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겨울 산책 / 홍속렬
영하로 내려간 기온이 겨울옷을 찾아 입게 만들어준다
매일 하는 산책을 거를수가 없어 두틈한 토파와 모자를 쓰고 산책길을 걷는다
시골논길도 모두 시멘트 바닥으로 콩크리트를 해서 땅을 밟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땅을 밟아야 땅기운을 받을 텐데 시멘트 바닥을 밟으니 걷는 의미가 반감된다
모두 베어져 벼 꼬투리만 남았고 짚단은 말려져 흰 포장으로 잘 말려 둥그런 덩어리로 논바닥에 그냥 나 딩굴고 있다
전에 보지 못하던 농촌 풍경이 됐다 소 먹이로 팔려 나갈때 까지 논위에 방치돼 있다가 작자를 만나면 팔려 가게 마련이다 혼자걷는일은 매우 힘든 작업이다 우선 힘이든다 둘이 도란 도란 얘기라도 나누며 걷는다면 또 모르까 건강을 위해 억지로 걷느다면 이건 운동도 아니고 완전 노동에 해당된다
모두 다 침울해진 자연, 생기라곤 찾아 볼 수 없고 생명이 다된 풀들이 말라 비틀어져 앙상한 모습은 마치 비극을 보는 오페라 같다고나 할까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이런곳에서 생명의 다함으로 인해 더 우울해 질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한참 걷다가 요즘 신앙적 목적으로 금식을 하기에 힘이 빠져 더 이상 걷기가 힘이든다
양지 바른 무덤 가 잘 정돈된 잔디에 앉았다 바람이 세게 불었지만 양지바른곳엔 바람이 미쳐 찾아오지 못하는 아주 좋은 명당 자리였다 두 다리를 편하게 뻗고 오랫만에 유년시절 산과 들을 찾아다니며 양지 바른곳에서 책을 읽던 옛 습관이 살아나는 것으로 이제 늙은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돼 감사한 맘이다
몇 시간을 따듯한 햇살을 받으며 깊은 사색에 잠긴다
유년시절부터 시방 까지 살아온 역경을 생각하며 베트남에서 전투를 하며 낮 매복에서 지루한 시간을 메우기 위하여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를 읽던 그 기억 ……
그 당시에 어쩌면 그분의 언어가 내 언어였고 그분의 고독이 내 고독이였던 그 시절 …
이제 헌 책방에서 그 분의 책을 구해 다시 읽어보니 옛날의 그 감흥이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
시대도 많이 변했고 또 내 나이 일흔에 도달 했으니 그럴수 밖에 …
무덤위에 누웟다 참 편하다 아낌없이 쏟아지는 햇볕을 모자로 가리고 누우니 이렇게 편할 수가 …
천국이 따로 없다 내 세계가 제일이고 나는 가장 행복한 늙은이가된다
사실 내게는 늙은이라는표현이 조금은 어색 하다 축구 경기를 너끈히 해 낼 수 있고 뛰거나 달리는데도 문제가 없다 안경을 안 쓰고 책을 읽고 소리를 쳐 대도 산이 쩌렁 쩌렁 한다
일전에 야구 시합에 가서 나 혼자의 목소리로 그 많은 상대편의 학부형들의 응원을 무력화 시킨 경력도 있다
늙었다는것을 부인 하려니 더욱 건강을 챙기고 유지 해야한다
그래서 이참에 건강도 다시 챙기며 신앙적 목적을 이루려고 금식을 하며 필요한 가루 연식으로 연명을 하며 벌써 2주째 금식을 계속하고 있고 몸무게를 5 kg이나 뺐다 그렇게 빼려고 노력 하도 빠지지 않던 몸무게가 연식을 하며 굶으니 빠지기 시작해 5kg 이 빠졌고 앞으로 3kg 정도 도 빼려한다
배는고프고 허기가 지나 잘 참는 것도 수련에 속하는것이니 내 의지가 얼마나 강하고 하나님을 의지 하는 내 믿음이 얼마나 강한가 ? 를 테스트 하는 기회로 삼고 잘 해 나가고있다]
처겨울 따듯한 햇살 아래 깊은 인생의 고뇌에서 이제 다시 일상으로 되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점심은 햇반으로 데워 잡곡밥을 먹어야한다
이번 금식을 하며 깨달은 것은 사람이 먹고 싶은 것을 못 먹는것 만큼 불행한 사람은 없다는 생각을 해 본다
아무것도 못 먹는다고 생각하면 아무 일도 할 수 가없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사는재미가 없어져 버린다
그래서 옛날 로마 귀족들은 음식을 먹고 더 들어갈 여백이 없으면 새의 깃털로 목구멍을 간절러 토해 내고 다시 먹었다고 한다 그만큼 먹는다는것은 살아있다는것의 표증이며 의미인것이다
또 먹어도 소화 능력이 없어 맘대로 못 먹는 불행한 사람들도 있다 나이가 드니 먹는 량도 많이 줄어들었고 량 보다는질 위주로 가게된다
그런데 난 자신을 위해 비싼 음식을 사서 먹어본적이 없다 늘 가난하여 가장 잘 먹는것이 자장면 …
여자축구를 할때 싸고 간단한 음식이 자장면이니 늘 자장면을 사 줬다
내 개인돈으로 사주는걸 아는 여자 선수들은 늘상 자장면을 먹게 되더라도 불평 한 마디 안 했다
그렇게 아파트 두 채를 먹어 치웠다 혼자의 힘으로 대한 민국의 여자 축구를 개척해 나가겠다는 의지 ?
그 투지가 어디서 나왔을까 ? 시방 생각하면 의지가 아니라 만용이였다고 생각된다
아내의 정원을 연속해서 쓰며 꽃을 가꾸기 좋아하고 집안 치장을 잘 하던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에서 쓰는 글이다
이렇게 가족과 떨어져 사는지 22년째 …
이제는 나의 기도가 가족과 함께 살게 해달라는 기도로 변해가고있다
가족과 떨어져 살아가는 삶은 매우 불행한 삶이다 문제가 있어서가 아닌 나와 같은 케이스는 매우 불행한 일중의 한 예가 될것이다 꿈만 쫓아 가는 아비와 남편 때문에 피해자는 가족이 된것이다
이제 깨달았으니 가족에게 잘 해야겠다고 늦게나마 깨달은 진리가 나를 일깨워 준 진리가 너무 늦게서야 깨달음을 갖게돼 사죄하는 맘으로 셀러리는 모두 가족에게 송금을 한다
연금에서 최소한의 생활비만 남기고 사죄하는 뜻으로 자동이체를 하며 이제서야 철이든 자신을 나무라곤 한다
점심을 위해 다시 학교로 발길을 돌리며 다시 한번 가족을 생각하는 오늘이다
첫댓글 귀한 글 읽었습니다
선배님의 심정을 알듯도 합니다
많은 세월 잔인할 정도로 자책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사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과거에 잡혀 현실을 외면하면 안되기 때문이지요
과거는 과거일 뿐입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하나님과의 귀한 동행이 있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