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47대 대통령 취임식 생중계가 한참인 시각에 집을 나선다. ( 08:40분)
2025년 1월 21일(화) 핸드폰을 열어보니 아침 기온이 영하 3도라고 일러준다.
09:30분까지 대전역 앞 501번 마전행 시내버스 주차장에서 만나기로 약속이 잡혀 있다.
어제(20일)가 대한이었으니 해도 제법 길어지고 햇살도 많이 따뜻해졌지만 날씨는 여전히 차가웁다.
미세 먼지가 심하다는 일기예보에 마스크를 준비하라는 보배의 당부가 떠오른다. 그런대로 괜찮은 날씨.
마전행 501번 버스 노선을 보니 문득 보문산성에서 만난 한국동란 당시 미 24사단장 딘 소장의 탈출로가 떠오른다.
1950년 7월 20일 한 여름 한국전쟁의 그 길을 한 겨울에 가본다.
대전 원동 사거리에서 왼쪽의 세천방면으로가야 했을 길을 곧개 뻗은 금산 길로 달렸으니, 찝차 운전병을 나무라야 할까,
운명의 여신의 선택이라고 해야 할까.
원동사거리를 지나 목적지에서 내린다.
주차장에는 몇 대의 차만 있을 뿐이다. 이용객이 적은 한산한 주차장을 뒤로 하고 안으로 들어간다.
멀리 보이는 산 줄기는 식장산에서 머들령을 지나 만인산 쪽으로 내달리는 능선.
충청도와 전라도( 과거 금산군)를 갈라놓는 경계선 역할을 한다.
어린이 눈썰매장을 옆으로 끼고 돌아선다.
매표소 앞에는 몇 명의 어린이들이 기대감을 안고 표를 사고 있다. 예쁜 것들,
산림욕장으로 들어가는 다리를 건넌다.
앞으로는 냇가를 따라 얼음 용솟음들이 아침 햇살 사이로 보인다.
갑자기 싸늘한 느낌이 든다. 심리적인가?
아니 어떻게 이런 곳에 얼음동산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우리나라에서 가장 추운 곳, 강원도 철원, 연천 하고 생각하니 그곳에 얼음 축제가 떠오른다.
그렇다면 이곳도 대전에서 가장 추운 곳이란 말인가?. 기가 막힌 아이디어요 발상이다.
추운 곳에 얼음 동산, 눈 썰매장을 만들고.
심심산골 두메산골은 춥고 또 추운 곳이다. 높은 산으로 둘러싸고 있으니 추울 수 밖에.
인공 수도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수가 얼음으로 얼어서 개나리 천변 위로 하얀 얼음꽃을 만들어 낸다.
봄에는 노란 개나리꽃들이 일품이라고 보배가 알려준다.
머들령 가는 길에 산성 보루를 보려고 지나갔었던 오래전의 일이다.
안내도에는,
왼쪽 식장산(597m)에서 오른쪽 만인산까지 능선길이 나와있다.
왼쪽으로 얼음탑 동산이 보인다.
몇몇의 관람객들이 보이고, 사진 동호회원인지 촬영에 열중이다.
돌탑. 무슨 돌?, 벽돌?, 전석?을 레고블럭 쌓듯이 쌓아 놓은 탑이다.
대단한 정성의 결과물이다. 무슨 염원을 담아서 쌓은 것일까?
한 개인이.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고만고만한 돌들이 마치 잘 다듬은 벽돌 모양이다. 자연석인가?.
이 많은 돌들을 일일이 다듬고 다듬어서 쌓았단 말인가?
돌탑 앞에는 꽃양배추가 얼음 성애를 잔뜩 뒤집어 쓰고 겨울을 이겨내고 있다.
살아 숨쉬는 한 편의 시(詩)이다. 소리없는 외침이다.
돌탑 궁전같다. 출입문도 있고, 왕성 궁궐문 같다.
동남아시아 캄보디아 풍 같기도 하고...
길 한 켠에 까만 비석이 보인다.
자세히 들여다 보니 이 돌탑을 쌓은 주인공 이덕상씨를 기리는 공덕비 같은 것이다.
( 이 덕 상
공은 (*충남)부여군 은산면 내지리
(*19) 31년생. 인천 이 씨 3 2 대 .
(*19) 60년대 겨울 농한기에 마을
뒤에 7년간 500평의 성(*城)을
쌓 아 1 9 7 1년 대홍수 때
산 사 태 를 막아 많은 인명과
재 산을 보 호 하 였 다.
한 사 람의 노력한 힘이 대단
함을 느 끼 며 시 민 의 건 강 을
기 원 하 며 이 곳에 탑을 쌓아
볼거리를 만들었다.
2 0 0 3년 9 월 시작하여
2 0 0 7년 5월에 완 공.
공은 혼자 사물로 국악민요를
연주하여 노약자가 있는 곳에
다니며 공연도 한다. )
(*표 부분은 필자의 가필임)
조금 아쉽다. 좀 더 멋지게 조성했더라면.
( 공(公)이 사양한 것일까? )
한 사람의 집념이 이런 결과를 내 놓았다니,
감탄, 감탄이다.
(*나는 무엇을 이뤄 놨단 말인가?)
계곡을 따라 올라 갈수록 자연스런 돌탑들이 보인다.
오른쪽 산기슭에 있는 돌탑들이 더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성돌 쌓듯이 정성을 들여 쌓은 탑들. .
문든 (전북)진안 마이산 탑사가 떠 오른다. 이갑룡 처사라든가 하는 분이 쌓았다는 돌탑.
