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님 별따는 운동하지 않으면 가을에도 못 갑니다.
들머리 제일 길고 피치도 13피치예요
운동하고 몸 만드세요.
무슨 몸을?
이 연세에?
또 한시를 또 가라고?
음...
나 이래도 20년 넘게 요가를 한 몸이야
내 연세에 유연성은 날 따라올 사람 없어
일자로 다리 찢어지고 허리 굽히면 배가 바닥에 닿고(배가 나와서 그럴 수도 있지만)
효자손 필요없이 등 어느 곳도 다 손이 닿는데 무슨 몸을 또 어떻게 만들어?
도대체 왜들 나에게 그러는 거야!
얼굴마담이라고 하질 않나
내 몸을 스캔했는지 암벽할 몸이 아닌 백화점에서 쇼핑이나 할 몸이라고 하지 않나!
으앙 훌쩍훌쩍 흑흑
상처 입어 한 숨도 못 자고 결국 몸살이 났다. 유선대를 배정 받은 짝꿍은 희희낙낙이다. 얄밉다.
"누나 별따 충분히 갈 수 있어요. 당겨드릴게요. 만약 안 되면 저랑 내려와도 되고요"
사슴 눈처럼 착한 수현이
"싫어. 네가 선등일 텐데. 네가 빠지면 안 되지. 민폐야."
상수 아우에게서 연락이 왔다
"누나 별따든지 한시든지 결정하세요. 별따는 들머리가 길어요"
짝꿍이 만류한다
"지금 컨디션도 별로인데 별따 안 돼! 무조건 한시로 가!"
적은 가까이에 있다더니...
결국 한시로 낙찰
"난 안 갈 거야!! 자기만 가!!"
불어터진 목소리가 아니면 이상한 거다
"당신 안 가면 나도 안 가지 나 혼자 뭐하러 가"
"바위하러 가면 되지! 이렇게 아픈데 어떻게 가?"
종로던가? 명동이던가? 어디든 뭐시 중한디
종로에서 뺨 맞고 명동에서 화풀이다
"왜 신경쓰지 않아도 될 말에 신경쓰고 허구헌날 아파?"
"아프고 싶어서 아파? 만민평등 인간존중의 사상을 갖고 있어서 그래. 보기보다 나 연약해. 예민하고. 쉽게 상처 받고 병 나고."
"그러니까 왜 그러느냐고? 모든 사람들 말에 상처 받을 필요가 어디 있어? 그러지말고 간다고 약속을 했으니 병원가서 링거 맞고 주사 맞고 약 타서 복용하고 가"
'그렇게 해서 가야할만큼 바위가 나에게 의미가 있을까?'
등지선배가,
"후배님! 올해부턴 신청한 사람 중에 한 명만 빠져도 그팀은 아예 못 가요. 약속했음 가세요."
그래? 그럼 안 되지!
가자!!
링거 맞고 주사 맞고 약 타서 복용하고 무거운 몸을 차에 실었다
차의 속력처럼 컨디션은 최악을 향해 달렸다.
가보니 등지선배 말은 뻥이다
'이 인간 감악산에 팀들과 정비하러 오면 행동식이니 뭐니 주나봐라!'
반가운 얼굴들과 보고 싶은 얼굴들을 보니 힘듬이 잊힌다
잘 왔다는 생각이 살짝 든다.
늦게 와 미녀들을 찾으신 스마일 변기태 회장님
범접할 수 없는 멋진 포스의 종남언니
자상한 오인복 동문회장님
무서운 상수국장
무서운 국장을 꼼짝 못하게 만드는 경숙아우
말이 병기인 최병기님
룰루랄라 진우아우
몽유도원에서 올라가기 바빠 사진까지 찍을 생각조차 못 했는데 일일이 사진을 찍어 추억을 챙겨주는 추억의 배려꾼 배인옥 선배님
항상 음식으로 감동을 주는 쉐프 명관 선배님
볼우물 예쁜 우리 수연이
베이비 피부 관식이
늠름한 경원이
사슴눈을 가진 착한 수현이
원효보살 준호아우
속 좋은 영달이
만능재주꾼 상렬이
차분한 명주
쾌활한 지선이
보기만해도 흥이 나는 영숙이
새롭게 생긴 동생 수진이
어른스런 지유
매바위를 한다는 속 깊은 현민이
눈물 많은 울보 정혜
얼굴이 반쪽이 된 성숙한 은숙이
방랑쟁이 선숙이
사랑 배려꾼 조카 진우
쭉쭉빵빵 미녀인 조카 며느리 혜은이
미녀선등대장 혜숙언니
바위의 정석 천익아우
사령탑 동빈대장님
아쉽게 잠깐 아침에 본 똑소리 나는 미량이
옆에 앉은 분이 낮이 익어
"우리 어디서 뵀지요?"
