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의 글은
2014년 5월 21일 포스팅하였습니다.
산약초 산행의 리더인 안 목사님께서
연이틀 어르신의 농사일을 부조하게 되어 불가불 산약초 산행을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비 온다는 일기 예보를 믿고 3천여 평에 수수를 심었는데
다음 날 비가 오지 않아 물을 주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다른 농작물보다 수수를 심는 것이 평당 수확이 최고로 좋고
또 한 번 심어 놓으면 뒷손질이 거의 필요 없어 해마다 수수를 많이 심었습니다.
리더와 함께 산약초 산행을 가지 못하는 자유를
출사의 기쁨으로 채웠습니다.
전날은 경포대 생태 호수 공원과 경포대 해변을 출사하였는데
다음날은 설악산을 찾았습니다.
남부 지방에서 두어 시간 거리의 출사 장소는
대중 교통을 이용하여 거의 다 다녔습니다.
영덕의 해맞이 공원, 문경 새재, 합천의 해인사, 마산의 가고파 국화 축제, 지리산 한신계곡과 칠선계곡,
포항의 해맞이 공원, 울산 대공원, 울진의 농업 박람회, 함평 친환경 나비 축제 등등
그러나 대구에서 강원도를 당일 출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여 출사의 불모지였는데
강릉에서 설악산을 가는 길은 너무나 가까운 거리였습니다.
왕산과 강릉, 속초와 설악산으로 이어지는 길은
두어 시간의 가벼운 드라이버 코스였습니다.
설악산 출사는 출사의 희망 사항이었는데
산약초 산행을 하지 못하는 자유를 설악산 출사의 기쁨으로 채웠습니다.
그렇게도 멀리만 느껴졌던 주문진, 양양, 속초, 고성, 정동진이
이제는 두어 사간의 반경 안에 들어왔습니다.
지난 날 대관령 양떼 목장을 찾아서
차로 이동하는 시간만 왕복 8시간이나 걸렸는데 강릉 뒷산이 대관령입니다.
산약초 산행의 코스인 대관령은
이제 하루 생활권으로 들어왔습니다.
멀리서 가까이 느끼는 출사의 보람은
대한민국 안에서는 출사의 불모지가 없어졌습니다.
어디든 가고 싶으면 카메라 가방 메고 출사하는 자유의 기쁨으로
친환경 서정의 삶을 버킷 리스트로 담을 것입니다.
설악산을 찾아가는 길은
농촌의 어느 지역보다 정겨운 산촌 마을이 펼쳐졌습니다.
엉기설기 모여있는 산촌 마을은
한 폭의 그림같은 전원 주택으로 단장되어 도시민의 부러움을 샀습니다.
주변 경관에 넋을 잃고 보다가
추양 한경직 기념 기도원을 보았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였는데
호가 추양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영락 교회에서 성공적인 목회를 마치고 남한 산성의 한 자락에서 우거한 생활은
청렴한 목회자상을 삶의 교훈으로 남겼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부정적인 비판도 많이 받았으나
한국의 기독교를 대표하는 그 중심의 한가운데 있는 것은 청렴하며 정직한 삶의 향기 때문일 것입니다.
일제시대와 공산주의, 그리고 유신시대를 겪으면서
시대의 악을 종교적 신앙으로 대립과 반목으로 투쟁하지 않고 품어내었습니다.
바벨론에게 항복하는 자는 산다는 예레미야의 신탁은
반율법적이요, 반민족적이며, 비정통적이었지만 하나님의 뜻으로 나타난 계시였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에 대해 참혹한 비판보다
악한 시대의 악을 용서하는 십자가 복음의 정서로 품어낸 관용의 시각으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세상 속으로 들어간 복음의 빛은
어둠에 묻혀 본래의 빛을 발하지 못하지만 여전히 어둠을 밝히는 복음의 빛입니다.
시대의 악을 복음의 능력으로 완전히 변화시키지는 못하였지만
한국의 역사 가운데 교회사를 갖게 하였습니다.
잠시 상념에 잠기는 동안
설악산 입구에 도착하였습니다.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되었는데
문화재 보호비 명목으로 3500원을 받았습니다.
문화재 보호비 받아 국립공원 관리비에 쓰느냐고 물었더니
전부 문화재로 지정된 불교의 종교 재단으로 들어간다고 하였습니다.
설악산 국립공원을 찾는 수 많은 사람들은
문화재 보호비로 입장료를 받는 것을 아주 불편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언젠가 가야산을 찾았는데
가야산과 나란히 한 매화산에 등산객이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침 체육복 차림으로 운동하러 올라온 인근 주민에게
이렇게 좋은 산에 등산객이 한 사람도 없느냐고 물었더니
문화재 보호비 명목으로 입장료 받는 것 때문에
등산객이 완전히 끊어졌다고 탄식하였습니다.
