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벼운 산행이었지만 산행기가 없어서 일기를 조금 수정하여 올려봅니다. 그날의 산행을 복습해 보세요. 디지털 시대에 사진한장 없는 아날로그라스 죄송합니다.
3월 21일
4주 만의 산행인데 매우 오랜만에 산에 가는 느낌이 들었다. 카페에는 봄맞이 소풍 겸 가족 산행이라고 소개되어 있어서 조금은 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몸살을 앓고 난 뒤라서 조심스러웠다.
카페에서 분위기는 읽었지만 아침에 만난 사람들의 화제는 지난 주 기반산 산행을 포함한 3주간의 산행에 관한 무용담이었다. 나는 보름간 남부지역 답사를 다녀오느라고 아쉽게도 그 세 번의 산행에 한번도 참석하지 못했다.
오늘 우리가 간 곳은 북경 서남쪽의 방산구 주구점진 래력수촌(房山區周口店鎭淶瀝水村) 뒤에 솟아 있는 관모산(冠帽山:1140미터)이었다. 마을 이름을 라이리쉐이촌(淶瀝水村)이라고 부른 것은 아마 물이 고이는 소(沼)나 연(淵)이 많아서 일 것이다. 정상에서 만났던 중국 녹야팀에게 물어보았더니 이 산의 모양이 옛날 중국 고관들이 쓰던 사각형 모자와 닮았기 때문에 관모산이라고 부른다고 설명했다. 귀경 길에 있었던 산자고 대장님의 보고에 의하면 오늘 산행은 9시 15분에 출발하여 6시경에 끝났다고 한다. 9시간 정도가 소요된 산행이었지만 비교적 많은 휴식과 주위를 감상하며 다녀온 여유 있는 정말 소풍 같은 산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보금산입구(宝金山口)에서 내려 15~20분 정도 걸어 올라가 큰 주차장에서 체조를 하고 산행을 시작했다. 이 산은 우리 산악회가 처음 오는 곳이라서 입구를 찾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고문님이 동네 사람에게 물어서 계곡 왼쪽의 작은 능선으로 올라섰다. 그리고 그 길은 오늘의 산행을 즐겁게 해준 첫 번째 요인이었다. 만일 그 옆이나 아래 다른 길을 택했다면 우리는 오늘 별을 헤아리며 내려왔을 것이다.
마을 입구 계곡 왼쪽의 계단식 밭을 두어 개 올라가 바짝 선 계단식으로 된 좁은 길을 올라서니 바로 걷기 좋은 길이 나타났다. 그 다음부터는 계속 조금씩 오르는 아주 정겨운 길이었다. 길바닥 곳곳에는 가끔 넓고 평평한 석회암 바위들의 깔려 있어서 그 위를 걷는 이의 마음을 매우 편안하게 해 주었다. 이런 바위들이 계곡 바닥에 있으면 그 위에 물이 고인다. 그 물을 이 마을 이름과도 관련 있는 역수(瀝水)라고 부른다. 이 지역도 지난 번 용문간처럼 카스트형 지형이다. 바위에는 석회질이 많이 섞여 있고 산들은 모두 이 평평한 석회암들이 켜켜이 쌓여 형성되었다. 이곳이 육지로 바뀌기 이전 이곳도 역시 바다 밑이었다.
조금을 가니 길가에는 돌로 쌓은 울타리와 돌을 쌓아서 지은 조그마한 오두막이 나타났다. 이러한 오두막은 정상부근을 제외하고는 산행을 마칠 때까지 길옆 군데군데 만들어져 있었다. 그것은 양들의 집이었다. 정상 바로 아래서 보았지만 자연으로 형성된 동굴들도 양들의 대피소였다. 굴 입구에는 동글동글하고 반질반질한 양들의 분비물들이 소복소복 아주 정겹게 쌓여 있었던 것이다.