"내내 옆에 앉아 있었는데 황금복이요"
"아아 맞다! 황금불꽃! 자기야, 이 분이 내가 말 한 황홀한 불꽃을 갖고 계신 선배님이야"
나와 마주 앉은 47기 분이 묻는다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지요?"
찬찬히 뜯어본다
말끔하게 머리를 잘랐다
"아아 생각났어요! 난민!"
"난민?"
"네 15일 장비교육 때 두꺼비인지 개구리 바위에서 우쿠라이나 난민처럼 파란 비닐 둘러쓰고 졸고 계셨잖아요. 저체온증으로 죽어가는데 왜 안 깨웠냐고 랄랄하셨던 분... 전 눈을 감고 있기에 강의에 심취해 계시는 줄 알았는데 저체온증으로 잠이 와 죽어가고 있는 중이었다고..."
"나 죽어가고 있었다고요"
"네네 다음엔 꼭 깨워드릴게요"
지난 가을 한시길에서 초짜 셋을 이끌고, 춘클까지 리딩해 준 멋진 프로의 포스를 갖춘 유순준 선배를 만나 반갑게 인사했다
행사가 끝나고 각자 배정된 방에 배낭을 부렸다
몸 상태가 안 좋아 약을 복용하고 일찍 씻고 누웠다
수연이가 들어와
"언니 교수님 자다 일어나 술 마시고 있어!"
"뭐라고? 일찍 잔다고 밥 먹을 때 소주 1병 마셨는데 또 술을?"
방으로 가보니 술방이 꾸며졌다
"미쳤나봐. 내일 암벽인데 민폐를 끼치려고 그래?"
"박선희! 마른 안주 좀 가져와!"
얼레? 저 인간이 술을 마시더니 간이 배 밖으로 나왔네
종남 언니가
"들어와 들어와 안주 내가 가져올게!"
"저 사람 언니에게 넘길게 언니가 책임져~~"
방으로 들어와 다시 누웠다
수연이가 교수님이 계속 마시고 있다고 한다
"놔둬라, 한 두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알아서 하겠지"
3시에 자동 기상
언제 들어왔는지 수연이 선숙이가 자고 있다
일어나 근육들이 풀리게 뜨거운 물을 몸에 쏟아부었다
장비들을 다시 점검해 정리하고 대충 찍어바른다
이리 바르면 뭐 해! 금방 땀에 엉망이 될 텐데!
4시가 되자 수연이 부시시 눈을 뜬다
선숙인 안 간다고 행동식까지 주고 다시 눕는다
아침을 먹고 선숙이가 빠져 4명이 된 이진우아우.양미정. 조수연. 나.
말구를 맡은 미정인 암벽 구력이 10년이란다
모두 빠져나간 다음 느긋하게 제일 늦게 출발했다
한시길 들머리와 날머리는 헷갈린다
자주 와 본 곳이 아니니 당연하다
지난 가을엔 깜깜한 새벽에 출발해 해드렌턴을 쓰고 왔었다
"야~~한시길을 이리 환할 때 온 건 처음이네"
진우대장도 신기한가 보다
여유롭게 도착해 1피치는 장비 없이 통과
오늘 처음 선등을 할 수연이가 뒤따른다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자일까지 매고 톱을 서다니 젊음이 좋긴 좋다
하긴 젊음을 이길 장사는 없지
2피치에서 장비 착용했다. 어머어머 나 얼굴에 살쩠나 봐 핼맷이 조여져 잠기지 않는다. 늘리는 것도 귀찮아 억지로 얼굴을 구겨넣었다. 암벽이 아닌 목이 졸려 죽을 것 같다.
