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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 1:4-7)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시며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계시록 1장에는 계시록을 쓴 목적과 그 주제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계시록을 왜 썼다고 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의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의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이 말씀은 우선 이 책의 내용이 전부 주님의 계시에 의한 것임을 밝히 나타냅니다. 그러면서 4-6절에 인사말이 나옵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설명하는 말씀이 7절부터 시작합니다. 뭐라고 했습니까?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한편 계시록의 마지막 말씀이 무엇입니까? 계시록 22:20에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계시록은 처음에도 주님의 재림을 말씀하였고, 마지막에도 다시 한 번 재림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계시록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그리스도의 재림인데, 그 방법이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사실입니다.
1. 주님은 구름을 타고 오십니다.
1) 예수님께서 구름 타고 오신다는 말씀은 계시록만이 아니라 주님의 재림을 예언하는 공관복음서, 곧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 모두 나옵니다. 이 말씀은 제자들이 계시를 받아서 기록한 말씀이 아니라, 예수님이 친히 하신 말씀이고, 특별히 강조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말씀은 구약의 계시록이라 할 수 있는 다니엘서 7:13,14에도 나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일찍이 큰 신상의 꿈을 꾸고, 그 해석은 물론이고, 그 꿈 자체도 기억이 나지 않아서 자기 나라의 모든 박사들과 박수무당들까지 불러서 물어보지만 허탕을 치게 되니까, 너무도 답답하고 화가 나서 모두 죽여버리려고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다행히 다니엘이 그의 꿈을 알아내고, 해석까지 해주어서 모두가 죽음을 면했지만, 실은 인류 역사가 바벨론에서 메데파사로, 다시 헬라로, 다음엔 로마로 옮겨가다가 마침내 멸망하고 그리스도의 나라가 온다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2) 예수님은 장차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말씀을 친히 거듭 강조하셨습니다.
① 종말에 일어날 일을 예언하신 마태복음 24:30에서는 ‘그 때에’ 곧 앞 절인 29절에서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하신 ‘그 다음에’라는 말이지요.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라고 하셨고, 26:64에서는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심문 받으시면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가야바 앞에 서 계실 때에 가야바가 다른 여러 가지 심문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른 심문에는 일절 대답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60절에서는 거짓 증인들이 많이 왔었다고 했습니다. 후에 두 사람이 와서 말하기를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 하였더니, 가야바가 예수님께 묻기를 “아무 대답도 없느냐? 이 사람들이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뇨?”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계속 묵묵부답이셨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가야바가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라고 하자, 비로소 예수님은 “네가 말하였느니라.”라고 대답고는 이어서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가야바가 이런 대답을 듣고는 심히 노하여 자기 옷을 찢으며 말하기를 “저가 참람한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오?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참람한 말을 들었도다. 생각이 어떠하뇨?”라고 좌우에 모여 있던 제사장, 서기관, 율법사, 장로들에게 물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드디어 사형시키기로 결의한 것입니다.
② 변화산 위에서는 어떠했습니까? 예수님이 세 제자들 앞에서 변형되사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습니다. 그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함께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말하기를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말씀하시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어라.” 하였습니다. 이에 제자들이 듣고 엎드리어 심히 두려워하였습니다.
③ 사도행전에서 예수님이 승천하시던 때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이 보는 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려서 보이지 않게 하였습니다.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말하기를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님은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의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신다는 말도 해석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승천하실 때의 모습은 손오공처럼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구름에 휩싸여서 제자들이 잘 보지 못하도록 하면서 승천하셨습니다.
3) 그런데 구약에서도 하나님은 빽빽한 구름 가운데 나타나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
① 십계명을 주시기 전에 하나님은 모세를 시내산으로 부르셨습니다. 출애급기 19:9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빽빽한 구름 가운데서 네게 임함은 내가 너와 말하는 것을 백성으로 듣게 하며 또한 너를 영영히 믿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하늘에 시커먼 먹구름이 빽빽하게 되면 어떤 느낌이 듭니까? 두렵지요?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하나님이 임하심은 엄청난 두려움입니다. 누가 감히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인간들은 잘난 체하느라고 얼마나 허세를 부립니까?