두 번째 오두막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니 길은 왼편의 높고 폭넓은 거대한 바위벽에서 흘러내린 능선들을 돌아 올라가며 오른쪽으로 관모산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출발할 때부터 나는 오늘은 제일 뒤에서 가기로 생각했었다. 고정적으로 후미를 담당하던 뚜벅2님이 오늘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초코바님과 초코렛님이 뒤에서 세상의 중심님과 함께 오기로 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는 조금 앞에서 오르고 있는 클래식님 부부와 한 그룹이 되기로 했다. 오순도순 소곤소곤 자분자분하게 두 분은 너무나 정다웠다. 참으로 행복해보이고 아름다워 보여서 나는 두 분의 데이트를 방해하는 것이 아닌가하여 먼저 가려고 생각했다. 그런데 클래식님이 그런 내 마음을 어떻게 읽으셨는지 오늘은 셋이서 함께 가자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클래식님의 그 말씀이 약간 의심이 갔지만 그냥 따르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는 느릿느릿 온 산과 나무와 꽃을 감상하며 여유롭게 올라갔다. 앞에서 기다리건 말건 어차피 오늘은 소풍 온 날인데 하는 어깃장 부리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멀리 모퉁이를 돌아가는 곳에 무슨 안테나를 꽂은 듯한 카우보이모자를 쓴 키다리 아저씨가 계속 안가고 서서 계신다. 우리 산악회의 고문님이셨다. 내가 조금 먼저 가서 왜 안가고 서 계시느냐고 물었더니 갈림길은 아니었지만 앞뒤가 보이지 않게 되는 곳이어서 뒷사람에게 길을 알려주려고 기다린다고 하셨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그렇게 산행을 도와주시는 고문님. 그는 분명 우리들 때문에 가지도 못하고 고문을 당하고 있었다. 잠깐을 우리와 함께 걷던 고문님은 멀리 앞에서 혼자 기다리고 계시는 사모님에게로 먼저 가셨다.
좌측 위쪽에 우뚝 솟은 거대한 바위벽은 풍화가 매우 오래 진행된 바위들이었다. 상당부분이 흙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벽들의 몇 군데는 작은 동굴도 있었다. 아마 그 동굴들은 그 옛날 석회 덩이가 녹으면서 생긴 것일 게다.
하늘에는 얇게 구름이 덮여 산행하기에 참으로 좋은 날씨였다. 길이 너무나 편안하고 정겨웠다. 안부에 올라서니 눈앞으로 거대한 협곡과 산들이 전개된다. 안부에서 가까이 보이는 협곡은 후호(后湖)와 청은구(靑銀泃)이고, 그 뒤로 봉황산(鳳凰山) 제자곡(梯子谷) 저초(底草)라는 이름을 가진 산과 협곡들이 중첩되어 있다. 그리고 그 보다 더 뒤로 아스라이 관모산보다는 조금 더 높은 1209미터짜리 대와첨(大窪尖)산이 솟아있었다. 대단한 스케일의 산맥이었다. 안부에는 고문님 부부가 아직 올라가지 않고 계셨다. 아마 사모님이 특별히 준비해 오신 홍삼꿀 차를 한잔씩 주시려고 기다리고 계신 듯했다. 우리가 한잔씩 마시고 나자 두 분은 다시 먼저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 마음 씀씀이---. 두 분은 진정 행복하실 것이다.
멀리 모퉁이로 초코바님이 나타나는 것을 보며 신호를 보내고 우리도 다시 올라갔다. 중턱에 막 피기 시작한 꽃나무를 본 클래식님. 그냥 지나칠 리가 없다. 사진을 한 장씩 찍고 납작납작한 돌이 계단을 이루고 있는 길을 한발씩 올라섰다. 그리고 마지막 돌계단을 올라서니 일행이 모두 그곳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한발 더 올라서서 보니 모두 그곳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곳은 관모의 제일 왼쪽 꼬리부분에 해당하는 독립바위 바로 아래였다.
