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성서씨(왼쪽)가 멘토 민권식씨와 함께 농장의 흑염소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귀농·귀촌 멘토링 현장을 가다] 전남 화순 흑염소농장
멘토 민권식씨, 2006년 농장 시작 때 예비 귀농인 돕기 위한 귀농학교 개설
출연한 방송 보고 찾아온 조성서씨 도와
조씨, 민씨 농장서 먹고 자며 일 배워 지금은 이웃에서 작은 규모로 직접 사육
“욕심부려서 너무 많이 키우려 하지 말고 한마리씩 차근차근 늘려.”
전남 화순군 이양면에 있는 흑염소농장. 6만6115㎡(2만평) 땅에 1500여마리의 흑염소가 자유롭게 뛰어노는 이곳에는 현대식 축사와 목초지, 그리고 예비 귀농인을 위한 교육장과 숙소까지 마련돼 있다. 농장주 민권식씨(62)는 흑염소에게 줄 건초를 얻기 위해 농장을 찾은 조성서씨(56)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넸다. 농장의 교육생 출신인 조씨는 2017년부터 이웃에서 흑염소를 키우기 시작했다.
“직접 지은 작은 축사에서 20마리 정도 키우고 있어요. 이제 시작단계라 대표님 농장에 비하면 무척 영세해요. 이런 번듯한 농장을 보면 부러울 따름이죠.”
서울에서 30여년 동안 학원강사로 일했던 조씨는 2014년 화순으로 내려왔다. 처음에는 농사에 별 관심이 없었다. 친구가 한옥 짓는 일을 하고 있어 기술이나 배울 요량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손을 다치는 바람에 한옥 짓는 일을 그만둬야 했다.
“그땐 앞이 막막했어요. 나이 들면서 학원강사를 계속하기 힘들 것 같아 새로운 일을 배우다 사고가 났으니까요. 준비 없이 내려온 게 후회스럽기도 했죠.”
앞날을 고민하던 조씨는 우연히 민씨가 출연한 방송을 봤다. 성공한 귀농인으로 자리 잡은 민씨를 보고 흑염소를 길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소나 돼지에 비해 초기 구입비용이 저렴한 데다 사육기간이 짧아 비교적 손쉽게 키울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민씨의 연락처를 알아낸 조씨가 자기 사정을 얘기했고, 몇차례 상의한 끝에 2017년 1월부터 민씨 농장에서 먹고 자며 일을 배웠다.
멘토인 민씨는 시민단체 출신의 귀농인이다. 2006년 흑염소농장을 시작하면서 예비 귀농인을 돕기 위한 귀농학교를 개설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무항생제·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해썹·HACCP)·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그의 농장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선정하는 스타팜(Star Farm)에 뽑히기도 했다. 고기와 가공제품인 즙을 판매해 연 4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농장을 거쳐 간 귀농인만도 50명이 넘는다.
민씨는 조씨의 절박함이 마음을 움직였다고 한다. 농장일을 배우는 동안 짬을 내 자기 땅에 축사를 짓고 울타리 치는 모습을 보며 제대로 일을 가르치기로 했다. 새끼 흑염소 10마리를 줘 직접 길러보게 하고, 도축장과 식당 등으로 데리고 다니며 판매와 영업 노하우를 전수했다. 조씨는 교육이 끝난 후에도 흑염소를 돌보다 급한 일이 생기면 민씨의 농장을 찾는다.

전남 화순군 이양면에 있는 흑염소농장의 목초지에서 풀을 뜯어 먹고 있는 흑염소.
“올여름에 날씨가 너무 더워 한마리가 시름시름 앓더라고요. 곧 죽을 것 같아 품에 안고 뛰어왔죠. 시원한 곳에서 하루 정도 굶기고 물에 소다수를 타서 먹이라고 하셔서 그렇게 했더니 진짜로 나았어요.”
조씨는 틈틈이 목공일도 하며 염소를 돌보고 있다. 키우는 염소가 100마리 정도는 돼야 꾸준히 출하할 수 있기 때문에 당장 많은 돈을 투자해 규모를 키우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민씨의 충고를 새겨듣기로 했다.
“대표님도 처음에는 놀던 땅에 흑염소 몇마리를 풀어 키우면서 시작했다고 하시더라고요. 많이 키우려면 그만큼 경험을 쌓아야 하니 조급해하지 않고 서서히 늘릴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