② 구름이 빽빽하기만 해도 두려운데, 실제로 천천만만의 천사들이 나타나면 얼마나 더 두렵겠습니까? 히브리서 12장에 “너희가 이른 곳은”이라는 말씀이 두 번 나오는데, 첫 번은 옛날 모세 때에의 일을 말합니다. “만질 만한 불붙는 산과 흑운과 흑암과 폭풍과, 나팔 소리와 말하는 소리”(18-19절)였습니다. 그때에는 “짐승이라도 산에 이르거든 돌로 침을 당하리라.”라고 하셨는데, 21절에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고 하였고 했습니다.
③ “너희가 이른 곳은”이라는 두 번째 말씀은 22-24절에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이 복된 자리에 이르러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이 빽빽한 구름 가운데 임하실지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2. 주님이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1) 하늘에서 오신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하늘은 우리가 생각하는 우주 공간의 하늘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주기도문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하였으니, 바로 그 하늘입니다. 요한복음 14장에서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신다.”고 하셨고,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라고 하셨습니다. 그곳이 천국이 아닙니까? 천국에 올라가신 예수님이 다시 그곳으로부터 내려오십니다. “하늘에 있는 내 아버지의 집”을 ‘하늘’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오시는 방법을 설명하실 때에 “구름을 타고 내려오신다.”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하늘, 곧 천국으로부터 오시며, 천국을 가지고 오신다는 표현입니다.
2) 둘째로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요, 하나님의 영광을 상징합니다.
특히 출애급기를 보면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가 늘 구름 가운데 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속에서 나타나고(출 16:10), 하나님이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시고(출 24:16), 성막을 지어 봉헌할 때에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였기에 모세도 성막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출 40:34,35). 이와 똑같은 설명이 또다시 나오는데, 그것은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할 때였습니다. 역대하 7:1에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매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전에 가득하니,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므로 제사장이 그 전에 능히 들어가지 못하였다.”고 한 것입니다. 이같이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의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에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것은 천국으로부터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서 오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이 땅에 오셨을 때에는 낮고 천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다시 오실 때에는 하나님의 영광된 모습으로 오십니다. 그리고 그것은 희생양이 아닌 심판주와 구세주의 모습으로, 권능자인 만왕의 왕으로 오십니다.
3) 예수님의 재림 때의 구름은 무수한 성도들을 뜻합니다.
① 유다는 ‘아담의 칠 세손 에녹’의 말을 인용하여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유 14)라고 하였는데, 주님이 재림하실 때의 모습을 예언한 것입니다.
② 바울은 “∼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살전 3:13)라고 하였습니다.
③ 히브리서는 11장에 허다한 믿음의 선진들을 설명하고나서 12장을 시작하면서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라고 함으로 구름과 ‘허다한 증인들’을 비유로 동일시했습니다.
4) 구름이 어떻게 만들어집니까? 구름은 지상의 물이 증발하여 공중에 구름 상태로 있다가 나중에 비가 되어 다시 지면에 쏟아집니다.
① 엘리야는 3년 반 동안 가뭄이 계속될 때에 그릿 시냇가에 숨어 있으면서 피눈물 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의 기도가 올라가서 구름을 만들었습니다. 그 구름이 점점 더 커지다가 마침내 비가 되어 쏟아질 때가 되니까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명하셔서 바알의 선지자들과 대결하게 하셨습니다. 엘리야가 산에 올라가 기도할 때에 처음엔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이 떠올랐다가 점점 커져서 나중에는 큰 먹구름이 되어 온 하늘을 뒤덮었습니다. 마침내 큰 소나기가 쏟아졌습니다. 당신이 하늘에 올려보낸 것이 있어야 나중에 그것이 큰 복이 되어 쏟아져내립니다.