그곳에서 우리가 올라온 쪽을 바라보니 거대한 바위벽이 성큼 앞으로 다가서 있다. 아래에서 보던 모습과는 달리 그 바위벽 산은 가운데가 높고 양쪽으로 가오리 연의 양 날개처럼 팔을 내린 파고라 모양의 산이었다. 그리고 그 산은 아래에 두 층을 더 가진 3층으로 겹쳐진 산이었다. 그 3층의 산들은 라이리쉐이촌 쪽은 바위벽으로 짤려 능선이 잘 발달되지는 않았지만 청은구 쪽은 몇 개의 능선을 뻗어 내리고 있었다. 우리가 지나온 바위벽 아래의 굽이굽이 굽이진 산길과 청은구 쪽의 능선 허리에 굽이굽이 만들어진 산길이 머리를 맞대고 있다. 그 길은 산을 둘러싸고 왼쪽과 오른쪽 양쪽으로 늘어서 있는 거대한 두 마리의 뱀같이 보였다. 그리고 양 협곡 사이를 가득 메운 허공과 바람들. 나는 그 허공에서 쏟아내는 우주의 기를 마음껏 들이마셨다. 그래서 나는 우주와 하나가 된다. 지금 이 산위에서 식사하고 있는 우리 일행은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우주의 기를 마시고 있는 작은 우주이다.
오늘 점심식사의 백미는 회장님 생일축하 행사였다. 생일 축하행사를 해주기로 하고 첫 축하를 회장님이 받게 되어 조금은 겸연쩍을 듯도 한데 우리 회장님은 마냥 즐거운 모양이다. 하긴 얼굴도 조금 두껍게 생겼다. 혼자 북경에서 생일을 맞는 가슴 한 편에는 그래도 아쉬움이 스치시지 않을지? 어쨌든 참으로 흐뭇한 광경이다. 그 큰 덩치만큼 큰 우주가 되어 계속 흔들림 없이 명품산행을 만들어 나가시길 기원해 본다.
점심이 끝나고 꼬리부분의 독립바위 밑을 통과할 때 산자고 대장님은 미리 보았던 길이 위험하다며 더 안전한 길을 찾으러 나섰다. 나는 산자고님이 간 길 바로 위 바위 지붕 아래에 길이 있을 듯하여 그곳으로 가보았다. 그곳이 좀더 안전하고 편한 길이라고 했더니 대장님은 먼저 간 사람들을 제외하고 모두 그 길로 안내했다. 이곳부터 정상까지는 멀지 않았다. 정상으로 가기 전 반대쪽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곳에는 우리보다 조금 먼저 온 중국 팀 7, 8명이 널찍한 바위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와 간단히 인사를 나눈 그들은 장소가 좁아서 바로 머리 위로 보이는 정상으로 떠나겠다고 하며 자리를 양보했다.
나는 바로 그들을 따라 가며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그들은 북경에서 온 녹야산악회 팀이었다. 3주전인가 우리 산악회와 함께 서령산(西靈山)에 갔던 그 산악회다. 그들은 인터넷을 통해 만나는 산악동호회로서 오늘은 모두 함께 이곳으로 와서 서너 팀으로 나누어 부근의 서로 다른 산을 등산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 팀의 리더로 보이는 젊은 여성은 이 산이 옛날 중국 고관들이 쓰는 모자를 닮았다고 하여 관모산(冠帽山)이라고 불리며 1000미터가 조금 넘는다고 하였다. 그리고 주위 산들에 대해서 아는 대로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그녀가 상방산(上方山)이라고 했던 산은 자료를 찾아보니 대와첨(大窪尖) 산이었다. 상방산은 관모산보다 300여미터 낮고 이곳에서는 보이지가 않는다. 산자고 대장에게 물어보니 그의 고도계에는 관모산이 1140미터로 나왔다고 한다. 중국 팀은 우리가 하산한 길 보다 하나 더 넘어있는 왼쪽편의 긴 능선으로 올라와서 우리가 올라왔던 길로 내려간다고 했다.
