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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남명렬 추종자들의 모임 원문보기 글쓴이: 남명렬
배우 남명렬을 위한 모놀로그
스포트라이트의 영광조차 좋은 무대를 위해 양보할 줄 아는 겸손한 배우 남명렬. 한국 연극계의 화제작<에쿠우스>의 다이사트로 분한 이 인간적인 배우에 대한 가장 인간적인 리뷰를 위해 특별한 손님을 초대했다.
Prologue "빛나는 역할을 하진 않지만 빛나는 연극에는 항상 그가 있었다" 남명렬이 2002년 영희연극상을 수상했을 때 한 평론가가 밝힌 선정 이유의 일부다. 그렇다. 배우가 아니면 지금 무얼 하고 있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 사람. 자신이 빛나고자 애쓰는 대신 빛나는 무대를 위해 노력해온 배우가 남명렬이다. 그런 그가 지난 9월 9일부터 시작된 실험극장 창단 45주년 기념작 <에쿠우스>에서 다이사트 역을 맡았다. <에쿠우스>가 무었이던가. 1975년 국내 초연된 이래 쟁쟁한 출연진의 호연과 뜨거운 관객의 호응 속에서 12번이나 재공연 되었던 한국 연극의 대표 레퍼토리 아닌가. 김동훈, 정동환, 신구, 김흥기, 이호재 등 역대 다이사트들의 뒤를 이어 남명렬이 보여줄 2005년의 다이사트는 어떤 모습일까. 관념적인 언어로 나열된 평론가들의 장황설보다 이 인간적인 배우를 깊이 이해하는 사람의 입을 통한 인간적인 리뷰가 듣고 싶었다. 어제의 남명렬을 기억하는 사람의 오늘의 남명렬에 대한 진실한 감흥이 궁금했다. 여기까지가 가나항공산업주식회사 대표 황선건이 근 20년 만에 소극장을 찾게 된 전말이며 그의 목소리로 이어질 다음 모놀로그의 서막이다.
Monologue "선배님, 화요일에 시간 있으십니까?" 후배 남명렬의 전화. 행여 시간이 없다 한들 명렬이의 초대를 거절할까. 충남대학교 연극 동아리 '시나브로'에서 77학번, 78학번 선후배 사이로 명렬이를 처음 만났다. 진지한 성격이 닮아서인지 명렬이는 동아리 내에서 나와 대화가 통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당시 학생운동을 했던 나는 두 차례 수감 생활을 했고 제적과 복학을 반복하느라 명렬이와 함께한 시간은 그리 많진 않다. 그러나 오래 알고도 형식적으로만 가까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몇 번 겪지 않아도 동질의 느낌이 통하는 사람이 있는데,나에게는 명렬이가 바로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일동제약에 다니고 있던 명렬이를 만나 적이 있었다. 오랜만에 이뤄진 만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마치 어제 헤어진 양 이야기꽃을 피웠는데, 둘 다 직장에 다니면서도 마음속에 채워지지 않는 공허감에 대해 토로했다. 그날 이후 다시 약 15년간 연락이 끊어 졌다가 '다음'에 동아리 졸업생들의 카페가 있다는 말을 듣고 그곳에 연락처를 남겼더니 역시 명렬이에게서 가장 먼저 연락이 왔다. 그게 불과 1년전 일이다. 15년 전 나보다 눈 속의 고뇌가 더 깊어 보였던 명렬이는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인 연극인의 길을 걸어온 끝에 프로가 되어 있었다. 남들은 기반을 다져가는 서른 중반에 말 그대로 '몸' 하나로 새로운 길에 도전했던 그가 겪었을 마음 고생과 경제적 고생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나 역시 중소기업을 이끄는 당당한 기업인으로 남들이 '성공'이라 부르는 지위에 올랐지만 올곧이 마음이 향하는 한길을 지켜온 명렬이의 성공이 더 값지게 느껴진다. 9월 12일 저녁, 약속대로 <에쿠우스>를 보기위해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으로 향했다. 올 봄에도 명렬이가 출연한 <아가멤논>을 보러 예술의 전당에 간 적이 있으나, 이처럼 소극장에서 공연을 관람하는 것은 근 20년 만의 일이다. 화요일, 게다가 비까지 내리고 있어서 관객이 얼마나 될까 은근히 걱정을 했는데, 금새 3분의2가 채워졌다. 어제까지는 만석을 이루었다는 얘기를 듣고 이번 공연이 꽤 좋은 반응을 얻고 있구나 생각했다. 불이 꺼지고 다이사트 역을 맡은 명렬이의 내레이션으로 연극이 시작됐다. 아, 저 눈빛! 대학 시절의 진지함이 그대로 담긴 주름잡힌 눈매와 그간 걸어온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원숙한 연기! 대학시절 아마추어였던 명렬이를 기억하고 있는 내게 어느새 중견에 속하는 연극배우 남명렬과의 조우는 타임머신처럼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 여행하게 했다. 다닥다닥 붙은 좁은 좌석은 조금 불편했지만 배우의 생생한 얼굴 표정과 숨결을 이처럼 가까이 느낄 수 있는 것이 소극장의 묘미임을 알았다. <에쿠우스>의 줄거리는 이렇다. 알런이란 이름의 한 소년이 마구간 말들의 눈을 꼬챙이로 찌른 사건이 발생한다. 