② 아무것도 올려드린 것이 없이 복 받기를 바란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잠깐 사는 동안에 부지런히 올려보내세요. 기도가 올라갑니다. 헌금도 올라갑니다. 선한 봉사와 구제가 올라갑니다. 주일을 성수하여 성령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이 올라갑니다. 주님께 묵묵히 충성하는 모든 것이 올라갑니다. 전도하고, 성경공부에 힘쓰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면 올라갑니다. 더 나아가 복음을 위해서, 의를 위해서 박해를 받는 모든 것이 올라갑니다.
③ 증발해서 하늘에 올라가야 할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헌신된 성도입니다. 우리는 헌신예배를 드립니다. 구약에서는 헌아예식(獻兒禮式)을 했습니다. 예수님도 정결예식의 날이 차매 모세의 법에 따라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드려지셨습니다.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헌아를 하게 된 것입니다(눅 2:22-23). 이때에 시므온과 안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나실인도 있었습니다. 자기를 드리겠노라고 하여 헌신한 사람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호와께 온전히 바쳐진 사람이나 가축이나 밭까지도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한 것이 되는데, 온전히 바쳐진 그 사람은 다시 무르지 못하나니 반드시 죽일지니라.”(레 27:28-29)라고 했습니다. 이들이 하늘에 올라가 영적으로 구름이 됩니다. 그러다가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 함께 강림합니다.
5)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말의 영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모든 것이 그렇지만, 구름도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곧 악인들에게는 한없이 두렵습니다. 그러나 의인들에게는 한없이 기쁩니다. 악인에게는 모든 것이 저주스러운 것이지만, 의인에게는 말할 수 없는 행복이 됩니다.
① 이스라엘이 광야생활 중에서 날마다 볼 수 있었던 것은 구름기둥이었습니다. 뜨거운 사막의 햇볕을 막아준 것도 구름기둥이었습니다. 그 구름기둥은 곧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냅니다. 그러다가 구름기둥이 떠오르면 그것은 출발신호입니다.
②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바알의 선지자들과 대결하여 승리하고는 이어서 비가 내리기를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그때에 바다 쪽에서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이 떠올랐다가 마침내 큰 먹구름이 되어 온 하늘을 뒤덮었습니다. 드디어 큰비가 내렸습니다. 3년 6개월이나 가물었던 땅에 단비를 쏟아준 고마운 구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는 자들에게 하늘의 보고를 여시고, 때를 따라 비를 내려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구름은 곧 은혜입니다.
③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말은, 주님의 재림이 지상 모든 사람에게는 엄청난 두려움이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계시록 1:7에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육신으로 계실 때뿐 아니라, 장차 다시 오실 때에도 예수님을 찌른 자들은 얼마든지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자들에게 재림이야말로 얼마나 무섭고도 두렵겠습니까?
3. 주님이 구름을 타고 오시는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우리도 메시야를 기다려야 합니다.
① 유대인들은 이렇게 온 민족적으로 메시야가 오시기를 간절히 기다렸어도, 정작 메시야가 오시니까 그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오히려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지 않았습니까?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런 것을 ‘아이러니’라고 말합니다. 가장 잘 아는 사람 같은데, 실은 가장 잘 모르는 사람이었고, 가장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이었는데, 실은 가장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② 그런데 보세요. 현대의 신자들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습니다. 믿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예언하기를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한다.”(벧후 3:3-4)라고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성경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말세의 신자들은 성경을 믿지도 않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것도 믿지 않습니다. 베드로가 이어서 예언하기를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벧후 3:5-7)라고 하였습니다.