국립공원 입장료는 폐지 되었는데
대신 문화재 보호비를 받아 빈축을 사고 등산객의 발길이 끊기는 현상은 곳곳마다 이어졌습니다.
설악산에 들어서자
중국을 비롯한 외국 관광객이 아주 많았습니다.
설악산 입구에 있는 사찰의 거대한 부처상은
등산객과 관광객의 시선을 끌고 발목을 잡았습니다.
거대한 부처상 안에 있는 또 다른 불당의 기도 도량은
불심 가득하지 않아도 소원이 이루어질 것 같은 믿음을 주기에 충분하였습니다.
부처상 안에 또 다른 기도 도량의 불당이 있다는 사실을
설악산을 찾아서야 처음 알았습니다.
종교적 부를 창출하는 수단이
유사 기독교와 흡사해서 불교가 원조가 아닌가 생각하였습니다.
복을 짓고 복을 받는 인본주의 무속 신앙은
모든 종교의 시작이요, 또한 민간 신앙이었습니다.
산을 찾으면 어디든 만나는 돌탑의 기원 또한....
불심 깊어서가 아니라 단순한 민간 신앙이었습니다.
설악산을 찾아 처음 느끼는 종교적 우매를 뒤로하고
녹음 짙은 창조의 서정으로 몸을 맡겼습니다.
설악산의 푸른 숲은
천혜의 절경과 비경이 더욱 살아 숨쉬는 동력으로 충천하였습니다.
푸른 숲 사이 멀리서 보이던 울산 바위가
연신 카메라 셧트를 누르게 하였습니다.
무거운 베낭과 곡괭이를 들고 산약초 산행을 소화해 내는 일정으로
가볍게 설악산을 등정하였습니다.
그냥 걸어서 올라가는 것이 답답하여
뛰고 걷기를 반복하며 스타일에 맞게 등산하였습니다.
설악산 울산 바위의 등정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울산 바위에 올라 인정샷을 찍고 내려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등산복 곱게 차려입은 5,60대 아주머니들이었습니다.
인사를 나누며 대단하다는 말을
끝없이 이었습니다.
그 중에는 70이 넘은 할머니도
울산 바위를 거뜬히 오르고 기쁘게 하산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리 나라 아주머니들이 참으로 대단한 것은
젊은 사람들도 힘들어 하는 울산 바위 등정을 제집 드나들듯 하는 것이었습니다.
원망과 불평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고
모두들 오르고 또 올라 울산 바위 정상에서 인증샷을 찍고 환호하였습니다.
설악산의 푸른 숲의 정기보다 더욱 힘찬 아주머니들의 등정하는 환호는
설악산 출사의 기쁨을 배가 되게 하였습니다.
힘들어서 못하겠다는 나약한 의식을 퇴출시키고
오르고 또 올라 정상의 맛을 느끼는 사람들은 모두들 성공신화의 주역이었습니다.
설악산 푸른 숲의 절경은
천혜의 비경으로 등정의 보람을 한껏 느끼게 하였습니다.
힘들어 죽겠다는 말 대신......
"좋다! 아! 너무 좋다!"는 탄성이 만면의 기쁨으로 묻어났습니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울산 바위의 비경은
합천의 가야산과 매화산이나 대구 팔공산의 동봉, 그리고 부산의 금정산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살악산의 위용이
다시 한 번 천혜의 비경과 절경으로 느껴졌습니다.
다양한 앵글로 울산 바위를 찍고
또 하산하면서 숲의 절경을 담았습니다.
내려 오면서 중턱에 있는 울산 바위 전망대와 흔들 바위에서 조금 더 머물러
산행의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설악산을 찾은 가운데
대중 버스를 이용한 사람들은 불과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함께 버스를 탄 사람들 가운데
설악산을 갔다가 속초 터미널에서 강릉 가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습니다.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의 사람들......
한 번쯤 여유를 가지고 명산을 찾아 길 떠난다면 삶의 활력이 될 것입니다.
설악산 울산 바위를 뛰어 올라갔다 왔는데도
자고 일어나니 근육통 하나없이 온 몸이 멀쩡하였습니다.
산약초 산행으로 더욱 다져진 몸은
산행의 피로와 후유증을 완전 퇴출시켰습니다.
며칠 전 동료 목사님께서 다산 교회로 전화와서
지리산 천왕봉을 갔다 왔는데 죽을 뻔 하였다는 말이 아득히 들였습니다.