"나 움직이지 않음 목 졸린 줄 알아"
암벽에 붙었다
수연인 예쁘기도 하지만 힘도 좋고 받아들이는 것도 빠르다
문득 21기 동생이 생각난다
10년이 넘었으니 수연이보다 젊은 나이였겠지
그땐 암벽하는 여자들도 드물었고 인수봉 선등을 치고 싱글에 얼굴까지 예뻤으니 대접받으며 했을 거다
나이가 원수여
"누나! 좀 일찍 오지 왜 다 늙어서 와".
찬두아우가 두꺼비 암장에서 놀렸다
"그러게 말이다! 제갈공명이 아닌 이상 앞일을 내다 볼 수 있겠냐"
옆에서 진우아우가 수연을 향해 소리친다
"애매한 구간이긴 한데 좀 올리가면 홀드 있어! 야! 임마! 거기거기 홀드 있잖아!!! 저 새끼 저거?야!!
이 자식아! 왜 그걸 못 넘어!!"
"진우아우!!! 자라나는 새싹에게 용기를 줘야지! 무슨 짓이야! 지금 자일넣은 배낭 매고 저길 넘는 거 쉽지 않잖아!"
"누나, 욕을 먹어야 오기가 생겨 하게 돼요"
"그건 아우고! 쌍팔년도 유격훈련 받아? 지금은 상병도 월급 100만 원을 받는 시대야! 수연아 할 수 있어!! 수연이 화이팅!!! 잘 한다!!!" 힘내자!!"
"이그 저 녀석! 야야! 그냥 배낭 걸어두고 올라가!"
배낭을 풀더니 가쁜히 올라간다
진우아우는 신경이 곧두서 계속 소리를 지른다
"말이 짧다!"
그 와중에 수연에게 주의까지 준다
선등이 뭐라고!
나라면 돈을 줘도 안 하겠네!
2피치에서 왼쪽이 더 쉬울 것 같아 진행했는데 이끼가 있는 걸 몰랐다
주르륵~~~
밑창을 갈고 처음인데!
앗 2만 원!
날아갔다
탠탠!!!
오른쪽이 쉬울 거라는 프로 미정이 말을 들을 걸!
미정인 8월에 미국 어디더라?
요새미티는 아닌데...
하여튼 원정을 간단다
미정인 하얀 입수건을 쓴 모습이 싫다던데 내겐 프로답고 멋져 보인다
나도 하나 장만해야징
지난 가을 한번도 미끄러지지 않은 한시에서 미끄러져 무릅이 까지자 몸과 마음에 스크러치가 생기고 경직됐다
그래 겸손해야 해
쉬운 바위는 없어
"언니! 무릅보호대는 올라갈 때 하면 오히려 힘들어 하산할 때 해야해"
팔랑귀 덕에 바지에 피가 밴다
짝꿍에게 풀 좀 베라니까 무식하게 조선낫을 휘둘러 쇠에 맞아 상처가 났었다.
낫의 날이 아닌 게 천만다행이었다.
저 인간이 혹시 일부러 휘두른 거 아녀?
나아가며 딱지가 앉았는데 미끄러지며 딱지가 벗겨졌다.
동생은 밑창을 한번도 갈은 적이 없다던데...
젊기도 했지만 그만큼 잘 했다는 거겠지
딸이 8명인데
도대체 난 누굴 닮았을까?
졸업할 때 동생이 선배들에게 징징거렸다
"이 언니가 형제들 중에서 제일 작고 비실비실하고 약하고 골골해요. 난 언니가 졸업도 못 할 줄 알았어요. 그런 언니가 졸업을 했으니 하다못해 실패상이라도 줘야하는 거 아니에요?"
첫개봉한 미정의 자일 색이 미정이 처럼 진홍색으로 예쁘다
빌레이 볼 때 자일이 자꾸 미끄러져 흘러 내린다
줄이 계속 꼬였다.
미정이가 진우에게
"빌레이를 내가 보는 게 어떨까?"
"아니야. 누나도 해 봐야지!"
진우야 고맙다 흑흑
앞 자일에 탠션은 걸려있고 뒷자일이 바위에 끼어 오도가도 못하고 움직이지 못 할 땐 힘들기도 했다. 중간중간 바위에 낀 자일을 털어야 했다.
