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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제 4부: 죄인은 구세주가 될 수 없다?
앞의 기사들을 읽으면서 아마 매우 당황스러워져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아니, 만일 예수께서 우리와 같은 본성을 입고 오셨다면 예수님이 죄인이 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고,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오셨다면 예수님도 죄인인데, 어떻게 죄인이 우리의 구세주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자, 이제 이 문제에 대해 함께 공부해 보자. 특별히 이 문제를 공부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이슈인, 죄란 무엇인가? 그리고 태어날 때부터 인간이 죄인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공부해 보기로 한다.
죄란 무엇인가?
예수님의 인성에 대해 연구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대부분, 왜 거룩한 예수님을 인간의 본성을 쓰신 죄인으로 만드는가 하고 반문한다. 이러한 논리라면 예수님이 인간이 되신 것 자체가 죄인이 되었다는 말이 된다. 한 번도 죄를 지으신 적이 없어도 죄인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성경에"죄는 없으시니라"(히 4:15)라는 말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인들은 죄에 대한 정의를 바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죄의 정의 여하에 따라, 그리스도의 본성에 대한 이해가 아담이 범죄하기 전의 본성인가, 아니면 범죄한 이후의 본성인가로 달라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본성 문제에 대한 이해가 구원에 대한 신앙여하를 결정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죄의 정의를 분명하게 제시한다."죄는 불법이라"(요일 3:4). 불법이란 법을 어겨 행하는 것을 말한다. 그 때문에 같은 성경 절의 전반부에는"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죄는 불법이라"라고 분명하게 일러준다. 사도 바울은"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롬 4:15)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주어진 죄에 대한 유일한 정의는,"죄란 율법을 범하는 것"이란 정의이다. 그럼에도 허다한 신학자들이, 5세기의 어거스틴을 선두로 해서 이렇게 단순한 죄의 정의를 불만족스럽게 생각해왔다. 그런 식의 단순한 정의는 신학적 깊이가 결여된 정의라 느낀 것이다. 그 결과 많은 신학자가 성경과 맞지 않는 새로운 죄의 정의를 만들어내고, 또 그와 더불어 새로운 그리스도의 본성, 즉 거짓 그리스도의 본성을 창출해 내었다.
신학자들이 만들어낸, 성경과 맞지 않은 새로운 죄의 정의란 다음과 같다."죄란 사람이 무엇을 행함으로 율법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영적 상태를 말한다. 다시 말해서 죄는 인간 의지의 행사 여하에 따른 것이 아니고, 타고난 인간의 상태이다. 행위는 인간 속에 있는 죄의 결과에 불과하다."물론 이 말 속에는 어느 정도 진리가 포함된 것이 사실인데, 인간이 죄를 짓는 것은, 범죄한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연약성과 유전적인 영향으로 말미암아 죄로 기울어지려는 성향, 그리고 그 속에 자리 잡게 된 이기적 성질 때문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죄는 의지의 행사가 있을 때 성립되는 것이지, 연약한 인간의 본성 자체가 죄는 아니다.
지금 기독교 안에는 죄에 대한 두 가지 정의가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많은 혼란과 오류와 거짓 복음이 기독교 안에 난무하고 있는 것이다. 자, 기독교 안에 있는 죄에 대한 두 가지 정의에 대하여 정리해보자.
A 원죄설"죄는 본성이다"라는 정의
첫 번째 죄에 대한 정의는 원죄설이다. 이것은 우리의 본성이 바로 죄라는 가르침이다.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서 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잘못된 본성이 있는 그 자체가 죄라고 믿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정의는, 우리가 태어날 때에 이미 우리는 잃어버린 바 되고 정죄 받은 상태에서 태어난다고 믿는 것이다. 곧, 우리는 지옥으로 갈 본성으로 태어났다고 믿는 것이다. 그리고 이 원죄설이 거의 모든 개신교인이 믿고 있고 이해하고 있는 교리이다. 원죄설은 우리가 숨을 쉬는 것처럼 우리의 본성 자체가 죄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하면, 우리는 우리의 본성과 늘 함께 있기 때문에, 다른 것은 할 수 없고 그냥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된다. 그래서 그런 정의를 가진 사람에게 복음은 항상 용서만 해야 한다.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항상 죄인이라 죄를 어떻게 할 수 없고, 다만 용서만 받고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대부분 기독교인이 믿고 있는, 성경과 맞지 않는 교리이다.