서낭당 돌무더기도 떠오르고, 우리나라 고대 신앙의 흔적이 아닌가 하고 .
나무 다리 교각도 돌탑 방식을 이용해서 쌓았다.
다리를 건너니 오른쪽 산기슭에도 돌탑들이 무더기로 보인다.
식장산으로 가는 등산로 표지판도 보이고.... 저 길로 머들령 고개도 가보고, 그 위에 산성도 둘러보았는데
머들령 시비는 지금도 여전하겠지... 정감있는 고갯길과 그 아래 주막촌.
문득 내가 지족산(216m)에 쌓고 있는 돌무더기와 비교된다.
<아래 사진은 유성 반석동에 있는 지족산(216m) 돌무더기 탑이다.
맨발 산행을 다짐하기 위해 출근부처럼 쌓은 돌 징표이다.>
다리를 건너서 잠시 휴식 시간을 갖는다.
만보가 준비한 따끈한 쌍화차와 찹살떡으로 요기하고 보배의 찐 계란도 먹고,
다시 걷기를 계속한다.
돌탑 둘러보기도 끝나고 얼음탑도 끝난 곳에서 들어왔던 산림욕장 출입문 경계를 벗어난다.
산림욕장 아래로 난 대전천 상류 물길을 따라 나있는 데크길을 얼마간 밟고 내려간다.
데크길이 끝난 도중에 웬 시레기가 보인다. 무우청 시레기이다..
오랜만에 보는 옛날 추억이 떠오르게 하는 시레기.
시레기 죽도 배불리 못 먹던 그 시절 넘기 힘들었던 보릿고개 시절이다.
단군이래 제일 높고 높아 넘기 힘들었던 고개, 지금은 세계 G7의 위용을 자랑할 정도가 되었다니.
미국은 '더 위대한 미국(MAGA)'을 부르짖기 시작하지만,
우리에게도 '홍익인간'이 있고, 세계 공용어가 될 수 있는 '한글'이 있고, 정(情)이 있고, K-culture 가 있다.
세계를 다 껴안을 만한 넉넉함을 가지고 있다. 미국까지도 말이다.
" 공주말" 다리가 보인다. 웬 공주말인가. 공주(公州)로 부터 한참 떨어진 곳인데
성지기가 설명한다. 공주목 관내의 마지막 동네라는 뜻이라는데.
그러구 보니 이 산 너머에는 전라도 금산 땅이 시작되는 곳이다.
충청도 공주 관내의 맨 구석진 동네라는 지명이다.
지명 속에 역사가 숨쉬고 있구나.
문경 점촌(店村)이 옹기장수 옹기점에서 나왔다는 만보의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박해받던 천주교 신자들이 옹기장수 노릇하던 곳에서 나온 이름.
문경 성지 순례가 생각난다. 그래서 '점촌'이구나.
'공주말'다리를 건너니 수형이 딱 잡힌 느티나무 한 그루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마을 입구를 지키고 있다.
100년이 채 안 된 젊은 보호수이다.
삼괴동 느티나무 보호수요, 정자노릇하는 정자목이기도 하다.
세 그루의 느티나무가 있다는 뜻의 삼괴동.
마을 수호신 노릇하는 느티나무 괴목이다.
대전천 냇물을 따라 걸어 내려간다. 주변에 갈대숲을 이루고 냇가 소나무는 푸르기만 하고. 냇물은 파랗다.
노변정담(爐邊정담): 화롯가에 둘러 앉아 고구마 구워 먹으면서, 밤 구워 먹으면서 옛이야기 나누던 시절처럼
대전천을 걸어내려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천변정담(川邊정담)이라고나 할까.
멀리 백로 한 마리가 보이고 그 앞으로는 왜가리 한 쌍도 보인다.
잘 닦여진 천변 포장도로 위로 라이더(Rider)인지 자전거 타고가는 여인네도 보이고.. 천변 길 한쪽으로는 가로등도 보이고.
한쪽에는 오폐수 하수도도 "한국산'이라는 뚜껑을 달고 환풍기와 함께 가지런하다.
이 만큼 하천관리도 선진국 수준이다.
길을 따라 내려가니 백로가 더 가까이 보인다. 미동도 하지 않는 다.
오른쪽 프라타너스 가로수 길은 옛날 국도, 아마도 딘 소장도 지나갔을 지도 모르는 길이다.
왼쪽으로는 새로 생긴 국도가 있고 두 길 가운데로 냇물만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그 길을 따라 걸어내려간다.
푸른 겨울 하늘에 얼음골을 벗어나서인지 이제는 한기가 많이 가셨다.
지난 여름 폭우로 부서진 다리를 다시 놓는 공사로 안들어 놓은 임시 보행교를 지나니 산내 소방서가 보인다.
시내버스 승강장을 찾아 보는데 마침 오던 501번 버스가 우리 가까이서 정차한다.
왠 일인가? 버스운전기사끼리 교대하는 것, 덕분에 좀 더 걷지 않고 승차한다.
다시 왔던 길 따라 대전역으로 되돌아간다.
굴밥집에서 늦은 점심으로 오늘 일과를 마무리한다.
< 돌탑 >,
한 인간의 집념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보여주는 생생한 삶의 모습을 마음 속에 담아 갔고 간다.
내 모습도 되돌아 보면서.
역앞 노점에는 삶의 냄새가 짙게 배어 있다.
설명절(1월 29일)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2025.1월 24일 (금) 카페지기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