③ 우리가 지금 그러한 때, 곧 극심한 불신의 때에 살고 있습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신자가 아닙니다. 교회의 직분을 가졌다고 해서 잘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지난달에 한국의 어느 신학대학 교수가 쓴 글이 중앙일보에 실렸는데, 동성애자를 왼손잡이처럼 생각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한 것을 보고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된 것을 왜 정죄하느냐는 것입니다. 왼손잡이는 비정상이 아닙니다. 왼손잡이는 죄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왼손잡이를 죽이라고 하신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동성연애는 죄악입니다. 유전으로 그렇다고 해도 그것은 저주입니다. 그러나 동성애를 하는 유전자란 없습니다. 동성애는 반드시 고쳐야 합니다. 방치하면 큰일 납니다. 더 큰 저주가 옵니다. 그래서 성경은 동성애자를 반드시 죽이라고 했습니다. 메시야를 기다리는 사람은 먼저 죄를 회개하여 거룩한 마음을 가지고 기다려야 합니다.
2) 먼저 마음을 청결하게 해야 합니다.
①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오시기를 사모하였지만, 정작 오셨어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마음이 더러워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이나 예수님이나 전도 제일성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는 말씀이 아니었습니까?
② 마음이 청결해야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늘 보는 사람은 그 하나님이 재림하실 때에 두려워하여 바위틈에 숨지 않아도 됩니다. 기쁨으로 달려 나가서 주님을 영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그런 사람이 공중으로 들림받아서 주님을 영접하게 될 것입니다.
③ 마음이 청결하면 삶이 성결해집니다. 곧 주님을 닮아서 거룩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날마다 주님을 닮아갑니다. 주님의 형상이 새롭게 회복됩니다. 이 사람이 주님의 참 자녀입니다.
3) 주님을 사랑하는 증거는 주님의 말씀을 열심히 읽고 듣고, 그 말씀을 따라서 행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에 가득한 모든 약속이 이런 사람에게 이루어집니다. 들어가나 나오나 복을 받는 사람, 하늘의 보고가 열려서 때를 따라 단비를 맞으며 범사에 형통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이 복을 받아야 하지 않습니까? 주님은 분명 어느 민족에겐가 반드시 이런 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 복의 주인공이 우리 한민족이 아닙니까? 여기에 우리의 믿음이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사랑이 있지 않습니까? 새로운 희망과 기대를 가지고 말씀 안에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4) 더 나아가 기도에 힘쓰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에 예루살렘 성전에는 수많은 제사장, 장로, 서기관들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거들떠보시지도 않으셨습니다. 단지 두 사람, 시므온과 안나라는 기도에 전심전력한 노인들만이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마지막 때에도 똑같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주님을 만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깨어 있는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지혜가 임합니다. 기도하는 사람만이 때를 압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주님이 어떤 모습으로 오시든지 금방 알아볼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주님 오실 때에 들림 받는 복된 성도가 됩니다. 당신은 왜 이렇게 놀라운 복을 놓치려고 합니까? 열심히 기도해 보세요. 주님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시지 않습니까? 새 기쁨을 주시지 않습니까?
5) 주님께 온전히 바쳐진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① 첫째 부활에 참여할 사람을 부활장에서는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고전 15:23-24)라고 했습니다. 재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 곧 주님께 속한 자, 더 정확하게 말해서 주님께 온전히 바쳐진 자가 먼저 부활하여 휴거되고 재림의 주님과 함께 강림하게 됩니다.
② 이들은 계시록 20:4에서는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들도 주님께 자기를 온전히 바쳐서 열납된 사람들입니다.
③ 계시록 14장 첫머리에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맞은 144,000명의 성도들에 대해 설명합니다. “그들의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의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사람 가운데서 속량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들”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정립해야 합니다.
①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신부로서의 사랑과 정조를 지킴과 절대순종을 배우며 행해야 합니다. 또한 신랑 예수님의 뜨거운 사랑에 감격하면서 이 세상에서도 늘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항상 감사와 기쁨이 충만해야 합니다.
②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잘 돌보아야 하고, 튼튼하게 만들어야 하고 더욱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 기쁨으로 찾아와서 항상 예배해야 합니다. 주님의 영광으로 충만케 해야 합니다.
③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신입니다. 죄 가운데 죽어가는 저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전할 메시지가 있나요? 복음 진리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헛된 재물이나 명예, 권세 같은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주님만을 영화롭게 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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