B 죄는 선택"죄는 우리의 선택이다"라는 정의
성경이 말하는 죄의 정의는 다르다. 성경은 죄는 우리의 선택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잘못된 본성을 유전적으로 받았다고 해서 자동으로 멸망 당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는 인간들이다. 우리는 악한 죄의 편과 선을 선택할 수 있는 의지와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로봇으로 만들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자신의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주셨다. 그분은 강제적인 굴종을 기뻐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모든 존재가 하나님을 선택하고 자원하여 봉사하도록 의지의 자유를 허락하셨던 것이다. 누구도 인간의 의지를 강제할 수 없다. 사람이 그리스도나 사단, 둘 중 하나를 선택하여 그에게 순종하기로 하면, 그때 그리스도든 사단이든 그 사람을 지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성경은 이 자유의지의 법칙에 대하여 잘 설명하고 있다.
●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롬 6:16).
●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니라"(벧후 2:19).
●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2~13).
●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고전 15:34).
●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롬 6:6,7).
이 성경 절들은, 인간이 자신의 의지의 선택권을 사용하여 죄를 짓든지, 선을 행하든지 하는 것은 인간의 선택에 달렸다고 말하고 있다. 만일 원죄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인간의 본성의 연약함과 연약한 모든 것이 죄라고 규정한다면, 위의 성경 절들이 인간에게 하는 요구는 정당하지 못하며 불공평한 것이 된다. 죄는 우리가 동의하고 선택할 때 죄가 되는 것이다.
유혹과 죄의 차이
많은 그리스도인이 유혹을 느끼는 자체를 죄라고 생각하며, 어떤 것에 끌리는 자체가 죄라고 말한다. 물론 우리의 본성이 연약하다. 그러나 성경은 타락한 영향을 받은 연약한 본성 그 자체가 죄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렇게 끌리는 것은 죄가 아니라 유혹이다. 죄에 대해 엄밀하게 따져서 정리하자면, 죄가 성립되는 데에는 단계가 있다.
죄가 성립되려면, 먼저 유혹을 받는 단계가 있다. 유혹은 우리를 자극하는 요소, 즉 보는 것, 듣는 것 등으로부터 온다. 그래서 우리의 내적인 것이 유혹을 받아서 끌려야 하는 것이다. 그다음 죄는 유혹 뒤에 온다. 곧, 유혹을 계속 품어야 죄가 되는 것이다. 야고보는 이 단계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다."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예를 들어, 불순한 생각이 죄가 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일을 더 해야 하는데, 그것은 그 받은 유혹과 생각을 계속 품고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약 1:14)라는 말씀처럼, 사람은 처음에 유혹을 받고, 그 욕심을 계속 품어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유혹을 죄가 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보통 그리스도인들은 첫 번째 단계(끌리는 단계)가 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유혹과 나쁜 생각을 계속 품어 죄를 짓는 것을 죄라고 말한다. 예를 하나 들어 보자. 어떤 아버지가 아들에게 머리를 길게 기르지 말라고 했는데 아들이 장발족이 되었다 하자. 이때"죄"는 아들의 몸에서 머리털이 자라는 자연적이고 생리적인 현상이나 힘이 아니고, 이발하지 않은"행위"그것이다. 인간은 범죄로 연약해진 인성을 타고났으므로, 누구나 머리에서 머리카락이 자라게 되어 있듯이, 천성적으로 죄로 기우는 경향, 이기적인 경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경향이 죄는 아니다. 죄는 사람이 자기의 의지를 하나님의 의지와 연합시키지 않은 까닭에 그 경향에 굴할 때 오는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무염시태설
어거스틴이 원죄설을 주창한 이후, 천주교는 물론, 개신교의 대부분이 이 원죄설을 받아들이고 말았다. 그런데 원죄설을 믿는 사람들에게 큰 딜레마가 하나 생겼다. 그것은 예수께서 인간이 되어, 곧 성육신 하셔서 이 땅에 오셔서 구주가 되셨는데, 원죄설을 믿으면 인간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 되게 되어 있으므로, 예수님이 자연히 죄인이 된 것이다. 또한, 죄인은 구세주가 될 수 없으므로 큰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이 생각해 낸 것이"무염시태설"이었다. 그 교리는 성모 마리아는 은총을 입어 하나님께서 죄를 없애주셨고, 그래서 죄가 없는 우리와는 다른 본성을 가지게 되었으며, 성모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예수 그리스도 또한 죄가 없는, 우리와는 다른 본성을 가졌다는 교리였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우리의 구세주는 될 수 있지만, 우리와는 다른 본성을 타고나셨으므로 한 혈육이 되실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 그리하여 성경이 말하는 놀라운 진리, 곧 우리와 같은 본성을 타고나시고 한형제가 되시며, 우리 곁 가까이에서 모든 문제를 이해하고 도우시는, 한 혈육이 되어 우리를 동정하시는 예수님의 본성에 대한 놀라운 진리를 부인하는 결과를 낳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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