상담을 맡은 정신과 의사 다이사트는 알런이 광적인 기독교 신자 어머니와 무신론자인 엄격한 아버지 아래서 세상과 단절된 채 고독하게 자라왔음을 알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 대신 벽에 걸어둔 말의 그림을 보면서 소년은 말을 일종의 초월자로 승화, 밤마다 남몰래 말을 끌고 나가 들판을 달리며 모든 강박관념에서 벗어난 황홀감을 느낀다. 그리하여 마구간에서 가진 조숙한 소녀 질과의 정사는 말에 대한 배반이자 무서운 죄로 인식되고, 결국 말의 눈을 찌르는 광기 어린 행동으로 이어진 것이다. <에쿠우스>가 초연된 1975년, 전례 없는 장기공연을 이끌어낸 관객들의 폭발적인 반응은 그 당시 우리 사회의 암울한 시대상황과도 관계있다. 유신헌법에 대한 비방만으로도 현행범으로 끌려가던 사회 문화적인 암흑기. 억압된 감정의 분출구를 찾던 이들에게 말과 함께 날뛰고 포효하는 알런의 모습은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했으리라. 비록 이전에 <에쿠우스>를 본 적은 없으나 강태기, 최민식, 최재성, 조재현등 알런 역을 맡은 젊은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펼쳐 보인 에너지 넘치는 연기가 얼마나 많은 이의 가슴에 시원한 해방감을 선사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오늘의 <에쿠우스> 주인공은 알런이 아닌 다이사트다. 실제로 1시간 50분의 공연 시간 동안 다이사트를 연기하는 명렬이는 한순간도 무대를 비우지 않는다. 그의 독백으로 극은 시작되고 극이 끝난다. 영국의 희곡 작가 피터 셰퍼가 쓴 <에쿠우스>의 원작은 산업화와 자본주의가 극치에 이르고 인간 소외 현상이 문제시되기 시작한 당시 서양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물질적으로는 풍부하나 정신적으로는 빈곤한 사회의 불균형이 드러나기 시작한 시기. 그래서 다이사트는 알런을 치료하며 자신의 일에 대해 고뇌하고 회의한다. 권태와 무력감에 빠져 있는 자신에게 과연 알런이 창조한 광기와 열정의 셰계를 심판할 권리가 있는지에 대해서. 오늘날의 우리 사회는 30년 전 피터 셰퍼가 읽어낸 각박한 영국 사회의 모습을 닮아 있다. 연극의 초점이 알런에서 다이사트로 옮겨간 것은 이러한 시대의 변화를 정확히 읽어낸 바른 해석으로 생각된다. 극 속에서 다이사트는 아내와의 애정 없는 결혼 생활에 대해 한탄한다. 판사이자 친구인 헤스터와 우정이란 이름으로 어느 정도 교감을 나누고 있으나 이것 역시 완전한 소통은 아니다. 겉보기에는 안정된 직업과 가정을 이룬 듯하나, 사실 그는 알런보다 더 외로운 인간이다. 명렬이는 바로 이 점을 섬세하고 리얼하게 표현해냄으로써 새로운 다이사트를 선보였다. 실제로 주위에서 소위 '성공한' 사람들을 직접 만나보면 그들 마음 한구석에 큰 허전함이 있는 걸 알수 있다. 이는 쉴 틈 없이 돌아가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다. 나 역시 가끔 그런 공허함을 느낀다. 사업을 하는 지난 10년 동안 휴가다운 휴가를 가본 적이 없다. 젊은이들 보다도 40대 남성들이 이 연극을 본다면 다이사트의 독백을 들으며 "그래, 맞아!" 하고 깊이 공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좋은 연극 한 편은 이처럼 많은 생각을 낳는다. 인간과 깊이있는 교감을 이룬다는 게 바로 연극의 강점이다. 연극은 영화와 드라마의 기초 예술 분야로서 장기적이고 적극적인 지원 아래 더욱 부흥되어야 한다. LG아트센터나 예술의전당에 오르는 값비싼 공연물은 매진을 기록하면서 소극장은 적자에 시달리는 구조는 문제가 있다. 나 또한 바쁜 일상에 쫓겨 그동안 공연장을 멀리했었다. 이제 좀 더 책임감 있는 자세로 마음의 풍요를 위한 투자에 힘써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마지막으로 이 시대의 고뇌하는 다이사트를 훌륭히 연기해낸 배우 남명렬, 일관성 있는 삶의 자세를 지닌 존경하는 나의 후배에게 기립 박수를.
Epilogue 공연이 끝나고 반갑게 악수를 나눈 황선건 사장과 남명렬은 근처 커피숍으로 향했다. 커피를 두 잔씩 리필해 마시는 동안 두 사람의 인연과 서로의 근황, <에쿠우스>에 대한 여러가지 감흥, 한국 문화 예술계의 현실과 문제 등에 진지한 대화가 이어졌다. 대학시절 머리를 맞대고 미래에 대해 논했을 두 사람의 모습이 그려지는 듯했다. 청춘의 한복판에서 가진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한 사람은 기업인, 한 사람은 연극인의 길을 걸어왔으나 그 둘은 묘하게 닮아 있었다. 극 속에서 다이사트는 끝내 사회의 위선을 거부하지 못하고 자기 연민 속에서 흐느꼈으나, 타협하지 않는 순수함을 간작한 두 사람은 다른 해답을 찾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Editor Kim Areum Photographer LeeMyungHun]
코리아 테틀러-KOREA TATLER 2005.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