앗찔하고 날카로운 능선을 진우가 올라간 발자국을 따라 조심조심 올라가야 했다. 자일을 달고 오니 무겁다.
무서운 구간에서 영혼이 가출해 퀵드로에 뒷자가 아닌 앞자를 끼기도 하고
"누나 다시 내려가서 바꿔 끼고 와"
열심히 올라왔는데 다시 내려가야 하는 허탈함
세상에 다 좋은 건 없다
다친 무릅 쪽 발에 쥐가 난다
계속 쥐가 나면?
생각하고 싶지 않아 통과!
올라가다 능선의 바위를 붙잡고 대기!를 외치고 잠시 쉰다
한 해 한 해가 다르다
"누나 운동 안 하면 이제 걸음도 못 걸어"
찬두 아우의 말이 협박만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세월을 잡을 장사가 있냐고요
잡진 못해도 더디게 할 순 있겠지
감악산 둘레길이라도 걸어야겠다
내려갔다 올라갔다를 반복했다.
암벽화를 벗고 릿지화로 갈아신기를 반복.
진우 수연 미정인 전부 릿지화로 올라간다
부럽다
"누나 거기 줄 깔지 않고 살살 올라가 봐"
살살 기어 올라가 다시 내려오고 다시 기어올라갔다 내려오고
뭐가 이래?
지루하다
차라리 인수봉이 쉽지
발뒷꿈치가 쓸리며 아프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정상에서 암벽화를 벗어보니 모래가 발뒷꿈치에 끼였었다
다행히 까지진 않았다
딱지가 벗겨 피가 밴 상처에 알콜솜을 댔다
으악!!!!
정상의 뷰는 역시 좋다
멀리 바다와 속초시가 보인다
장엄한 토왕폭포도 보이고
솜다리 경원대 별따 길이 보인다
우리 환영팀이 정상에 올라간 듯 아득하게 보인다
전생에 복을 쌓은 사람이 많은 듯 앞 팀도 뒷 팀도 없다
잠시 쉴 때 생릿지를 하는 팀들이 지나갔다
정상에서 잠시 뒤따라온 팀들이 앞서 내려갔다
밀리지 않고 한가했다
잠시 요기를 하고 인증샷을 찍고 이제 아슬아슬한 돌기들을 따라 내려가야한다
내려갈 걸 왜 힘들게 올라왔을까
상처만 남겨두고 떠나갈 길을 무엇하러 왔던가
추억이 아름답게 남아 있을 때 미련없이 가야지
흥얼거리며 타고 넘고 뛰고 미끄러지듯 내려가고 아득한 절벽 옆으로 살살 기고 다시 올라가고 깍아지른 절벽의 바위들을 붙잡고 한 발 한 발 조심조심 걷는다. 무서워 다리가 후들거린다
이 구간이 종남 언니가 한편의 쉬~~라고 했던 구간인가?
심장이 쫄깃쫄깃하다
대기 때 솜다리가 폈다고 미정이가 알려준다
솜다리 처음 봤다
내 눈엔 솜다리보다 작은 수국같이 핀 흰 꽃이 더 예뻤다
드물게 노란색 꽃도 있었다
너무 예뻐 찍을까하다 만사가 힘들고 귀찮아 눈에만 저장!
수연이가 로린락으로 빌레이를 본다
"수연아 그걸로 빌레이 봐도 돼?"
그럼요 중간 빌레이는 이게 간편해요. 자일 하나만 잡아도 되니까요"
역시 사람은 배워야해
하강포인트를 향해 마지막 바윗골을 오른다
처음엔 제법 하강답다
다음 하강은 구렁텅이 하강
자일 한 동으론 안 돼 두 동을 건다
수연이 먼저 내려갔다
진우아우가 아래를 향해 소리친다
"수연아!! 수연아!! 조수연!!! 야!!! 임마 내려갔어!!!"
너무 멀어 소리가 안 들린다.
"아무리 선등이지만 처음 온 길인데 구렁텅이 하강을 시키면 어떡해!!! 자일이 바위에 낄 수도 있는데! 아우가 먼저 내려가야지!!!"
"에이 정말 저 녀석!!!"
