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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이라는 명칭에는 ‘슬픔이 담긴’, ‘다루기 어려운’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아프가니스탄은 지난 수천 년 동안 고난과 아픔의 땅이었다. 하지만 그 땅에 축복의 문이 서서히 열리고 있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과 하늘 높이 치솟은 영봉들은 아프간의 신비스런 자연유산을 말한다. 세세의 기운을 간직한 역사적 고도에서는 이 나라의 자랑스런 문화유산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찬란한 중앙아시아의 문화를 꽃 피웠던 아프간 민족에게는 오랫동안 이어져온 실크로드 대상들의 강인한 기백이 느껴졌다.
나는 9.11사태 이후 변화된 아프가니스탄의 모습을 카메라 앵글에 담고자 국내 S병원에서 결성된 아프가니스탄 의료팀에 도우미 자격으로 지난 5월 의료봉사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외과의사 1명, 내과의사 2명, 그리고 약사 2명과 간호사들로 구성된 우리 팀의 인원은 모두 12명. 한국서 아프가니스탄까지 직항편이 없어서 일행은 인도 델리 공항에 도착하여 공항내의 시원한 콘크리트 바닥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아프가니스탄 항공사인 아리아나 항공편으로 아프간의 수도 카불(Kabul)로 향했다.
아시아의 알프스 가능성 높아
카불 공항에 도착하여 공항청사에서 입국 수속을 하는 데 꽤 긴 시간이 걸렸다. 공항을 나오자 조금도 지체할 틈 없이 점심도 거른 채 미니버스를 타고 마자리샤리프(Mazari-Sharif)로 향했다. 마자리샤리프는 아프간 북쪽에 위치한 도시로서, 우리는 그곳을 거점으로 인근의 작은 마을에서 의료봉사를 할 예정이다.
그렇게 서둘러 카불을 떠나 마자리샤리프로 향한 이유는 날이 어두워지면 도중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카불에서 마자리샤리프로 가는 동안 힌두쿠시의 설산을 넘기도 했는데, 살랑 패스(Salang Pass)라고 불리는 고갯길은 해발 3,363m로, 마치 중앙아시아에서 알프스산맥을 넘는 듯했다.
아프가니스탄은 전체적으로 해발 1,000m를 넘는 고원에 위치한다. 파미르 고원에서 서쪽으로 뻗은 힌두쿠시 산맥이 중앙부를 차지하여 국토를 남북으로 크게 나누고 있다. 많은 산맥들이 국토를 여러 지역으로 갈라놓고 있으며, 강과 계곡이 많아 계절에 따라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사시사철 뽐낸다.
아프가니스탄의 북쪽은 아무다리야 강 유역의 바다흐샨과 아프간 투르키스탄 지방(고대의 박트리아)이고, 서쪽은 하리 강 유역의 헤라트 지방(고대의 아리아), 남쪽은 헬만드 강 유역의 칸다하르 지방(고대의 아라코시아), 동쪽은 인더스강으로 흘러드는 카불 강 유역 지역이다.
아프가니스탄의 자연경관은 실로 아름다워 정세가 안정되면 많은 외국 여행자들이 관심을 갖고 찾아올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와 바램은 현재로선 까마득해 보인다. 이 나라의 열악한 재정으로 인해 관광산업의 인프라는 거의 구축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오랜 전쟁으로 인한 자연파괴도 심각하다. 곳곳에 묻혀있는 지뢰들은 여행자들의 발길을 자유롭지 못하게 한다. 앞으로 이러한 모든 문제들만 해결된다면 아프가니스탄은 중앙아시아의 스위스로 발돋음할 수 있을 것이다.
찬란한 폐허 위에 세워진 마자리샤리프
마자리샤리프가 중심이 된 아프간 북부지역은 탈레반 정권 시대에도 탈레반에 반기를 든 북부동맹군이 지배했던 지역이다. 아프간 북부 지역은 이 나라에서 가장 피흘림이 적은 땅이라고 한다. 그 말을 대변해주듯 마자리샤리프에 가까이 다가설수록 초목들이 무성해지고 하늘빛이 눈부실 정도로 파랬다. 메마르고 삭막한 카불 주변의 생명력 없는 땅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예정시간보다 2시간이나 늦은 9시간만에 우리는 마자리샤리프의 한국NGO 사무실에 도착했다. 다음날 아침 우리 일행은 시내에 위치한 발크대학교를 방문하였다. 발크대학교는 작은 캠퍼스 안에 초라한 건물을 지닌 학교였지만, 학생들의 진지한 수업 모습과 선생님들의 가르치는 열의를 엿볼 수 있었다.
