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교수님. 저는 선생님의 로만 형법, 형사법 암기장 그리고 최신판례를 가지고 쭉 공부한 학생입니다. 선생님 암기장은 특히 꼼꼼히 사례예시랑 학/판/검이 포함되어 있어 공부하는 동안 형사법이 참 재미있었는데요.
이번에 제9회 변호사시험 기출문제에 아래와 같은 사례가 나왔던데,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논의가 있어 선생님의 고견을 구하고자 질의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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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관계
(1) 甲은 “C만 나대지 않았어도 일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라고 울분을 토로한 후 乙과 丙에게 “학교 앞에서 귀금속 판매점을 운영하고 있는 C를 찾아가 며칠간 입원해야 할 정도로 혼내주었으면 좋겠다.”라고 부탁하였다. 사실 乙은 C와 원한관계에 있었고 건장한 C가 남들이 모르는 특이한 심장병을 앓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기회에 C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위 부탁을 받아들였고,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는 丙도 수락하였다.
(2) 甲은 범행 당일 아침 乙에게 전화를 걸어 “어제는 술김에 화가 나서 그런 말을 한 것이니까 C에 대한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해라.”라고 말하였지만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판단한 乙은 甲에게 거절의사를 분명히 하였다. 당일 오후경 乙은 귀금속 판매점 밖에서 망을 보고 丙은 안으로 들어가서 C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는 순간 심장이 약한 C가 느닷없이 쓰러졌다. 예상하지 못한 일에 당황한 丙은 C가 사망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3) 밖으로 뛰어나온 丙이 乙에게 “큰일났다, 도망가자.”라고 말하면서 급히 현장을 떠나자, 확인을 위해 판매점 안으로 들어간 乙이 기절하여 축 늘어져 있는 C를 보고 사망한 것으로 오인하여 사체은닉의 목적으로 C를 인근야산에 매장하였다. 그런데 C는 부검결과, 매장으로 인한 질식사로 판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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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문제가 되는 부분은 내심으로는 살인의 고의가 있었으나 상해에 대해 교사를 승낙하였고, 망을 본 <을>의 죄책입니다. (시체손괴 불능미수는 논외)
이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수험생들의 견해가 대립합니다.
1. 개괄적 고의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
=> 결론: 개괄적 고의에 의한 살인기수이다.
(논거:
1) 을에게는 내심의 의사가 살인이였으므로, 공범들과 공모한 범위는 상해라고 하더라도 망을 본 행위를 살인의 고의에 기한 제1실행행위로 평가할 수 있다.
2) 따라서, 주먹을 휘두른 공범 병을 이용한 것은 살인 고의의 제1실행행위로 봐야하므로, 나중에 야산에 묻은 행위에는 이미 죽었다고 생각한 것이더라도 그것까지 개괄적 고의에 의한 살인으로 봐야 한다.
3) 아니면 왜 설문에서 내심에 살인의 고의가 있다고 명시적으로 언급했겠느냐? 그리고 이 사실관계는 유사한 판례(낙산비치호텔사건)에도 있다. 별로 어려운 문제도 아니다.)
2. 개괄적 과실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
=> 결론: 개괄적 과실에 의한 상해치사이다.
(논거:
1) 판례에서 개괄적 고의 리딩케이스는 "살인의 고의를 가진 본인이 직접 살인을 유발할 수 있을 정도의 상해를 가하고 피해자가 기절하는 등 행위태양이 주된 부분이였으며, 제2의 행위로 그 결과가 사망이라는 결과가 전형적으로 실현된 경우"에 성립한다. 반면 개괄적 과실의 리딩케이스는 "상해의 고의로 제1행위(상해)를 하였으나, 죽은 것으로 오인하고 제2행위를 하여 과실로서 사망을 야기하였을 때 결과적 가중범에 대한 논의"이다.
2) 개괄적 고의로 볼 수 없는 점은 다음과 같다. 교사 승낙 및 병과의 공모 범위 내에서, 즉 상해의 고의로 을이 망을 본 행위는 '살인에 관해선 주된 행위태양으로도 볼 수 없고', 막상 주된 태양을 실현한 주먹휘두른 공범인 병에게는 상해의 고의만 있었다. 결정적으로,' 살인의 실행의 착수'는 기본적으로 "낫을 들고 다가가는 등(판례)" 살인에 대해 현실적 위험성을 개시하는 행위가 있음을 전제로 하는데, 과연 을이 상해 공모 범위 내에서 망을 보는 주변적인 행위를 분담한 것을 마치 초과된 고의인 살인에 관한 현실적 위험성 있는 실행의 착수라고 보는 것은 무리한 해석이다.
3) 실제로 '공범관계는 의사 합치 내에서만 성립'하는데 상해 고의가 있는 병에게는 상해치사의 공동정범을 인정하고, 을은 단지 공범관계 내에서 망을 보는 주변적 역할을 분담했음에도 '병을 이용한 실행의 착수'(?)가 있다고 따로 보아 을에게 살인의 단독정범을 인정하는 것도 이상하다. (을에게는 살인죄의 정범, 병에게는 혼자 상해치사의 공동정범?이라는 아이러니한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
4) 반면, 을 본인이 직접 주먹을 휘두른 주된 행위를 분담했으면 개괄적 고의의 논의가 가능할지는 모르겠다(실제로, '신흥사 사건'(84도1544에서는 수인이 가벼운 상해 또는 폭행 실행 중 그 1인이 살인의 고의로 피해자를 칼로 찔러 초과한 경우[이 경우, 공범 1인은 살인 범의로 주된 행위태양을 통해 살인의 실행의 착수를 한 것으로 볼 수 있음] 살인죄의 죄책을 부담하고 나머지 공범에 대해서는 예견가능성이 있다고 보아 폭행치사나 상해치사로 규율하고 있음).
5) 그러나 본건의 경우, 을이 갑의 상해 교사를 승낙할 때에는 상해의 고의 및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병존하는 점, 공동정범의 본질은 일부실행/(공모 범위에서)전부"책임"에 불과한 점 등에 비추어, 병이 주먹을 날린 상해행위도 공동정범의 죄책 내인 상해로만 평가가 가능하므로, 을에게 살인의 실행의 착수로는 평가될 수는 없겠다. 따라서 을에게도 결과적 가중범을 전제로 하는 상해치사로 결론을 내림이 타당하다)
과연 형법총론의 논리에 비추어 어느쪽이 타당한 견해일지 궁금합니다. 개괄적 고의로 보는 사람들은 개괄적 고의 리딩판례인 <낙산비치호텔>에서 시체를 묻은 사실관계가 있으므로 그대로 똑같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반면, 개괄적 과실로 보는 사람들은 위 리딩판례의 사실관계는 '가해자가 단독으로 우측 심장벽좌상과 심낭내출혈 등의 상해를 가한 것으로서 공범의 개입은 일절 없었으므로 사실관계의 변동 속에서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