주섬주섬 배낭을 매고 내려간다
그 다음 나
"오토블록 안 하면 나 못 내려가"
기존길에서 날 살린 게 오토블록이다
그때 수연이가 미정이 폰으로 하강완료를 알렸다
미정이가 친절하게 오토블록을 쉽게 매는 법을 알려줬다
정말 싫은 구렁터이 하강
바위에 낀 자일을 빼가며 털면서 하강한다
다음 피치는 짧아 자일을 던져야한다
자일을 말아던지고 진우가 말번이고 내가 하강이다
밑에 줄을 잡고 있으니 오토블록하지 말고 그냥 내려가란다
멘탈붕괴
하강기 설치하고 자일을 당겨 하강기를 위로 올려야한다
진우와 나 사이가 절벽으로 떠있다
장비를 믿어야 하는데 무섭다
"아, 이거 누나 안 배웠구나!"
안 배우긴 다른 사람들보다 2배는 더 배웠는데!
한시 개미들은 모두 숫것들인가
땅에 발을 딛고 있을때마다 왜들 나에게 다 몰리는지 머리로 다리로 기어들어 깨문다
이것들이 아무리 작아도 눈들이 없나!
야 너희들!
번짓수가 틀렸어!
수연이나 미정이에게 가서 깨물어!
말을 안 듣는다
어른 말을 안 듣고 기어오른 너흰 죽어야해!
몸으로 기어올라오는 놈들
몆 마리 죽였다
미물이지만 생명인데
양심에 찔린다
갑자기 자기들 영역에 침입한 내 다리가 무서워 그들 딴엔 나처럼 살기 위해 기어오르고 정신들이 없겠지
후딱 내려가자!
열심히 내려가고 있는데 미정이가 밑에서 소리친다
"언니! 언니! 오른쪽 나무 있는 곳으로 와요!"
"왜? 줄은 왼쪽에 있는데?"
"거기 나무에 걸린 자일 뭉태기 집어서 던져요!"
머시라? 오토블록도 없이 외줄하강을 하는데 자일을 집어서 던져?
왼손으로 하강기 밑을 잡고 부들부들 떨며 오른발로 자일 뭉태기를 들어올려 잡는데 다시 떨어진다
진우대장이,
"그냥 놔 둬! 내가 내려가면서 처리할게!"
수연이가,
"언니 내가 올라갈게!"
위에 있는 내가 집어던지는 게 합리적이겠지!
이번엔 차분하게 다시 발로 자일을 들어올려 나무를 휘감고 있는 자일을 한 바퀴를 돌려서 집어 던졌다
성공!!!
나한테 이런 거 시키지 마.
땅에 발을 딛고 하강을 완료했다.
시스템이 둔탁해 반장갑을 끼었는데 하강기가 뜨겁다
역시 반 장갑은 안 되겠다
선생님 말씀을 들어야한다.
귀찮아도 시스템 완료하고 장갑을 끼어야겠다
하강을 끝내고 장비를 풀고 그동안 참았던 실례를 할 자리를 찾았다
지난 가을엔 밤에 하강을 끝내 나만 안 보이면 됐는데 낮에 하강을 마치니 자리를 찾는 게 마땅치 않다
모든 곳이 개미들 천국이다
발목으로 마구 기어오른다
내가 벗으면?
으으 생각하기조차 싫다
남자가 절실히 부럽다
휴게소까지 따라온 일편단심 끈질긴 놈도 있었다
몽유도 한시도 하강은 정말 싫다
장비들을 무조건 쓸어담는데 수연이 퀵드로 하나가 없단다
다시 꺼내 확인하니 나에게 있었다
"누나 손버릇이 안 좋네"
킥킥거리며 스틱을 찾는데 없다.
분명 배낭 옆에 끼워놓았는데...
장비를 착용할 때 말번인 미정이가 보지 못하는 곳에 안전하게 고이 모셔뒀나보다
설악산 산신령님이 연세가 드셔서 스틱이 필요했나보다!
