든다.
이럴 때마다 우리의 영(靈)은 대륙을 떠나 섬으로 향한다. 아름다운 문화, 편리한 교통, 교회당의 높은 탑은 다 ‘세상을 다니면서 교도를 모집하여 지옥의 자식’으로 만드는 자들에게 맡기라. 그리고 목사와 유명한 사람의 발자국이 미치지 못한 외딴 섬에서 순수한 사랑과 진리대로의 진리를 양심의 귀에 속살거리고 싶다.
전라남도 완도군 노화도에는 교회는 물론 없고 오직 한글 성경을 읽는 한 가정이 있을 뿐이라 한다.
옛날 우리의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타고 바다의 깊이를 재면서 전략을 짜던 전라도, 경상도의 다도해에서 이 섬에서 저 섬으로 영원의 경륜과 평화의 복음을 전하는 행복은 얼마나 클까.
적어도 거기에는 종파심의 쟁탈전에 부대끼지 않은 천연스러운 영혼을 볼 수 있을 터이다. 아름답도다 동해, 남해, 황해의 섬들이여.
섬이란 바다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간도(間島)는 대륙이로되 ‘島’자가 붙었다. 또한 거기에서 세상 잡다한 사상들과 외로이 싸우며 복음을 전하는 형제는 나에게 항상 섬사람으로만 기억된다.
40만 대도시의 종로 한 가운데에서 ‘사람 기근’을 느껴 함께 이야기할 사람을 구하는 이도 섬사람이다. 가난한 것이 섬이다. 병환이 또한 섬이다.
섬을 사모하여 이에 이르니 생각이 자연히 십자가의 그리스도에게 돌아간다. 세인트헬라나 섬의 나폴레옹에게는 그래도 몇 명의 따르는 자가 있었다. 로빈슨 크루소에게는 정을 통할 새와 꽃이 있었다.
그러나 골고다의 예수는 완전한 의미의 섬사람이었다.
섬에서 섬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그리스도께 돌아와 이야기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