산자고님은 정상에서 사람들이 다 오면 모여서 함께 가자고 하였다. 조금 일찍 올라왔던 사람들은 정상의 포근한 풀밭에서 여유롭게 산들을 감상며 정담을 나누다가 기념사진을 찍고 내려왔다. 정상은 우리가 올라온 길을 제외하고 삼면이 수직 벽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하산 길은 올라오던 길을 되돌아 가다가 그 아래에서 올라오던 길과 만나는 곳에서 정상봉우리 왼편을 끼고 돌며 나가야 했다. 정상에서 공중 낙하하면 3초면 닿을 수 있는 거리인데 돌아오는데 20여분은 걸렸을 것 같다.
그 갈림길에 조금전에 올라온 세상의 중심님(이하 세중님)이 쉬고 계셨다. 나는 마음과는 달리 "정상에 안가세요?"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세중님은 "내가 오르는 곳이 모두 정상인데 정상이 따로 있나요?" 하시는 것이 아닌가? 일상적으로 하신 말이든 아니면 약간 언짢아서 하신 대답이든 상관은 없다. 순간 나는 망치로 한방 얻어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기가막힌 대답이 아닌가? 내가 가는 곳이 모두 정상이라는 말은 내가 가는 곳이 모두 세상의 중심이라는 말과 같은 말이 아닌가? 세중님의 닉네임에 그런 깊은 뜻이 있었단 말인가? 그 말은 칸트가 말한 "주관이 객관을 형성한다."는 철학세계를 뒤 바꿔 놓은 말과 일맥상통한다. 이것은 바로 불교의 일체유심조와도 통하는 명언이다. 그러면 세중님은 혹시 철학을 전공하셨나? 철학을 전공하셨다면 대단히 총명하신 분이고, 삶에서 그냥 터특하신 것이라면 이미 生의 의미를 터득하시고 달관하신 도사다. 그래서 언제나 즐거운 마음이신가? 참으로 잊지 못할 명언이었다.
정상 봉우리 옆을 돌아오는 길은 나무가 많고 길도 경사진 곳이라서 걷기가 불편했다. 우리 그룹의 앞에서 가던 나는 그 길이 끝나는 초원에서 쉬기로 했다. 비교적 쉬기 좋은 곳에서 뒷사람들을 기다려 모두 함께 가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정상아래 있는 초원에 모두 모여서 꽤 오래 쉬었다. 서쪽 하늘에는 아까보다 구름이 조금 많아지고 있었다. 시간은 3시 반이 되었다. 회장님은 중국 팀이 올라왔던 그 긴 능선은 그만두고 그 하나 앞에 있는 능선으로 내려가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시간적으로나 체력적으로 아주 정확한 결정이었다.
내려가는 길은 매우 다양했고 길을 잃기 쉬운 곳이 여러 군데 있었다. 윗부분에는 길이 분명치 않은 넓지 않은 풀밭과 갈대밭이었고, 그곳을 지나니 또 군데군데 바위들이 나타났다. 사방이 양들이 다니는 곳이어서 때로는 길이 여러 갈래로 나 있기도 하였다. 양들의 집을 지나서부터는 비교적 길이 좋았다. 그리고 계속 내려와서 우리는 6시쯤에 출발하던 곳에 도착했다. 내려오면서 가끔 뒤돌아 본 관모산은 계속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별 무리 없이 내려온 우리는 먼저 내려오신 분이 인솔하여 올라온 차에서 막걸리를 꺼내어 한잔씩 했다. 지난 번 몸살 때 기관지가 살짝 고장이 나서 맥주나 소주를 마시면 밤에 기침으로 고생을 했기 때문에 점심때는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그런데 막걸리를 보니 군침이 돈다. 그래 막걸리도 한번 시험해 보기로 하자라고 편하게 생각했다. 일단 입에 대니 자꾸 들어간다.