무사히 내려오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스틱 좋은 것이니 오래오래 아껴 쓰세요
진우아우가 썩은 몽둥이를 찾아 그거라도 집고 내려오란다
썩은 동아줄이 아닌 썩은 지팡이
눈물나게 고맙다
진우야
내려갈 때마다 바위들은 계속 아래로 구르고 아슬아슬한 구간엔 누군지 모르지만 나무와 나무 사이를 연결해 자일을 픽스시켜놨다. 배려하는 마음에 뭉클.
조심조심 자일을 잡고 내려간다.
맨 뒤에 오는 미정이에게 먼저 내려가라고 했다
"언니가 뒤쳐질 텐데"
"뒤따라 갈게 기다려"
"언제까지 기다릴 수도 없는 일이니..."
"나도 발이란 게 있는데 언제까지 기다리게 하겠냐"
미정이 내려가자 유유자적 내려간다
짝꿍이 잘 가고 있는지도 생각하고
해가 보이지 않고 숲이 깊어진다
코 끝에 습기가 묻어난다
물가가 가깝다는 거다
물소리 까만밤
반딧물 무리
그날이 생각나 눈 감아 버렸다
검은 머리 아침이슬 흠뻑 맞으며 토항골 계곡을 건너가던 사람
나도 같이 따라가야 하는 길인가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될까
오늘 밤 일기에는 이렇게 쓴다
다시는 한시길을 오지 않겠다고
흥얼흥얼
토왕계곡에서 먼저 내려온 진우, 수연이 족욕을 하고 있다
미정이가 뒤따르고
"누나! 거기 물기가 많아 미끄러지니까 조심해요!"
말이 떨어지자마자 주르륵 꽈당!!!
진우가 혀를 찬다
"에이! 다 와서!"
"원래 다 와서 사고나는 거야"
툭툭 털고 일어나보니 사지가 멀쩡하다
나뭇잎이 받쳐줬나보다
아님 스틱을 헌사해서 산신령이 고마우셨나?
지난 해 가을
하늘의 별들이 비처럼 쏟아지던 밤
토왕골 계곡에서 발을 담그며
"이제 다 내려왔다!"
순준선배의 목소리
초짜 3명을 데리고 무사히 내려온 안심석인 목소리였다
얼마나 긴장했는지를 알 수 있는 목소리이기도 했다
길을 잃지 않게 잠깐잠깐 뒤돌아서서 해드랜턴을 비쳐주던 배려까지
다 내려와 다리에 내려서자,
"오늘 암벽 무사히 마쳤습니다! 다들 고생하셨어요!"
멋진 선배다
추억이 있다는 건 마음의 서랍이 많다는 거다
그동안 고생한 내 발에 물을 주듯 찬물에 발을 담갔다
차디차다
설악 심화 때 뽑혀진 발톱이 많이 자랐다
진우대장도 긴장이 풀려 목소리에 여유가 생겼다
발이 얼 것 같다
춥다
대충 추스리고 일어나 다시 걷는다
수연이가 시무룩하다
"수연아, 힘들었지?"
"오늘 피로가 풀리려면 한참 걸릴 것 같아요"
"수연아 진우가 소리치는 건 다 너를 아끼는 마음에서야. 진우도 너에 대한 기대가 있으니까 그러는 거야. 오늘 컨디션도 좋지 않고 처음 와 본 길을 선등하는 건데 그 정도라면 넌 정말 충분히 잘 한 거야. 다들 제자를 기르는 스타일이 있잖아. 아무나 제자로 기르지 않지. 네가 자질이 있고 충분히 잘 할 것 같은 믿음이 있으니까 기르는 거야"
"알고 있어요. 언니, 진우선배 신사예요"
신사?
내가 모르는 신사부분이 있나보다
다리에 내려서자 진우대장,
"딱 13시간 걸렸네!"
고생했어!
진우아우!
덕분에 2번 째 한시길 무사히 마쳤어!
예쁜 수연이 선등 축하해!
미정아 고마워!
원정 무사히 잘 다녀와!
진우가 날 조용히 부르더니
"누나 내가 새끼새끼 욕하고 소리친 거 쓰지 마"
진우야
새끼가 무슨 욕이니?
애칭이지!
그리고 너 충분히 멋졌어
내가 그 사람을 믿어주고 선등을 치게 하는 건 자기가 선등을 하는 것보다 더 애가 타고 책임이 따르는 일이거든
그런 면에서 넌 아주 멋져!