이곳을 방문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여대생들의 의상이었다. 아프간의 일반 여성들은 외출할 때에는 초다리라고 불리는 두꺼운 천으로 만든 의상을 입고 머리와 몸 전체를 두르고 다닌다. 그런데, 이 대학 건물 안에서는 초다리를 벗은 여대생들의 화려한 의상과 멋진 구두를 신은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화려한 치장보다 더욱 놀라왔던 것은 여학생들의 뛰어난 미모였다. 이곳에 탈레반이 존재했더라면 그러한 미모를 공공연히 남 앞에서 드러내놓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오후에는 50℃에 가까운 무더위 속에 마자리샤리프 인근의 발크성 유적지를 둘러보았다. 발크(Balkh)라는 고대도시는 고대 박트리아 왕국의 수도였던 곳이다. 페르시아 문화가 꽃피며 비단길의 요충지로 크게 번성하였던 이 도시에는 비단길을 통하여 무역뿐 아니라 문화, 종교, 정치적 목적들이 오고 갔다고 한다.
또한 발크는 불을 숭상하는 조로아스터교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당시 서방에 명성이 알려질 정도로 번성했던 지난날의 흔적들은 오늘날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성벽의 일부가 남아있었지만, 그 중심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죽음의 에스겔 골짜기를 연상시킬 정도로 황량한 땅이었다. 한 때 이슬람교도가 들어와 이슬람 문화의 중심지로 발전시켰으나 1220년 칭기즈칸이 침입하여 모든 사람들을 살육하고 이 땅의 모든 건물들을 파괴하였다고 한다. 마르코폴로는 그 후 55년이 지난 1275년 이 땅을 밟았지만, 그가 발견한 것은 화려한 명성 아래 폐허로 남은 잿더미뿐이었을 것이다.
오후 늦게 마자리샤리프로 돌아온 우리는 중앙아시아 이슬람 건축물의 백미라 불리는 알리 사원(Tomb of Ali)을 방문하였다. ‘블루 모스크’라 불리는 이곳은 이슬람교의 창시자 마호메드의 4대 손자인 예언자 알리가 잠들어 있다는 무덤이다. 오색찬란한 페르시아 전통 모자이크 문양들로 이루어진 모스크 안으로 향하는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았다.
마쟈리샤리프에서 북서쪽으로 1시간 반 정도 떨어진 작은 마을에서 우리는 의료봉사활동를 하게 되었다. 진료는 3일간 오전, 오후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하루에 200명 이상의 환자를 진료하는 강행군이었다. 이틀째부터 소문을 듣고 찾아온 이웃마을의 사람들까지 밀려와 작은 병원 주위는 금세 북새통을 이루었다. 환자들 중에는 눈에 띌 정도로 심각한 외상을 입거나 피부병을 지닌 환자들도 많았지만, 대부분은 보이지 않는 위장병, 결핵, 신경통, 두통, 설사 등 만성질병에 시달리는 환자들이었다.
아프간 인구의 절반 이상은 심각한 수준의 환자들이다. 그 이유는 복합적이지만,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깨끗한 식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흙먼지가 들어간 우물물이나 오염된 강물을 마셔서 생기는 설사, 두통, 피부병 등 어처구니없는 질병들이 활개를 치는 것이다. 이 나라의 보건교육이 전무하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대다수가 칫솔의 사용방법도 모른다. 어떤 이는 매일 복용해야할 약을 금지옥엽처럼 아껴 먹는다. 심지어 한 알씩 먹어야 할 약을 많이 아프면 한꺼번에 과다복용하기도 한다.
서구화된 카불…이슬람 근본주의 성향이 강한 칸다하르
마자리샤리프를 떠나 의료활동을 함께 했던 일행들은 카불과 인도 델리를 거쳐 모두 한국으로 돌아갔다. 모두들 기도하는 마음으로 아프간 땅을 마음속 깊은 곳에 품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나는 카불을 둘러보기 위해 며칠동안 한 NGO단체의 사무실에 기거하게 되었다. 카불에 있으면서 이 나라의 닫혔던 문이 조금씩 열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탈레반 시절 억압받고 폐쇄적인 환경 속에서 시름을 겪고 아픔의 눈물을 흘려야 했던 이 민족에게 다시 한번 축복의 통로가 마련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고는 하나님에게 감사했다.
카불은 다른 도시들에 비해 상당히 서구화된 도시였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같은 최신 영화 DVD 디스크 구입도 가능했고, 레스토랑에서는 머시룸 피자나 치킨 테리야키 같은 서구 음식도 맛볼 수 있었다. 유엔평화유지군과 수백 개의 국제자선단체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이곳이 개방된 모습으로 비춰진 것만은 아니다. 이곳 아프간 사람들의 마음도 열려 있는 모습이었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그늘 대신 작지만 미소를 발견할 수 있었고, 무질서한 가운데에서도 사람들은 각자의 삶을 위해 분주히 노력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아프간을 더 둘러보기 위해 약간의 조바심을 가지고 다시 남쪽의 칸다하르(Kandahar)로 내려갔다. 칸다하르는 발크의 쇠락 이후 고대와 중세시대 중앙아시아의 문화적 중심지가 되었던 곳이다. 그리고 근래에는 탈레반의 거점 도시가 되었던 곳이다. 그러한 이유로 카불에 사는 교민들도 대부분 칸다하르를 방문하기 꺼려한다. 실제로 칸다하르에는 주둔하는 미군들을 제외하고 외국인들이 별로 없다.