별이 나오기 전 우리는 귀경 길에 올랐다. 모처럼 일찍 귀가를 하게 되어서 인가 초코바대장님이 한사람씩 나와서 소감 한마디씩 말하라고 한다. 나는 막걸리로 이미 둔해진 머리 탓에 하고 싶은 이야기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말았다. 내가 하려든 말은 바로 고문님이 우리를 기다려주던 그러한 마음 자세와 협조가 얼마나 좋으냐 하는 것이었다.
산행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려면 산행대장단과 회원들 간에 협조가 잘 되어야한다. 많은 인원이 산행 할 때는 대장은 가끔씩 전체를 모아서 가야한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등산사고 가운데 상당수가 바로 팀이 분산되어 길을 잃고 헤매다 일어난다고 한다. 그래서 산행대장은 혼자서만 계속 앞서 가버려도 안되고, 갈림길이나 헷갈리는 길에서는 사람들을 기다리다가 반드시 뒷사람에게 길을 알려준 뒤 가야하며, 뒷사람이 많이 떨어졌을 때는 반드시 한사람이 남아서 바르게 길을 인계해 줘야한다. 우리들의 고문님처럼.
그리고 회원들은 산행대장보다 앞서가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 팀에서 이탈하여 혼자 앞서서 가거나 너무 뒤에 혼자 쳐져서 오다가 길을 잃게 되면 그것은 언제나 다른 회원들에게 걱정과 기다림을 안겨준다. 심한 경우에는 불의의 사고도 당할 수가 있다. 만일 자신보다 앞서 나가는 회원이 있으면 대장은 그것을 금지시켜야 한다. 또 길이 애매할 경우에는 전체가 쉬도록 해놓고 몇 사람이 함께 길을 찾은 다음 가야 한다. 물론 안전지대에 들어서서 대장의 안내가 필요 없을 때에도 대장보다 앞서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이루어진 산악회에서는 대장이 강하게 통제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은 회원 각자가 대장과 운영진을 도와야 한다. 그래야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즐겁고 안전한 산행이 된다. 이러한 내용들은 누구나 다 안다. 그러나 우리는 습관적으로 금방 잊어버리고 산에 가서는 또 자기 마음대로다.
오늘 산자고 대장님은 몇 차례나 회원들을 모아서 가곤했다. 산다람쥐 같이 날렵하고 강단이 있어서 조금도 빈틈없이 보이는 산자고님도 마음은 비단결같이 고운 것 같다. 남들이 언짢게 생각할 말은 조금도 못하는 것 같다. 사실 그것은 대장으로서는 결격사유다. 대장은 대원들의 안전과 산행의 성패를 쥐고 있어서 때로는 외롭고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너무 순수한 대장님! 산에서 우리는 그의 말을 잘 따라야 한다. 그것이 그를 도와주는 길이다. 또 그것이 바로 우리가 계속 명품산행을 할 수 있는 길이다.
모처럼 날 저물기 전에 귀가해서인지 돌아오는 버스 안 분위기가 매우 포근하게 느껴졌다.
첫댓글 벽산님..아날로그라서 더 정감이 가는 산행기..복습 잘 하고 유의하고 명심해야 할 사항들 마음에 담아 갑니다..감사해요~^^*
모두가 아는 말인데 올릴까 말까 고민 좀 하다가 올렸습니다. 우리는 잘 잊어버리기도 하고 때로는 자존심 때문에 협조하지 않을 때가 있잖아요? 그냥 한번 더 상기하자는 의미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매주 화제에 중심에 서게되는 나는 ... 오르막에서 나의 한계가 내리막에서 만회할수있다는 기대감으로 매주 산행을 합니다. 오르막에서는 나에게 위로의 말을 수없이 하고 내리막에서는 산행친구들과 생각도 안 나는 수다를 떨곤하지요.이 나이에 이 덩치에 이 만한 배짱이 없다면 ..벌써 산행은 포기하고 집에 있었겠지요. 다행스럽게도 이꼴저꼴 다 받아주며 이끌어주는 산사람들이 있어 매주 새벽잠을 설치고 따라나서는 것이지요..ㅋㅋ 난 언제 이 신세를 다 갑을라나....^^*
아마 다른 곳에서 많이 베푸셔서 그 보답을 받고 있는 것일 겁니다. 정말 제가 보기에는 오르막을 내리막같이 갈때가 다 되어간다고 봅니다. 조금만 더---.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저는 4월 중순은 되어야 산행에 참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때 뵙겠습니다.