내려오니 짝꿍이 멀쩡한 얼굴로 맞아준다
살아서 돌아왔네
"전 병찬이 형님만 챙기면 돼요"
제일 연장자에 실력이 없으니 당연하지
천익아우 고마워!
목이 졸려 숨이 막힐 것 같았던 핼맷이 헐렁헐렁하다
이래서 목이 졸렸던 거구나!
우리보다 조금 앞서 내려온 별따를 갔던 회장님이 힘들었다며 손에 난 작은 상처를 보여준다
겨우 그게 상처면 난 입원할 환자다
고딩부터 한 구력이 있으니
그 정도도 큰 상처일 수 있겠지
돌아오는 차 안에서 짝꿍에게 물었다
"유선대 어땠어?"
"멋있었어! 한시와 또 다르더라고"
"그래? 좋았겠다"
"그렇지. 내가 언제 또 유선대를 가겠어"
마음이 짠하다
"80에 인수봉 선등한 분도 있는데 아직 많이 남았잖아. 열심히 운동하자"
살아온 날들 보다 살아갈 날들이 짧은 우리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떠나야할 우리들이다
시간을 아껴가며 살아야한다
갑자기춥고 덜덜 떨린다
긴장이 풀려 몸살이 다시 오나보다
휴게소에서 핫쵸코를 사서 마셨다
내 돈 내고 핫초코를 사서 마신 게 처음인 것 같다
떨리는 게 좀 진정된다
찬범이 미정이를 내려주고 집에 돌아와 장비 중에 땀에 절은 암벽화와 하네스만 겨우 꺼내 놓았다
샤워하고 바로 기절
으으
우우
아아악
에고에고
아야 아야
우두둑
쩔뚝쩔뚝
핸드폰 지문인증 안 됨
설악환등의 선물이 아침에 속달로 도착했다
첫댓글 우리의 일정을 고스란히 글로 그림을 그려주시네요. 결론은 즐거웠다 재밌었다 해피엔딩 맞죠?
고생 많으셨어요~ 뒤에서 화이팅 외쳐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럼
무사히 마쳤으니 당연히 해피엔딩이지!
처음 가본 길을 선등하느라 고생했어!
합 편의 시 안갓는데 가본것처럼
느낌 셔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연이 선등한다고 고생 햇네
몸 잘 챙기고 화이팅입니다 ~^^
지우야
한 번 가 봐
정말 좋아
진우는 수연이만 이뻐하나봐요. 저에게 눈길 한번 안주고ㅜㅜ
수연 찬분하게 집중하는 모습 카메라에 담지못해서 아쉽네요
함께해서 즐거웠고 행복했습니다~~
언제나 응원해주신 선희언니 멋지십니다
그리고 카풀 감사합니다^^
에이 그럴리가
실력이 좋아
눈길 안 줘도 잘 하니까 미정이를 믿은 거지
선등을 맡겼는데 수연이가 실수하면 진우 책임이잖아
눈을 뗄 수 없었겠지
진우가 미정이에게 솜다리 꽃도 찍어줬나?
올라가면서 솜다리 많다고 알려줬잖아
말구 하느라 정말 고생했어 미정아
널 믿고 올라갈 수 있었어
그리고 하얀 입수건 프로답고 멋져
원정 무사히 잘 다녀와
어떤 행사든지 박선희님이 오시면 후기가 기다려졌는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시네요. 즐감합니다.
황금불꽃 선배님~~
만나 봬서 정말 반가웠어요
옆에 앉아있어도 모르다니
점점 노안이 되나봐요ㅠㅠ
그런데 울주 막영회 때보다 여위신 것 같아요
인간에게 불을 훔쳐다 준 죄로 평생 간을 쪼아 먹히는 고통을 감수하고
그 불로 인간이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살 수 있게 복을 준 프로메테우스
황금이기도 하고 불꽃 색이기도 한
황금
황금복
멋집니다
한 편의 시처럼 다가온 선희 누님 덕분에 설악산은 깊은 의미를 주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꽃의 여왕 장미보다 여전히 아름다우시니깐
오래오래 산에서 만나요♡
오우
우리 관식이 사회생활 잘 하네!
ㅋㅋ
농담이고
관식이 보러
자주 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