이곳에 며칠 머물면서 반팔 티셔츠와 청바지를 벗어버리고 현지인들의 옷으로 갈아입어야 했다. 그 이유는 아무도 그런 서구식 차림으로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었고, 혹시나 사람들 시선의 집중을 받으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충고를 들었기 때문이다. 칸다하르는 치안상 안전하고 겉보기에는 평온해 보였지만, 카불과는 매우 다른, 엄하고 보수적인 기운들이 도처에 편재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칸다하르와 카불 사이의 구간은 사막 지형의 매력들을 줄곧 보여주었다. 들풀만이 듬성듬성 피어있는 황량한 사막 위에 낙타 무리가 유유자적하며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은 어느 여행지에서도 보지 못했던 장면들이었다. 마치 사하라 사막의 오아시스 주변 어느 한 가운데 와있는 듯한 기분이다. 이렇게 가까이서 살아 움직이는 낙타 무리를 볼 줄은 미처 생각 못했었다.
에필로그
아프가니스탄을 떠날 즈음에 한 가지 질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왜 이토록 아름다운 자연과 순박한 사람들이 사는 곳에 그렇게 오랫동안 낙후되고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가야 하는 상황들이 반복되어 왔는가를. 그것은 피비린내 나던 아프간의 지나간 역사 때문이었다. 수천 년 동안 이 땅에는 이유 없이 죽은 사람들의 피가 너무나 많이 흘려져 있었다.
침략자 칭기즈칸과 아무르 티무르(Amur Timur·티무르 제국의 정복자)는 12~14세기에 걸쳐 철저히 이 땅을 파괴했다. 고대, 중세, 근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민족들이 비단길을 오가며 칼과 말발굽으로 이 땅을 짓밟았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19세기에 인도를 지배한 영국과 전쟁이 일어났고, 20세기에는 중앙아시아를 점령한 소련이 침공해왔다. 그리고 21세기에는 종교적 이데올로기와 민족 간의 갈등이 이 땅을 피범벅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하지만 참담한 역사적 비극의 피가 흐르는 이곳에 이제는 기쁨과 희망의 꽃이 서서히 피어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카불에서는 내리지 않던 비가 6년만에 내렸다는 얘기도 들었다. 숲과 나무가 없던 지역에 수풀이 무성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땅의 회복은 몇몇 지원 국가나 단체들의 물리적인 힘만으로는 불가능해 보인다. 절실한 것은 아마도 하나님의 축복과 함께 이 땅을 향한, 이 민족을 향한 우리 모두의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일 것이다.
◈ 여행팁
항공로 : 아프가니스탄으로 가는 항공권은 아프가니스탄의 아리아나 항공사(Ariana Airline)를 통해 구할 수 있다. 아리아나 항공 웹사이트 www.flyariana.com 참고. 한국에서는 직항편이 없고, 인도의 델리, UAE의 두바이 등지를 경유하여 들어갈 수 있다. 델리, 두바이에서 카불까지의 왕복 요금은 각각 500달러, 400달러 정도.
비자 : 서울 용산구 한남동 소재 아프가니스탄 대사관(전화 793-3535)에서 관광 목적의 입국비자를 발급해준다. 비자발급료 30달러, 체재기간 15일.
숙식 : 카불 도심에서 서쪽으로 3km 떨어진 지점에 인터콘티넨탈 호텔(Intercontonental Hotel)이 있다. 사우나, 테니스 코트, 아리아나 항공사 지점 등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는 아프간 최고의 호텔이다. 카불 시내 관광투어도 신청할 수 있다(전화 020 2201320).
많은 외국인들이 이 호텔의 런치 뷔페식당을 자주 찾는다. 영업시간은 매주 금요일 오전 11시30분에서 오후 3시까지. 식사요금은 1인당 10달러(전화예약 020 2201321).
외국인 전용인 무스타파 호텔(Hotel Mustapa)은 카불 제일의 번화가인 치킨 스트리트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이탈리안 레스토랑, 레크레이션 룸, 인터넷 카페 등을 갖추고 있다. 하루 숙박료는 100달러. 전화 0093 70276021.
이밖에 카불 제일의 번화가인 치킨 스트리트(Chicken Street)에는 외국인 전용 게스트하우스와 저렴한 호텔들이 여러 군데 있다.
국내 교통 : 카불의 시외버스터미널에는 마자리샤리프, 칸다하르, 헤라트, 버미안 등지로 향하는 시외버스와 합승 택시들이 늘어서 있다. 카불-칸다하르 구간 시외버스 요금은 1인당 4달러 정도(9시간 소요).
환율·환전 : 아프가니스탄의 화폐단위는 아프가니(Afa)다. 1Afa는 27원 정도, 1달러는 45Afa. 공항에는 환전소가 없고 시내 은행이나 중앙우체국에서 환전할 수 있다. 공항 앞이나 거리에서 환전상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두세 차례 경험상 거리에서 환전해도 큰 무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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