네, 궁금했었는데요. 지금 막 뻬아제님 황산 등반기 읽고 나오는 중이었습니다. 4월 중순, 다시 산에서 만나 뵐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산 좋아하시는 분들 ,황산 좀 더 자세히 알고 가시라고 일부러 글 사진 작정하고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정보란에 올렸습니다. 나중에 황산 가실 때 혹시라도 참고가 되셨으면 합니다. ^^
가끔 황산 사진을 보았지만 뻬아제님 사진이 최고입니다. 지난번 답사때 황산 부근에 있는 천주산까지 갔다가 돌아왔는데 다음에 꼭 참고할 것입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네, 저도 우리 대장님을 믿고 따르며 돕겠습니다.
고문님은 길 안내하시느라, 더 좋은길 찾으시느라 바쁘시고,,사모님은 그런 고문님 찾으시느라 바쁘시고^ㅡ^;; 걱정되서 발 동동 구르시는 모습,,사실 조금 귀여우셨어요ㅋㅋ 오늘 번개산행에서도 느꼈지만 너무 사이좋은 두분~보기좋아용~~ 벽산님의 아날로그식 모범산행기 잘 봤습니다.^ㅡ^
둘리님, 참 대단하십니다. 불과 3일만에 또 베이링산을 다녀오시다니!! 사실은 나도 가려고 했는데, 내일 한국에 가는데 그 일 협의 때문에 못갔어요. 즐거운 산행하세요. 다음 주에 산에서 만나요~~.
보기보다 단단하고 산행을 잘 하던 우리의 둘리눈에 그리 보였나ㅎㅎㅎ(진경2)
글 잘보고 갑니다. 어제 들려주신 얘기들 참 좋았습니다. 산에서 자주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글 주셔서 ...예전보다 많이 산악회가 산행에서나 카페에서나 발전되었읍니다. 그리고 안전산행과 즐거운 산행이 되기위해 좀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믿고 신용있는 모임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읍니다. 주신말씀 실천이 되도록 하겠읍니다.
오히려 제가 감사드립니다. 명품산을 꽁짜로 하나하나 안내해주시고 보여주시고 즐기도록 해 주시니까요. 병원장 되신 것 다시 한번 축하드리며 병원도 무궁한 발전이 있기를 기원드리겠습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자상한 인품처럼 산행기도 잔잔하면서 가슴에 와 닿는 글귀는 우리 세대만이 느끼는 또 다른 맛이랄까~~ 봄날에 느끼는 따스함이 전해집니다... (진경2)
그렇긴 하지요? 저도 마찬가지 감정입니다. 진경님과 산행을 하다보면 무언가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어떤 것, 그것이 아마 같은 세대의 느낌이 아닐까하는 생각입니다. 저는 지금 한국에 있거든요. 다음 주에 산에서 뵙겠습니다.
좋은글 좋은 생각을 전해주시니, 다시금 산에 오르는 사람의 자세를 가다듬어 가는 기회가 됩니다./평온한 말씀 자주 들려주세요^^*
사실은 그날 그날의 제 일기였습니다. 산에 갔다오면 기분이 좋아서 그 기분을 전달하고 싶었던 마음에 글을 올렸었는데 입회한지도 며칠 안되는 사람이 말이 많은 듯하여 앞으로는 자제할 생각입니다.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주에 뵐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